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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21화 (121/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21화

* * *

더 씨프는 3주 차로 접어들면서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할리우드 대작이 개봉을 해서다. 그래도 4주 차 시작이 되면서 700만 고지를 찍었다. 드디어 공약을 이행해야 할 때였다.

"진짜 할 거냐?"

재준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응. 할 건데?"

"……어휴, 이 또라이 새끼. 올라가기나 해!"

콧방귀를 뀐 진호는 스피커가 설치된 1톤 트럭 짐칸에 올랐다. 진호뿐만 아니라 커다란 카메라를 든 스태프와 재준도 올랐다.

부릉!

출발한 차는 곧 큰길에 접어들었고, 진호는 마이크를 들었다.

'가자!'

그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크게 열었다.

수능이 채 2달도 남지 않은 여고생 강경미의 얼굴이 창백하다.

"어휴, 그래. 얼른 병원 가. 쓰러지겠다."

"가, 감사합니다. 쌤."

"네가 성적 좋아서 조퇴시키는 거야. 가 봐."

위태롭게 허리를 숙인 그녀는 교실에 들러 유난히 빵빵한 가방을 챙긴 후 학교를 나섰다. 그렇게 교문을 빠져나온 그녀는 벽을 짚으며 힘없이 발을 내디뎠다. 발이 질질 끌렸다.

한 발, 한 발, 한발.

스으윽. 스윽!

터벅. 타박. 저벅. 자박. 자박.

마치 누군가를 매단 듯 힘겹게 끌리던 발이 몇 발자국 사이에 날 듯 가벼워졌다.

"룰루!"

흐릿했던 초점마저 말똥말똥해진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어 지니어스 팬 사이트에 접속했다.

오후 7시. 라이브 앱. 700만 공약 공연.

"……히히히. 우리 진호 오빠가 이번엔 어떤 공연을 할까?"

그랬다. 그녀는 진호의 팬이었다.

"칠백만 공약이니까…… 아냐. 공연을 해 주는 것만도 어디야."

다른 연예인, 특히 가수들은 무슨 공연을 하면 엄청나게 비싼 입장료를 받는다. 입장료뿐만 아니라 비싼 굿즈도 판다.

하지만, 진호는 다르다. 이번에도 공짜다.

"장소만 말해 주면 쫓아가서 목이 터져라 응원할 자신 있는데……."

어느 장소인지는 모르지만, 길거리 공연이라고 했으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땡잡은 거나 다름없다.

입술을 삐죽 내민 그녀는 가방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는 프로젝터를 느끼며 옅게 웃었다.

팬클럽 정모를 통해 알게 된 친구들과 모여 커다란 장소를 대관해 프로젝터로 상영하기로 했다. 팬 사이트 플래티넘 등급, 준 간부로서 본방 사수는 당연한 일이었다.

"뭐, 못 오면 지들 잘못이지. 그리고 다시 보기로……."

강경미는 미간을 좁혔다.

저 멀리서 시끄러운 고함이 들려 오고 있었다.

"아,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일곱 시!……!"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일곱 시! 한국대!"

'응?'

어디서 많이 듣던 목소리다.

"어라? 저거 뭐야?"

"설마? 푸하하하핫! 이야, 오랜만 이네. 저거."

주위 어른들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1톤 트럭을 보며 웃음을 터트린다. 누군가는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듯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을 든다.

30대 이상에게는 추억일 수밖에 없는 홍보 방식.

'뭐지? 왜들 저러지? 그리고 목소리는 왜 이렇게 낯익은…….'

강경미는 가까이 다가온 트럭을 보곤 경악했다.

"오후 일곱 시! 한국대 운동장입니다! 많이 와서 즐겨 주…… 야! 강경미! 고삼이 왜 지금 학교 밖에 있어! 혼날래! 돌아가, 쨔샤!"

"푸하하하핫!"

"크크크크큭!"

"지, 진호 오빠?"

"너 내가 확인한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제가 오후 일곱 시! 한국대 종합 운동장에서 게릴라 콘서트를 합니다! 무료니까 가벼운 마음으로 오셔서 즐겨 주세요!"

"만 명 목표예요! 오지 마세요!"

"아니야! 조용히 해! 오천 명입니다! 오실 분들만 오세요!"

귀를 뚫어 버릴 것 같은 커다란 외침.

1톤 트럭은 느릿하지만 빠르게 멀어졌다.

"캬. 진짜 오랜만이네, 저거. 이번에도 MBS에서 하나?"

"재 무휼이잖아?"

"아냐. 장파오잖아."

"뭘 싸워. 저 여고생에게 물어보면 되지. 저기요, 혹시 저 배우 팬 이세요?"

"아, 네.네."

"저 배우 노래 잘 불러요?"

"……그럼요!"

정신이 없지만, 포교는 본능이다.

"우리 오빠가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는데요! 이번 설에 열린 카피 콘서트라고 아세요? 그때 오빠가 퀸 모창을 했는데."

그녀는 열심히 설명했고, 그럴수록 모인 사람들의 눈은 호기심으로 물들어갔다.

"쓰음. 한번 가 볼까?"

"일곱 시랬지? 뭐, 퇴근하면 갈 수 있겠네."

"히야. 아직도 저걸 하는 사람이 있네."

강경미는 흥미를 가지며 흩어지는 사람들을 보다 조용히 핸드폰을 들었다.

-응! 미짱! 왜?

"우리 오늘 만남 취소."

-왜! 조퇴 못했어?

"……아니. 우리 오빠가 공연하는 장소 찾았어."

-뭐, 진짜? 어디야!

장소를 말한 그녀는 벌써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릴 만큼 멀어진 진호를 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도 요동치기 시작 했다.

* * *

한국대학교의 종합 운동장에 세워진 커다란 무대 뒤 대기실. 진호는 매일 스포츠의 두 기자를 보며 히죽 웃었다.

"이 정도면 만족하셨나요?"

"……평생 진호 씨 전담을 하고 싶을 정도로요."

두 사람의 눈빛이 타오를 듯 이글거린다.

그만큼 충격을 받은 거다.

"어후. 아직 몇 분이 오셨는지도 모르는데, 너무 과한 칭찬인 거 아니세요?"

"지금은 SNS의 시대입니다, 진호씨."

"알아요."

그런 전제 조건이 있기에 할 수 있었던 기획이다.

'많이 오면 좋을 텐데…….'

두 기자는 어이없어 했다.

"어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친구 관리를 잘못했습니다."

슈트를 차려입은 재준이 넙죽 허리를 숙이자 둘은 어색하게 웃었다.

진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야, 너 그냥 MC 하지 말고 가. 경만이 형 부를 거야. 안 그래도 아까부터 연락 왔어."

"진호 형!"

"꺼져."

"에헤이, 우리 친구님이 왜 이러 실까."

콧방귀를 뀌던 진호는 안대를 들고 다가오는 스태프에 낯빛을 굳혔다. 하는 김에 제대로 하려는 것이다.

진호는 진지한 눈빛으로 친구를 보았다.

"부탁할게."

"걱정 마, 인마. 후!"

숨을 짧게 뱉은 재준은 마이크를 챙겨 들고 나갔고, 진호는 두 기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긴장하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언제든 엔터만 치면 됩니다."

씩 웃은 그는 안대와 귀마개를 했다.

특수 제작한 헤드셋이 소리를 앗아 갔다.

들리는 건 조금 거칠어진 숨소리와 심장 박동 소리였다.

'얼마나 왔을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니 초조함이 고개를 들었다.

괜히 했나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아냐. 몇 명 오면 어때.'

20만 명의 지니어스가 라이브 앱으로 시청 중일 거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이윽고 스태프들이 다가와 몸을 붙들더니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몸을 맡긴 채 걷자 짧아진 가을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단을 올라 튼튼한 바닥을 딛자 헤드셋이 벗겨졌다.

방금 전 예민했던 감각이 둔해지는 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자연을 제외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숨소리만 들려.'

"안대를 하셨지만, 일단 팬들에게 인사부터 하죠."

"안녕하세요! 현재 한창 상영을 하는 더 씨프에서 장파오를 맡은 배우 이진호입니다! 칠백만 공약을 위해 이렇게 준비해 봤습니다! 더 씨프 계속 사랑해 주세요!"

웃음소리와 저 멀리서 함성 소리가 들렸다.

'오백? 천?'

전력으로 지른 외침이 3방향에서 희미하게 들려온다.

최소 70미터 이상. 진호는 빠르게 계산을 했다.

"조금만 더 조용히 해 주세요. 얘가 엄청 똑똑하다 보니 방금 전 소리로 몇 명 왔을지 계산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놈이?'

역시 10년 친구다웠다.

"이진호 씨. 지금 심정이 어떠시죠?"

"……떨립니다."

입술과 목소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떨린다.

"아! 아아! 혹시 집에서 시청하라는 말 안 듣고 쫓아온 지니어스 있어? 한국대 후배, 동기, 선배님들! 오셨죠?"

"응. 당신이 아무리 말해도 대답 안 해요. 다 조련시켜 놨어요. 진호 씨 생각과 많이 다르죠?"

'때리고 싶다!'

충동이 울컥울컥 솟았다.

"후, 사실 목표인 오천 명을 달성 하지 못한다고 해도 공연은 합니다. 공약이기도 하지만 일부러 찾아오신 분들, 그것도이 넓은 한국 대까지 찾아온 분들을 위해서라도 할 수밖에 없죠. 다만 삼십 분으로 짧게 끝내냐, 아니면 이 밤을 불태우냐로 나뉘게 됩니다."

"오. 지금 협박하시는 건가요?"

"협박이 아니라 성공했으면 하는 소망인 거죠."

뜸을 들인 진호는 결국 마음속의 말을 꺼냈다.

"꼭 성공하고 싶습니다."

"네. 협박 잘 들었습니다. 자! 그러면 이제부터 안대를 풀고 오늘 몇 분이나 오셨는지 눈으로 확인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쓰으. 여러분들 지금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미치겠죠?"

푸다닥 뭔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어우! 저는 환장하겠어요."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큭큭. 자, 그럼 지금부터 안대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이진호 씨! 안대를 풀어 주세요!"

안대에 손을 가져간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아!"

"우와아아아아악!"

온몸이 흔들렸다.

재빨리 안대를 벗은 진호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와."

수천. 아니 족히 만 명은 되어 보인다.

앞자리 2천여 명이 지니어스라 적힌 형광봉을 파도처럼 흔든다. 볼이 절로 씰룩거리고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솟아올랐다.

"야. 지니어스. 오지 말랬지. 그리고 그 형광봉은 어디서 났어? 내 굿즈 아니잖아."

"저희가 자체제작했어요!"

"누구 돈으로?"

"모아서요!"

"……암튼 말은 죽어라 안 듣지. 회장 누나와 간부 누나들, 좀 있다가 면담 좀 해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뭘 그렇게 아는 사람들끼리만 이야기하세요. 오신 분들 집계 확인 안 해 봐요?"

"확인할 필요 있을까요?"

"순서예요."

"아, 네."

다시 웃음이 터졌다.

"자, 그럼 모두 저쪽의 형광판을 봐 주세요!"

모두의 시선이 형광판으로 향했다.

"지금부터 집계를 시작하겠습니다!"

드럼 소리가 울리며 사람들의 긴장감이 올라갔다.

그러며 커다란 형광판의 숫자도 빠르게 움직였다.

"오 끝자리가 멈췄습니다! 끝자리 삼! 십 단위 오! 백 단위 칠! 천 단위! 아, 삼천이네요. 만 단위! 만! 총 만삼천칠백쉰세 명이 오셨습니다! 게릴라 콘서트 성공했습니다!"

"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악!"

"진호 씨 심정이 어떻죠?"

"……일부러 찾아온 팬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선물부터 주고 싶네요. 시간은 많으니까 첫 곡은 잔잔하게 갈게요. 발매한 지 반년 정도 됐습니다. 카피 콘서트 이후 아는 형이 작곡해 주셨죠."

진호는 음향팀을 향해 신호를 주었고, 곧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어디선가 들어 본 멜로디. 이별을 할 때 듣는 곡.

팬들은 눈을 부릅떴다.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진호는 봐 달라는 듯 귀엽게 웃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나 음원 발매 했다. 속여서 미안해!"

진호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종합 운동장은 뒤집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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