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15화 (115/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5화

5.고양이 이야기

아침 6시.

10명의 모델들이 거친 숨을 토하며 센트럴 파크를 뛰고 있다. 수십 명 제작진도 함께 뛰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

"휘이익!"

"힘내라고! 젊은 친구들!"

"너흰 할 수 있어!"

센트럴 파크 주민들로서는 벌써 10일째 보는 같은 광경.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10명의 어린 모델들이 하이패션의 런웨이에서기 위해 피를 토하는 경쟁을 한다.

뉴욕을 인정하는 도전자들이기에 뉴욕의 시민으로서 응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델들도 환하게 웃으며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몇몇 모델은 팔짝팔짝 뛰며 양팔을 흔들었다.

"thank you!"

"I love you!"

처음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 채 뛰기만 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어 발음도 제법 매끄러워졌다.

좋은 현상이다.

이제야 각자가 가진 끼와 매력이 살아나고 있다.

칭찬과 격려는 이렇게 사람의 숨겨진 내면을 끌어내 준다.

피식 웃은 진호는 발목에 힘을 조금 더 주었다.

"속도 높인다."

"예!"

표정을 굳힌 그들은 이를 악물며 진호를 따라붙었다.

그렇게 10킬로미터의 러닝이 끝난 후 씻고 나면 진호가 직접한 아침을 먹고 영어 회화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모델 아카데미에서 땀과 침을 쏟아 내면 저녁을 먹고, 뮤지컬을 관람한다. 오늘은 뮤지컬 하면 대표작으로 떠오르는 팬텀 오브 오페라였다. 모델들은 진지한 눈으로 그 모든것을 외우기 위해 노력했고, 진호는 오늘도 무대에 뛰어들고 싶은 욕구를 누르느라 많은 힘을 쏟아야 했다.

그렇게 팬텀이 하얀 가면만 남긴 채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잘각!

'일 차 조건을 해금했다.'

몸속에 또 다른 부품이 들어왔다.

"……퍼펙트."

커튼이 쳐지는 무대를 본 진호는 절로 박수를 치고 말았다.

모든 소품의 배치와 방금 전 배우가 움직인 동선, 조명의 밝기, 음악의 볼륨 등 모든 요소가 소름이 돋을 만큼 완벽하다.

1차 해금은 주인공이 뮤지컬의 동선이나 배치 등 뮤지컬을 구성 하는 모든 요소를 깨닫는 단계. 우연히 뉴욕에 놀러 와 뮤지컬을 보았다가 단숨에 반해 버린 주인공은 동양인임에도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는 뮤지컬 배우가 된다. 그런 주인공은 무대 연출을 직접 하는 것으로도 유명해진다.

'아, 얼른 2차 해금도 하고 싶네.'

2차 해금 조건은 '뮤지컬 극장에서 한 명 이상의 관객 앞에서 공연하기.'다. 그렇게 되면 스킬을 얻게 된다.

진호는 기립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치는 모델들을 보며 은은하게 웃었다.

억지로 스케줄을 조정해 10일간 연달아 뮤지컬을 관람하지 않았더라면 1차를 해금하는데 못해도 1 달은 걸렸을 것이다.

반발하거나 다른 것을 보고 싶다 떼를 쓰지 않은 아이들이 참 고마웠다.

'오늘은 실력 발휘 좀 해 줄까?'

모레면 2명이 탈락한다.

지금쯤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초조할 터였다.

'스트레스를 푸는데는 맛있는 걸 먹는 게 최고지.'

2명이 떨어지는 날에는 뉴욕에서 유명한 맛집을 데려 갈 생각이다.

"내일은 뭐 보러 갈래? 야구? 콘서트?"

"그, 그래도 돼요?"

"너희가 보고 싶은 거 있으면 말 해. 빌보드 스타의 콘서트라도 얼마든지 구해 줄 테니까. 내가 그 정도 힘은 있다."

디올 뉴욕에 말해도 되고, 에이전시에 말해도 된다.

이런 진호의 호언에 그들은 놀라면서도 감동했다.

진호는 언제나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서 움직여 주고 있었다.

"쌤……."

"감동했다고 울지는 말고. 자! 다 쉬었으면 운동하러 가자!"

"……아앙!"

"쌔, 쌤! 진짜 피트니스를 옮기는 건 어때요? 그 인간들은 악마예요!"

"시끄러워. 가자."

"아아앙!"

우우웅!

공연도 끝나서 무음으로 돌려 놨던 핸드폰 벨소리를 진동으로 돌리던 진호는 때마침 걸려온 전화에 손을 들었다.

"잠깐만. 어, 바비."

바비. 로버트 블루 스미스다. 모델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내일 시간 괜찮아?

"아, 그때 말한 그 식사? 흠, 열 한 시부터 세 시까지밖에 시간이 없는데, 어쩌지? 그리고 카메라도 따라붙을 거야."

-아, 그 촬영 때문이지? 출연료만 주면 나나 스탠이나 큰 상관없어. 알았어. 그럼 열두 시. 약속 장소는 문자로 보내 줄게. 아, 스탠이 자기 남자 친구도 데려온대.

"……스탠 때려도 돼?"

-하하하하하! 그럼 내일 봐, 진.

"에휴. 그래. 내일 봐."

전화를 끊은 진호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을 짓는 10명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꿈 깨."

그들의 어깨가 축 처졌다. 한번 안 된다 하면 절대 안 되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호는 마음이 약해졌지만, 더 이상 줄 당근이 없어 외면했다.

* * *

스탠 스탈리 스미스, 패션을 좋아 하는 사람들에겐 퀸 스탈리 스미스로 알려진 인물은 흑발에 푸른 눈을 가진 미녀였다.

로버트 블루 스미스의 누나들은 모두 하나같이 미녀다.

"진!"

"스탠."

껴안은 둘은 서로의 볼에 입을 맞췄다.

진호는 따라온 스탠의 남자 친구를 향해 손을 내밀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어디서 봤는데?'

낯설지만, 낯설지 않은 얼굴. 키는 작지만 꽤 미남이었다.

'커머셜 모델인가?'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스탠이 반해 버린 이유가 있군요."

"하핫! 로빈 파웰입니다. 스탠이 자주 칭찬한 이유가 있군요."

둘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진. 이 카메라가 그거야?"

"응, 스탠."

"바비가 말한 모델들 보고 싶어! 센트럴 파크를 달리는 동양인 모델들로 요새 유명하잖아!"

그건 몰랐다.

"넌 하이패션이 아니잖아."

혀를 찬 스탠은 고개를 팩 돌려 버렸고, 남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진호는 그녀의 남자 친구 로빈을 불쌍하다는 듯 보았다.

말괄량이 마이웨이가 스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는 어디서 하려고?"

현재 그들이 만난 곳은 컬럼비아 대학교 근처다.

아이비리그 중 하나로 불리는 그 컬럼비아 대학교다.

"여기 근처에 맛집이 있던가? 그리고 여긴 스탠 네…….야, 잠깐."

스탠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본 진호는 그녀가 6살 연상이라는 것을 잊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너희 연습실에서 중국 음식을 시켜 먹자는 건 아니지?"

세 남녀가 깜짝 놀랐다.

"헉! 진이 마술한다!"

"저, 점술가? 정말 램프의 요정이 된 건 아니지?"

진호는 이를 드러냈다.

"스탠 이리 와. 그 대갈통 대."

"내가 왜!"

"네가 이 일을 계획했을 테니까!"

"꺄! 나 먼저 갈게!"

진호는 달려가는 스탠을 보며 주먹을 바르르 떨었고, 로버트와 로빈은 씁쓸히 웃었다.

요리는 식었지만, 먹는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여기도 오랜만이네.'

사방이 방음 장치로 되어 있는 넓은 연습실엔 온갖 악기들이 있다. 스미스 4남매는 'Atomics'라는 패밀리 밴드로도 활동 중이다. 발매한 곡은 몇 곡 되지 않지만 멤버 구성원인 4남매의 외모 때문에 제법 인기를 얻고 있다.

"하. 좋다."

배를 통통 두드린 스탠은 음료수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진호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진! 나 게리무어! 응? 응?"

"……에라이."

그렇지 않아도 기타를 보자 손이 근질거리던 차였다.

뉴욕에 온 지 벌써 10일. 기타 줄조차 잡아 보지 못한 진호에게 있어서 팬의 요청은 거부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하지만, 그냥 해 줄 수는 없었다.

"바비, 너 드럼 잡아."

"오케이!"

냉큼 일어난 로버트는 드럼으로 걸어가 앉았고, 진호는 잭이 연결 된 일렉 기타를 어깨에 걸었다. 줄을 몇 번 튕겨 보니 이미 조율을 해 놓은 듯싶었다.

"진, 어떤 곡으로 할 거야?"

"Parisienne Walkways. 시작해."

틱틱틱틱틱!

드럼 스틱을 부딪치던 로버트가 드럼을 치자 진호도 눈을 감으며 손을 움직였다.

한편, 로빈 파웰은 눈이 흥분으로 가득 차오르는 자신의 여자 친구를 보며 놀랐다.

"저 친구가 그렇게 잘 쳐?"

"들으면 깜짝 놀랄걸? 장담하는데 이십 대 삼십 대 나이의 기타리스트 중 진과 겨룰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

언젠가 동생이 서는 쇼의 뒤풀이에 참석했다가 들은 진호의 술 취한 기타 연주. 그것은 전율이었다.

만약 자신에게 남자 친구인 로빈이 없었더라면 단숨에 대시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 정도라고?"

'Atomics'의 보컬이자 작곡가인 스탠. 그녀의 음악성은 인정하지만, 불신이 들 수밖에 없었다.

"들어 보면 알아. 아, 시작한다. 휘이익! 진! 꺄아아!"

눈을 가늘게 뜬 로빈은 이내 곧 경악해야 했다.

VJ는 기가 막히게 뽑히는 영상과 음향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10일 만인데도 매끄럽게 움직이는 손가락과 스탠의 환호가 흥을 돋우게 해결국 마이크 앞에서 서게 되어 버렸다.

진호는 입을 열었고, 사람들은 눈을 부릅뜰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끝났다.

가슴을 누르며 숨을 가쁘게 쉬는 스탠의 두 눈은 경악과 불신, 그리고 환희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건 그의 남자 친구 로빈도 마찬가지다.

"……워후."

그 말이 정적을 깨는 기폭제가 되었다.

"뭐야, 진! 너 노래도 부를 줄 알았어? 왜 여태껏 안 불렀어!"

드럼 스틱을 내팽개친 로버트가 진호의 몸을 잡고 흔들었다.

진호는 카메라를 애써 무시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됐네.'

밑밥은 깔았다.

"나 말고도 노래할 입이 수십 개 였는데, 굳이 할 필요는 없잖아."

'그땐 못 불렀지.'

태연하게 둘러댄 진호는 무슨 일인지 조용한 스탠을 보았다.

'이런.'

마찬가지로 스탠을 본 로빈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는 게 보였다. 갈등하는 얼굴. 스탠이 현재 짓는 표정이었다.

진호는 손뼉을 강하게 쳤다.

화들짝 놀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자, 이젠 로빈 씨 차례."

진호는 윙크를 했고, 로빈은 재빨리 그리고 여유롭게 일어나 마이크 앞에 섰다.

"브루노마스의 Just The Way You Are 부탁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진호는 로버트를 보았고, 다시 드럼의 리드가 시작됐다.

존재감을 한껏 줄인 기타 소리가 뒤따르자 로빈은 입을 열었다. 그러자 흔들리던 스탠의 푸른 눈동자가 로빈에게로 고정되었다. 속으로 한숨을 내뱉던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목소리도 어디서 들어 봤다.

'.. 어 설마?'

진호는 로빈의 등을 보며 눈을 둥그렇게 떴다.

"자기!"

달려든 스탠이 로빈의 입술을 덮쳤고, 잠시 15세 이상관람가의 농밀한 키스 타임이 이어졌다. 입술을 땐 로빈은 고맙다는 듯 진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그는 눈을 초롱 초롱하게 뜨고 있었다. 로빈의 직업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혹시 뮤지컬 배우 아니세요?"

로빈, 스탠, 로버트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로버트를 보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혼란이 가득한 그 눈동자에 진호는 씩 웃었다.

"켓츠의 알론조.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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