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02화 (102/424)

게임 폐인의 리셋라이프 5권 2화

* * *

-후. 잠시 쉬었다 하자.

"옙!"

눈을 뜬 진호는 녹음실에 양진혁과 다미앙까지 있는 걸 보고 놀랐다. 그는 얼른 헤드셋을 벗으며 녹음 부스를 나섰다.

그러자 양진혁과 다미앙, 레오까지 다급히 다가왔다.

"진호야, 너 대체 언제 연애한 거야? 누구랑 사귀었어?"

"맞습니다. 진호 씨. 어떤 분과 연애를 한 겁니까?"

"제가요?"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적 없는데요?"

"진호 씨 이건 심각한 일입니다. 솔직하게 답해 주셔야 합니다."

"정말 없다니까요!"

'놀리는 것도 아니고!'

여자 손이라도 잡아 봤다면, 억울 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런 진호의 진심 어린 얼굴에 사람들은 놀라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감정이 살아 있어?"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된 진호는 어떤 상황을 떠올리며 몰입했는지를 알려 줬다.

"그리고 레오 형이 계속 가르쳐 주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안 되죠."

레오는 저번에 녹음실에서 한 것 처럼 호흡 하나 음절 하나를 커트하며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알려 주었다. 목소리에 공기를 섞는 법 등 감정을 표현하는 여러가지를 말이다.

양진혁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가 소속 아티스트 보고 연애나 여러가지 일을 겪어 보라고 괜히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 것들이 이렇게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양진혁은 흐뭇하게 웃으며 레오를 보았다.

"살살해. 다른 애들 잡는 것처럼 하면 안돼. 진호는 초보잖아."

모창을 똑같이 하는 것과 노래를 부르는 건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물론, 진호만큼 모창을 똑같이 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레오는 어이없어하며 방금 전 녹음한 노래를 틀어 줬다.

진호의 노래가 다시 울리자 다미앙은 이번에도 감탄했지만, 양진혁은 조금 반응이 달랐다.

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걸 가르쳤다고? 너나 몰래 실력 늘었냐?"

"가르치긴 뭘 가르쳐요. 한 번 말하면 바로 알아듣고 고쳐 버리는 것도 가르치는 거예요?"

"……뭐?"

레오는 실소를 지었다.

양진혁은 낯빛을 굳혔다.

"가르치는 대로 변하는 진호를 보고 있자면 다 알고는 있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사람 처럼 느껴져요."

"……타고난 거네."

"그렇죠."

진호는 몰리는 시선에 머리를 긁었다.

사업가적 마인드가 발동한 양진혁과 다미앙은 서로를 보았다.

"이거 제대로 포장해서 대대적으로 가시죠."

"옳은 생각 같습니다. 홍보는…."

둘은 홍보 방식에 대해 열렬히 토론하기 시작했다.

레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그의 생각은 좀 달랐다.

"아, 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리자 진호는 입을 열었다.

"그냥 던져 놓기만 하는 건 어떨까요?"

"음?"

"어차피 특수는 다 지났잖아요. 아무리 곡이 좋다고 해도 이번 건 레오 형도 첫 도전이고요."

양진혁은 순간 머릿속이 간지러워졌다.

"그래서?"

"어차피 프로젝트 레오는 매달 한 곡씩 나갈 거잖아요."

진호는 의자들을 가져와 그들 앞에 놓았고, 사람들은 자리에 앉았다.

"그때마다 홍보하실 거예요? 그러다 대중적인 코드에 맞지 않는 곡이 나온다면요?"

"……우리의 마음에는 들어도 대중에게 맞지 않는 곡이 나오는 상황을 말하는 거지?"

"예, 레오 형이 더 원으로서 발표 하는 거라면 상관없을 거예요."

"코어 팬들은 무조건 구매해 줄 테니까. 여태껏 쌓은 게 워낙 단단 하다 보니 한 번의 실패 따윈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그렇죠. 하지만, 작곡가로서의 레오는 이야기가 좀 다르죠."

진호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이것이다.

실패하면 끝이다.

JH에 적대적인 언론들이 물어뜯기 위해 달려들 것이다.

"……그렇군. 그럼 네 말은 홍보를 열심히 해 봐야 역시 레오라는 소리밖에 안 들으니까 아예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작곡가 레오로서의 코어 팬을 만들자는 거야?"

역시 레오의 작곡가 데뷔 이슈는 조금 불면 날아가 버릴 거품에 불과하다.

"로우리스크, 로우리턴…… 돈 벌 생각을 버리자는 거로군. 하지만, 아깝지 않겠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다미앙의 노하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로우리스크라는 말은 틀린 말이다.

진호는 다미앙을 보았다.

다미앙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미앙 씨, 사장님. 아시다시피 이 프로젝트는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일 년, 열두 곡. 어쩌면 그 이상. 작곡가 레오와 가수 이진호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달릴 생각보다는 넘어져도 추락하지 않게 단단하고 넓은 길을 쌓아 가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조금은 느리더라도 말이죠."

진호는 싱긋 웃었고, 양진혁은 어이없어하며 다미앙을 보았다. 나쁘지 않다.

"얘 원래 이럽니까?"

"저희 팀 이진호의 가장 큰 비밀 입니다. 이번 카피 콘서트도 진호 씨가 기획한 거죠."

놀라다 못해 뒤집어질 말이다.

'……아오! 난 정말 얘를 왜 놓친 거야!'

정신을 빠르게 수습한 양진혁은 진호를 보며 경악하고 있는 레오를 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아요."

레오도 성공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

진호가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곡을 소화해 냈지만, 그게 대중이 좋아해 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흠. 이거 잘못하면 돈만 쓸 것 같은데……."

다미앙도 보람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그러니 양측 팬클럽의 간부들에게만 알리죠."

사람들이 다시 진호를 바라봤다. 진호는 씩 웃었다.

"소문을 퍼트려 줄 입은 필요하니까."

사람들은 이제 넋을 놓았다. 나쁘지 않던 의견이 최고의 선택 처럼 들렸다.

"……너 우리 기획팀에 들어올래?"

"제 연봉, 감당하시겠어요?"

그럴 리가 없었다.

스르륵!

진호와 사람들이 열리는 문을 보았다.

동글동글한 베이비 페이스의 여성은 눈이 마주치자 덜컥 굳어 버렸다.

양진혁이 미간을 좁혔다.

"오늘은 누구도 제1녹음실 근처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했을 텐데?"

그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서늘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여기 있는 사람들과 기획팀 몇 명만 아는 비밀이기 때문이다.

"……이진호 배우와 사진만 찍으면 안 될까요? 팬이라서."

"가"

"네."

문은 다시 닫혔고, 진호는 실소를 터트렸다.

"역시 JH. 아티스트 모두 자유분방하네요."

"그 이상은 말하지 마. 쪽팔리니까."

마른세수를 한 양진혁은 다미앙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솔직히 양진혁으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은 의견이다.

이쪽의 리스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호 씨가 미리 말해 주지 않은 것을 제외하면 썩 괜찮은 의견인 것 같군요. 아니, 지금으로서는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을 듯합니다."

진호는 급히 양손을 모았고, 다미앙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렇게 프로젝트 레오가 가야 될 방향이 정해졌다.

* * *

녹음은 무사히 마쳤다.

최소한 레오나 양진혁 모두 이견을 달 수 없을 만큼 완벽했다. 진호와 다미앙은 다음 스케줄을 위해 돌아갔고, 양진혁과 레오는 대표 이사실에 모였다.

"……만약 사장님이었으면 어떻게 했을 거예요?"

"처음 다미앙 그 사람과 이야기 한 것처럼 미친 듯 홍보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겠지. 너라는 브랜드는 내 최고의 명품이니까."

그러다 리스크를 줄이자는 의견이 나왔을 거다.

JH의 홍보팀도 엘리트만 모아 뒀기에 언론 홍보 말고 팬클럽을 이용하자고 했을 거다.

어차피 팬클럽에서나도는 글이 곧 뉴스가 되니 말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확실히 리스크는 줄어든다.

그래도 리스크는 크다.

"레오, 너는?"

"저도 홍보를 했겠죠. 그게 보편적인 생각이잖아요."

맞다. 그게 보편적인 생각이다. 형성되어 버린 코어 팬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아닌 이상자기 연예인이 몇 번 실패한다고 해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팬클럽 간부들에게 알리는 것도 게시판이나 다른 팬들에게 공지하지 말라는 단서가 붙는다.

정말 입소문이다.

"리스크가 한없이 제로에 수렴하면서 리턴은 적더라도 확실한 성과를 얻게 하지. 마치 명품 브랜드의 저가 라인처럼…… 어?"

오싹!

레오도 경악했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입이 근질근질해진 팬클럽 간부들은 더 충성하게 될 거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연예인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거기다 속 시원하게 밝힐 수 없는 비밀. 이런 비밀 공유는 유대감을 더 깊게 만든다.

한번 돌아서면 그보다 무서울 수 없는 코어 중 코어 팬인간부들이 충성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양진혁은 닭살이 돋은 팔뚝을 문질렀다.

"와, 미치겠네. 요새 한국대는 일학년에게도 이런 걸 가르치나? 앞으론 한국대 출신만 뽑아야 해?"

"……그냥 진호가 특출한 것뿐이겠죠."

"그렇겠지?"

아니, 그래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한국대 졸업생을 확보하지 않는 이상 꿈도 희망도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만약에."

레오의 읊조림에 양진혁은 엉덩이를 들썩였다.

"또 뭐?"

"만약에 이게 대박 나면 어떻게되죠?"

양진혁은 순간 놓으려는 정신 줄을 급히 붙잡았다.

"……아마 JH 역사상 지출 대비 최고의 수익률을 올릴 초대박이 되겠지."

초대박 중 초대박. 둘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 * *

한적한 카페 안.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남성과 세련되게 차려입은 여성이 마주 보며 앉아 있다.

둘의 얼굴에선 감정이 보이지 않았다.

달그락 커피를 다 마신 머그컵을 내려놓은 여성이 입을 열었다.

"우리 헤어지자."

"……응, 그래."

너무 순순히 긍정해서일까.

여성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유는 안 물어봐?"

"서로 알고 있잖아."

5년째 고시생과 직장인 여자 친구.

이런 결말은 처음부터 예견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동안 나 만나면서 고생 많았어. 잘 살아."

"……넌 끝까지 날 안 잡는구나?"

화가 난 듯 깔보는 듯한 여성의 말에 남자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지금 잡으면? 잡혀 줄 거야?"

"……갈게."

여자 친구가 백을 들고 일어서자 남성은 씁쓸히 웃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멋지게 차려입고 올걸.'

머리를 긁적인 남성은 잠시 기다렸다가 몸을 일으켰다.

카페를 나서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오랜만에 집이나 갈까?"

오늘은 도저히 좁은 고시원 방에서 잘 수 없을 듯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번호를 누르고 들어간 집엔 역시 나 부모님이 계셨다.

"아들! 말도 없이 어쩐 일이야?"

"오늘따라 유독 방이 춥더라고."

"아니 거기는 보일러도 제대로 작동 안 시킨대? 한 달 월세가……."

"아, 그리고 나 진짜 딱 일 년 해 보고 안 되면, 관두고 직장 알아볼 게요."

동그랗게 떠진 부모님의 눈동자가 걱정과 기쁨에 물들어가자 남성은 미안해졌다.

"무슨 일 있냐?"

"무슨 일은요. 이제 서른인데 더 이상 폐 끼칠 수 없어서 그렇죠. 경미는요?"

"……자기 방에 있지. 그런데 정말."

"그래요? 뭔 일이래?"

남성은 부모님에게 추궁당하기 전에 얼른 여동생 방으로 향했다. 똑똑 문을 두드린 그는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오늘도 노랫소리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진짜 뭔 일이래? 더 원 노래도 듣지 않고?'

더 원의 극성팬인 여동생. 일찍 사회에 나갔지만, 한 달 월급의 80퍼센트 이상을 더 원의 굿즈 같은 걸 사는데 쓰는 동생이다. 퇴근하면 더 원을 쫓아다니기 바쁜 여동생.

'내가 뭐라고 할 입장은 아니지.'

다시 문을 두드린 그는 대답을 듣지 않고 문을 열었다.

si tu!

si tu!!

아직 너무 늦지 않았다면,

우리 다시 돌아갈 수는 없을까.

귓속을 파고 들어와 가슴을 때리는 가사.

남성은 굳어 버렸다.

"어? 오빠?"

"……흐윽!"

"오, 오빠? 우, 울어? 엄마! 오빠 울어!"

'나라고 잡지 않고 싶었을 것 같아! 네가 나였다면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냐고!'

예정된 일이라며 애써 다잡았던 마음이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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