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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12화 (112/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12화

특별한 오프닝 멘트 같은 것은 없었다.

다큐의 성질이 꽤 첨가되었기에 통성명을 한 그들은 바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좌석은 모두 이코노미였다.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시청자들에게 괴리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아, 좁아.'

시끌시끌.

카메라들이 비추는 모델 10명이 앉은 자리가 시끄럽다.

JH 모델 파트에서 고르고 골라 엔터테이너로 만들 이들.

누군가는 배우가 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가수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이번 프로그램이 잘되면 다른 분야로도 진출을 할 수 있기에 그들은 자기들끼리 쉴 틈 없이 떠들고 있었다.

"저기, 진호야."

"아, 예. 피디님. 무슨 일이세요?"

"……쟤들 저렇게 둬도 괜찮아?"

피디가 망설이다 어렵사리 꺼낸 말에 진호는 뒤를 힐끔 보고는 피식 웃었다.

다행히 진호 자신보다 나이가 모두 적은 모델들은 아주 재밌는 짓을 하고 있었다.

"놔두세요. 곧 눈물 콧물 쏟아 낼 텐데, 저 정도 애교 정도는 봐줘야죠."

카메라 앞에 선 이후 처음으로 형이자 오빠다.

만날 벗어나지 못했던 막내 신세.

마음이 무척이나 너그러워질 수 밖에 없었다.

어차피 HU 모델 아카데미에 발을 디딜 순간 쏟아 낼 눈물과 콧물을 벌써부터 쏟아 내게 할 필요는 없었고, 뉴욕에서 얻을 수 있는 2개의 스킬 중 어떤 걸 먼저 얻을까 고민하는 것만도 머리가 터질 정도였다.

오직 뉴욕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킬들.

"에휴. 정말 들은 것처럼 속이 좋구나?"

진호에 대한 소문은 이쪽 바닥에 파다하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못하는 사람.

"무슨 말을 들으셨는지 모르지만, 다 과장된 거예요."

"과장은 무슨……."

가소롭다는 듯 웃는 피디를 보며 진호는 씩 웃었다.

"어휴. 그나저나 이걸 정말 어떻게 찍냐."

이번 프로그램은 총 10화로 제작된다.

입담 좋은 MC도 없고, 연예인도 없다.

"진짜 믿을 사람이 너밖에 없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명확한 스케줄이 없다. 즉, 어미 오리가 될 진호의 행동에 따라 프로그램의 그림이 바뀐다는 거다.

진호는 화들짝 놀랐다.

"어? 전 피디님의 연출력을 믿고 있는데요?"

"……이러지 말자. 나도 힘들어."

"피디님이야말로 왜 이러세요."

둘 모두 낯빛이 흐려졌다.

"그보다 공항에 사람이 마중 나오기로 했잖아. 누구야?"

원래 플랜은 공항에서 어리바리 모습을 보인 모델들이 진호의 뒤를 졸졸 쫓아 숙소도 가고 HU에 이전시 모델 아카데미에 가고, 뉴욕구경도 하는 것이다.

"음…… 모델계의 레오 형? 한 육 년 전의."

"뭐?"

후룩. 커피를 마시는 양진혁의 낯 빛이 흐리다.

"진호에게 맡겨 둬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기획은 예전 진호가 JH 소속 모델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 게 발단이 되어 시작된 것이지만, 지금이라도 흐름을 잡고 이끌어 줄 사람을 보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후룩.

마찬가지로 커피를 마신 다미앙이 옅게 웃었다.

"괜찮을 겁니다. 모델계와 패션계에서 진호 씨의 영향력은 양 사장 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넓으니까요."

"예?"

3개 브랜드의 메인 모델이자 한 브랜드의 뮤즈. 그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아는 사람은 지금 이 공간에서 자신 혼자뿐이었다.

다미앙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 * *

미국의 입국 심사는 정말로 지독 했다.

특히나 미국인에게는 잊을 수 없는 악몽인 9.11 테러가 일어난 뉴욕은 말할 것도 없었다.

왜, 어째서의 무한 되돌이표. 발끈했다가는 몇 시간 동안 구금 될 수 있다는 진호의 경고에 감내 하고 또 감내하여 겨우겨우 입국 심사를 마친 그들은 먼저 나와 있는 진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진호는 입국 심사관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더니 1분도 안 되어 도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개를 저은 그들은 입국 게이트를 나서다가 깜짝 놀랐다. 바리케이드 너머에 엄청난 미남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진호처럼 자체 발광하는 미모.

"로, 로버트 블루 스미스……."

"저 사람이 왜……."

한국에도 얼굴이 알려진 누구도 부정 못하는 탑급 모델이다.

'저, 저 사람이?'

피디는 다급히 카메라 스태프를 재촉했고, 진호는 환하게 웃으며 남성에게 다가가 주먹을 내밀었다. 로버트 밥 스미스도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툭!

"오랜만이야, 바비."

"웰컴 투 뉴욕, 진."

두 미남의 미소에 JFK 공항이 환하게 밝아졌고, 모델들은 입을 떡 벌렸다.

* * *

숙소는 HU 에이전시 모델 아카데미가 있는 맨하튼에 얻었다. 허름하지만, 썩 나쁘지 않은 월세 천 달러의 아파트먼트다.

모델들은 약간은 허름해도 썩 나쁘지 않은 내부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따라온 로버트는 아니었다.

"holly Jesus! 말도 안돼! 네가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잘 수 있어! 당장 디올 옴므에 전화만 하면 펜트하우스를 잡아 줄 텐데! 내가 대신 해 줄까?"

"나만 특혜를 얻을 순 없잖아."

"그놈의 동양 예의…… 이건 정말 말도 안돼."

애써 스타일링한 머리를 쥐어뜯는 그의 모습에 피디가 슬그미니 다가왔다. 이 모든 모습은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뭐가 말이 안 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아, 이런 곳은 평범한 모델들이나 사는 곳입니다. 브랜드와 계약을 맺지 못해 매일같이 지원서를 집어넣고, 오디션을 봐야 하는 그런 일반적인 모델들. 즉, 이런 숙소 자체가 진에 대한 모욕이라는 겁니다."

피디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이 정도면 감지덕지인데 무슨. 됐어, 열 내지 마. 넌 꼭 이상한 부분에서 열 내더라?"

로버트 블루 스미스와는 그동안 시즌만 되면 런웨이하러 다닌 4대 패션쇼 중 밀라노에서 만나게 됐다. 같은 쇼에서고, 같이 뒤풀이하며 술을 들이켰다. 남자들이 우정을 쌓는데는 그보다 좋은 건 없었다.

"무슨 헛소리야! 네가 지금 당장 이라도 아르마니의 쇼에서겠다고 하면 수석 디자이너가 달려올 텐데! holly shit!"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놈의 욕 좀 그만해. 딸 앞에서도 그렇게 욕할 거야?"

"이게 무슨 욕이…… 알았어. 맞아.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

진호는 그제야 미소를 지었다.

"네 누나들은 잘 있지?"

"……너무 잘 있어서 문제랄까. 아, 맞아. 스탠이 밥 먹재. 너 온다는 걸 말했거든."

"보름 정도 있을 테니까 시간은 아무 때나 괜찮아."

"알았어. 그럼 날짜 잡아 볼게."

둘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이내 마무리 지었다.

"연락할게."

"이왕이면 네 딸과 함께 영상 통화로. 나도 조카 좀 보자."

"그래그래. 아, 데려다줄까?"

"괜찮아. 지금쯤 밑에 차가 도착 했을 거야."

로버트 블루 스미스는 아쉬워하면서도 스케줄 때문에 떠났고, 진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델들과 제작진을 인솔해 HU에이전시 모델 아카데미로 향했다.

차는 25인승의 버스였다.

그렇게 정차해 일반 빌딩처럼 꾸며진 아카데미의 로비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헉! 진?"

"티, 팀 존스의 뮤즈!"

"미쳤나 봐! 나 오늘 파워볼 사야 해?"

지친 얼굴로 로비를 걸어나오던 어린 모델 지망생들이 경악해 몰려들었다. 하지만 달려들지는 않고 멀찍이 떨어져 발만 동동굴렀다. 그리고 미친 듯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레전드 혹은 탑이라 불리는 HU 에이전시 소속 모델들과 비교하면 많이 부족한 명성이지만, 20대 초반의 남자 모델 중 가장 성공한 모델이 진호다.

10대 모델 및 모델 지망생들의 워너비. 우상.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목표.

그리고 자신들의 교보재 중 하나.

그런 사람이 자신들이 다니는 아카데미에 나타난 것이다.

현역 모델 및 지망생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한편, JH 소속 모델들은 어깨를 움츠려 갔다.

솔직히 그들에게 있어서 진호는 운 좋아 뜬 엄청 잘생긴 배우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호는 서울패션위크를 통해 데뷔하지 않았고 또 서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에게는 세상의 전부이자 정점인 서울패션위크.

한국 최고 모델들이 서는 곳이니 만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부심도 남달랐다.

그런데 아니었다.

자신들과 비교해도 훨씬 아름답고 젊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모델들이 진호를 보며 호들갑 떨고 있다.

한국에선 레전드 혹은 탑이라 불리던 모델들을 제외하면 느끼지 못한 레벨 차이가 있었다.

카메라는 이 극명한 장면을 재빨리 담기 시작했다.

모델 지망생들의 호들갑은 클래스 룸에서도 이어졌다.

"트레이너 론 잭슨이오."

자세만 봐도 알 수 있다.

눈앞의 이 사람이 얼마나 노력했고, 현재 어느 레벨에 있는지 말이다. 키가 작아 주목받지 못한 듯 보이는 비운의 천재.

진호는 혀를 내두르며 악수를 청했다.

"아카데미의 레벨은 제 예상보다 훨씬 더 대단하군요.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잭슨. 이진호입니다."

악수를 나누는 잭슨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클래스 룸에 있던 지망생들이 뒤집어졌다.

부기맨보다 무서운 이가 론 잭슨이었기 때문이다.

혈관에 피 대신 얼음이 흐르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무섭고 서늘하고 무표정한 트레이너.

"론이라 불러 주시오."

"감사합니다. 이쪽이 앞으로 론이 담당해 주실 사람들입니다."

차가운 눈빛이 응시해 오자 모델들은 더 몸을 움츠렸다.

"아슬아슬하군요. 난 가차 없는데, 괜찮겠습니까?"

"오히려 그래 주길 원합니다. 인내와 시련이 깊을수록 후에 얻을 열매가 더 값어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스킬을 통해 재능을 쉽게 얻는 자신이 할 말은 아니지만, 프로그램의 방향성이 그렇다.

한국에서 이곳까지 올 동안 저들이 자신을 따돌려서 이렇게 말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렇습니까?"

론 잭슨의 입술이 비틀어지기 시작했고, 진호는 모델들의 명복을 속으로 빌어 주었다.

눈앞의 트레이너는 이해라는 걸 모르는 폭군 타입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 * *

레슨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시차 적응문제도 있지만, 바로 레슨에 들어가면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아카데미를 나온 진호와 사람들은 모델테이너의 길을 걷기 위해 섭외된 트레이너들을 만나러 다녔다.

연기, 노래, 춤 등등 그렇게 앞으로 약 2달간 함께할 트레이너들과 인사를 하다 보니 하루가 훌쩍 지나 버리게 되었다.

진호는 코치 겸 멘토로서 그들에게 마지막 자유인 술을 허락했고, 아직 사태 파악을 다 하지 못한 모델들은 한 방에 모여 부어라 마셔라 즐겼다.

그러며 앞으로의 포부나 기대감, 불안감들을 말했는데, 그 모습 모두 카메라에 찍혔다.

"뭐 하십니까?"

허름한 책상에 앉은 진호가 무언가를 적고 있다.

신중히 고민을 하는 것 같기에 카메라맨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생활 계획표를 간략하게 짜고 있습니다."

아침 6시기상이란 대목을 본 카메라맨이 하얗게 질렸다.

진호는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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