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22화
"삼! 이! 일!"
"와아아아아!"
희망찬 새해를 기대하는 사람들의 함성.
리포터가 이쪽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진호 씨. 해피 뉴 이어."
"네. 리포터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 올해도 솔로로 끝내는구나.'
가슴이 쓰렸다. 진호는 사람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람들도 큰 목소리로 화답해 주었다.
"오케이! 컷!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수고했어요, 진호 씨!"
"하하. 수고하셨습니다."
얼른 가서 편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얼굴에 훤히 보였다.
진호는 스태프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카메라와 조명이 꺼지자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부재중 전화가 엄청나게 찍혀 있었다.
레오, 재준, 다미앙 등등.
"진호 씨. 수고하셨어요."
"아, 리포터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리포터가 쪽지 한 장을 쥐여 주었다.
그러곤 윙크를 하며 몸을 돌렸다.
쪽지를 펴 보니 전화번호였다. 살짝 웃음이 삐져나왔다.
"앞으로 잘되시면 좋겠네."
우우웅! 우우웅!
"음? "
핸드폰을 본 진호는 피식 웃었다.
"네, 다미앙 씨."
* * *
진호는 찾아온 정 대리와 함께 바로 회사로 향했다.
전화들이 시끄럽게 울리는 회사엔 모든 직원들이 있었다. 퇴근을 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들은 진호가 도착하자 열기가 가득한 눈동자로 노려봤다.
10퍼센트의 작은 원망과 90퍼센트의 기쁨이었다.
"노래는 언제부터 그렇게 잘 부르시게 된 겁니까."
다미앙과 기획의 장경아 실장이 흥분하며 물어 왔다.
지금은 둘만 바쁘지 않았다.
"음. 몇 번 노래하다 보니까 갑자기 목이 트였어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변명이었다. 다미앙은 진호 자신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이유였는지라 다미앙과 장경아 실장은 어이없어했다.
"후우, 앞으론 제발 미리 알려 주십시오. 저희도 대비를 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그냥 넘어가려는 것 같았다.
"그, 그럴게요."
장담은 할 수 없었다.
"그보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시는 걸 알게 됐으니."
지이잉! 지이잉! 테이블에 올려둔 핸드폰이 울었다.
진호는 양해를 구하며 전화를 받았다.
"예, 감독님!"
장영진이었다.
-진호야! 나랑 작품부터 해야 한다! 알았지! 막 콘서트 열고 다니면서 바빠지면 안돼!
"하하하. 아직 음반도 안 냈어요."
-맞다, 그렇지. 알았어. 내가 얼른 투자 문제 마무리 짓는다.
전화가 끊기자 진호는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큼. 아무튼 오늘 일로 인해 진호 씨의 선택지가 늘어나게 됐습니다. 아직 음악 예능에서 섭외가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부터라도 돌아다니면서……."
그건 싫었다. 정확히는 끌려 다니기 싫었다.
"그렇다면 섭외가 올 때까지 기다리도록 하죠."
어차피 모든 방송국이 설 특집 예능을 찍은 상태다.
온 가족 일가친척이 함께 모여 보는 설 특집에 출연해 명절 특구를 누릴 수 없다.
아무 때나 출연해도 된다.
"새해잖아요. 급할 건 없어요. 우리 천천히 가죠. 방금 전 장영진 감독님 드라마 출연도 있잖아요."
만약한 해가 끝나기 전이었다면 약간은 조급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젠 새해다. 2021년 1월 1 일.
앞으로 1년을 쉴 새 없이 달려야 하는데, 굳이 벌써부터 힘 뺄 필요는 없었다.
이런 진호의 말에 다미앙과 장경아 실장은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 목록을 내려놓았다.
"그렇군요. 제가 성급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성급해 큰 실수를 했습니다.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말입니다."
장경아 실장은 진심이었다.
진호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다미앙은 눈을 빛냈다.
"그런데 어떤 곡까지 소화하실 수 있습니까?"
"흠. 글쎄요."
[스킬 : 마음을 울리는 노래]의 스토리 제목은 '전설'이다.
주인공은 살아 있는 레전드로서 명예의 전당에도 오른다.
팝, R&B, 대증가요 등등 주인공이 가리던 분야는 없었다.
"아마, 전부?"
진호는 다시 어이없어하는 그들을 보며 싱그럽게 웃었다.
* * *
어제는 유독 추운 밤이었다.
"하아-"
그저 숨을 쉬는 것뿐인데 바람이 폐를 에일 듯 차가웠다.
"이 문둥이들은 밤새 살았으려나."
이 전날 고마운 사람들이 연탄을 나눠 주고, 진호가 전기장판도 주었지만, 다들 오늘내일하는 나이인 지라 걱정이 되었다.
김춘자는 밤새 도와준 연탄을 확인했다.
노란 몸이 되어 버린 연탄은 곧 꺼질듯 위태위태했다.
꼭 자신의 남은 시간처럼 말이다.
"뭔지랄 청승이데. 내 새끼가 올 때까정 살아 있어야제."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 중 다시 오겠다 말한 사람은 많았지만, 정말 다시 찾아온 사람은 진호뿐이었다.
자식 놈들도 오겠다는, 지키지 않는 약속을 진호만이 지켰다.
그런 진호가 다시 온다고 했으니, 믿어야 했다.
"목간이나 다시 가자고 할까."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은 너무도 좋았다.
부엌칼로 붙은 연탄을 떼어 낸 그녀는 느릿하게 수돗가로 향했다. 수돗가 옆에는 벌써 두 장의 다 타 버린 연탄이 놓여 있었다.
"올해는 눈이 많이 안 오믄 쓰겄는디."
햇빛이 지지 않는 곳이라 눈은 금세 얼음이 된다.
연탄을 부숴 뿌린다고 해도 미끄럽지만, 없는 것보다는 백배천배 나았다. 또 밤새 추위를 이기게 도와주고, 음식 만들 불도 준다.
한 장에 540원 연탄은 이리도 쓸모가 많지만, 추우면 추울수록 빨리 사라져 버리니 안타까울 뿐이었다.
"에고고. 밥이나 묵으믄서 뒤졌는 지 전화해 봐야제."
서로 의지하며 사는 처지. 도와주지는 못하더라도 가는 날은 지켜 줘야 했다.
그녀는 허리를 두드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쿵쿵쿵!
"아따, 뭘 귀찮게 살아 있는지 걸음했디야. 누구여-!"
"손자-!"
"손녀요!"
김춘자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황급히 걸어 문을 연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진호가 정말 문 밖에서 있었다. 김세연도 있었다.
"오, 오메! 오메-!"
"내가 새해에 다시 온다고 했죠?"
진호는 눈물을 흘릴 듯 일그러진 그녀의 얼굴에 애써 웃었다.
"얼른 옷 싸요. 이분들이 가스보일러 놓을 때까지 할머니 가고 싶은 곳에 있어야 하니까."
진호의 뒤에는 작업복을 입은 수 십 명의 인부가 있었다.
그녀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 * *
진호는 춘자 할머니를 비롯해 독거노인, 아직도 연탄에 기대어 사시는 어르신들을 모두 모시고 오 일 동안 서울 탐방에 나섰다. 어르신들이 제일 원한 건 제주도나 동남아가 아니라 바뀐 서울이었다.
김세연도 함께했다.
도저히 마음이 쓰여서 참지 못했던 그녀는 진호와 동행했다.
그날 자신을 불러 세우고, 새해 첫날 아침부터 춘자 할머니를 같이 찾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숙소는 호텔이었다.
그동안 그 동네는 엎어지다시피했다.
도시가스관이 깔리고, 가스보일러가 놓이고, 그들의 집도 리모델링했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도록 말이다.
가전 도구도 모두 바꿨다.
돈을 투자해 기술자를 최대한 부르니 이 모든 게 5일 만에 끝나 버렸다.
서울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온 어르신들은 울음을 터트리셨고, 진호는 모른 척 잔치를 열며 그들 덕분에 얻은 스킬로 노래를 불렀다.
[스킬 : 마음을 울리는 노래]
[가장 위대한 악기는 목소리다.]
8. 카피 콘서트
연말 홍대에서 한 공연은 제법 이슈가 되었다.
영상이라고는 연예가 TV에서 할당 분량 때문에 짤막하게 내보낸 '그대여' 몇 소절과 그 밴드가 했던 인터넷 방송뿐이었지만, 그래도 새해 첫날 반나절 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
┗내가 겨드랑이로 불러도 이보다 잘 부를듯.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며 울 수 있었습니다.
┗노래 좀 부르는 배우. 딱 그 수준.
┗어디 김인권 씨를…… 그러지 마라. 네가…….
┗그래요. 우리 모두 새해엔 파이팅 합시다!
┗하, 우리 진호 오빠 노래도 잘 불러.
연말 홍대에서 공연한 미튜브 영상.
좋은 댓글도 있고, 나쁜 댓글도 있다.
좋은 댓글을 보면 기분이 좋다가도 인정하지 않는 나쁜 댓글을 보며 절로 울컥했다.
인터넷 방송은 좋은 기기를 쓰지 않아서 음질이 나빠 더 그런 것도 있었다.
'하, 이거 사람 오기 생기게 만드네?'
홍대를 울렸다.
물론,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서 사람들이 더 감성적이게 된 것도 있다.
이 부분은 인정한다.
그날 일의 반은 12월 31일이라는 날짜가 만들었다.
그래도 부아가 치미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니, 오기가 생겼다.
"진호야."
"아, 네."
진호는 허벅지에 웅크리고 있는 하양이와 작은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회사에 가셨고, 어머니는 동네 친구분들과 온천 여행을 가셨다.
정 대리가 촬영 도구와 기타 가방을 들고 따랐다.
오늘 온 곳은 기타 커버곡을 녹음하는 스튜디오다.
진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확인 후 편집을 걸쳐 미튜브에 업로드될 예정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엔지니어 형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걔가 하양이야?"
미야옹.
"맞다고 하네요."
진호는 바닥에 하양이를 내려 두었다.
하양이는 낯선 공간에 호기심을 드러내며 발을 뗐다.
"아무거나 건드리면 안돼. 알았지?"
냐~
'저 자식이 또.'
한참 호기심이 많을 나이라서 그런지 낯선 공간, 낯선물품들에 정신이 팔려 대답에 성의가 없었다. 아무래도 날을 잡아 혼내야 할 듯싶었다.
"쿡쿡. 귀엽네."
"그걸 자기도 아니까 문제죠."
"하핫. 그래? 그보다 레오 씨는?"
연말에 엄청나게 전화를 했던 레오는 오늘 일을 듣고는 자신도 놀러 온다고 했다.
"곧 도착할 거예요."
진호는 정 대리가 촬영 준비를 마쳐 놓은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헤드셋을 쓰자 엔지니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
진호는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목 풀고, 연말에 불렀던 '그대여'부터 가 보자.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천천히 목을 풀었다.
어차피 오늘 하루는 이곳에서 놀기로 했다. 스케줄도 없고, 집에는 부모님도 안 계신다.
차를 타고 오느라 약간 건조해졌던 목이 풀리자 진호는 시작해 달라는 사인을 보냈다.
"그대여. 아무 걱정말아요."
엔지니어의 눈이 동그래지는 게 보였다.
뚝! 음악이 끊겼다.
정면을 보니 레오가 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창 목 풀기 노래를 하는 중 찾아온 레오는 엔지니어를 밀어내고 그 자리에 앉아 음향 기계를 잡았다.
그 이후부터 계속 완창을 못한 채 이렇게 뚝뚝 끊기고 있다. 스튜디오 밖에는 레오뿐만 아니라 양진혁도 있었다.
시간 많다고 놀러 온 것이다. 아니, 자체 휴일이다.
그래서인지 발개진 낯빛을 한 채 맥주 한 캔을 들고 있었다.
현재 밖에서는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낮술이다.
-계속 따라 한다.
'아, 또 그래요?"
-응. 모창할 거 아니면 그러지 마. 한 번 습관을 잘못 들이면 평생 고생해.
"넵."
'쳇. 확 그냥 모창해 버릴까 보다.'
[스킬 : 마음을 울리는 노래] 속 주인공은 여러 트로트 가수들을 모창하며 독거노인 NPC들을 기쁘게 한다.
스킬의 1차 해금은 단순이 목이 트이는 게 아니라 노래의 온갖 기교를 익히는 것. 주인공은 모창과 연구를 통해 수많은 가수들의 기교를 습득하는 거다.
진호는 곡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 되자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몇 소절 부르지 못하고 다시 중단되어야 했다.
그게 반복되자 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형. 이거 음반 녹음 아니에요."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