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23화
* * *
편당 투자금 2억, 20편이면 40억이다.
이것도 편당 제작비가 2억이라는 소리지 제작 전 준비 과정에 소모 되는 금액과 배우 출연료, 스태프 월급 등은 별도다.
순수 제작비만 40억.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 한 편은 만들 액수다. 디올, 지방시, 태그호이어가 메인 스폰서로 붙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야. 진작부터 이렇게 입고 다니지. 아주 멋이 납니다, 형님!"
"시끄러워."
청룡영화제 시상식, 레드 카펫을 걷기 위한 입장 순서를 기다리다 모인 더 씨프의 출연진은 서로의 드레스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기 바빴다.
편집 숍이나 명품 숍에 걸려 이 맘때마다 배우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얻는 드레스가 아니라 디올 옴므와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가 직접 디자인해 주고 손수 제작해 준 드레스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살 수 없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드레스.
"내가 우리 진호 때문에 이런 호사를 다 누리네? 두 분께 꼭 고맙다고 전해 줘."
"나도!"
"우리도!"
"네. 그럼요. 이미 전해 드렸어요. 두 분께서도 정말 잘 어울리신다고 만족하셨어요."
"어휴. 우리 진호는 사회생활도 잘하지."
진호는 손을 쓰다듬는 김애숙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김주아가 불쑥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래서 우리 진호. 누굴 에스코 트할 거야? 당연히 나지?"
"어머. 유부녀가 꿈도 크네?"
김수혜도 눈을 빛내며 진호를 보았다.
등 뒤로 식은 땀이 주룩 흘렀다.
김윤식과 이재정, 최동진과 장영진은 짓궂게 웃으며 입을 다문 채 진호를 보았다.
'나쁜 사람들!'
잘 선택해야 한다.
잘못했다가는 어떤 고달픈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나 정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나머지 선택지는 모두 지뢰다.
"저야……."
사람들이 진호의 입을 주목했다.
"당연히 여기서 제일 아름다우신 선생님이죠."
"……푸하하하하!"
"크크크! 이야, 정말 사회생활 잘 한다!"
'시끄럽습니다!'
"햇."
"흐응. 우리 애기, 현장에서 보자?"
진호는 아쉬워하면서도 순순히 물러나는 둘을 보며 살았다는 걸 깨달았다.
김애숙도 잘했다는 듯 계속 손을 쓰다듬어 주었다.
"더 씨프 팀! 입장하시겠습니다!"
이재정이 박수를 쳤다.
"자, 그럼 모두 안에서 보자고요!"
-……이진호! 축하드립니다!
후보에 올랐을 때부터 기대하고 있던 진호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더 씨프, 최종 관객 수 약 1, 380만 명. 한국 영화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관객 수였다.
이변과 이견은 없었다.
"그렇지!"
"좋다!"
"꺄! 진호야!"
더 씨프 팀들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시상식장에 앉은 모든 영화 관계자와 배우들도 박수를 쳐주었다.
김애숙을 한 번 끌어안은 진호는 무대로 향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빛이 전신을 찔러 왔지만, 그래도 작년 연기대상에서 상을 타서 그런지 긴장되지는 않았다.
상패를 든 그는 당당히 입을 열었다.
"대중들께서 너무 과분한 사랑을 주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만큼 장파오는 비중이 크지 않았던 역할이었고, 또을 한 해 쟁쟁한 작품과 또 멋진 배우 분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시상식장이 조용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게 이 상을 주신 이유는 아마 네가 가장 어리니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일 겁니다. 정말 감사하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진호는 객석을 한눈에 담았다. 젊은 남자 배우들의 시기와 질투 가득한 시선들에 온몸이 꿰뚫릴 것 같다.
'음. 좀 미안하네.'
앞으론 진호 자신보다 앞서서 빛날 수 없는 사람들.
그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다음번엔 남우조연상, 남우주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분발 하겠습니다. 더 씨프의 대선배님들과 감독님들, 부모님, 재준이, 그리고 언제나 저를 지지해 주는 팀 이진호 직원들과 다미앙 씨께 이 상의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발 물러선 진호는 허리를 꾸벅 숙였고, 한 박자 늦게 박수가 터졌다.
짝짝짝짝짝짝!
-와. 패기 가득한 소감이었네요.
패기가 아니다. 각오다.
'연기밖에 없는 당신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다미앙 씨가 포기한 걸 돌려드리기 위해선 내가 빛나야 하거든. 당신들은 쳐다볼 수 없을 만큼.'
닿을 수 없는 곳에서면 저 눈빛들의 성질은 바뀌게 될 것이다. 시기와 질투에서 존경으로.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자리로 돌아온 진호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더 씨프의 출연자들과 감독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진호의 몸을 툭툭 쳤다.
"그래, 인마. 배우라면 그 정도 패기는 있어야지."
"소감 멋졌다. 준비했지?"
"으흐흐."
이날, 더 씨프는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감독상, 인기스타상, 총 5관왕을 하게 되었다.
* * *
진호의 수상 소감은 '좀 건방진 게 아니냐.'라는 작은 논란이 일었다가 수그러들었다.
첫 영화 데뷔에서 1, 380만 명이다.
건방진 게 아니라 패기가 넘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포장되었다.
이후 진호는 음악 예능 하나에 출연하고는 바로 미국의 마이애미로 향했다.
민간 군사 기업에서 퇴역한 용병들이 만든 훈련소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민간 군사 기업에서 훈련병 위탁을 받거나, 일반 시민들에게 총기 사용법을 가르치거나, 사격장을 운영하거나,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액션을 가르치는 다목적 훈련소다.
촤좌좍!
바퀴가 자갈들을 짓누르며 훈련소의 입구를 지나자 신체에 미미한 변화가 일어나는 게 느껴졌다.
'역시 군사 훈련소라면 다 되네.'
현재 얻으려는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은 '군사 훈련소 입소하기'. 민간이건 육군, 해군, 공군이건 군사 훈련소라면 상관없다.
처음 이 스킬 해금 조건을 오해해 육군 훈련소를 찾는다고 2주간의 시간을 허비한 것만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울컥 솟는다.
현실 속 육군 훈련소가 아니라 리셋라이프 속 변화한 지형 속에서의 육군 훈련소다.
[스킬 :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얻기 위해 내려갔던 팔공산의 선본사가 서울 도심 속에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신경이 예민해졌어.'
초조하거나 짜증 나는 게 아니다.
온몸의 근육이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긴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집에 온 것처럼 편안했다.
탕탕.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포 소리조차도 마치 하양이가 밥 달라고 우는 것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차에서 내린 진호는 작렬하는 태양에 미소를 지었다.
"아. 덥다."
오는 길에 보았던 해변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신의 축복이 가득하길."
"고마워요, 라미레즈."
싱긋 웃은 택시기사는 차를 돌렸고, 진호는 기다리고 있는 덩치 큰 백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진, 지노. 편하게 불러 주세요."
"다인 코프 훈련소에 입소한 걸 환영합니다. 진. 월터입니다."
꾹 마주 잡은 손에서 힘이 느껴지자 진호도 싱긋 웃으며 힘을 주었다.
"법에 걸리지 않나요?"
꽈아악!
순간 눈을 빛낸 월터가 손을 풀었다.
"하핫. CEO와 담판 지어서 괜찮습니다. 이쪽으로."
그가 안내한 곳은 숙소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침대와 책상, 관물대만 덜렁 놓인 1인실.
"그럼 코스를 짜도록 하죠."
"음? 그건 통화로 다 이야기되지 않았나요?"
"……진심이었습니까?"
"그러려고 VVIP 코스를 선택한 것입니다만?"
"Holly Jesus. 정말 그 돈을 내고 미 특수 부대 훈련을 받겠다는 겁니까? 사 주 동안?"
모든 걸 입맛대로 짤 수 있는 VVIP 코스는 7만 달러, 한화로 8 천만 원이 넘는 액수다.
"네."
2차 해금 조건이 '사주 동안 특수 부대 훈련받기'다.
이후로도 해금 조건이 몇 개 더 있다.
"무슨 문제 있나요?"
"당연히 문제가 있습니다! 그 코스는 퇴역한 특수 부대원들이 다인 코프에 입사하기 전 몸과 정신을 다듬는데 쓰이는 훈련입니다. 당신 같은 일반인은 절대 따라 올 수 없습니다!"
진호는 대답 대신 들고 온 가방에서 피지컬 테스트 검사표를 내밀었다.
낚아채듯 가져가 살핀 월터는 미간을 좁혔고, 진호는 싱긋 웃었다.
"믿지 못하겠다면 시험해 보셔도 됩니다."
"……포기해도 환불은 없습니다."
"포기하면 다른 훈련을 받으면 되죠. 제가 신청한 기간은 두 달이잖아요."
월터는 울컥 무슨 말을 뱉으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VVIP 코스의 기간이 2달인 건 맞지만, 이 훈련소의 미 특수 부대 훈련은 영화로도 소개된 네이비씰이 되기 위한 악명 높은 군사 훈련이다.
진호는 그것도 모자라 액션 훈련 까지 받는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훈련은 내일 오전 다섯 시부터 시작입니다."
"옙!"
"훈련복은 곧 가져다드리죠."
진호는 문을 닫고 나가는 그를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미친 짓이긴 하지."
본래 이 훈련소의 군사 훈련은 6 주짜리 코스다.
자신은 그걸 4주로 압축한 거다.
남들은 잘 때, 훈련을 받는다는 뜻이다.
[스킬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와 [스킬 : 사상 최강의 제자]가 없다면 엄두도 못 냈을 계획표다.
"확실히 날 사이코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네."
피식 웃은 진호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4시가 되기도 전에 눈을 뜬 진호는 훈련복으로 쓸 미군 군복으로 환복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군화가 무척이나 편안했다.
'아, 나는 군대체질인가?'
스킬을 1차 해금해서다.
1차 해금은 군인 체질임을 자각 하는 단계.
아침부터 자신이 자랑스러워진 진호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페인어 원서였다.
쿵쿵!
벌컥!
"일어…… 큼. 일어났군요."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월터를 보았다.
처음 그가 낸 목소리의 볼름은 모기보다 작았다.
반면 소중한 고객이라서 일어나질 않기를 바랐던 월터는 놀랐다. 흥분하거나 잠자리, 시차가 바뀌어 잠을 설쳤나 싶었는데 눈이 너무 맑았다.
'아, 한국 남자들은 모두 군대를 간다고 했지.'
오래된 기억을 끄집어낸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 특수 부대출신인가 보군. 생긴 건 레오나르도 디다리오 어릴 때보다 열 배는 더 잘생기고 곱상한데…….'
크나큰 오해였지만, 월터는 그제야 진호가 그런 코스를 원한 걸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봐주지 않아도 되겠어.'
"큼. 그럼 앞으로 당신의 애인이 될 총기를 지급하도록 하죠. 따라 오십시오."
그를 따라가니 딱 봐도 폐기 일보 직전인 M416 소총이 주어졌다. 공간 안에는 족히 수백 정은 될 법한 총기들이 있었다.
"이제부터 당신의 애인입니다. 소중히 다루십시오. 그렇다고."
월터가 방아쇠가 있는 부분을 가리켰다.
"하면 안 됩니다."
'도랏!'
"안 합니다! 맞지도 않아요!"
"오우! 하하핫!"
진호는 질겁하면 월터를 보았다.
'아, 진짜 얘네들 농담은 왜 이렇게 세?'
한국인이라면 절친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농담들이 서슴없이 튀어나온다.
'흠. 성격이 좀 내성적인가 보군. 파병을 다니지 않은 건가?'
다시 오해한 월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죠."
그를 따라간 공간은 동영상으로만 봤던 유격 훈련장처럼 생겼다. 그곳엔 거친 공기를 내뿜는 역전 용사들이 서 있었다.
'와. 이것도 편해…… 응?'
백인, 흑인, 라틴, 덩치 큰 남녀들 사이에 이질적인 존재가 끼어 있었다.
"어? 어어?"
"아, 이걸 이야기하지 않았군요. 저희 훈련소에는 당신처럼 배우면서도 특수 부대 군사 훈련을 자청 해 들어온 사람이 있습니다. 지구인이라면 모를 리 없는 이름이죠."
"제니퍼…… 로제."
할리우드 여배우 수익 1위.
"지아이제인 리메이크 촬영을 위해서라고 하더군요."
"……와."
놀라는 진호를 보며 웃은 월터는 도열한 훈련병들을 향해 외쳤다.
"새로 온 동료다! 보다시피 배우다. 그래도 무시하지 마라. 한국 남자는 모두 군대를 다녀오는 군인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어? 잠깐?'
"그중에서도 특수 부대를 제대한 군인이다! 박수로 환영해 주도록!"
'아저씨, 잠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