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19화 (119/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9화

진호는 배우들의 뒤를 따라 의자가 놓이는 무대로 향했다.

감독 배우들이 나란히 서 허리를 숙이자 다시 한번 박수가 쏟아졌다.

진호는 일어서 박수를 치는 부모님을 보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흐뭇함과 대견함으로 가득한 얼굴을 보자 울컥 치솟는 게 있었다.

'……나 영화 찍었구나.'

방금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모니터링을 하는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실감이 되고 있다.

사타구니가 저릿하고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걱정도 되었다.

이윽고 기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되었다.

"한국 영화 역사상 범죄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이렇게 도둑만 나오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습니다. 엄청난 도전이었을 텐데, 어떻게……."

꽤 긴 질문이었다.

이런 식의 질문들은 꽤 이어졌다.

대한민국 최초인 도둑이 주인공인 영화.

진호는 포커페이스를 가장한 기자들을 보며 옅게 웃었다.

'재밌게 봤구나?'

기분이 더 좋아졌고, 걱정은 싹 사라졌다.

"진호 덕분이죠."

"응? 저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던지라 진호는 김윤식을 보며 어리둥절했고, 웃음이 터졌다.

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빨라졌다.

"저 기자 분이 무슨 질문 했게?"

진호는 마이크를 입 앞으로 가져 왔다.

"한국과 모든 게 다른 마카오에서 촬영할 때 애로사항이 없었는지요."

"오. 넋 놓고 있는 줄 알았더니 다 듣고 있었네?"

"저기 부모님이 계시는데 그랬다가는 엄마한테 집안 망신이라고 등짝 맞아요."

다시 웃음이 터졌다.

몇몇 기자들은 몸을 돌려 셔터를 눌렀고, 어머니 나진희는 얼굴을 가렸다.

"이렇게 언제든 귀가 열려 있고, 눈치도 빠른 진호 덕분에 참 편하게 촬영을 했습니다. 엔딩 크레딧에 올라간 것처럼 진호가 기술 자문으로서 많은 곳에서 활약한 부분이 있어서 정말 즐겁고 유쾌하게, 완전히 몰입할 수 있었던 촬영 이었습니다."

"소품 배치, 배우 동선 등 많은 부분에서 진호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얘가 도둑인지 아니면 배우인지 헛갈릴 정도였죠."

김윤식이 말하고, 최동진이 받았다.

기자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믿지 못할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요리는 왜 빼놔요?"

"아, 그렇지. 요리. 정말 그때 중 식당에서 찍은 것만 생각하면…… 푸하핫!"

"아, 그거! 하하하하하!"

배우와 감독들 모두 웃음을 터트렸고,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기자들은 애가 달았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 것 같은데,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게……."

김윤식은 그 에피소드에 대해 말했고, 기자들은 믿지 못했다. 폐업한 식당에서 배우와 스태프를 위해 요리를 했는데, 마카오 현지 주민이 식당을 연 줄 알고 찾아왔다.

믿는 게 더 이상했다.

하지만, 믿을 수밖에 없었다. 대 배우들과 성공한 감독들이 새파랗게 어리고 필모그래피도 빈약한 진호를 띄워 줄 이유는 없으니 말이다.

기자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뭐니 뭐니 해도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는 그거지만."

"그렇죠, 그거죠. 그렇지 않나요, 주아 씨?"

"스릅. 그렇죠?"

뜬금없는 말에 의아했다가 알아 차린 진호는 질겁했다.

"아, 잠깐. 에이, 그건 아니죠. 잠깐만요!"

"호오.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가 따로 있나 보네요."

진호는 배우들이 던진 미끼를 문 기자들을 보며 펄쩍 뛰었다.

"아뇨, 없었습니다! 더 없었어요!"

"진호 어머니. 죄송해요! 제가 진호의 첫 키스를 가져갔어요! 아주 아들을 잘 키우셨어요!"

"와아아아아아악!"

진호는 다급히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다 들어 버린 뒤였다. 기자들의 눈이 자동차 헤드라이트처럼 빛났다.

"첫 키스요? 배우로서? 아니면 인간 이진호로서?"

"인간 이진호죠! 그렇게 알고 있어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진다.

"어? 잠깐. 그러면 그 게이 지배인과는……"

"당연히 두 번째죠!"

김주아를 원망스럽다는 듯 응시한 진호는 빠르게 타자를 두드리는 기자들을 보며 모든 걸 포기했다.

배우 이진호의 첫 키스, 두 번째 키스 상대는? 이라는 자극적인 기사 문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하얗게 타 버린 진호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진호는 누구보다 크게 웃는 김주아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후후후. 그래요, 어디 폭로 전 한번 가 보자는 거죠?"

"어? 자, 잠깐? 지, 진호야? 누나가 사랑하는 거 알지?"

하얗게 질린 김주아가 다급히 외쳤지만, 마음이 갈기갈기 찢긴 진호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네, 이모. 잘 알죠. 옛날 국민 여자 친구 김주아 씨뿐만 아니라 다른 배우 분들의 사생활에 대해 궁금하신 기자님들은 손을 읍?"

식겁한 배우들이 달려와 진호의 입을 막았다.

"자, 우리 진호 착하지? 누나랑 투스타 레스토랑 갈까?"

"삼촌이 아주 맛있는 맛집 알고 있다. 오늘 갈까?"

"푸하하하하!"

"크크크크크크!"

상황은 약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드리려고 합니다."

진호는 이쪽을 보는 기자를 보며 마이크를 잡았다.

"모.뉴.도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음에 따로 인터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최종 우승자가 설 쇼는 정해졌고, 그를 위해 생존자들이 마지막 분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 노래 실력에 관한 이야기도 따로 인터뷰를 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놀란 기자는 얼떨떨해하면서도 아쉬워하며 앉았다.

몇몇 기자들도 입맛을 다시다가 진호를 의미심장하게 봤다.

이제 22살의 어린 배우가 맺고 끊는 게 단호했다.

그러면서도 불쾌하지 않았다. 일반적인 20대 초반이라고는 볼 수 없는 담력과 냉정함.

굵직한 사건들만 담당하는 베테랑 기자들이 진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후 질의응답은 계속 이어졌다.

시사회가 끝났다.

"엄마! 아버지!"

짝악!

"아악!"

"넌 꼭 그런 말을 해야 했니! 얘가 아주!"

짝! 짝!

"악! 악! 사랑해! 사랑해요!"

기자들이 빠져나가고도 남아 있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어머니 나진희는 집에서 보자는 살벌한 말을 남기고 떠났고, 다미앙이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진호 씨."

"수고랄 게 있나요. 반응은 어떻죠?"

다미앙이 핸드폰을 보여 줬다.

더 씨프와 진호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사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진호. 도둑인가, 배우인가.

-나는 요리왕. 이진호.

-더 씨프의 장파오. 진짜 도둑?

-배우 이진호의 첫 키스, 두 번 째 키스 상대는?

-배우만큼 꽉 찬 더 씨프. 9월의 영화로 추천.

-더 씨프, 700만 공약을 걸다!

기사만 수십 개다.

'우리나라 기자님들, 참 빨라.'

댓글은 아직 몇 개 달리지 않았지만, 다 좋은 댓글밖에 없었다. 아마 오늘이 지나면 더 불타오르게 될 것이다.

"진호야. 아, 마침 팀장님도 계셨네."

장영진이 다가왔다.

진호는 그의 얼굴을 보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설마…… 진짜요?"

장영진이 그 특유의 선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투자자들에게 허락받았다. 스케줄 정하자."

"……와우."

진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다미앙도 놀라 장영진을 보았다.

코드네임 J. 첫 주연작이 될 드라마에 시동이 걸렸다.

* * *

톡. 톡. 톡.

매일 스포츠 연예부, 20대 후반 김영란 기자는 볼펜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그녀의 귀에 끼워진 이어폰에선 진호가 '모델, 뉴욕에 도전하다'에서 부른 게리무어의 Parisienne Walkways가 흘러나오고 있다.

"……희한하다. 분명 어디서 들어 봤는데."

연속해서 들을수록 기시감이 느껴졌다.

"영란아, 아직 안 됐어?"

생각에 잠긴 그녀는 사수의 외침을 듣지 못했다.

"낯이 익은데. 흐으음."

휙 이어폰이 빼지자 고개를 돌린 그녀는 악마처럼 일그러진 사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사수의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야, 김영란. 내가 이진호에 대해 정리해서 가져오랬지, 회사에서 덕질하라고 했냐? 미쳤어?"

김영란은 오늘 수많은 기사를 양성해낸 진호의 팬으로서 지니어스 골드 계급이다.

그래서 남자 사수는 그녀에게 오늘 저녁에 있을 이진호와의 인터뷰 자료 정리를 맡겼다. 그런데 이렇게 농땡이를 치고 있었다.

김영란은 덜컥 겁이 났지만, 잘못하지 않은 일로 사과하고 싶진 않았다.

그건 기자의 덕목이 아니었다.

"아뇨, 선배.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라서 그래요. 분명 선배도 들어 본 목소리예요."

"……야, 이 씨. 당연히 만날 네가 물고 빠니까 들어 봤겠지!"

"아니라고요! 이 목소리랑 정말 똑같은 목소리가 노래하는 걸 들어 봤단 말이에요!"

"니들 또 싸우냐!"

부장의 외침에 둘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어이구,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저것들 안 잡아가고."

연예부에 웃음이 터졌다. 얼굴이 새빨개진 남자 사수는 김영란을 죽일 듯 노려봤다.

"너…… 좀 있다가 보자."

"아, 진짜 믿어 보라고요. 봐요."

김영란은 진호의 팬 사이트에 접속해 게시판을 열었다.

오늘 올라간 기사들의 말미에 써진 '노래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인터뷰하겠다'라는 내용 때문에 팬 사이트도 술렁이고 있다.

남자 사수의 얼굴이 굳었다.

"나 미쳤나 봐, 우리지니 목소리를 다른 사람에게서도 들은 것 같아. 동의해요, 본방 시청할 때도 느꼈지만, 저도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아요……."

"거봐요. 여기도 어디서 들어 본 목소리라고 나오잖아요. 간부들은 뭘 어디서 들어 봤냐, 뭐가 똑같냐 댓글 달지만……."

"그러네."

순간 기자로서의 촉이 곤두섰다.

거대한 무언가가 장막에 가려진 느낌.

"그러고 보니 이상하네."

"뭐가요?"

"게리무어야 그렇다 쳐도 고음 넘쳐 나는 라이프 오브 써클 때 JH나 HU에서 뿌린 홍보자료 없지?"

"……그, 그렇죠?"

"그래. 홍보하기에 끝장나는 소스인데, 홍보를 안 했잖아. 기자들이 물어도 몰랐다, 자신들도 이제야 알았다로 묵묵부답."

"네. 그것 때문에 팬 사이트도 불 타오르려다가 가라앉았죠. 간부들도 원래 노래 잘 부르는 걸 알지 않았냐며 진정시켰고."

둘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젠 김영란도 기자로서의 촉이 맹렬하게 발동하고 있었다.

팬클럽간부는 진성 코어 팬이다. 그런 그들이 상황을 키우지 않고 오히려 진정시켰다.

그땐 그러려니 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둘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si tu. si tu.

둘은 반사적으로 옆을 보았다. 옆에 앉은 기자가 핸드폰을 뒤집고 있었다. 남자 사수가 코웃음을 쳤다.

"언제까지 궁상떨래? 반년이면 잊을 때도 되지 않았냐?"

"궁상이 아니라 노래가 좋아서 그런다. 왜?"

"웃기고 있……."

턱!

갑자기 잡힌 손에 김영란을 본 남자 사수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전신이 떨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옆 기자의 핸드폰을 가리켰다.

"이, 이거예요."

"뭐가?"

"이거라고요! 이 사람! 프로젝트 L! 싱어 진! 제이 아이 엔! 우리 진호가 해외에서 쓰는 예명이라서 팬클럽을 뒤집어 놨던! 이 씨발 간부년들! 뭐가 똑같지 않다는 거야!!"

그녀의 외침이 연예부를 꿰뚫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