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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27화 (12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6권 2화

김윤식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신은 아주 짧았지만, 남주에게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충성을 다했던 기업에 배신을 당하고, 믿었던 팀원들에게도 배신을 당한다.

사랑했던 여인도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이 상황의 원인 제공자인 김윤식은 유유히 차를 타고 빠져 나간다.

절망과 공황에 빠진 남주는 기업의 관리자급 인사가 철수하고, 팀원들이 확인사살을 하러 오자 모두 죽여 버린 후 도망친다.

그렇게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 신을 모두 찍은 그들은 바로 철수했다.

월터 등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갔고, 김윤식은 만족스러워하며 한국으로 향했다.

진호와 제작진만 로마로 향했다.

"오, 살 제대로 뻤네?"

"말 시키지 마. 쓰러질 것 같아."

정말 그랬다.

비쩍 말라진 세연은 툭 치면 기절할 듯 눈이 퀭했다.

작품을 향한 그녀의 각오가 어느 정도인지 느껴졌다.

옅게 웃은 진호는 장영진에게 다가갔다.

그는 무술 감독인 김홍근과 설전을 벌이고 있었다.

"발차기가 너무 화려하잖아! 간결하게!"

"아니, 그럼 화려하지가 않잖습니까! 화려하게 가자면서요!"

오늘 찍을 신은 지하철에서 도망치는 안나를 쫓아온 경찰을 제압 하는 장면이다. 그 때문에 이러는 것 같았다.

오늘 찍을 액션의 종류가 앞으로의 액션을 결정 지을 테니 말이다.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대검 한 자루만 주세요. 아무리 도망자라고 해도 업계 최고의 용병이었는데, 칼 한 자루 준비 안 하겠어요?"

"……."

"……."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그건 생각 못한 거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황이 커지게 되잖아. 이탈리아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쫓을 텐데?"

"날 끝이 아니라 손잡이로 제압 하면 되죠. 이렇게 팔을 쳐 내며 목을 팍. 그리고 무릎으로 사타구니 찍고, 팔꿈치로 관자놀이. 빠바박. 그리고 이탈리아 경찰들 더 투입. 아, 칼은 그때 꺼내야겠구나."

최대한 빠르게 적을 제압하는 기술이다.

"아 씨. 왜 이렇게 쉬워져?"

30분의 설전이 말 몇 마디로 인해 종료되었다.

김홍근은 살짝 거리를 벌렸다.

"한번 해 보자."

"네."

"널 제압해야겠다고 생각한 경찰이 이렇게 주먹을 내지르면."

진호는 느릿하게 뻗어 오는 주먹을 오른손 왼손 번갈아 치며 파고 들어가 목을 향해 손을 뻗었다.

"윽! 하고 주춤 물러나면."

"전 발을 올려치고 그대로 다가가 관자놀이를 빠악."

"흠, 이러면 너무 쉬운 거 같으니까 일단 경찰이 막고."

그렇게 상의하며 동선을 짜던 김홍근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거 뭐 죽지는 않아도 최소 2 주는 병원행인데?"

진호는 막으면 막을수록 몸이 더 망가지는 부분만 공략했다.

"계속해 보자."

"네."

장영진은 눈빛을 가라앉혔다.

자신이 The J에서 원하는 액션이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그는 메이킹 필름으로 쓸 영상을 찍고 있는 스태프를 보았다.

'저걸 어떻게 써먹을까…….'

"스태프 유출로 쓰세요."

"우리 진호, 깜빡이는 켜고 들어 와야지?"

"흐흐흐."

"그보다 스태프 유출? 언론 플레이 한 다음 메이킹으로 전환?"

"네. 네티즌들이 더 보고 싶다 안 달하면 미튜브에 따로 The J 채널 만들고 매일 조금씩 푸세요. 방송국과 딜해서."

재준이 잘하는 짓이다.

어그로 제목 달아 놓고, 영상을 조금씩 나눠 시간마다 올린다.

"한국대 경영학과가 수능 몇 점 부터 들어갈 수 있더라?"

진호는 웃음을 터트렸고, 장영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전 저기 이탈리아 배우와 합 맞춰 보러 갈게요."

"그래그래. 뭐 필요한 거 없고?"

"넵! 없습니다."

진호는 이탈리아에서 조연으로 유명한 배우를 향해 다가갔고, 분장을 받던 김세연은 그런 진호의 등을 빤히 바라봤다.

비니를 눌러쓰고, 검게 탄 것처럼 분장을 해서 그런지 부쩍 남자답게 느껴진다.

'아니, 기질이 변했어.'

거친 사내의 향기가 난다.

'리얼 정글에 가다'에서 봤을 땐 장난기 많고 신비한 매력을 뿜어 내고 있었는데, 이젠 거기에 사내 다움마저 입혀졌다.

'잰 어떻게 볼 때마다 바뀔까?'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응?"

한쪽이 부산스럽다.

정장을 입은 동양인들이 다가오고 있다.

'아, 그 중국 투자자들.'

"어?"

진호의 놀란 목소리가 촬영장을 울렸다.

"앨리?"

'뭐?'

여자 이름이고, 중국인들 중 여자 라곤 선두에 선 금발의 혼혈 미인 밖에 없다. 같은 여자가 봐도 감탄이 나오는 미녀.

김세연의 눈빛이 가라앉기 시작 했다.

한편 진호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우리 중국은 은원을 확실히 해, 진."

탁. 진호는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아, 그거였구나."

앨리는 허탈하게 웃었다.

눈앞의 이 남자는 그 엄청난 일을 기억에서 지워 버렸던 것이다. 마카오의 모든 카지노를 털어 버릴 뻔했던 사람들.

그걸 진호가 사전에 발견해 알려 주었다.

가만히 놔뒀다면 그 피해액이 천문학적이었을 텐데도 잊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넌 여전하네. 조금 더…… 남자 다워진 것 같고."

앨리의 눈이 빛났다. 거칠어지고 여유로워졌다.

진호는 그 눈에 가득 든 사심에 장난스레 눈살을 찌푸렸다.

"난 끈질긴 여자 싫은데……."

팍! 맞은 어깨에 몸이 흔들렸다.

"억!"

"인사해, 이 사람들은."

"카지노 관계자들이지? 이 말괄량이에게 어떻게 속으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투자를 잘하셨다 생각 하실 겁니다. 이진호입니다."

진호의 능숙한 광동어와 자신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맞혀 놀란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앨리의 얼굴이 발개졌다.

"그럼 전 여러분께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부디 즐겁게 관람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발 물러서 정중히 허리를 숙인 진호는 이탈리아 배우와 다시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젊은 친구가 정력이 대단하군."

카지노라는 기업의 임원인 자신들 앞에서도 당당히 말했다. 그리고 연기 연습에 들어가니 이쪽은 신경도 안 쓴다.

그 남자답고 프로페셔널한 모습이 무척이나 흡족했다.

"앨리 양이 왜 선택했는지 알겠어."

앨리의 얼굴이 더 붉어졌고, 사람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이내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앨리의 눈이 빛났다.

진호가 맡은 남주제이는 이동을 위해 지하철로 향한다. 한곳에 오래 머무는 건 발견해 달라는 소리 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산발을 한 여주 안나가 달려와 매달린다.

"살려 주세요!"

진호는 살짝 놀랐다.

본래는 타지에서 들은 한국어에 놀라야 하는 상황이다.

'기합이 제대로 들어갔는데?'

순간이지만, 김세연의 존재감이 자신의 존재감을 잡아먹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며 초조하고 공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절로 도 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바짝 든 진호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없이 그녀를 떼어 냈다.

"살려 주세요! 제발!"

"Cosa sei(넌 뭐지)?"

다가온 남자가 퍽 어깨를 밀었고, 김세연은 등 뒤에 숨었다.

"niente(아무것도)."

"Esci(꺼져)."

퍽 다시 밀어지는 어깨.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아악!"

비명을 지른 김세연은 도망치고, 사내는 씩씩거리며 따라간다. 갈등을 하던 진호는 결국 사내의 발목을 걸었다.

"윽!"

"Rendi il cavallo bellissimo(말은 예쁘게 해)."

여기까지다. 생전 처음 본 여성을 돕는 건 말이다.

"Questo bambino(이 자식이)."

하지만 사내는 그럴 생각이 없는 듯했다.

부응 뻗어지는 주먹. 가볍게 피한 진호는 경계 어린 표정을 짓는 사내를 보며 혀를 찼다.

얽혀 버리고 말았다.

"하아."

"Morire (죽어)!"

진호는 다시 휘둘러지는 사내의 주먹을 피하며 몸을 움직였다.

파바박!

"크악!"

"악!"

비명들이 터지고, 카메라 뒤에 선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간결하고 잔인하게 휘둘러지는 칼과 팔다리.

쥔 주먹에서 땀이 고였다.

다섯 이탈리아인들이 쓰러지고, 그들의 지갑을 확인한 진호가 다급히 자리를 뜨려는 모습을 보이자 '컷' 소리가 울렸다.

"후아!"

"하!"

무려 5분짜리 롱 테이크 격투 신이다. 그걸 NG 없이 단숨에 끝냈다. 이후 격투 신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진심을 담아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마카오 투자자들도 박수를 쳤다.

할리우드에서나 볼 수 있는 간결하고 잔인하며 처절한 액션이다. 화려하지 않아도 시선과 호흡을 앗아간 액션.

그들은 고맙다는 듯 앨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앨리의 설득이 아니었더라면 하지 않았을 투자이니 말이다.

안도한 앨리도 기꺼이 악수를 받았다.

"즐겁게 관람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진호의 인사에 마카오 투자자들은 환하게 웃었다.

"이런 액션이 가득하다면 무조건 찾아볼 만큼!"

"옛 홍콩 느와르를 보는 듯했습니다!"

"역시 한류의 한국……."

과분한 칭찬들이었다.

"이후 스케줄 있어?"

양 볼이 빨간 앨리가 물어 왔다없다.

답하려던 진호는 오른팔을 감아 오는 김세연의 팔에 살짝 놀랐다.

"진호야, 누나 연기하는 거 봐 줘야지?"

"어?"

'앤 또 왜 이래?'

눈웃음을 짓는 것도 모자라 앨리를 경계하고 있다.

'하아. 이 넘치는 매력 같으니.'

속으로 고개를 저은 진호는 꿈틀 거리는 입술을 겨우 눌렀다.

진호는 낯빛이 살짝 굳은 앨리를 지나쳐 투자자들을 보았다.

"여주인공의 남은 연기를 지켜보고 이동하시겠습니까? 제가 아주 좋은 요릿집을 알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이자 술집입니다."

"오! 하하하! 그런 곳이라면 얼마든지 기다려야죠!"

투자자들은 기꺼이 고개를 끄덕 였고, 진호는 뭔가 눈치를 채고 미약하게 감동하는 세연의 이마를 툭 쳤다.

"떨어져. 더워. 얼른 가서 연기 준비나 해."

퍽! 팔꿈치가 명치를 때렸다.

"억!"

"홍!"

'저건지 편을 들어 줘도 난리야.'

"괜찮아, 진? 정말 야만스런 여자네!"

황급히 다가온 그녀가 아찔한 향수 향기를 풍겼다.

명치를 쓰다듬는 고운 손이 남자의 심장을 뛰게 했다.

"하하. 괜찮아요. 그러면 자리를 옮겨 여주의 연기를 보도록 할까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곧 자리를 옮겼다.

더 이상 얽히기 싫은 제이가 택시를 타고 떠나고, 골목으로 도망치던 그녀는 결국 잡혀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악했다.

그 처절하고 공포 가득한 외침은 가슴을 절절 울렸다.

그에 투자자들은 함박 미소를 지었다.

젊은 두 배우의 연기력이 이 정도다.

한국에 있을 대배우들의 연기까지 합쳐진다면 정말 엄청난 대작이 나을 듯했다.

그들은 오늘, 앞으로 한류를 책임 질 이진호와 김세연이라는 한국 배우를 알게 되어 무척이나 기뻤다.

그래서인지 술이 마치 물처럼 들어갔다.

"으하하! 정말 개안했습니다, 장 감독! 이 배우!"

"하하하!"

술자리가 떠들썩하다.

그러나 딱 한 곳만은 조용했다.

김세연과 앨리가 마주 보며 앉은 자리다.

"호호! 너무 예쁘세요."

"你也恨漂充(당신도 예뻐요)."

"한 잔 받으세요."

"你也是(당신도 받아요)."

분명 영어를 할 줄 아는 둘이건만 한국어와 광동어만 하고 있다. 술도 잔이 비워지기 무섭게 따라준다.

웃고 있는데 웃지를 않고 있다. 진호는 더 멀찍이 떨어졌다. 휘말렸다가는 피 본다.

하지만 그곳도 지뢰밭이었다.

장영진과 투자자들 모두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

"하하. 이 배우는 아주 죄 많은 남자군요."

"짓고 싶지 않은데, 계속 짓게 되네요. 휴우."

"뭐라고요? 푸하하하하!"

웃음이 터졌다. 진호도 웃었다. 그들은 말 잘하는 진호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술자리는 깊어져 갔다.

* * *

"푸후. 다들 말술이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앉은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술자리는 1차에서 끝났지만, 마신 양이 어마어마했다.

안주요리 값보다 술값이 곱절로 더 나왔다.

피식.

김세연과 앨리를 떠올린 진호는 실소를 터트렸다.

주거니 받거니 달리던 둘은 결국 녹다운이 되었고, 스태프들의 부축을 받으며 퇴장했다.

남자로서 굉장히 뿌듯했다.

'세연이가 예쁘긴 하지…….'

"나도 미쳤네. 친구한테 무슨."

술기운이 너무 올라온 뜻싶었다.

"씻자. 씻어."

술기운이 가득 섞인 숨을 뱉은 진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음?"

의아해하며 문을 연 진호는 깜짝놀랐다.

"앨리?"

얼굴이 발간 그녀가 고혹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들어가도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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