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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90화 (9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5화

* * *

해가 거의 저물어 갈 때쯤, 숲으로 향했던 선남선녀 출연자들은 나무 열매 몇 개와 함께 복귀했다. 입에 비해 구한 게 적어서 멋쩍 어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했던지라 뿌듯해하던 그들은 이내 곧 진호와 김세연이 복귀하자 넋을 놓아버렸다. 다른 사람들도, 지난 몇 년간 '리얼, 정글에 가다'를 촬영하며 온갖 상황을 겪은 여정호 PD를 비롯한 스태프들도 정신줄을 놓았다.

족장 서정문이라고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와."

"우와."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감탄밖에 없었다.

덩굴에 꿰여 있는 20마리는 되어 보이는 실한 물고기들과 옷으로 만든 보따리 두 개를 가득 채운 온갖 식재료들.

여정호 PD는 다급히 둘을 따라 나섰던 카메라를 찾았다.

사람들이 그 카메라 주위로 몰려 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신줄을 놓았다.

"진호야, 아까 너 미쳤다고 무전 온 게 이 뜻이었구나?"

서정문이 혀를 내둘렀다. 분명 영상을 봤는데도 믿을 수가 없었다. 진호는 멍한 그와 사람들을 보며 싱긋 웃었다.

"제가 가지러 다녀온다고 했잖아요. 아까 보니까 물속에 물고기들이 많더라고요. 족장님, 내일은 새우 콜?"

출연자들이 순간 진호를 존경한다는 듯 보았다.

"어흠. 진호 씨, 아니 진호야. 그리고 여러분."

"네, PD님."

"내일 미션을 줄까 하는데, 일단 상품이 소금과 삼겹살이거든?"

움찔! 진호와서정문뿐만 아니라 출연자 모두가 동요했다. 구워 먹어도 삶아 먹어도 볶아 먹어도 다 맛있는 삼겹살이다.

"그 미션이……에이,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아, 뭔데! 현기증 나잖아!"

서정문이 버럭하자 여정호 PD는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그 설명에 출연자들이 패닉에 빠졌다.

하지만 진호와 진호를 따라온 스태프들은 아니었다.

스태프들은 기겁하며 여정호를 보았다.

서정문이 여정호 PD의 멱살을 잡았다.

"에라 이! 그게 말이 돼? 니가 해 봐, 인마! 네가 연석이 형이냐!"

"하하.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좋잖아요."

"안 좋아!"

출연자들이 발을 동동굴렀다. 먹고는 싶은데 불가능한 미션.

자린고비가 천장에 매어 놓은 굴비 한 마리처럼 느껴졌다.

"어…… 그거면 돼요?"

사람들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몰렸다. 그를 따라나섰던 스태프들이 한숨을 내뱉었다.

"으, 응. 그런데?"

"정말이죠?"

"진호야, 잠깐만!"

"괜찮아요, 족장님."

진호는 서정문을 말리며 자기 머리를 툭툭 쳤다.

"끽?"

일어선 다람쥐.

공터가 정적에 빠졌다.

여정호 PD는 다급히 진호를 따라나섰던 스태프들을 봤고, 그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혼이 빠진 얼굴을 한 여정호 PD가 아침밥을 만드는 진호를 본다. 아침은 달콤한 과일과 새콤한 과일 소스로 만드는 샐러드다. 출연자들이 그런 진호의 곁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고, 다람쥐가 그 사이를 노닌다.

문제는 이게 아니다.

꼬곡?

공터를 어슬렁 걸어 다니는 야생 닭 네 마리.

해가 막 뜨기 시작할 무렵 숲으로 들어간 진호가 1시간 만에 잡아 온 놈들이다.

날아가 버린 고전분투 분량에 여정호는 소리 없는 절규를 질러야 했다.

진호는 알까지 가져와 숯만 남은 모닥불 아래 넣어 버렸다.

"아, 다 익있겠다."

막대기로 숯을 걷어 낸 진호는 까맣게 탄 계란을 깨 샐러드 위에 뿌렸다. 색색의 과일 위에 뿌려지는 영롱한 반숙 계란의 자태에 출연자들이 물개 박수를 쳤다.

"오오오!"

"오오!"

처음 정글에 올 때만 해도 많은 각오를 했던 그들이다.

며칠 생존하면 며칠 쉬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는 소리에 어떻게 든 그때까지 버티겠다 생각하며 파이팅했던 그들이다.

여정호 PD가 10일 생존 후 철수라는 말을 하기 전까지 말이다. 4 일, 5일이면 몰라도 무려 10일.

그동안 물고기 조금, 손가락만한 새우 몇 마리, 열매 조금을 가지고 8명이 하루를 버텨야 한다. 지금 까지의 '리얼, 정글에 가다'는 그래 왔고, 절망이 온몸을 휘감을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이진호라는 빛이 드리워졌다.

"……이건 뭐, 엄마 개와 새끼 강아지들도 아니고."

마치 엉덩이에서 꼬리가 흔들리는 듯한 환상이 보이는 출연자들의 모습에 서정문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앞으로 좋은 그림이 그려질 것 같아서 기분은 좋았다.

"족장님은 아무렇지 않으세요?"

김세연이 묻자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진호가 진호한 것 가지고, 무슨."

"풋!"

"오오!"

"진호야, 점심엔 삼겹살이냐?"

"아뇨, 어제처럼 물고기 바나나 잎 숯불 찜요. 제작진에게 얻은 소금 넣을 테니까 기대하셔도 좋아요."

얼굴이 살짝 붉어진 진호는 자기 몫과 동물들 줄 몫을 챙겨 뒤로 빠졌다. 삼겹살은 저녁 식사를 위해 훈제할 생각이었다. 오후에 잡을 새우와 함께 말이다.

출연자들은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어제 먹은 이름 모를 민물고기 숯불 찜은 감동 또 감동이었다. 어느 한 부위 덜 익은 곳 없는 절묘한 불 조절과 온갖 허브와 야생 마늘로 흙냄새를 잡은 탱탱한 생선 살. 마지막으로 혀 안쪽을 스치는 바나나 잎의 달콤한 향.

그건 한국에서도 먹어 본 적 없는 고급 요리였다.

너무 맛있어 눈물을 그렁거린 출연자도 있었다.

그런 요리에 소금까지 추가된다고 한다.

그들의 엉덩이는 벌써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다 됐습니다. 얼른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이것도 맛있어!"

촬영 스태프도 들어간 남성용 집에서 나온 진호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10시 되기 전에 비 오겠다."

어젯밤 가마와 막사를 지었기에 동물들 걱정은 없었다.

그 소리를 들은 제작진은 식겁하며 우천 촬영 준비를 했다.

어느새 발치 앞에 다가온 닭들에게 샐러드를 나눠 준 진호는 집앞에 쪼그려 앉아 아침식사를 시작했다.

털썩! 생얼의 김세연이 옆에 앉았다.

"오늘은 근육 만지게 해 줄 거야?"

"좀 이따가 비 온다. 얼른 먹고 씻어."

"복근이 안 되면 팔이라도."

"팔꿈치로 정수리 찍혀 볼래?"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줘."

'생각까지 해야 될 문제냐.'

새로 사귄 친구는 참 변태 같았다.

'재준이랑도 잘 어울리겠다.'

서로 쿵짝이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다시 하늘을 보았다.

"비 오기 전에 대나무나 베어 올까?"

"왜?"

"침대 만들게. 조리 도구나 식기로도 쓸 수 있고."

"콜 "

자기 것까지 만들어 달란 소리다.

"대신 난 그릇."

진호가 다급히 그녀의 입을 막으며 제작진 눈치를 봤다.

김세연은 그 뜻이 뭔지 알아차렸다.

진호는 슬그머니 손을 뗐다.

"배웠어?

"응. 작품 때문에."

"오케이."

마지막 과일 조각을 입에 털어 넣은 진호는 모른 척 여정호 PD에게 다가갔다.

"PD님. 저희 오늘 미션 없어요?"

그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오늘 미션…… 했잖니?"

"아, 맞아. 그랬지, 참."

"……흐흐. 우리 진호가 심심한가 보구나?"

"아뇨. 비가 꽤 쏟아질 텐데 그동안 할게 없어서요."

여정호 PD의 눈이 빛났다.

"몇 시간이나 내릴 것 같아?"

"3시간 정도요."

"그렇단 말이지……."

'걸려들었어.'

3시간 동안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척이나 한정적이다.

씩 웃은 진호는 돌아서 집으로 들어갔다.

"침대 만들 대나무 베러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처처척! 출연자 모두가 손을 들었다.

그들의 눈은 굴려만 달라는 듯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많이 계시는구나."

'왜지?'

"우리에게 맡겨 주세요! 소중한 쉐프님 힘들게 할 수 없으니까!"

"우리도 분량 만들어야지!"

"요리만 맛있게 만들어 줘!"

'아, 그게 목적이구나.'

어이가 없었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떤가 싶었다.

"어차피 점심까지 시간 많아요. 남자 세 명만 해서 갈게요."

"……눈치게임! 일!"

"이!"

"칫. 왜 남자만."

분해하는 여성 출연자들을 보며 진호는 어이없어했다.

"진호야. 내가 만약에 무인도 ……."

"바쁘면 못 갑니다."

"말은 끝까지 듣지 그러냐."

"무언가 하나를 가져가야 한다면 저라고요?"

"쳇."

서정문이 툴툴거리며 자리를 뜨자 같이 갈 멤버도 확정되었다. 진호는 그들과 함께 숲으로 향했다.

그리고 여정호 PD는 예정대로 골탕을 먹어야 했다.

김세연의 손재주는 의외로 좋았다.

* * *

열흘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쳇. 결국 통나무집은 못 만들었네."

서정문이 벌목용도끼를 가져왔던 이유인 통나무집. 집을 지어 보기 위해 건축 관련 자격증도 딴 그였기에 더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있었지만, 문제는 하루에도 두세 번씩 내리던 비였다.

"다음에 만들면 되죠, 뭐."

"약속했다? 정호야, 들었지?"

여정호 PD와 제작진의 눈에서 스파크가 튀었다.

진호는 단호하게 말했다.

"스케줄이 되면요. 두 달 전에는 연락 주세요."

제작진은 실망했지만, 이것도 어디냐는 생각을 가졌다.

그만큼 이번 편도 대박이었다. 부제목을 달자면 솔선수범하는 리더 이진호 서정문과 노예들 혹은 어미 새 뒤를 졸졸 쫓는 아기 새들과 노예 김세연 정도로 할 수 있었다.

지금도 진호의 뒤만 졸졸 따르는 연예인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완전 조련된 동물이 따로 없었다. 정착 생존이라서 기획을 하면서도 분량이 얼마나 나올까 반신반의했던 제작진으로서는 천만다행, 아니 대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진호가 요리하는 모습만으로도 3 회 분량이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아쉬워서 어떡해? 동물들 말이야."

"……아."

제작진의 말에 진호는 옅게 웃었다.

"야생 동물은 야생에서 살아야죠."

진호의 맑은 미소에 제작진은 감탄을 터트렸다.

다람쥐와 닭들이 출연자들과 노는 모습만 해도 3회 분량이 나올 정도다. 진호도 동물들을 각별히 챙겼다.

"역시 동물도 착한 사람은 알아 보나 봐."

진호가 손을 뻗자 다람쥐가 나무를 타고 내려와 손바닥 위에 오르는 그 영상은 정말 미치도록 잘 나왔다.

여정호 PD는 주먹을 꾹 쥐었다.

'베어 그릴스건 뭐건 다 데려와 봐. 우리 진호가 짱이다!'

베어 그릴스는 먹잇감을 찾아 헤매지만, 진호는 먹잇감이 알아서 찾아온다. 차원이 다른 레벨이다.

위이잉!

입국 게이트의 문이 열렸다.

"진호야……."

"진호야, 우리 숙소에서 살래? 누나 방 줄게!"

"어허, 어딜! 진호야, 형은 집 혼자 쓴다!"

진호는 난처하게 웃었다.

'페로페로몬은 인간에게 영향 없는데…….'

이렇다 할 조리 도구가 없기에 더 집중해야 했던 불 조절.

실력을 너무 발휘했나 싶었다.

진호도이 좋은 사람들과 더 있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젠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꼭 연락해!"

"진짜 형이랑 맛집 투어 다니자! 꼭!"

연예인들은 정말 안타까워하며 입국 게이트를 나섰고, 그 앞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각 연예인의 매니저들은 경악했다. 통통하게 오른 볼과 매끈거리는 피부.

살이 빠져야 정상인 스케줄을 하고 온 사람이 더 살쪄서 왔다.

"야, 이씨! 거기서 뭘 얼마나 먹고 온 거야!"

"운동 빡세게 할 준비해!"

연예인들이 우르르 떠났고, 마지막으로 김세연이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과 눈은 시원섭섭,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연락해."

"당연하지. 조심히 들어가고, 푹 쉬어."

"꼭 작품 같이하자."

"그래, 연락해. 검토해 볼게. 너도 검토해 봐."

싱긋 웃은 김세연은 성큼성큼 걸 음을 옮겼고, 진호는 느긋하게 발을 놀렸다.

어차피 이제부터 11월까지는 쉬는 기간이다.

급할 건 없었다.

공항을 빠져나온 진호는 서정문과 제작진에게 인사를 한 뒤 정 대리가 운전석에 앉은 차에 올랐다.

"수고했어."

"별일 없었죠?"

"별일이 좀……."

우우웅!

갑자기 울리는 업무용 핸드폰을 본 정 대리가 한숨을 내뱉었다.

"네가 받아 봐. 이게 그동안 있었던 별일이니까. 정말 한 시간이 멀다 하고 오더라."

의아해하며 핸드폰을 넘겨받은 진호는 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발신자가 레오였다.

"여보세요?"

-정 대리님. 진호 공항에 도착…….

"네, 형. 저 진호예요."

-응, 왔어? 정글에서 별일 없었지?

"그럼요. 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냐. 잘 다녀왔나 걱정돼서 전화한 것뿐이야. 목소리 들으니까 잘 다녀온 것 같네.

진호는 피식 웃었다.

처음 그 시니컬했던 레오는 어디 가고 동생 걱정 많은 정 많은 형 레오만 있었다.

'이 형도 페로페로몬에 홀렸나.'

갑자기 너무 잘해 주기에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그보다 라온 가야지!

진호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가야죠. 언제 갈까요?"

한국 최초 미술랭 쓰리스타. 그건 장기간 스케줄에 쌓인 피로를 날려 버리기에 충분한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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