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5화
'왜? 이것도 사업이잖아.'
진호는 의문이 들었다.
자신이 말한 건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컨설팅 전문 업체에 물어봐도 거의 무료로 답해 줄 내용이다.
'설마 컨설팅 의뢰를 안 해 본 건가?'
그렇다면 더 말이 안 된다.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쓴다면 직원이 못해도 30명 이상이어야 한다.
물론 컨설팅 전문 업체의 말이 언제나 정답이 아닐 수 있지만, 그래도 들어서 나쁠 건 없다. 빅 데이터를 가지고 가장 안정적인 길을 제시하는 것이니 말이다.
"크흠흠. 진호 씨가 한 말은 내부 회의에서도 언급된 내용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박 부장님만 중요한 존재가 되겠죠."
대형 업체는 박성태를 영입하기 위해 온갖 수를 쓸 것이다.
"방금 전 오 대표는 제게 은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경찰에 쫓기고 있을 때, 어머니가 사고로 돌아가셨다. 일가친척 한 명 없고 낳은 딸은 당시 2살. 고아였던 아내는 딸을 낳다가 죽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아내와 결혼하면서 다신 손대지 않겠다 생각한 절도에 다시 손을 댔다.
그러다 들켜 도주 생활을 하다가 어머니 사고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눈앞이 깜깜한 상황에서 고향 선배이자 자신을 쫓던 경찰인 오 대표가 나서서 모든 걸 해줬다. 그래서 자수했다.
딸도 박성태 자신이 교도소에서 출감하기 전까지 키워 줬다.
그런 사람을 배신할 수는 없었다. 당시 담당 검사였던 서우호는 사정을 딱하게 여겨 감형을 주장해줬다. 그래서 딸을 빨리 만날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문제는 그놈의 돈이다. 이젠 딸의 결혼 문제도 생각해야 될 나이. 막대한 돈이 눈앞에서 흔들리면 그 자신도 이직을 하지 않겠다 장담할 수 없었다.
"직원을 키우시면 되잖아요. 박 부장님의 모든 걸 물려받은. 이해를 못하면 이해할 때까지 가르치시면 되죠. 아니면 감각 있는 직원을 뽑던가. 물론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시겠지만."
아니다. 박성태는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
'여태껏 설비공 네 명만 데리고 다녔는데…….'
가르쳐 봐야 알아듣지를 못하니 어느 순간부터 포기해 버렸다. 자신의 노하우가 떳떳하지 못했던 일에서 비롯됐던 거라 다른 사람에게 쉽게 알려 주지 못한 것도 있다.
장영진은 오 대표와 친구기에 가르쳐 준 것이고, 진호는 서우호 부장 검사의 조카이기에 알려 주려고 한 것뿐이다.
"……명료하군요."
"네."
허탈하게 웃은 박성태는 핸드폰을 들어 오 대표에게 연락했다.
곧 달려온 오 대표는 진호의 이야기를 듣고는 눈시울을 붉히며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는 술을 산다며 고깃집을 예약하러 갔다.
번갯불에 콩 볶는 듯 진행된 상황에 진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 절도범에 대해 들으러 온 건 데…… 내일 스케줄도 있는데.'
그리 중요하진 않지만, 스케줄은 스케줄이다.
"절도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싶다고 하셨죠?"
"아, 네!"
'음?'
진호는 무언가 다짐한 얼굴의 그를 보며 살짝 놀랐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자물쇠를 따는 법부터 담을 넘는 거 CCTV를 피하는 법, 설계를 하는 법 등등 제 전부를. 직접 몸으로."
진호는 입을 벌렸다.
'스킬 얻겠다.'
방금 그가 말한 내용 안에는 얻을까 생각했던 스킬의 해금 조건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 * *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신 다음 날, 스케줄을 마치고 들르니 박성태는 작은 철물점으로 진호를 안내 했다.
"저처럼 마음 고쳐먹고 열쇠 복사나 전기 배선, 도어락 같은 것들을 팔며 근근이 살아가는 놈이 하는 가게입니다."
은혜 열쇠 철물이라는 푸른색 간판의 철물점이었다.
어느 동네에도 있는 외형이었다.
"근데 영진이 형은 왜 온 겁니까?"
"에이. 나도 가르쳐 줘. 술 많이 살게."
따라온 장영진이 그 특유의 선하고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혀를 찬 박성태는 고개를 저으며 철물점 안으로 들어갔다.
"어? 성태 형님. 여기까지 어쩐…… 어허억? 무, 무휼! 장 탐정!"
은혜 열쇠 철물의 사장님은 TV를 많이 보시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어이구. 연예인이 어쩌다 이런 누추한 곳에."
"이번에 영화 찍는데 기술 좀 배우고 싶대. 안에 작업장은 그대로 있지?"
"예, 있는데……."
"락픽 세트하고 자물쇠 몇 개 좀 줘. 계산은 여기 영진이 형이 할 거야."
"어헛?"
깜짝 놀란 장영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지갑을 꺼내 들었다.
"카드 계산 됩니까?"
"아니요. 현금만 됩니다. 현금 영수증도 안 됩니다."
"이런……."
흥정을 시작한 둘을 무시한 박성태는 진호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작업실이라기에 음침한 공간을 생각했는데, 의외로 깔끔했다. 아니, 일반 사무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중앙에 놓인 테이블에는 카메라도 있었다.
"미튜브인가 뭔가를 한다더니 그것 같군요. 자물쇠 따는 법이나 잠긴 문 여는 법 등을 올린다고 합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죠."
박성태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아. 그런 게 의외로 조회수도 많이 나오죠."
"그럽니까?"
"솔직히 궁금한 내용이잖아요. 그리고 조회수가 많이 나오면 홍보도 되고, 돈도 되죠. 참고로 저는 달에 대기업 회사원 연봉 정도 벌어요."
그건 몰랐다는 듯 그의 눈이 동그래졌다.
"별의별 세상이 다 있군요."
"특히 홍보면에서는 그보다 좋은 게 없죠."
"호오."
그제야 그의 눈이 호기심을 머금었다.
"아, 앉으세요."
"말 편히 하세요."
"차차 그러도록 할게요."
곧 장영진과 은혜 철물의 사장이 들어왔다.
락픽 세트를 집어 든 박성태는 바로 강의에 들어갔다.
장영진은 턱을 괴며 시나몬 스틱을 입에 물었다.
"자물쇠를 여는데 가장 빠른 방법은 뭐 같습니까?"
"열쇠로 열어야지."
장영진의 대답에 박성태는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 열쇠가 없을 때를 말하는 거잖아요."
"그 락픽?"
"진호 씨는요?"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절단기로 자르는 거죠."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호는 그런 그들의 반응이 오히려 이해되지 않았다.
"아닌가요?"
"하핫, 맞습니다.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죠. 소질이 있네요."
"으흐흐. 그런가요?"
"자, 잠깐! 잠깐만!"
사람들은 장영진을 보았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고 있었다.
"방금 다시 말해 봐. 절단기로 자른다고?"
"네."
환한 미소를 지은 장영진은 다급히 수첩에 글을 적었다.
'미스터 장, 십 초 안에 열면 데려가고. 카스, 삼 초. 지문, 면도날로 백을 그어 버린다.'
"캬! 좋다. 좋아. 대사가 죽이게 빠진다."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장영진을 보았다.
"대본은 이미 나왔잖아요."
"리딩까지 아직 삼 주나 남았잖아. 어쩐지 진호 너를 따라오고 싶더라니! 아이고, 예쁜 것!"
뭔가 얼떨떨했다.
자신의 발언이나 행동이 대본에 영향을 끼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쁘게 봐 주셔서 쪽 대본이 남발되는 경우는 많아도 말이다. 뮤직비디오 촬영에서 자신의 의견이 반영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달랐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이제야 배우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응. 계속해. 난 이제 없는 사람 취급해."
"……크흠. 그래요. 절단기를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하지만, 그건 크기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대부분이런 락픽을 들고 다닙니다. 휴대도 편하고, 웬만한 자물쇠는 다 열 수 있기 때문이죠."
"오."
"보통 기술자들은 이런 자물쇠를 일 분 안에 엽니다. 숙련자들은 그 보다 훨씬 빠르죠."
"……엄청나네요."
진심이었다.
진호는 지금 얻으려는 스킬의 1 차 해금 조건이 '락픽으로 자물쇠 백 번 열기'라서 호기심에 한번 따라 해 본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락픽 세트도 구입해서 열어 보려고 용을 썼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나중에는 살이 찌면서 손이 두꺼워지고 더 둔해져 엄두도 못 냈고, 결국 락픽 세트는 이쑤시개로 쓰다가 버렸다.
그런 불가능한 걸 1분 안에 푼다고 한다. 말도 안 됐다.
"이 투명 자물쇠를 통해 일단 감만 익히면 쉽습니다."
락픽 세트 안에는 투명해 내부 구조가 훤히 보이는 자물쇠가 있었다.
"여기 피스톤 쪽에 끊어진 부분들 보이시죠?"
박성태는 자물쇠의 구조와 왜 열쇠를 꽂아 돌리면 자물쇠가 열리는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고정픽인 이 렌치와 이 꼬챙이 처럼 생긴 픽킹. 이 두 개만 있다면 한쪽에만 홈이 있는 일자형 자물쇠는 솔직히 사십 초도 안돼서 열립니다. 나중에는 눈을 감고도 열 수 있습니다. 흠. 오랜만이라서 잘 될지는 모르겠군요."
그렇게 말한 그는 자물쇠를 하나 가져와 렌치와 픽킹을 이용해 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걸 빤히 바라봤고, 긴 듯 짧은 시간이 지나자 달칵 자물쇠가 열려 버렸다.
진호와 장영진은 박수를 쳤다.
"이번엔 진호 씨가 여기 투명 자물쇠로 한번 해 보세요. 가르쳐 드릴게요."
"아, 예."
진호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해 봤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았다. 투명이라서 움직이는 게 모두 보였는데도 말이다.
그때마다 박성태는 계속해서 조언을 해 주었다.
제대로 하지 못하기에 짜증 날 법도 한데 그의 목소리는 계속 상냥했다.
결국 진호는 5분 만에 달칵 경쾌한 소리를 내며 자물쇠를 열 수 있었다.
'카운트 시작.'
"오! 잘하셨어요. 정말 소질이 있으시네요."
무한한 칭찬은 오히려 사람을 부끄럽게 했다.
"나도 해 봐도 될까?"
"형은 새로 사서 하세요. 하나 드려."
"……어흐흐. 오랜만에 장사 좀되네."
"어휴. 목마른 내가 참는다, 참아. 사장님, 많이 팔아주니까 DC 되죠?"
"단골 아닌 분에게는 그런 거 없습니다."
"에라이."
장영진은 자기가 가지고 놀 것을 직접고르기 위해 움직였고, 진호는 다시 투명 자물쇠를 잠가 열기 시작했다.
박성태는 계속 응원하며 조언을 해 주었다.
"잘하고 계세요. 일단 감을 익히는 게 중요하니까 시간이 걸려도 천천히 몸에 새긴다 생각을 하고 손가락 감각에 집중하세요. 오, 요리를 하시는 분이라 손가락이 부드립게 움직이네요."
진호는 이런 칭찬을 받으며 무려3시간 동안 투명 자물쇠를 락픽 세트로 열었다.
[스킬 : 테니스의 황태자]의 컨트롤, [스킬 : 불을 지배하는 자]의 손 컨트롤, [스킬 : 옥탑방 스타]의 손가락 컨트롤의 시너지 효과로 인해 팔과 손 전체가 정교하게 움직이다 보니 자물쇠를 여는데 드는 시간이 점점 줄어 갔다. 그러다 결국 스킬을 1차 해금하게 되었다.
다각다각다각다닥 달칵.
"어?"
"음?"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박성태와 은혜 철물점 사장이었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며 진호를 보았다.
그러나 진호는 그들을 신경 쓰지 못했다.
'오, 1차 해금했다.'
그렇지 않아도 정교한 기계에 손톱보다 작은 톱니바퀴가 수백 개 추가된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