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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86화 (8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1화

"……."

새끼고양이가 안내한 곳은 사람 한 명 겨우 지나갈 만큼 좁은 골목길 안이었다.

엉덩이를 깔고 앉은 새끼고양이가 응시하는 곳을 본 진호는 핸드폰을 들었다.

"응, 재준아. 박스 하나만 가져와라. 장갑하고. 빨리."

위치를 상세하게 문자로 보낸 진호는 땅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고양이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지는 얼마 안 된 듯하네."

날이 더운데도 아직 날파리가 꼬이지 않았다.

진호는 쪼그려 앉아 새끼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엄마를 구해 달라고 부른 거야?"

미야!

이윽고 재준이 도착했다.

"진호야!"

"이쪽!"

"무슨 일이야? 어?"

"고맙다."

넘겨받은 박스를 접은 진호는 장갑을 끼고 그 안에 어미 고양이 사체를 넣어 봉했다.

그때부터 새끼고양이는 마치 사람이 가족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동물도 가족이 죽으면 저렇게 슬퍼하는구나.'

신기하면서도 그 울음소리가 너무 슬펐다.

진호는 조심히 새끼고양이를 박스 위에 올린 후 박스를 들었다. 엎드린 새끼고양이는 계속 울었다.

"어, 진호야. 응?"

정 대리와 최 실장이 다가왔다.

"정 대리님. 반려동물 화장터와 납골당 좀 수배해 주세요. 그리고 얘 좀 부탁드려요."

"……어머."

최 실장이 바들바들 떠는 새끼고양이를 발견하고는 눈을 빛냈다. 사람 많은 곳을 오자 새끼고양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이 박스는 제 옆자리에 놔주시고요. 얘 엄마예요."

박스를 받아든 정 대리와 최 실장은 그제야 탄성을 터트렸다. 진호는 계속 우는 새끼고양이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곧 갈게. 그때까지 얌전히 있어."

미야! 미야!

새끼고양이가 진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버리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졌다.

[스킬 : 나는야, 자연의 왕자]가 그렇게 읽어 냈다.

'믿을 수 있는 존재가 나뿐이라서 그런가 보네.'

"진호 너 정말 간택당했나 보다."

보통 이런 상황을 두고 네티즌들은 간택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가 봐요."

언제나 보고 신기해하던 상황이 막상 닥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데려갈게. 형님 누님들이 나보고 병원에 데려가래."

"아, 병원. 고마워, 재준아. 부탁 할게."

새끼는 반항했지만, 성인 남성의 손아귀를 벗어나진 못했다.

그렇게 박스를 든 정 대리와 새끼고양이를 안은 재준이 떠나자 진호는 감독을 찾아갔다.

"세팅 끝났으면 촬영 시작해도 될까요, 감독님?"

"벌써? 좀 더 쉬어도 돼."

"아뇨, 지금이 아니면 좀 더 길어 질 것 같아서요."

"그럼 가야지."

배우들에겐 가끔 이런 순간이 있다.

연기의 신이 접신할 때가 말이다.

툭 건들기라도 하면 눈물을 쏟아 낼 것 같은 눈망울에 감독은 다급해졌다.

"자, 카메라 돌리고! 살수차!"

카메라 앞에 선 진호는 눈을 감은 채 감정을 고양시켰다.

이윽고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지고, 슬레이트가 쳐졌다.

따악!

진호는 하늘을 보며 눈을 떴다. 공허한 그 두 눈이 눈물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쏴아아아!

울컥!

당장이라도 달려가 안아주고 싶었다.

끌고가 술 한잔 사 주며 이야기를 들어 주고 싶었다.

'그냥 가만히 서서 울고 있을 뿐 인데…….'

실연의 아픔, 절망, 슬픔 그 모든 게 절절히 전해져 왔다.

너무도 위태로웠다.

'여기에 비너스의 이번 노래가 덧 씌워지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연기력이 대체 얼마나 좋아진 거야?"

가늠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장담할 수 있다. 저 우는 모습을 4 분 동안 틀어도 누구 한 명 눈을 떼지 못할 거란 걸 말이다.

'이별. 이것 외엔 더 쓰면 안돼.'

* * *

촬영은 예상외로 빨리 끝났다. 보통 뮤직비디오라 함은 기본이 10 시간인데, 고작 5시간 만에 촬영이 종료됐다. 이별 파트를 빗속에서 우는 것 외에 다른 신은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호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야옹이에게 고맙다고 해야겠네.'

박스에 담기는 어미를 향해 우는 것과 버리지 말라는 듯 울던 모습, 두 개가 감정의 기준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덕분에 수많은 영화, 드라마를 보며 참고한 이별의 감정이 폭발할 수 있었다.

"수고했어요. 여기 커피."

낮의 그 발라드 그룹 멤버가 다가왔다.

'집요해.'

"잘 마시겠습니다! 그럼 일이 있어서 먼저가 보겠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렇게 단호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 같았다.

꾸벅 고개를 숙인 진호는 당황해 굳은 그녀를 지나치며 크게 최 실장을 불렀다.

"최 실장님!"

"얼른 와! 늦었어!"

"예!"

다급히 차에 올라 차문을 닫으니, 창밖으로 들고 있던 캔 커피를 땅바닥에 내팽개치는 여성 발라드 그룹 멤버가 보였다.

최 실장이 코웃음을 쳤다.

"저거 아직도 연하 배우한테 껄떡대는 버릇 못 고쳤네. 서른이나 처먹었으면 정신 차릴 때도 됐는데. 물론 그 어떤 여자라도 그 우는 모습을 보면 반할 수밖에 없겠지만…… 쯧쯧쯧."

"하하하."

어색하게 웃은 진호는 정 대리를 보았다.

"네. 재준이 있는 병원으로가 주세요. 아, 화장터 수배됐어요?"

"어, 수배됐어. 그 길냥이 데리고 가면 될 거야. 출발할게."

"네."

진호는 옆자리에 놓인 박스를 쓸어내렸다.

'아, 엄마한테 좀 늦는다고 말해야겠다.'

* * *

서울 외곽의 작은 반려동물 납골당. 향냄새가 은은히 퍼져 간다. 마지막 절을 마치며 어미 들고양이의 명복을 빈 진호는 그제야 유골함을 납골당에 안치시켰다.

그 순간 몸속이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몸속으로 무언가가 들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얻었다.'

옆에 있던 재준이 혀를 찼다.

"하이구. 아주 지랄도 정성이다."

"앞으로 우리 집 가족이 될 존재의 엄마잖아. 아무리 동물이라도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처음엔 스킬을 얻기 위해서 한 일이지만, 계속 제를 지내다 보니 그런 마음이 강해졌다.

재준은 입을 꾹 다물었다.

진심 가득한 선한 눈빛을 보자 왠지 자신이 때 묻은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왜?"

"아냐. 다 했으면, 가자! 배고프다!"

진호는 먼저 나가는 재준을 보며 고개를 모로 기울이다가 이내 발을 했다.

동물병원으로 향하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다.

얼른 스킬을 시험해 보고 싶어 몸을 들썩이던 진호는 동물 병원에 도착해 차를 주차시키자마자 다급히 내렸다.

"같이 가, 인마!"

진호는 재준의 부름을 무시하며 병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이었다.

싸아.

"응?"

"얘가 왜 갑자기 조용해져?"

병원 안이 조용해졌다.

모든 반려동물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들을 안은 보호자들이나 간호사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방금 까지만 해도 굉장히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보호자들은 자체 발광하는 미모에 멍해졌다가 이내 웃음을 크게 터트렸다.

"푸하하하핫! 아이고. 똘똘아, 저 오빠가 그렇게 잘생겼어?"

"인마, 너 수컷이야. 짜식이 잘생긴 건 알아 가지고."

그 말이 기폭제가 된 듯 강아지들이 꼬리를 맹렬하게 흔들었다. 진호는 속으로 씩 웃었다.

'오케이! 효과 좋고.'

"넌 하다하다 동물들까지 반하게 하냐?"

"그게 내 매력이지."

"그 뭐냐. 천 년의 노래의 무이 아니야?"

"안녕하세요. 배우 이진호입니다."

"옴메! 엄마야!"

마음이 급했지만, 깜짝 놀라 다가오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사인을 해 줄 수밖에 없었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에 들어가니 말끔하게 변한 새끼고양이가 책상 위에 올라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고양이는 순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가 이내 길게 울며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수의사 손에 붙들려 성공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진호는 발버둥 치는 고양이를 향해 엄하게 말했다.

"안돼. 기다려."

"미양?"

"앉아."

풀썩. 새끼고양이가 정말로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의사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같이 따라 들어온 재준도 놀랐고, 채팅창도 난리가 났다.

스킬의 효능을 알고 있는 진호만이 태연하게 수의사의 맞은편에 앉으며 양손을 내밀 뿐이었다.

"이리 와."

"미야!"

진호는 도도도 달려오는 고양이를 조심히 안아 들었다.

품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는 왜 인지 가슴을 따뜻하게 했다.

그동안 많이 불안했는지 고양이는 계속 품을 파고들었다.

"우리 하양이는 이제 괜찮나요?"

처음 보자마자 떠올랐던 이름인데, 지금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 예. 전에 말씀드린 대로 기생충과 피부병, 영양실조가 좀 있긴 했지만, 모두 치료된 상태라서 지금은 아주 건강합니다."

"그럼 이제 데려가도 되나요?"

"그럼요. 아, 가시기 전에 사진 한 번만 더."

"당연히 그래야죠."

새끼고양이도 함께 사진을 찍은 진호는 병원에서 여러 물품을 산뒤 다시 차로 향했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허벅지 위에 새끼고양이를 올려 두었다.

"야, 이리 줘. 사고 나."

"괜찮아. 가만히 있을 거니까. 그렇지?"

대답하듯 한 번 운 새끼고양이가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다.

"넌 이제 동물도 조련하냐?"

"우리 하양이가 똑똑한 것뿐이야."

"그래 봤자 동물이지! 길냥이가 똑똑하면 얼마나 똑똑하다고 가르치지도 않은 명령을 알아들어?"

원래 이 스킬 효과가 그렇다.

모든 동물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 동시에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동물들은 마치 자신들이 쓰는 언어인 것처럼 알아듣고, 진호 자신도 알아듣는다. 아니 느낀다. 일종의 텔레파시 같은 거다.

이 스킬의 스토리 주인공은 이걸 통해 세계적인 동물 사육사가 된다. 제아무리 희귀하고 까칠한 짐승도 주인공을 만나게 되면, 아무에게나 꼬리를 흔드는 시골 강아지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동물 한정인 페로몬 덩어리.'

진호는 모른 척 미간을 좁혔다.

"너 지금 우리 하양이가 골목 출신이라고 무시하냐? 전국 길냥이들 무시해?"

"야, 내가 언제 그랬어! 그보다 이름이 하양이냐! 너 진짜 네이밍 센스 구려!"

슬쩍 화제를 돌리려는 듯 보였지만, 어림없었다.

"닥쳐. 우리 하양이는 다 알아듣는 천재 고양이야."

"와, 씨! 와아-!"

재준은 억울해하며 방방 뛰었지만, 그렇다고 사정을 알려 줄 수는 없었다.

* * *

띠리릭!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간 진호는 새끼고양이, 하양이를 내려놓았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열은 경계심을 보이던 하양이가 고개를 들었다. 안 방에서 어머니가 나오고 계셨다.

"걔야?"

미리 허락을 받아 놓아서 그런지 놀라지는 않았다.

"응. 예쁘지? 하양아."

미야?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는 모습이 왜 그리 예쁜지 몰랐다.

"이제부터 저분이 엄마야. 엄마한테 가 봐."

잠시 이해가 안 된 듯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하양이가 이내 발을 뗐다. 마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모습에 나진희는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어머."

미야아!

그녀의 발치 앞에 멈춰 선 하양이가 울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주저앉은 나진희는 하양이를 꼭 안으며 진호를 보았다.

"얘, 왜 이렇게 사랑스럽니?"

"겨우 그 정도로 놀라면 안 될 걸?"

"응?"

신발을 벗고 들어온 진호는 그녀에게서 하양이를 뺏어 바닥에 내려놓고 '앉아, 엎드려, 누워, 손' 같은 걸 시켰다.

하양이는 곧잘 따라 했다.

"얘, 얘 뭐니? 왜 이렇게 똑똑해? 왜 이렇게 살가워?"

"앞으로 하양이 때문에 골치 아플 일은 없을 거야. 배변 훈련도 한 번이면 돼. 내가 훈련시켜 놓을게. 아, 엄마도 해 볼래?"

"내, 내가 해도 알아들어?"

"그럼."

이미 명령어는 알아먹은 상태다. 타인도 충분히 가능하다.

물론 타인이 명령을 내릴 때는 하양이가 따를 마음이 있어야 가능하지만 말이다.

"아, 앉아?"

풀썩! 엉덩이를 깔고 앉은 새하얀 털 뭉치는 정말 치명적이었다.

"어머, 어머! 어떡해!"

금방이라도 끌어안고 튕굴 분위기에 진호는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엄마, 나 밥."

"시끄러워. 지금 밥이 문제니? 알아서 차려 먹어!"

'응?'

"……재준이도 왔는데."

고개를 든 어머니 나진희의 얼굴이 뚱하다.

"왔니?"

"네, 어머님. 근데 지금 방송중……."

"그래서?"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역시 어머니 나진희 다웠다. 카메라 앞인데도 당당했다.

"아, 아뇨. 저희가 차려 먹는다고요. 진호가 요리 잘 하잖아요."

"정신 사나우니까 들어오기나 해. 아들은 옷 갈아입고 생선 튀겨. 하양이 먹이게."

"……응."

효과가 좋긴 좋은데,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입맛이 썼다.

몸을 일으킨 진호는 방으로 향하다 멈췄다.

재준이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

"뭐 해?"

"……야."

"왜?"

재준은 마른침을 삼켰다.

"……계속 하양이 조련해. 접속자 15만 돌파했어. 어머니랑 하양이만 찾아."

잠시 후 뜻을 알아들은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킬 : 페로페로몬]

[앉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거부할 수 없었어요. -시베리아 호랑이가 한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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