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8화
가수들의 공연을 보며 몸도 흔들고, 다른 배우들의 수상을 보며 물개 박수를 쳤다. 그렇게 신인상 순서가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다시금 빨리 뛰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시상식장에 동요가 번져 간다.
공연해야 할 걸그룹이 아직 등장을 안 한 탓이다.
생방송이라서 그런지 스태프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 불안한데.'
노리는 신인상은 아니지만, 올 한 해 스타가 된 이들을 뽑는 뉴스타 상 시상을 앞두고 이런 일이 벌어지니 굉장히 찜찜했다.
"차가 막히나?"
"어떤 바보가 스케줄을 뭐같이 잡았을 거야."
레오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내년엔 어떤 작품 찍을 건데? 골라 놓은 거 있어?"
진호는 PD의 눈치를 보며 레오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 장영진 감독님이 드라마 한 편 찍자고 해서요. 대본도 마음에 들고."
"주연?"
"네."
"장르는?"
"그게…… 음?"
"저 레오 씨……."
스태프가 굉장히 조심스런 얼굴로 다가왔다.
"안 합니다. 레퍼토리도 없어요."
순간 울상이 된 스태프가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죄송합니다. 노래를 못 불러서요."
정식으로 섭외가 들어왔다면 고민해 봤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갑작스럼게 누군가의 땜빵으로 무대에서는 건 싫었다.
"아니, 그냥 기타 연주라도…… 음? 시, 실례했습니다."
스태프는 다급히 어딘가로 뛰어 갔다.
걸그룹이 도착한 듯했다.
"오을, 진호. 단호해? 그런데 노래 못 부른다는 거 진짜야?"
"형에 비하면?"
레오가 어이없다는 듯 진호를 보았다.
"으흐흐. 사랑합니다."
"괜히 친해졌나?"
"늦었습니다, 고객님. 낙장불입입니다, 호갱님."
"야."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걸그룹이 올라와 공연을 시작했다.
무사히 공연을 마친 걸그룹은 쫓기듯 무대를 빠져나갔고, 뉴스타상 후보들이 발표됐다.
올 한 해 드라마로 사랑을 받은 배우들이 주르륵 열거됐지만, 딱히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호 씨!"
"와아아아!"
"진호야!"
"응?"
갑자기 천 년의 노래 팀원들이 축하해 주고 있었다. 어리벙벙해진 진호는 시상식 무대를 보았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얼굴이 커다란 스크린에 떡 박혀 있었다.
'나네?'
커다란 스크린에 비추는 자신의 얼굴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켰다.
"와, 정말 잘생기셨네요."
사회자뿐만 아니라 카메라들이 잡는 다른 배우들도 감탄을 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감탄해 주니 괜스레 멋쩍어지면서도 뿌듯해졌다.
진호는 정말 [스킬 : 지성이면 감천이다]를 얻길 잘했다고 생각 했다.
'네, 저도 제가 잘생긴 거 압니다. 으흐흐.'
"야, 야."
레오가 옆구리를 툭툭 쳤다.
"왜요?"
"얼른 무대로 안 올라가고 뭐 해?"
"내가 왜요?"
"너 뉴스타상 받았어."
"……무슨 헛소리를."
"하하하. 헛소리 아니에요. 얼른 올라오세요, 이진호 씨. 다들 기다리고 계세요."
"어……."
얼떨떨했지만, 커다란 스크린에 비춰지는 얼빠진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른 가!"
"네!"
다급히 일어서 무대로 향한 진호는 아직도 자신이 뉴스타상을 수상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타상 확정자들 중 젊은 사람들은 공연을 준비해야 하는데 연락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우째서? 왜?'
그래도 배우들 사이로 걸어가는 기분은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짜릿했다.
진호는 미리 와 기다리는 배우들을 향해 허리를 넙죽 숙였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죄송 합니다!"
모두가 웃는 낯으로 손을 저었지만, 몇 명은 불쾌해하는 게 눈에 보였다. 진호는 모른 척하며 맨 끝에 자리 잡았다.
배우들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렸다. 남녀 가리지 않고 말이다.
'내가 뭘 어쨌다고.'
입안이 좀 썼다.
그런 마음을 숨기며 다른 이들의 수상 소감에 박수를 치던 진호는 자신의 차례가 되자 마이크 앞에 섰다.
이쪽을 향해 커다란 하트를 날리는 천 년의 노래 팀 배우와 PD를 보자 묘하게도 심장이 가라앉았다.
"어…… 음. 솔직히 상을 탈 거라고는 생각을 못해서 수상 소감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두서가 없더라도 애교로 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객석과 배우들 테이블에서 작은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마음속에 작은 용기가 생겼다.
진호는 PD와 부모님, 팬클럽 지니어스를 언급하며 고개를 숙였다.
"마지막으로 레오 형, 그리고 내 친구 재준이. 고맙다. 고마워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는 이진호가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짝!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진호는 무대를 내려왔지만, 속마음은 굉장히 실망하고 있었다.
'쩝. 신인상은 못 받나 보네.'
뉴스타상은 다른 상에서 제외된 조연 및 단역급 신 스틸러에게 주는 상이다.
10대 스타상이야 주연들의 잔치이니 논외로 친다고 해도 여태껏 뉴스타상을 탄 배우가 다른 상을 수상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에휴. 어쩐지 별로 초조하지 않더라니.'
이러려고 오늘 하루 그렇게 평온 했나 싶었다.
진호는 슬쩍 이 층 객석을 보았다.
다미앙과 직원들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들을 깜빡하고 빼먹은 게 아니다.
겨우 뉴스타상으로는 다미앙과 직원들에게 감사를 표할 자격이 되지 않아서 일부러 뺀 것이다. 그래도 미안함에 고개를 숙인 진호는 자리에 앉았다.
천 년의 노래 배우들과 PD는 아까와 달리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아오, 이게 말이 돼? 어떻게 우리 진호가 신인상을 못 타?"
"조연상도요! 진호보다 매력적인 조연이 어디 있다고! 심사위원들은 무이앓이도 모르나!"
마치 자기 일처럼 화를 내 주는 사람들을 보자 실망했던 마음이 빠르게 떨쳐졌다.
빠르게 미련을 버린 진호는 장영진에 대한 걱정이 들었다.
'신인상도 못 탄 사람을 주연으로 쓰면 엄청 말을 들을 텐데…….'
진호 자신이야 댓글을 잘 안 본다지만, 장영진은 투자부터 제동이 걸릴 터였다.
"괜찮아. 올해 못 타면 내년에 타면 되지."
"흐흐. 그렇죠?"
레오의 위로에 평소처럼 웃은 진호는 뉴스타상을 받은 여자연예인들의 축하 공연을 보며 박수를 쳤다.
혹시나 했던 상에 대한 마음을 놓아버리니 박수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몸짓도 좀 더 자유로워졌다.
'아, 2차로 클럽 가자고 할까?'
오늘은 정말 미친 듯 놀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신인상 후보들이 발표되었다.
후보자 모두 인정할 만한 연기력을 보인 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이 삐뚤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쳇. 내가 더 잘했는데. 내 무이가 가장 잘났는데.'
"올해 신인상 수상자는……."
괜스레 마음이 써서 진호는 고개를 돌렸다.
"이진호 씨입니다! 이진호 씨 축하드려요!"
"응? 누가 내 이름을……."
"우아아아악!"
"진호야! 그렇지! 이래야지!"
레오가 와락 끌어안았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진호는 다급히 스크린을 봤다.
자신과 다른 여자 배우의 얼굴이 아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게 박혀 있었다.
"헐?"
정신이 멍해졌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또 얼빠진 모습이 전국에 방송되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노리던 상을 받게 되자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한 번 소감을 발표해서 그런지 마이크 앞에 다시 서자 머릿속이 차가워졌다.
"이런 과분한 상을 받을 줄 알았다면, 아까 감사할 사람을 남겨 둘 걸 그랬나 봐요."
이번엔 좀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천 년의 노래 팀들은 휘파람도 불었다.
"아니다, 계신다. 너무 정신없다 보니 정말 감사를 표해야 하는 분들을 잊고 있었네요."
진호는 2층 객석을 보았다. 그리고 혹시라도 신인상을 타면 하려고 준비했던 수상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를 위해 많은 걸 포기하신 다미앙 씨. 그리고 저 하나만 믿고 입사해 묵묵히 일해 준 우리 직원 분들."
신인상 정도는 되어야 다미앙과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하로는 미안해서 말을 할 수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다미앙과 직원들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게 보였다.
"정말 감사하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할게요. 우리 내년엔 좀 더 바쁘게 달리도록 해요. 올 한 해 감사했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우리도 부탁할게요─!"
"고맙다 진호야─!"
희미하지만, 귀에 똑똑히 들렸다.
"흐흐. 엄마, 아버지! 아들 신인상 탔어!"
허리를 꾸벅 숙인 진호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서 내려왔다.
"후아!"
이젠 정말 미련 없었다.
준비한 수상 소감도 다 말했다.
자리에 앉자 사람들이 축하 인사를 해 왔다.
"죄송해요, PD 님. 이때 인사를 했어야 하는데."
"됐어. 네가 상다운 상을 탄 것만으로도 난 족하다."
"우리도!"
신인상은 신인상 후보에도 단 한 번 거론되지 않은 수많은 배우들 가운데 한 해 제일 임팩트 있는 연기를 보여준 사람에게만 주는 상이다. 즉, 그 해를 씹어 먹은 최고의 신인 연기자라는 뜻.
이젠 정말로 아무 걱정 없이 시상식 자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호는 전신에 꽂히는 다른 신인상 후보들의 질투 가득한 시선을 무시하며 무대에 올라오는 걸그룹을 향해 목이 터져라 환호성을 질렸다.
그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지만, 단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인기상,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인기상은 레오가 타게 되었다.
국내 톱의 아이돌이다. 그 누구라도 상대가 되지 않았다.
진호도 자신의 일처럼 축하해 주었지만, 역시 수상 경력이 많은 레오는 심드렁할 뿐이었다.
탈 것을 탔다는 느낌이었다.
'아, 재수 없어.'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무심한 얼굴을 보자니 심술을 부릴까 하는 욕심이 울컥 솟았다.
"왜?"
"형, 오이 싫어했죠?"
"너! 갈아 넣을 생각 하지 마! 아니 이제 내 집에서 요리하지 마!"
"에이. 알레르기도 아닌데, 앞으로 친해져 봐요."
남자 조연상 후보들이 발표되었지만, 눈이 가질 않았다.
여자 조연상까지 천 년의 노래 팀에선 탈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여자 조연상 다음 진행될 올해의 작품상이 중요할 뿐이었다.
"호오. 이변이 발생한 것 같네요. 이건 거의 처음 아닌가요?"
"그러게요.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두 사회자의 대화가 귀에 들어오자 진호는 고개를 돌렸다.
이쪽을 바라보는 사회자들의 모습과 더욱 짙어진 사람들의 질투어린 시선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에이, 설마.'
그래도 입꼬리가 꿈틀거리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두 번을 탔는데, 세 번이라고 못 탈 이유가 없었다.
두두두두두! 드럼 소리가 다리를 절로 떨게 만들었다.
'아, 나다.'
사회자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게 됐다.
"드라마 스페셜 부문, 남자 조연상! 세 번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진호 씨!"
"……와우."
이런 감탄사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축하해 주자 진호는 옷 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몸을 일으켰다.
"아! 아쉽네요. 이번에도 멍한 얼굴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배우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흑역사를 만든 것을 자각하고 있는 진호는 붉어지는 얼굴을 감추고자 좀 더 빨리 걸었다.
상패와 꽃다발을 받아 들고 마이크 앞에서자 그제야 선배 배우들의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생애 첫 드라마인 '달려라 박 과장'에서 만난 배우들과 여러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축하해 주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대선배들은 단 한 번 만난 적이 없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신인상이 연기 좀 하는 신예라는 성격이 강하다면, 조연상은 진짜 배우로 인정을 받는 단계다. 트로피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더 이상 감사를 표할 사람이 없었다.
"음……."
배우들이 이번엔 어떤 소감을 말 할까 눈을 빛냈다.
난처했다.
"없으면 그냥 내려와─!"
무이의 첫 번째 주인, 이인겸 역할을 한 강종원이 크게 외치자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진호도 씩 웃었다.
"네. 이젠 감사를 표할 분들이 한국대 경영학부의 학장님과 부학장 님, 교수님들, 제게 기타를 알려 주신 정명진 교수님과 요리를 알려 주신 박 코흐트 교수님, 황재상 쉐프님, 그리고 영재 형과 선배님들, 동기들밖에 안 남았네요. 그분 들을 다 열거하면 시상식이 끝날 것 같으니 여기서 줄이기로 하겠습니다."
"……얀마! 다 말했잖아!"
"푸하하하하!"
"휘이익!"
"내년엔 더 멋진 연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많이 사랑해 주세요!"
진호는 카메라를 보며 큰 하트를 그림으로써 수상 소감을 마쳤다.
이변은 거기까지였다.
남자 조연상을 받은 김에 내심 드라마 스페셜 부분 우수연기상까지 노려 봤지만, 그건 다른 사람에게로 돌아갔다.
우수연기상부터는 주연의 영역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래도 신인상, 남자 조연상, 뉴스타상. 신인이 탈 수 있는 최고의 상들을 석권했다.
생애 첫 시상식에서 3관왕. 미치도록 기분이 좋았다.
* * *
그날 뒤풀이 파티는 정말 광란 그 자체였다.
올해의 작품상을 필두로 천 년의 노래 남녀 주연 배우 모두 최고우 수상을 타면서 천 년의 노래 팀이 시상식을 휩쓸어 버렸다.
공로상도 천 년의 노래 팀에서 나왔다.
대상을 다른 연기자가 타면서 형평성 문제가 붉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시상식을 싹쓸이했기에 모두 웃으며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진호의 수상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NBS2TV에서 주관하는 연예대상에서 '리얼, 정글에 가다'로 인기상을 받은 것이다.
진호는 거기서도 과자를 먹다가 고개를 돌리는 모습을 보이며, 흑역사를 하나 더 만들어야 했다. 덕분에 '움짤 제조기'라는 괴상한 별명까지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