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7화
촬영장소의 모든 소품을 다시 재배치되기 시작했다. 진호는 그 대공사를 도우려고 했지만, 스태프들이 기를 쓰고 말렸다.
진호가 다쳤다가는 촬영 딜레이라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씁."
입맛을 다신 진호는 결국 본능처럼 주방을 찾았다.
"……워우."
하얗고 큰 주방엔 여러가지 조리 도구가 남아 있었다.
"최근에 폐업했나 보구나."
중화 프라이팬인 웍이나 중식용 사각칼, 도마, 나무 찜기들은 먼지만 있을 뿐 녹슬거나 곰팡이 핀 곳이 하나 없었다.
환기 팬 안쪽을 손가락으로 훑어보니 먼지만 나올 뿐, 기름때는 없었다. 물도 나왔다.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아, 싹 청소해 버리고 요리하고 싶다."
'불은 들어오려나.'
진호는 웍이 놓인 화로로 다가가 가스 밸브를 열어 보았다.
쉬이이이이!
관에 여분으로 남아 있는 가스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소리가 셌다.
가스 밸브를 잠근 진호는 수도도 확인해 보았다.
물도 괄괄 쏟아졌다.
"……여기서 언제까지 촬영하더라?"
'할까? 말까?'
"아오! 고민이네!"
요리를 하기 위해선 이곳 주방부터 조리 도구까지 싹 다 청소해야 하는데, 그러면 너무 일이 커져 버린다.
"뭐가 고민이야?"
몸을 돌리니 김주아가 초롱초롱 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방금 들으신 거요."
"난 찬성!"
"이모……."
"확!"
"주아 누나만 해 드릴 수는 없잖아요. 아예 안 하면 모를까. 여기 주방을 청소하는 것도 일이고."
"그것만 해결되면 돼? 밑 준비하는데 시간 걸리는 건?"
요리하는 건 즐겁지만, 청소는 귀찮았다.
"밑 준비는 한 시간도 안 걸려요. 그런데 음식 시킨다고 하지 않았어요?"
"취소하면 되지! 알았으. 있어 봐!"
김주아가 그렇게 나가고 몇 초의 시간이 흐르자 장영진이 뛰어 들어왔다. 그뿐만 아니라 몇몇 배우와 스태프도 함께 들어왔다.
"진호야, 요리하게?"
장영진이 흥분이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그 리얼 정글에 가다에서 네가 한 바나나 잎 물고기 찜 같은 거 먹을 수 있는 거야?"
사람들의 눈도 빛났다.
"바나나 잎을 어디서 구할…… 구할 수 있나?"
관광객이 많이 찾는 마카오다.
시장에 가면 있을 법도 했다.
"요리는 뭐 뭐 할 줄 아는데?"
"황재상 쉐프님께 배워서 중식당에서 파는 건 거의 다 할 줄 알아요."
"화, 황재상 쉐프."
명실상부 한국 중화요리의 대가이자 예약 대기만도 2달이 걸리는 중식당의 오너 쉐프다.
"그런데 촬영 안 해요?"
"지금 촬영이 문제냐!"
"문제죠!"
진호는 지금 장영진 감독이 무슨 말을 하는가 싶었다.
"……어흠. 그래, 맞아. 문제지. 그래도 앞으로 두 시간 정도는 더 걸릴 거야. 점심때 다가오니까 배도 슬슬 고프고……."
이제 오전 9시밖에 안 됐다.
"에휴. 네. 알겠습니다. 그럼 두 분만 데려가서 장 봐올게요."
"캬! 역시 우리 착한 진호! 그럼 나는 청소를 끝내 놓으마!"
"네, 네."
진호는 힘 좋아 보이면서도 가장 어린 스태프 2명과 함께 차를 몰아 마카오에서 가장 유명한 시장으로 향했다.
마카오에 오기 전에 국제 면허증을 발급해 두었기에 거침없었다.
우글우글.
시장 입구에 선 진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 고향에 온 기분."
"……이 배우는 정말 특이하네요."
"저보다 형인데 말 놓으세요."
"그, 그래도 될까?"
"그럼요. 앞으로 미우나 고우나 세 달 넘게 같이 지내야 하는데, 친해지는 게 좋잖아요. 자, 그럼 출발합시다!"
진호는 성큼 발을 내디뎠고, 스태프들은 황급히 뒤따랐다.
'미쳤다. 미쳤어.'
재료들 상태가 너무도 좋았다.
"와, 새우 봐."
크기가 손바닥만한 타이거 새우였다.
이런 걸 지나칠 수 없었다.
'쪄 먹거나 튀김옷 얇게 입혀 튀겨 먹어도 맛있겠다!'
새우는 어떻게 먹어도 진리다. 냉큼 다가간 진호가 광둥어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이 새우 마리당 얼마예요?"
"십오 달러예요."
15홍콩 달러라는 소리다. 한화로 약 2천 원. 엄청나게 쌌다. 마카오는 주로 홍콩 달러를 화폐로 쓴다.
"어머. 그런데 연기자예요? 모델?"
"네. 한국에서 연기자를 하고 있어요. 모델도 하고요."
"한국! 어쩐지!"
"왜요? 너무 잘생겨서요?"
해산물을 파는 여주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백오십 마리 주세요."
스태프와 배우, 배우를 따라온 스태프 해서 총 인원이 약 90명이다.
"그, 그렇게나 많이?"
"많이 사니까 깎아주실 거죠?"
"그, 그럼요! 마, 마리당 십 달러에 드릴게요."
"오! 감사합니다. 그럼 옆의 중새우도 오 킬로그램 주세요. 거기 아주머니는 홍합하고 바지락 좀 오 킬로그램씩 팔아주세요. 아, 꼬막도."
"그, 그럼요! 아무렴요! 팔아야죠!"
갑자기 나타난 큰손에 시장 상인들의 눈이 번쩍 떠졌다.
오는 길에 돈을 엄청 뽑았기에 시장을 휘젓고 다닌 진호는 결국 끌고 온 봉고차의 짐칸을 식재료와 조리 도구, 식기로 가득 채우고 나서야 촬영장으로 복귀했다. 바나나 잎도 구했다.
촬영장에 있던 사람들은 입을 벌렸다.
"아니, 장사하게?"
"사람 입이 몇 갠데, 이 정도는 먹어야죠."
"……살찌면 어쩌지?"
"맛있게 먹으면 영 칼로리입니다!"
히죽 웃으며 주방으로 들어간 진호는 눈을 반짝였다.
먼지가 소복하게 내려앉아 있던 주방이 말끔해져 있었다.
"어흐흐. 요리 할 맛 나겠다."
"그 전에 촬영부터 해야지."
흠칫!
"머, 먹고 하는 거 아니었나요?"
"인마. 배우가 연기부터 신경 써야지. 자, 분장하러 가자."
진호는 영화 더 씨프의 주연인 미스터 장, 김윤식에게 귀를 붙잡혀 끌려갔다.
"자, 잠깐만요! 새우만! 새우만요!"
모든 식재료 중 가장 물이 좋은 새우. 요리사로서 꼭 손질해 보고 싶은 식재료였다.
"그건 노는 스태프들이 다 해 줄 거다. 이미 상의됐어. 좀 있다가 취사병 출신 스태프들도 도와줄 거야."
"진짜 물 좋은데!"
* * *
수더분하게 기른 헤어스타일과 약간은 검고 거친 피부 톤. 단추 하나 푼 검은색 와이셔츠와 품 넓은 슈트는 진호를 멋을 내려고 애 쓰는 시골 청년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어후, 진호 너 옆으로 오지 마."
"얘가 또 진호 기죽이네? 진짜 혼날래!"
"선생님은 자꾸 저만 혼내시더라. 보세요, 주아도 진호 곁에서 떨어져 있잖아요."
이재정이 진호를 향해 윙크를 했다.
"제가 진호 팬이긴 하지만, 이렇게 밀착하는 구도는 좀……."
"……어흠. 진호야, 파이팅?"
"옙!"
런다렌과 함께 이번 촬영에서 가장 연장자이자 한국의 대여배우는 안쪽으로 향했다.
이 입장하는 신에 그녀는 없었다.
최동진 감독이 다가왔다.
"재정 씨는 리더답게 껄렁하면서도 대범하게 걸어 주고, 주아 씨는 처음 와 본 해외에 호기심 많게. 진호는 주변 환경에 별 관심 없는. 그러면서도 아까 진호가 설명했듯 세 명 모두 들어오면서 본능적으로 퇴로를 체크하는 겁니다. 아셨죠?"
3명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모두 준비해 주세요!"
방금 전까지 느슨하고 부산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하게 당겨졌다.
진호를 비롯한 배우들은 배역에 몰입해 갔다.
3명 모두 거의 동시에 감았던 눈을 뜨며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자, 슛 들어갑니다! 하이! 액션!"
진호와 다른 둘 모두 큐 사인에 맞춰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서슴없이 장난을 치던 셋은 더 이상 없고, 리더 시금치와 기술자 예리콜, 와이어 장파오만 있었다.
* * *
회사원인 40대 중년인 량피옌은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를 나섰지만, 식당들을 그냥 지나쳐 갈 뿐이었다.
"여긴 어제 갔고, 저긴 그제 갔고……."
직장인의 제일 고민거리는 언제나, 그리고 역시나 점심 메뉴였다.
"하아. 이럴 땐 여기에서 완탕면 한 그릇과 샤오롱바오를 딱 먹어 주면 든든하게…… 응?"
고소하게 퍼지는 냄새에 코를 씰룩인 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분명 주인의 사정으로 폐업을 한다고 했는데?"
그는 좀 혼란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는 건 량피옌뿐이 아닌 것 같았다.
"응? 여기 영업하나?"
"하는 거 아닐까? 저기 주차장에 세워진 차들 좀 봐."
냄새에 끌린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여기 다시 영업해요?"
"아뇨, 저도 잘. 뭐, 들어가 보면 알겠죠."
그 말이 정답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사람들은 열린 문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우르르 몰려가던 사람들은 코너를 돌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가지런히 펼쳐진 테이블과 자리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테이블 위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색깔의 음식들.
그들이 이쪽을 보며 당황한 게 보였지만, 량피옌은 무시했다.
'장사를 다시 시작했구나!'
량피옌은 환하게 웃으며 발을 크게 뗐다.
그 순간 몇 명의 청년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오신 겁니까? 저희가 시끄럽게 한 거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많이 어설픈 광둥어에 량피옌은 미간을 찌푸렸다.
"장사하는 집에 밥 먹으러 온 겁니다. 테이블 남은 듯하니 비켜 주세요. 완전히 빌린 게 아니라면."
"예?"
"예의 없게 행동하지 말고 비키세요. 흐음. 주방장이 실력이 좋나 보네. 그렇지 않아요?"
"그러게요. 냄새가 무척 좋네요. 음식이 담긴 모습도 예쁘고. 그 전 주방장이 다시 왔나 봐요."
"오, 그건 정말 다행이죠!"
량피옌과 사람들은 흥분해 떠들었다. 청년들에게서 웃음이 터지기 전까지 말이다.
"푸하하하하하!"
"와하하하하!"
눈앞의 청년들뿐만 아니라 한 청년이 안쪽을 향해 뭐라 외국어로 외치니 안쪽에 있던 100여 명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 량피옌과 사람들은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뭡니까! 뭐가 웃깁니까?"
"푸크크크. 아, 죄송합니다. 저흰 한국에서 온 영화 촬영팀인데, 여긴 지금 영업을 하는 게 아니라 저희가 원 주인에게서 잠시 대여 한 겁니다. 그리고 주방에서나는 냄새는 저희 배우 중 한 명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먹일 음식을 만들기에 나는 것이고요."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겁니까! 이게 어떻게 일반인이 낼 수 있는 냄새란 말입니까!"
"맞아. 내가 집에서 만드는 요리 하고 식당에서 만드는 요리도 구분 못할 것 같아! 저런 요리를 어떻게 집에서 만들어! 그것도 저렇게 많이!"
사람들의 성토에 난처해진 스태프는 결국 하나의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진호 씨! 주방에 계신 분들 잠깐 나와 보세요!"
"무슨 일이세요?"
어디까지 거짓말하나 보자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사람들은 주방에서 나오는 진호를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민소매 티셔츠에 검은 바지. 이어나오는 사람들도 죄다 후줄근한 옷차림이었다. 주방에서 일하는 옷 차림이 아니었다.
량피옌은 떠듬거리며 물었다.
"주, 주방장은 어디 있습니까?"
"주방장이요?"
"아, 진호 씨 그게……."
진호는 자신을 부른 스태프가한 설명에 잠시 말을 잃었다.
"어……"
안쪽에 있던 배우들과 제작진은 다시 한번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진호는 난처해져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상황이 벌어질 거라곤 생각도 못한 것이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언제나 핑핑 돌아가던 머리가 지금은 돌처럼 굳어 버린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