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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92화 (9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7화

* * *

여러 소속사와 일본 중국의 연습생들을 모아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고 JH 소속으로 데뷔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

그룹이 만들어질 때까지 JH 소속이 아니라서 그만큼 애정도 안가고 재미도 느낄 수 없어 레오는 멘토 역할을 계속 거절했다고 한다.

"참 귀여운 형이라니까."

방송에 나올 독설하는 모습은 자기 진짜 모습이 아니라고 끙끙거리며 말하는데, 순간 형이란 것도 잊고 머리를 쓰다듬을 뻔했다.

"이 일도 벌써 한 달이 넘게 지났네."

어느덧 12월이다. 차디찬 거리에 크리스마스 장신구들이 걸리고, 캐롤이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디션 프로그램도 오늘 1화가 방송된다.

그 때문에 그 일이 다시 생각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오늘 '리얼, 정글에 가다 정착 생존 편' 1화가 방영되기에 오디션 프로그램은 보지 못 할 듯싶었다.

우우음!

[날씨 추워. 옷 단단히 입어.]

양진혁이다.

"아무튼 이분도 참……."

그날 정말 좋게 봐준 건지 이렇게 가끔씩 안부 문자를 보내 오고 있었다. 답문을 보내고 약간 추워진 듯한 공기에 온풍기 온도를 높이려 일어섰던 진호는 연습실 문 쪽을 보았다.

"음?"

밖이 소란스러웠다.

벌컥! 노크도 없이 문을 열며 외국인 한 명이 들어왔다.

진호는 경악했다.

"팀!"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 팀 존스였다.

"진!"

빠르게 달려온 팀 존스가 와락 안겨 왔다.

진호도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에 힘주어 껴안았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에요? 어떻게 왔어요?"

"당연히 내 뮤즈의 시상식 슈트를 만들어 주려고 왔죠. 천 년의 노래 봤어요. 진에게 상을 주지 않는다면, 심사위원들은 모두 장님인 거예요."

마음이 울렁거렸다.

디올 음므로 둥지를 옮긴 이후 모든 컬렉션을 성공시키면서, 샤넬에 라커펠트가 있으면 디올 옴므엔 팀 존스가 있다는 말을 들을 만큼 커 버린 그다.

그런 팀 존스가 세계적인 시상식의 남우주연상도 아닌, 이 한국에서 상을 받을지 못 받을지도 모를 자신에게 슈트를 만들어 주기 위해 날아온 거다.

"고마워요, 팀."

"아뇨, 난 당신이 더 고마워요, 진."

올 9월 파리 패션쇼에서 만난 이후 몸이 단 1mm도 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지독하게 몸 관리를 했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계속 뮤즈로서 존재하기 위해 이만큼 노력해 준 거다.

디자이너로서 이보다 더한 감동은 없었다.

'아, 뭔가 오해하고 있다.'

그래도 진호 자신의 입장에서는 좋은 오해인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한복 화보를 찍었더라고요? 그것도 여성복을?"

옆구리가 비틀려진다.

"그 화보가 파리를 들었다 놓은 걸 알고 있나요?"

"아하하하."

이런 질투에는 그저 웃는 것밖에 답이 없었다.

"쳇. 됐습니다. 그보다 천 년의 노래 출연자들에게 연락해 주세요. 그 레오라는 남성과 여자주인공, 당신의 첫 번째 마스터 이인겸도."

"……네?"

"물론 그들이 아니라도 진은 빛났지만, 그래도 고마운 사람들이니 그들에게도 옷을 주고 싶어서 그래요. 아, 크리미널 크라임과 리얼 정글에 가다도?"

쿨럭!

갑자기 일이 커져 버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모두 허락했다.

특히 시상식 후보에 오른 여성들은 열광했다.

그렇지 않아도 연말 시상식만 되면 드레스 확보를 위해 피터지게 싸우는 그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팀 존스가 직접 만든 드레스가 전달된다고 하니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연락을 마친 진호는 팀 존스와 함께 서울 탐방을 나서려 했지만, 팀 존스가 반대했다.

'리얼, 정글에 가다'는 시청하고 가자는 것이었다.

팀 존스가 '리얼, 정글에 가다'의 팬이 됐을 줄은 몰랐던 진호로서는 살짝 놀랐지만, 이내 그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실시간 통역을 해 주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시청하던 진호는 마지막 엔딩 샷을 보곤 그대로 굳어 버렸다. 자신이 다람쥐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다.

'와, 편집팀을 제대로 갈아 넣으셨구나.'

마치 최고의 사진작가가 최고의 카메라를 가지고 최고의 구도로 찍은 한 장의 작품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자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응?'

뭔가 기분이 이상해서 고개를 돌린 진호는 깜짝 놀랐다.

두 달 전에 추가로 뽑은 직원들 까지 모두 모니터링을 위해 사다 놓은 TV를 보며 굳어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사무실의 모든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고, 직원들이 다급히 수화기를 들었다.

사무실이 순식간에 시끄러워졌다.

어색하게 웃은 진호는 팀 존스를 보았다가 놀랐다.

그는 현재 굉장히 원통해하고 있었다.

"팀?"

"……어째서죠?"

"뭐가요?"

"어째서 저런 근사한 장면에 제 옷이 없는 겁니까?"

"아니, 저긴 정글……."

"내가 아웃도어를 디자인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까! 좋습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죠! 기다리세요!"

"아, 아니 잠깐!"

팀 존스는 사무실을 뛰쳐나갔고, 진호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쫓아갈 생각조차 못했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다미앙도 멍한 눈으로 흔들리는 사무실 입구를 보았다.

"글쎄요……."

그래도 한 가지는 알 것 같다.

팀 존스는 지금 디자이너로서의 영감이 폭발했다.

그렇다면 방해하지 않는 게 옳았다.

* * *

역시나 그는 그날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째 되는 날 나타나 슈트와 드레스를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더니 떠나 버렸다. 열의로 불타는 그의 눈을 보자 차마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말 시상식 날이 다가왔다.

진호의 집은 아침부터 소란스러웠다.

"아들. 스킨하고 로션 발랐어?"

"어제 팩은 하고 잤지?"

"오늘 피부숍 갈 거라서 스킨로 션 안 발라도 되고, 팩은 하고 잤어요."

"피부숍은 피부숍이고, 스킨로션은 스킨로션이지!"

어머니와 아버지가 잔뜩 초조한 얼굴로 계속 물어온다.

"걱정 마. 어차피 못 받아요. 쟁쟁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

"우리 아들이 뭐가 모자라서!"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아, 정 대리님 오셨나 보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뒤풀이 파티할 거라서 늦을 거예요."

"그래. 다녀와! 기죽지 말고! 엄마 눈에는 아들이 제일 멋져!"

"우리 아들 파이팅이다! 다 눌러 버려!"

쿨럭!

환하게 웃은 진호는 문을 열고 나갔다.

피부습, 헤어숍 원장들과 직원들은 그렇지 않아도 혼자 사는 진호가 더 인간을 초월해 가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수상을 기도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해가 저물었다.

부우웅!

퇴근 시간을 살짝 빗겨 간 시각, 진호를 태운 검은색 그랜드 스타X가 시상식장을 향해 나아간다.

"흠. 차를 바꿔야겠군요."

옆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은 다미앙의 눈이 흔들린다.

"그만 떠세요. 누가 보면 다미앙 씨가 상 받는 줄 알겠어요."

다미앙뿐만 아니라 뒷좌석에 앉은 최 실장이나 장경아 실장도 초조해하고 있다. 그 많은 경력을 쌓는 동안 수많은 성공한 연예인을 만나온 그들이 말이다.

"크흠. 당사자인 진호 씨는 왜 그렇게 평온하십니까?"

"여러분이 제 몫까지 떨고 계시 니까요."

정말이다. 운전대를 잡은 정 대리 마저도 몸이 떨리는 게 보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 진호야. 상 하나는 정말 주겠지?"

신인상, 드라마 스페셜 부분 남자 조연상, 인기상, 뉴스타상, 총 네 개의 상에 노미네이트됐다.

그중 가장 가능성 있고, 또 받고 싶은 건 일생에 딱 한 번만 받을 수 있다는 신인상이었다.

"주면 감사하죠."

진호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신인상은 진짜 받고 싶은데…… 아, 받고 싶다. 상.'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진호는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쥐었다.

차는 시상식장에 도착했지만, 바로 진입하지 못했다.

순서라는 게 있다고 했다. 선착순이 아니라 인기순. 최 실장은 꼬장순이라고 했다.

그렇게 순번을 기다릴수록 심장의 박동은 점점 빨라져 갔다. 아무렇지 않으려고 해도 심장과 얼굴이 말을 듣지 않았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얼어 있는 모습으로 찍히긴 싫은데.'

그런데 얼굴이 말을 듣지 않았다.

"진호야, 파이팅!"

"아주 그냥 아우라로 눌러 버려!"

"어차피 진호 씨 미만 잡입니다."

"……풋. 아 진짜."

장경아 실장의 '미만 잡'이란 말이 빵 터지게 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었다.

"스읍! 후! 다녀오겠습니다!"

드르륵! 열린 문을 통해 내린 순간이었다.

웃으며 내린 진호는 놀라고 말았다.

촤라라라라라라!

"꺄아아악!"

"진호 오빠-!"

"진호야!"

눈이 시릴 듯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와 팬들의 함성.

이 추운 날, 이곳까지 찾아온 팬들의 정성을 생각하니 왈칵 눈물이 날 뻔했다.

생애 처음으로 레드 카펫을 밟았다는 그 어벙벙한 떨림이 저 멀리 사라졌다.

이를 지그시 악문 진호는 그들에게 보답하고자 제일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눌러 두었던 존재감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스킬 : 내가 제일 잘나가]가 [스킬 : 연신연왕]과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키며 진호의 아우라를 키워 갔다.

"헉."

"음."

진호를 중심으로 소음이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질문을 던지려 입을 열었던 기자들은 갑자기 커진 진호의 아우라에 그대로 굳어 버렸고, 그건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팬들에게 다가갔다.

팬들 사이로 웅성거림이 번져 갔다.

"추운데 왜 왔어요?"

"오, 오빠 보러요."

질문을 받은 여학생의 눈이 몽롱하게 풀렸다.

"다른 지니들도?"

지니는 진호가 팬들을 부르는 애칭이다.

팬들은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는 그 정성이 너무 고마워 사인이나 사진을 찍어 주려고 했지만, 스태프가 제동을 걸었다.

"가셔야 합니다."

"다음부터는 오지 말고 TV에서 봐요. 아니면 안에 들어가 있든 가."

진호는 대화한 여학생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몸을 돌려 포토존으로 향했다. 그걸음은 굉장히 당당했고, 거침없었다.

"오빠-! 상 꼭 받아요-!"

손을 흔든 진호는 포토존에 서며 환하게 웃었다.

정신을 차린 기자들이 다급히 플래시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질문을 쏟아 냈지만, 진호는 교육받은 대로 입을 열지 않았다.

* * *

짧지만 긴 포토 타임을 마치고 시상식장 안으로 들어오니 레오가 반겨 주었다.

"어휴. 진짜 먼저 오길 잘했지. 살살해. 다 죽이려고?"

레오는 장담할 수 있었다. 진호 이후로 등장할 모든 20대, 30대 남자 배우들은 오징어가 됐다는 것을 말이다.

"……으흐흐."

진호는 레오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슈트를 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멋집니다."

"당연히 나만을 위한 맞춤 슈트인데 멋있어야지."

진호 때문이라지만,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맞춤 제작해 준 슈트다. 세상에 딱 한 벌 있는 슈트.

한국 최고의 아이돌 그룹 리더인 그조차도 받아 보지 못한 성질의 것이다.

레오는 진호가 너무 고마웠다.

"들어가자. 다들 기다리고 계셔."

"옙!"

레오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잔뜩 있었다. 눈을 빛낸 진호는 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나서야 지정석에 앉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배우들도 진호의 인사를 기껍게 받아주었다.

자리에 앉자 '천 년의 노래' 팀이 모두 감사 인사를 건네 왔다.

여성 배우들은 더 각별히 감사 인사를 건넸다. PD도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맞춤 슈트를 입게 되어 입이 함지박만하게 찢어져 있었다.

"오늘 뒤풀이 알지? 어디 가면 안돼. 상 탔다고 막 그러면 안돼. 알았지?"

"올해의 작품상을 타실 PD님이 스케줄 잡을까 봐 걱정인데요?"

"……으흐흐, 좋다. 올해의 작품 상."

'천 년의 노래' 팀 모두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다른 상은 몰라도 올해의 작품상은 확정이라고 봐야 했다.

시청률이 역대 15위안에 들었고, 올해 방영된 드라마 중 '천 년의 노래'를 넘어선 작품이 없다. 무조건 확정이다.

"걱정 마세요. 오늘을 위해 스케줄 모두 비워 뒀습니다."

"그렇지! 그래야 우리 진호지! 오늘 다 같이 상 타고 기분 좋게 한 잔합시다!"

"오오오!"

"오!"

이후 시간이 되자 시상식이 시작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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