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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87화 (8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2화

* * *

줄에 꿰인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기다랗고 두꺼운 막대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한 주막 안으로 들어간다.

"아주머니."

"아이고, 무휼 총각 왔어? 어떻게 그건 생각해 봤어?"

아무렇게나 묶은 긴 머리칼. 새 왕조 조선을 세울 때 많은 역할을 한 무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다.

조선이 열리고, 10년. 백성들 얼굴에 웃음은 많아졌지만, 무휼은 어느 지방 도읍의 주막에 물고기나 파는 신세였다.

하나 이건 그가 원한 것이니, 그의 얼굴에 수심은 하나 없었다.

"저 아랫동네 순심이. 사람이 참 착하다니까?"

"……그렇게 착한 사람이라면 제게 안 어울려요."

너무 많은 피를 보았다. 지금도 악몽 때문에 깨는 자신에게 여성은 어울리지 않았다.

"아니, 이 동네에서 무휼 총각만큼 착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제 과거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제가 조선 건국 때."

"돌아가신 정도전 나리도 지키시고, 태조대왕 님의 검도 되고, 현재 나라님과도 싸웠다고? 엄청난 무사였다고?"

"아니 그걸 어떻게 아세요?"

"2년 전인가. 여기 처음 온 날기억 안 나? 그때 다 말했어. 고려나 조선이나 윗놈들은 똑같다고. 앞으론 술김에라도 그런 말하지 마. 치도곤 치러."

만백성의 이상이었던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 그런 그의 사상에 반해 그를 지키고자 했지만, 결국 이방원의 손에서 지켜 내지 못했다.

하나 이방원을 베지 못했다. 그가 꿈꾸는 세상도 만백성이 웃고자 하는 것이었으니까. 다만, 정도전과 달리 왕이 왕답고, 관리가 관리 다운 세상이었다. 결국,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권력자는 똑같았다. 모든 것에 실망해 검은 꺾은 그 날, 매일매일 술에 취해 떠돌다 도착한 곳이 이곳이었다. 그때 술주정을 부린 것 같았다.

"아, 맞아. 그렇지 않아도 누가 총각 주라고 서신을 맡겼어."

"제게요?"

"얼굴이 곱상하고 눈이 찢어진 게, 꼭 여우같이 생긴 귀공자더라고. 옆에 엄청 단아한 아씨도 계시고."

여우와 단아한 아씨. 누군지 단번에 예상되었다.

주모가 주는 서신을 펼친 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 나라 조선을 천 년의 제국으로 만들 위인이 태어났다. 그로 인해 이 나라 조선의 언어가 바뀔 것이고, 이 나라 조선 만백성의 삶이 바뀔 것이다. 그 정도전이 원하던 나라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뭐?"

요술을 통해 미래를 봄으로써 이성계를 승리로 이끈 구미호의 예언이었다.

지켜라. 그것이 휼의 이름을 이은 네 마지막 사명이다. 무휼.

쿵! 둔중한 울림이 가슴에서 퍼진다.

'지킨다…….'

"그럼 잘 있으라고. 전 삼한제일검. 그리고 현 조선제일검."

흠칫! 무휼은 다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구미호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도전 어르신이 꿈꾸던 세상. 모두가 웃는 새나라."

도성이 있는 방향은 북쪽. 맑은 하늘이 앞으론 왠지 흐려질 것 같았지만, 지키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이 끓었다.

그렇다면 답은 한 가지였다.

"이번에는…… 지킨다."

그의 얼굴이 2년 만에 다시 굳세고 요염한 미소를 머금기 시작했다.

"오케이─!"

촬영장을 울리는 우렁찬 소리에 무휼을 꽉 누른 진호는 모두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드디어 무휼로서의 마지막 장면이 끝났다.

이제 이 멤버를 다시 만나려면 종방 파티나 시상식에 참석해야 할 터였다. 모두에게 일일이 인사하며 분장실로 돌아오니 레오가 홀로 앉아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진호 씨도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이름을 불러 주었다. 처음과 비교 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었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은 진호는 붙임 머리와 수염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분장팀이 한 명도 없었다.

레오는 그런 진호를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하실 말씀 있으세요?"

소스라치게 놀랐던 레오는 갈등을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음. 저…… 나는 강아지 키워요."

진호는 깜짝 놀랐다. 이건 장족의 발전 수준을 넘었다.

레오가 자신의 기사를 살핀 것이다.

천재 고양이 하양이는 단숨에 스타가 되었다.

강아지가 아닌 인간을 집사로 보는 도도함의 상징인 고양이. 그것도 새끼고양이가 명령대로 움직 인다.

게임은 그걸로 끝이었다.

커뮤니티 사이트와 인터넷 방송 갤러리가 하양이로 도배되어 버렸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올라갔다.

처음 얼굴이 밝혀진 어머니 나진희도 엄청난 주목을 받았다.

우월한 유전자. 덕분에 성형설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그래서?'

놀란 건 놀란 거고, 뜬금없는 말은 뜬금없는 말이었다.

그래도 맞장구를 쳐 주기로 했다.

"어? 아이돌 그룹은 숙소 생활을 한다고 하지 않나요?"

"난 독립해서…… 그런데 우리 초코가 너무 말을 안 들어요. 혹시 방법이 있을까요?"

"편하게 말씀하세요. 괜찮습니다."

"아, 그래도 될까?"

순간 얼굴이 밝아진 레오가 빠르게 말을 이어 갔다.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수다쟁이에 팔불출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표정이나 제스처에 미안함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그래도 용기 내 다가온 사람이니 상담해 주기로 했다.

"그게 문제예요, 선배님. 잘못했는데 단호하게 혼내지 않고 좀 혼 내다가 간식 주는 거. 직접 봐야 알 테지만, 아무래도 초코가 선배 님을 얕보게 된 것 같아요."

"지, 진짜? 어, 어쩌지?"

이미 늦었다. 강아지 초코는 벌써 레오를 밥 주는 사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방법은 두 가지예요. 교정 시설에 맡기든가 아님 초코랑 똑같은 인형을 준비해서 초코가 사고 칠 때마다 같이 그 앞에 끌고 가서 인형을 때리든가. 너도 잘못하면 이렇게 맞을 거라고."

레오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 그건 좀……."

"아니면 선배님이 일주일 정도 스케줄 포기하시고, 초코가 잘못할때마다 혼내셔야 해요. 사고치고 돌아서면 까먹는 게 동물인데, 선배님은 사고를 치고도 한참 후에 돌아와 야단을 치니 초코 입장에서도 반발심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조금만 참으면 간식을 주니까 참는 거죠."

당연히 힘든 말이었다.

톱급 아이돌인 그가 쉬는 날은 거의 없을 테니 말이다.

"호, 혹시……."

'아뇨. 안 됩니다.'

단호히 거부하고 싶으나 레오는 한참 선배였다.

"네가 좀 봐줄 수 있을까? 라온에서 밥 살게."

"죄송……."

잠깐, 라온요? 그 한국 첫 미술랭 쓰리스타?"

"응. 역시 알고 있구나?"

"하겠습니다. 할게요. 언제 가면 되죠?"

다른 나라에 있어도 찾아가는 게 아깝지 않다는 쓰리스타다. 걸어가도 아깝지 않을 원스타, 자동차를 타고 가도 아깝지 않을 투 스타와는 차원이 다른 레벨. 벌써 부터 입에 침이 고였다.

"진짜? 고마워! 날짜 정해서 연락해 줄게! 아, 연락처 좀."

"네. 010……."

진호는 연락처를 알려 주었고, 레오는 바쁜 일이 있는 건지 다급히 분장실을 빠져나갔다.

진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아차─!'

"하아. 진짜 머리 좋으시네."

맛있는 거에 껌뻑 죽는다는 정보는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약속은 약속이었다.

"뭐,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다시 분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러다 호들갑을 떨며 들어온 분장 팀에게 맡겼다.

5. 연예인 조련사

'리얼, 정글에 가다'에서 정글에 가자고 연락이 왔다.

오늘을 위해 7개월을 기다렸다고 하니, 거부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레오와의 약속은 미뤄지게 됐다.

'라온-!'

너무도 안타까웠지만, 이번 편도 흥미가 아주 당겼다.

생존 방식은 한자리에서 10일간의 생존.

그때 정글에 가서 본 그걸 따라 하는 듯싶었다.

생존지는 불명, 가지고 갈 수 있는 생존 도구는 일인당 하나씩이었고, 부족원들은 사전에 상의를 할 수 없다고 했다.

아직 멤버도 모르는지라 서정문에게 전화를 했는데,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묻지 마.'라는 말을 들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 편이 훨씬 더 재밌을 것 같았다.

생존 도구가 겹칠 수도 있고, 아예 뜬금없을 수도 있다.

"흠. 그럼 나는 이걸 가져가 볼까?"

물건을 집어 드는 진호의 입가엔 장난기가 가득 서려 있었다.

언제나 시끌벅적한 인천공항이 오늘따라 조금 더 시끄럽다.

"진호야!"

"족장님!"

둘은 서로 얼싸 안고 방방 뛰었다.

촬영팀과 성문 족장 때문에 몰려 있던 구경꾼들이 진호를 발견하고는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시청률 42퍼센트. 역대 드라마 시청률 순위 15위안에 들었고, 퓨전 사극으로서는 단연코 1위였다.

구경꾼이 더 모이기 시작했다.

"음?"

갑자기 놀란 정문이 진호의 몸을 여기저기 만졌다.

"으핫?"

"너 몸 엄청 좋아졌구나? 그때와는 차원이 다른데?"

"운동 열심히 했습니다."

제작진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렇지 않아도 저번 생존에서 날아다녔던 진호다.

이번 생존이 평소처럼 이동하고 하룻밤 자는 그런 생존이 아닌 게 다행이었다.

"족장님은 어떤 도구 가져오셨어요?"

"나? 난 먼저 보내 놨어. 가지고 못 타."

"혹시……."

진호가 귓속말을 하자 정문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한자리 생존이니까 족장님이라면 그러실 것 같았거든요."

"넌?"

"저도 먼저 보내 놨어요. 특수 제작한 거라서요."

진호는 다시 귓속말을 했고, 서정문은 크게 웃었다.

"너도 나랑 같은 걸 생각했구나?"

"족장님이 그 자격증을 소유하고 계시니까요."

제작진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지만, 무시했다.

그들은 한자리 생존이라는 말을 하면 안 되었다.

이윽고 출연자들이 한 명 두 명 도착했다.

* * *

간단한 오프닝 후 그들은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좌석에 앉은 출연자들은 서로 데면데면했다.

하지만 정글에서 구르다 보면 다 친해지기에 일단은 놔둔 진호는 서정문의 옆자리에 앉았다.

지금은 출연자들의 관계보다 이 쪽이 더 중요했다.

"오늘 싸우셨어요?"

서정문은 진호가 '크리미널 크라임'에서 사람 얼굴만 보고 지금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를 알아 첸다는 것을 떠올렸다.

지금은 그쪽 출연자들의 연기력이 너무 좋아져서 잘 읽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에휴. 일주일 후가 결혼기념일이거든."

"도착하면 바로 우편으로 선물을 보내세요. 도와 드릴게요."

"어? 그럼 고맙지. 그런데 태국어도 할 줄 알아?"

1차 경유지로 태국 방콕의 수완 나품 공항에 착륙한다.

한국에선 생존지까지 바로 가는 비행기가 없어서 태국에서 1박을 한 후 다음 날 새벽에 출발하기로 했다.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요리의 나라잖아요. 당연히 익혀 둬야죠."

"그러니까 지금 요리를 제대로 먹기 위해 태국어를 익혔다는 말이지?"

"정확히는 현지인에게 현지 맛집을 물어보고, 제 입에 맞으면 레시피를 알려 달라고 조르려고요."

서정문의 눈빛이 짜게 식었다. 한국대 수석 입학한 머리가 이상한 곳에서 낭비되고 있었다. 비행기는 그렇게 날아 방콕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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