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6화
6. 시상식
짠 냄새가 진호의 집안에 퍼진다.
불이 켜진 가스레인지 위에는 파와 양파, 월계수 등과 간장이 끓는 냄비가 놓여 있고, 그 앞에선 진호는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니 모든 신경을 기울여 불 조절을 하고 있다.
띠디디디디! 디리릭!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미야옹!
흠칫!
"하양이 저자식이!'
비겁하게 이르고 있다.
흔들리는 진호의 눈동자에 커다란 갈등이 서렸다.
"이놈의 자식이 또!"
하양이를 끌어안은 채 쿵쾅거리며 다가온 나진희가 팔을 크게 휘둘렀다.
퍼억!
"아악!"
"내가 이런 거 하지 말라고 했지! 벌써 몇 번째야!"
"1분만! 딱 1분만!"
"시끄러워! 나가─!"
결국 진호는 비전 간장을 사수하지 못한 채 쫓겨나야 했다.
"아오, 이번엔 정말 좋았는데."
쓰리스타의 라온. 정말 충격이었다.
정갈하면서도 폭발적이었고, 끝을 모를 만큼 깊었다.
특히나 그 간장 맛은 아직까지도 혀끝에 남아 있었다.
맛간장이 아니라 간장 본연의 깊은 맛.
"하아."
아랫입술을 내민 진호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가 향한 곳은 레오가 사는 고급 빌라였다.
레오가 알려 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니 미니핀 초코가 달려와 반겨 주었다.
"초코, 빵!"
뒹굴 굴러 드러낸 배를 거칠게 쓰다듬은 진호는 안쪽으로 향했다. 다급히 일어난 초코가 따라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레오가 부스스한 얼굴로 작곡을 하고 있었다. 슬그머니 문을 닫고 물러난 진호는 거실로가 게임기를 켰다. 소리를 줄인 채 게임을 하다 보니 레오가 걸어나왔다.
"아니, 안 한다니까. 그 재미없는 곳을 가서 뭐 해. 응?"
마치 자기 집처럼 편히 있는 진호를 발견한 레오는 피식 웃었다.
"일단 끊어. 손님 왔어요."
통화를 종료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러라고 했지만, 너무 네 집처럼 여기는 거 아냐?"
"집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어요."
"아니 왜?"
"집안 서열이 바뀌어서……."
부모님이 공동 1위고, 그다음이 하양이가 됐다.
만약 자신이 아직도 2위였다면 비전 간장은 몇십 번이고 만들 수 있었다.
배은망덕도 이런 배은망덕이 없었다.
"푸하핫! 회사는?"
"오늘은 스케줄 없어요."
쉬는 기간이지만 광고나 화보, 인터뷰, 패션쇼 등은 꾸준히 하고 있다.
"그래? 그럼 나가자. 점심 안 먹었지?"
"방금 스케줄 관련 전화 아니었어요?"
"아, 맞긴 맞는데……."
진호는 이쪽을 빤히 보기 시작한 레오를 보며 갈등했다.
그의 생각이 읽혔다.
"너 형이랑 스케줄 하나 할래? 별로 힘든 건 아냐."
역시나였다. 갈등이 깊어졌다.
"흠……."
"중식당 맛집에서 탕수육."
결론이 났다. 어차피 오늘은 더 이상 비전 간장을 만들 수 없어서 심심하던 차였다.
"아, 이 형은 날 너무 잘 알아. 알았어요. 그럼 전 면을 살게요."
"역시, 진호! 가자!"
그렇게 스케줄이 결정되었다.
* * *
스케줄이 뭔지 들은 장경아 실장은 허락해 주었다.
레오와 향한 곳은 레오의 소속사였다.
"오."
높고도 세련된 빌딩은 감탄이 나오면서도 사고 싶다는 욕심을 들게 했다.
'이건 얼마나 하려나.'
내부는 더 멋졌다. 바닥을 비롯한 모든 벽면이 인조 대리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진호는 레오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하셨어요."
"어? 어, 그래. 수고 많이 했지."
아련히 웃은 레오는 촬영을 하는 연습실로 안내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서 형 역할이 뭐예요?"
"멘토. 그런데 오늘만 할 거야."
불만이 서린 얼굴이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겪은 게 분명했다.
그렇게 도착한 촬영장소는 연습실 바깥까지 스태프들이 나와 있었다. 그들은 레오를 보고 경악하고, 진호를 보고 넋을 놨다.
"아이구, 레오 씨. 왔어요? 출연 해 줘서 고마워요."
"오랜만이에요, PD님."
수더분한 인상의 40대 중년인이었다.
그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향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덥썩! 손이 잡혔다.
"나랑 프로그램 하나 합시다."
"……아하하."
"오늘 촬영 끝나면 로또 사야겠네. 레오 씨하고, 요즘 제일 잘나 가는 진호 씨가 이렇게 출연해 주니 말이야."
진호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빛나는 그의 눈빛을 슬그미니 외면했다.
"녹음실에 대기해 줘요. 곧 보낼게."
"네. 진호야, 가자."
PD에게 인사한 진호는 레오를 따라 녹음실로 이동했다.
카메라와 스태프가 있는 녹음실은 기타 커버곡을 녹음하는 스튜디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 저건?"
녹음실 한구석을 본 진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매끈하게 빠진 바디 라인과 중후한 헤드.
"깁슨 ES-355!"
비록 지금은 해체했지만, 레전드 형제 록 그룹의 형이 그룹을 해체 하기 전까지 애용했던 그 기타였다.
발이 절로 동동굴러졌다.
"기타 칠 줄 알아서 그런지 바로 알아보네? 한번 쳐 볼래?"
"그래도 돼요?"
"우리 사장님 건데, 아무나 가지고 놀라고 놔둔 거야."
"이, 이걸요?"
미쳤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다가 내려갔다.
전국 기타 마니아들이 뒤집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그럼 잠깐만 만져 볼게요."
조심히 들어 어깨끈을 멘 진호는 가볍게 현을 튕겼다.
그립감과 튕겨지는 줄의 탄성이 엄청났다.
'관리도 잘됐어!'
방치되거나 기타를 모르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가지고 논 게 아니다. 기타에 애정을 가진 사람이 매일같이 관리를 한 흔적이 강하게 느껴졌다.
레오는 아이처럼 흥분하는 진호를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안에 들어가서 쳐 봐. 일렉은 음향기기와 연결되어야 진짜지."
순간 갈등이 들었지만, 그 시간은 짧았다.
카메라가 있지만, 지금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호는 다급히 녹음실로 들어가 잭을 연결하고, 헤드셋을 썼다.
징징!
'와, 진짜 미쳤다.'
헤드셋을 통해 들려오는 소리가 말해 주었다.
이건 자신의 기타인 마틴 000-28EC와 버금가는 명품이었다.
조율은 이미 되어 있었다.
-어떤 곡 틀어 줄까?
"이 기타면 당연히 그 그룹의 곡 뿐이죠."
-Don't Look Back in Anger?
"좋죠."
이윽고 헤드셋을 드럼의 심벌 소리와 함께 피아노 연주가 뒤따르자 숨을 깊게 들이마셨던 진호가 피크를 가볍게 훑었다.
레오는 녹음실을 울리는 첫 음을 듣는 순간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미쳤네.'
갑자기 튀어나온 기타 소리가 드럼과 피아노를 잡아먹었다가 이내 장난이었다는 듯 서로 어울리고 있다.
그러며 들려오는 라엘의 목소리가 소름을 돋게 했다.
갑자기 이곳이 영국처럼 느껴졌다.
스륵 문이 열리며 일단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레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허리를 급하게 숙였다 편 어린 청년들은 죽일 듯 노려보는 그의 눈빛에 그대로 굳어야 했다.
레오는 검지를 입가에 붙였다가 다시 모든 신경을 귀에 집중했다.
'…… 진짜 미쳤어.'
밀리지 않는다.
형 라엘, 동생 로딕이 다 해먹은 그룹인데, 그들에게 밀리지 않는다. 아니, 어서 더 편하게 노래하라는 듯 등을 떠밀어 준다.
그 라엘 로딕 형제를 상대로 말이다.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진호의 기타 커버곡 영상을 다시 봐야겠네.'
"얘 뭐냐?"
"진짜…… 아, 왔어요."
"어. 그래서 얘는 누군데?"
날카로운 외모가 표정이 굳으니 베일 버릴 것처럼 위험하게 느껴졌다.
"몰라요?"
"아는데…… 허어. 눈 감고 있으면 태원이 형이라고 해도 믿겠네."
레오가 깜짝 놀랐다.
"그 정도입니까?"
"듣고 있으니 알 것 아냐."
록 그룹의 멤버로서, 한국 록의 전성기를 겪어온 양진혁은 아이돌인 레오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비록 실력이 부족해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됐다지만, 귀마저 부족한 건 아니었다.
그나마 한국에서 최고로 성공한 기타리스트 윤태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미칠 듯한 저 비주얼이었다.
기타를 들고만 있어도 CG였다.
"후우. 저런 줄 알았다면 그때 어떻게든 계약 맺는 건데……."
그는 미치도록 아쉬워했고, 녹음실은 경악에 물들었다.
'응?'
얼굴이 따가워 눈을 뜬 진호는 살짝 놀랐다.
연주에 흠뻑 빠진 사이 많은 이들이 들어와 있었다.
'어? 양진혁 사장님이다.'
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엔터테인먼트 사업가 중 한 명이자 이곳 JH의 대표다.
-진호야, 다른 곡도 해 볼래? 빠른 곡으로.
"아뇨, 괜찮아요. 이제 촬영하셔야죠."
솔직히 해 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촬영에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반갑습니다. 양진혁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연주를 들어서 그런지 갈증이 많이 납니다. 딱 한 곡만 더 부탁하겠습니다.
'어흐흐.'
성공한 엔터테인먼트 사장의 칭찬이었다. 아니 극찬이었다.
몸이 절로 배배 꼬였다.
"음…… 그럼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로 해 볼게요."
통기타로 연주하는 호텔 캘리포니아와 일렉으로 연주하는 호텔 캘리포니아는 완전 다른 음악이 되어 버린다.
가사는 딱히 공감이 되지 않지만, 그 음만은 참 좋은 곡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진호는 아쉬움을 접고 녹음실을 나섰다.
녹음실 밖은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잘 썼습니다. 정말 좋은 기타예요."
'한 대 구입할까?'
일본에서 마틴 000-28EC를 샀을 때처럼 지름신이 옆에서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 있다.
'아, 안돼. 일렉은 우퍼도 사야 돼.'
전자 기타는 음향 장비까지 사야 한다.
사는 건 문제가 안 되는데, 놓을 곳이 없다.
"아까 연주 도중에 템포 바꾼 거 일부러 한 겁니까?"
"사장님께서 노래 부르셨으니까요."
버튼을 잘못 누른 건지 그의 노랫소리가 헤드셋 속으로 흘러들어왔다.
흥얼흥얼. 추억에 젖은 이가 가볍게 즐기면서 부르는 노래였다. 그래서 그 템포에 맞추며 진호 자신도 정말 가볍게 즐기기 위해 약간은 장난도 치고, 그가 더 몰입 할 수 있도록 밀어 주기도 했다. 여행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친구들끼리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허."
양진혁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진호의 나이는 이제 21살이다. 엄마 배 속에서부터 기타를 연주해야 겨우 이해할 것 같은 실력이었다.
"우리 녹음 하나 같이합시다."
"……네?"
"레오야, 너 밴드 곡 하나 써 봐라."
"못 쓰는 거 알잖아요."
"아휴, 이 반쪽짜리."
"그러는 사장님이 써 보든가요."
"자, 잠깐만요."
둘의 대화 사이에 끼어든 진호가 양진혁을 보았다.
"녹음요? 제가요?"
"예. 진호 씨가 기타 리드를 맡는."
'……헐.'
* * *
양진혁의 제의는 정중히 거절했다.
일단 곡이 없는 것도 있지만, 혼자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러자 레오가 보컬을 맡고 진호가 기타를 맡는 연말 시상식 공연을 하자고 했는데, 이건 레오가 거절했다. 록은 자신 없다는 이유다.
"그리고 얘 지금 기초 화장도 안했는데 이 정도예요. 나보고 오징어 되라고요? 안 그래도 오징어 소리 많이 듣는데? 진호가 친한 동생인 것과 같이 무대에서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사장님."
"어흠흠. 확실히 배우 비주얼이 다르긴 달라. 큼. 혹시 전화번호 알려 줄 수 있어요? 록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한잔 걸치며 기타에 대해 이야기 좀 나누게. 내가 기타를 좀 가지고 있어요."
눈이 번쩍 떠지는 말이다.
깁슨 ES-355를 놀이용으로 놔둔 사람이다.
얼마나 많은 명품 기타가 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됐다. 지금은 단종되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그런 기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럼요."
"아니, 지금 내 방으로 갑시다. 내 방에도 몇 개 있어요."
정말 순수하게 음악적 이야기를 나누려는 듯싶었다.
진호는 레오를 봤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진호는 양진혁을 따라나섰다.
달칵 문이 닫히자 레오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여기서 하루 여섯 시간 이상 자는 사람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