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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17화 (117/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7화

진호는 슬그머니 문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아, 아뇨!"

"아닌데요, 쌤! 서로 힘내자고 어? 위로하고 있었던 거예요! 야, 너도 말 좀 해 봐!"

"네! 맞아요! 여기 카메라들 보세요!"

3대의 카메라와 스태프들이 그들을 찍고 있는 중이다.

"어흠. 그렇지? 하하. 난 너희들을 믿었다. 그럼 누구 제자……."

"전혀 안 믿는 눈이었는데요."

의심 가득한 눈빛이 굉장히 따가웠다.

"매, 맥주 마실 거지? 나가자!"

탈락자들은 피식 웃고 말았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진호가 방금은 마치 또래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한참 어린.

"어? 근데 지금 나가도 돼요?"

현재 시각이 9시다. 해가 지면 숙소를 나가지 말라고 경고한 게 진호였다. 총기로 인한 사망 사고가 많은 미국이다 보니 모델들도 그 경고를 지키고 있었다.

"괜찮아. 사람 많으면 상관없어."

아무리 간 큰 범죄자라고 해도 십수 명의 사람들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지는 못한다.

거기다 카메라도 있다.

"엑! 그건 말 안 하셨잖아요!"

"안 그랬으면 새벽에 나갔다 왔을 거잖아."

정답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큭큭. 가자."

탈락자들은 아싸하며 따라나섰고, 진호는 근처의 슈퍼마켓에서 맥주와 안주를 사 센트럴 파크로 향했다.

간간이 가로등만 켜진 저녁의 센트럴 파크는 유난히도 조용했다. 그들은 한 벤치에 앉았고, 말이 없는 맥주 타임이 시작됐다.

진호가 입을 연 건 한 캔의 맥주를 비웠을 때다.

"억울하지?"

"……그렇죠."

똑같이 노력했다. 그런데 누군 승자가 되고 누군 패자가 됐다. 진호는 맥주 캔을 만지작거리는 그들을 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둘의 대답에 따라 자신의 결정도 달라질 것이다.

자신은 멘토다. 리더가 아니었다.

"이대로……."

둘은 입술을 짓이겼다. 서로를 본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최종 승자에게 박수만 치고 돌아가기 싫어요."

"도와주세요. 아니, 가르쳐 주세요."

연기면 연기, 모창이면 모창. 못하는 게 없는 진호다.

이제 희망은 그밖에 없다.

둘의 눈동자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진호는 속으론 웃었지만, 겉으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알았어."

"……네?"

"어중간한 나라도 괜찮다면 도와 주겠다고."

"……쌤."

진호는 감동한 그들의 눈빛에 몸 서리를 쳤다.

"어후, 씨! 야, 우리 다신 이런 말하지 말자. 와, 손가락 안 펴져!"

"……쌤!"

"우확! 야! 하지 말라고! 야!"

술을 딱 거기까지만 마시고 숙소로 돌아왔다.

제작진은 방에 들어가려는 진호를 보며 웃었다.

"자기가 할 수 있는게 없기는…… 진호 씨, 아주 음흉해."

"으흐흐. 그게 또 제 매력이죠."

제작진은 시름을 크게 덜어 냈다. 처음 만들어진 그림을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진호 씨."

"네?"

"걔들이 도움을 청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거였어?"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뭘 물어보고 그러세요. 그냥 거기서 끝이죠."

"뭐?"

"그럼 수고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 아, 그리고 오늘일은 생존자들에게 말하지 말아주세요."

호의가 권리가 되면 안 된다. 제작진은 닫히는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탁!

"……냉정한 구석도 있네. 하긴 그러니까 이렇게 성공하겠지."

미련하게 착하기만 해서는 성공 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있잖아요."

모두의 눈이 작가에게로 몰렸다.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렇게 진호 씨에게 배운 애들이 더 잘나져서 디자이너들에게 컨택되면 어떡해요?"

순간 그들은 몸을 굳혔다.

"패션 관계자들이 가끔 아카데미에 들르잖아요."

뉴욕에 와 안 사실인데, 패션 관계자들에게는 이런 말이 있다.

믿고 쓰는 HU라고 말이다. 하이패션과 커머셜에 관련된 모든 분야의 모델들이, 그것도 하이 퀄리티임에도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지 않아 값이 싼 모델들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HU 에이전시 모델 아카데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모델들을 고르기 위해 종종 아카데미에 들르는 편이었다.

"전 진호 씨가 또 뭘 할 것 같은데……."

그들은 침묵했다.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피디가 코웃음을 쳤다.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

피디는 꿈틀거리는 입가를 쓸어 내리며 침을 삼켰다.

"탈락되어 길고양이 된 놈들이 대중이라는 집사를 간택하게 되는 거지. 집사는 그런 고양이를 모셔 갈 수밖에 없고."

제작진이 몰려 있는 피디의 방은 한동안 침묵이 가시질 않았다.

"……피디님이 캣파파라고 해도 그런 비유는 좀."

"야."

* * *

그렇게 첫 번째 탈락자가 나오고 2주일이 흘러 2번째 탈락자가 정해졌을 때, 한국에서는 '모델, 뉴욕에 도전하다'라는 제목의 방송이 케이블 전파를 탔다.

처음부터 진호를 앞세우며 언론플레이를 한 덕분인지 이슈는 꽤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대망의 1화가 방송되었다.

-……의외로 꿀잼인데?

-초콜릿 주고 만화책 주면서 유혹하래 ㅋㅋㅋ

-나도 빵 터짐. 하. 역시 우리 진호. 생각하는 것도 남달라.

-엄청난 미남 나와서 집중하다가 갑자기 오디션 삘 나기에 돌리려고 했는데 이건 좀 다른 듯.

-그래. 이래야 진짜 경쟁이지. 어? 만날 서로 물어뜯고, 암 유발하고, 고구마만 열심히 처먹이고.

-다음 날 어떻게든 상대에게 빵 먹이려고 하는 모델들 ㅋㅋㅋ

-그러다 자폭했지요ㅋㅋㅋㅋ 아, 귀여워.

-로버트 블루 스미스도 미모로 압살하는 우리 지니.

-아르마니 디자이너가 모시러 온 대. 와, 우리나라에도 이런 모델이 있구나. 처음 알았네.

-님들, 예고편 봤음?

-얘가 노래도 잘 불렀던가?

게시판이 제법 시끄럽다.

따로 사비를 들여 빌린 여러 운동기구가 있는 연습실, 진호는 웃음을 흘렸다.

"으흐흐."

대부분 의도한 반응들뿐이다.

최고 시청률도 3.1 퍼센트로 아주 좋았다. 아니, 케이블에 소재가 모델임에도 이 정도로 나온 건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젠 기자들에게 부탁을 안 해도 기사들이 생성되고 있었고, 덕분에 한국의 두 회사는 지금 파티를 벌이고 있다고 했다.

"수익은 알아서 창출할 거고."

아이돌 사업만 십수 년째 해 온 JH고, 그런 회사들에서 일한 팀 이진호의 직원들이다. 방송으로 버는 수익 그 이상의 수익을 벌 수단은 이미 만들어 뒀을 것이다.

'그럼 이젠 밑밥을 더 까는 일만 남았네.'

타이밍만 남았을 뿐이다.

벌컥!

"안녕하십니까!"

진호는 레깅스에 민소매 티를 입고 들어오는 3명의 모델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두 번째로 탈락한 여자 모델도 첫 번째로 탈락한 남녀모델들과 똑같은 수순을 밟아 이렇게 연습에 참석하게 됐다.

자신이 저들을 돕고 있지만, 모델들도 자신을 돕고 있다. 그것도 아주 무척이나.

진호는 매끈한 몸을 여과 없이 드러낸 모델들에 흔들리는 촬영팀과 은근히 가슴을 펴는 모델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야, 우리 빈약하면 좀 가릴 줄도 알자. 진짜 내 눈은 생각 안 하냐?"

"……아니거든요! B컵이거든요!"

"네가?"

진호는 한껏 비웃음을 담아 쳐다 봤다가 코웃음을 쳤다.

"운동 좀 했다고 자신감 좀 생긴 것 같은데, 보는 사람도 배려해 줘야지. 너희도 똑같아, 자식들아. 누굴 비웃어?"

입술을 삐죽 내민 모델들이 고개를 돌리자 진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제법 걷는 폼이 잡혀 있고 작지만 아우라도 생겼다.

못 먹고 못 자고, 간절해서 꽤 거칠긴 하지만, 이 뉴욕에서도 길을 걷다가 시선을 잡아챌 정도는 된다.

이제야 진짜 하이패션 모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자, 가볍게 운동하고 목 풀자. 모두 기구 앞에서. 이어폰 끼고."

"……쌤, 진짜 운동하는데 영어 회화를 듣는 건 아니지 않아요?"

"네가 팝송을 듣는 순간 해석할 수 있으면 노래 듣게 해 줄게."

"……."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어디서. 시작!"

모델들의 낯빛은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진호는 피트니스의 트레이너들보다 더한 악마였다.

아니 노래, 연기 등 모든 트레이너 중에서 가장 악마였다.

* * *

오후가 되어 생존자들을 야구장에 데려다준 진호는 탈락자들을 데리고 뉴욕의 거리를 걸었다. 브로드웨이, 타임스퀘어, 소호 등. 패션 관계자가 있을 법한 거리를 매일같이 걸었다.

다른 건 하지 않았다.

최대한 모델답게 걸을 뿐이다.

그렇게 걷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다.

거리에는 비트 박스를 하는 흑인도 있고,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가난한 심어도 있고, 마임을 하는 예술가도 있지만, 그들이 지나가면 시선은 언제나 몰렸다.

처음 진호에게 몰렸던 시선들이 그 뒤를 따르는 모델들에게 옮겨 갔다가 카메라를 발견하곤 놀랐다. 그게 연속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다른 시선이 있었다.

뒤를 힐끔 본 진호는 피식 웃으며 잠시 휴식을 말했다.

"으하!"

"아!"

거리에 놓인 카페 테이블에 앉은 그들은 터질 듯한 다리를 주무르려다가 재빨리 다리를 꼬고 허리를 세웠다.

진호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저…… 쌤."

"왜?"

"이젠 이유를 가르쳐 주시면 안 될까요?"

만날 이렇게 걷는 이유를 말하는 거다.

"음? 가르쳐 줬잖아. 뉴욕에 사는 모델들은 자신의 어필하기 위해서 이렇게 제대로 꾸민 채 걸어 다니니 너희도 그래야 한다고."

카메라 마사지가 연예인에게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듯 사람들의 시선 마사지도 굉장한 위력을 발휘한다.

"시선이 모일수록 자신감이 생기고, 그럴수록 사람의 아우라는 커지는 법이지. 관리와 여유를 잃어 버린 너희에게는 이게 가장 좋은 방법이야."

"아……."

그들은 다시 감동했다.

만날 지쳐 쓰러지기 직전까지 걸어 다니는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다.

'그리고 너희가 유명해져야 다음 플랜으로 넘어가지. 거의 된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이 이쪽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다.

"봐, 벌써부터 알아보는 사람이 생겼잖아. 손이라도 흔들어 줘."

만날 거리를 걷는 것도 있지만, 센트럴 파크의 조깅이 SNS를 타고 번진 것이다.

주위를 둘러본 모델들은 이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휘이익!"

"멋지다!"

"응원할게!"

추파인 캣콜링이 아니다.

가십거리를 좋아하는 셀럽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이들을 알게 된 거다.

진호는 커피를 가져온 종업원에게 물었다.

"우리들 알아요?"

"이렇게 몰려다니는데 모를 리가 있나요. 동양에서 온 오디션 프로그램 도전자들 맞죠? 페이탈 북에서 봤어요. 그보다 진, 당신이 더 유명하지만요. 뉴욕에 온 걸 환영 해요."

"오!"

듣고 싶었던 답이었다.

'다음 플랜으로 넘어가도 되겠네. 마침…….'

진호는 씩 웃었다.

"하핫. 고마워요. 그럼 얘들이 생존자 같아요, 탈락자들 같아요?"

모델들이 긴장했다.

패션의 거리라 불리는 소호인 만큼 수많은 모델들이 걸어 다니는 곳이다. 일개 종업원이라고 해도 그 눈은 높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퀄리티의 모델들이 생존자가 아니라면 그것도 이상할 것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럼 제 친구도 같은 생각인지 물어볼까요?"

진호는 뒤 테이블을 보며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뒤 테이블에서 핸드폰이 크게 울리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이 화들짝 놀라 전화를 꼈다.

진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넌 어떻게 생각해, 스탠?"

소호 거리에 들어서고 한 5분이 지났을 무렵부터 따라붙었던 시선.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 모델들을 보고 싶어 했던 그녀가 결국 참지 못하고 찾아온 듯싶었다.

"……쳇!"

모델들은 모자를 벗으며 이쪽을 보는 스탠을 보곤 깜짝 놀랐다. 제작진도 동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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