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10화
* * *
'크리미널 크라임 시즌4. 특집, 진호를 속여라.'
편은 엄청난 이슈를 끌었다. 진호가 추리의 끝판왕이 어떤 건지 보여 줬기 때문이다. 외모와 진짜 두뇌를 갖춘 완벽한 남자. 완벽남이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덕분에 들어오는 작품과 광고의 종류가 다양해졌고, 미튜브 구독자 수도 올랐다.
가장 좋은 건 또 한 번 몸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 * *
"끄어!"
이른 아침, 콧속을 파고드는 맛있는 냄새에 눈을 뜬 진호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버지 이형만은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고, 어머니는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메인은 뚝배기 된장찌개와 나진희표 특급 계란말이였다.
"계란말이!"
진호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고, 어머니 나진희의 국자도 뒤따랐다. 따악! 머리에서 불똥이 튀었다.
"아악!"
"아빠도 안 드셨는데, 어딜. 씻고 와."
"……네에."
씻고 나온 진호는 아버지 이형만 옆에 앉아 다른 신문을 읽었다. 진호가 리셋 라이프를 얻어 변한 후 반복되기 시작한 아침 일상이다.
곧 세 가족의 아침식사가 시작 됐다.
"드라마는 좀 어때?"
"이제 두 화 분량밖에 안 남았어요."
"다음 작품은 정했고?"
"아뇨, 아직. 장영진 감독님이 드라마 하나 찍자고 말하시는데, 일단은 좀 쉬려고요. 자격증도 좀 따고."
어머니 나진희의 낯빛도 밝아졌다.
"그래, 잘 생각했다. 젊다고 무리하게 달렸다가는 나중에 고달파져. 그런데 무슨 자격증?"
"외국어죠. 그보다 아버지는 어떠세요? 임원은 아직 생각 없으세요?"
"됐다. 이대로 있다가 정년퇴직하고, 아들이 벌어 오는 돈 쓰면서 편히 살련다."
"흐흐. 좋은 곳은 같이 가요. 엄마도 함께."
"너 그 말 안 했으면 아웃이었어."
"그러니까 말한 거지."
아침식사는 언제나 그렇듯 화기애애했다.
곧 아버지 이형만이 출근을 하자 진호도 회사 갈 준비를 했다.
"오늘은 언제 와? 또 외박해?"
"음?"
어머니 나진희가 드레스룸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대답 안 하지?"
"오늘은 촬영장 안 가니까 저녁 전에는 스케줄이 끝날 거예요."
"그으래?"
"엉. 그러니까 해물탕. 시원하게."
"해물탕? 알았어. 조심히 다녀 와!"
나가는 어머니를 보며 한숨을 내쉰 진호는 옷을 마저 갈아입었다. 내려가니 정 대리가 와 있었다.
"이야! 오늘도 빛이 나는구나, 우리 이 배우! 우리 이 셜록!"
'크리미널 크라임' 특집 편 이후 셜록이라 불리는 중이었다.
"분기 보너스 들어왔어요?"
"웬만하면 표정 읽지 말자. 프라이버시는 지켜 줘."
"찍은 건데."
겸연쩍은 표정을 지은 정 대리는 차를 출발시켰다.
회사에 도착하니 재준이 사무실 소파에 앉아 직원용 간식을 작살 내고 있었다. 계약 후 연습실을 개조해 그의 인터넷 방송용 공간으로 꾸몄다. 방음 장치가 있어서 방해되지는 않았다. 곧 실력 좋은 편집자도 붙을 예정이었다.
"맛있냐?"
"엉. 앞으론 많이 만들어 놔. 내가 방송에서 홍보해 줄게."
"꺼져. 너 먹일 건 없어."
직원들은 아침부터 훈훈한 사무실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재준의 옆에 앉은 진호는 입을 열었다.
"야. 고양이가 좋겠냐, 강아지가 좋겠냐?"
"앞뒤, 인마!"
진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엄마가 외로워해."
"……어머님이?"
재준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진호의 어머니는 화통함 그 자체 였으니 말이다.
"내가 바빠져서 외박하거나 늦게 들어가서 그런가 봐."
"그건 너 학창 시절에도 마찬가지였잖아."
"그건 맞지만, 요새 나 때문에 모임에 잘 참석하지 못하거든."
아들이 유명하고 돈 많이 버니, 온갖 제의를 받는 것 같았다.
"거기다 이제 40대 중반이시고."
"아, 벌써 그렇게 되셨네. 그러면 아무래도 강아지가 좋지."
"그렇겠지? 강아지는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으니까."
'난 고양이가 더 좋지만.'
정확히는 강아지같이 애교 많은 고양이, 개냥이를 좋아한다.
찌직찌직! 인쇄물이 출력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장 실장이 다가왔다.
"머리 좋은 견종 순위와 가격입니다. 참고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장 실장님."
"그럼."
장 실장이 자리로 돌아가자 재준이 옆구리를 툭 쳤다.
"너 진짜 대우 받는다."
"그래서 만날 고맙지. 같이 고르자."
"오키."
인쇄물 안에는 생전 처음 들어본 견종들도 있었다.
무려 1억이 넘는 강아지도 있어서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흠. 엄마 고생하지 않게 소형견이면 좋을 텐데…….'
강아지에 대해 잘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야, 왜 크기가 작을수록 멍청하냐?"
"뇌가 작잖아."
"올. 한국대."
똑같은 수준의 둘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흠. 스킬을 얻을까?'
동물 조련 관련 스킬이 있다.
3일 안에 끝낼 수 있는데, 그 효능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이들에겐 천금을 주고도 사고 싶을 정도로 좋다.
"배변 훈련을 시키려면 최고일 듯싶고."
변기 위에 올라가 배변한 후 물 까지 내리는 애완동물.
순간 이거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응? 뭐라고?"
"아냐. 스케줄이나 가자."
오늘 스케줄은 뮤직비디오 촬영인데, 재준이 따라와 촬영과 토크를 해 주기로 했다. 자기 인방도 하면서 말이다.
엘 콘도르 파사 기타 커버곡이 대박을 치면서 덩달아 다른 영상들도 조회수가 껑충 뛰었는데, 이 흐름을 타 진호의 일상이란 카테고리를 늘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정 대리님에게 유기견 유기묘 화장하는 곳 좀 알아봐 달라고 해야겠다.'
스킬을 얻는 방법은 '죽은 동물 삼일제 지내기', 그 외의 해금 조건은 없었다.
* * *
뿌연 담배 연기가 경쾌히 흩어진다.
"오케이 컷!"
"에퉤퉤. 으엑."
난생처음 피워 보는 담배는 정말 최악이었다.
요리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코와 혀가 망가지는 기분이었다.
"이 배우, 괜찮아? 여기 구강 세정제."
"감사합니다."
가글을 하고 뱉어 낸 진호는 모니터로 향했다.
오늘 촬영은 모노드라마 방식으로 만남-연애-이별-후회를 표현 해야 한다. 방금 전은 데이트 도중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었다.
어느 여성 발라드 그룹의 뮤직비디오인데, 노래가 좋아서 수락했던 진호로서는 곤욕을 치르는 중이었다.
"캬. 역시 배우는 표현력이 다르네. 좀 생긴 모델이나 신인 배우들과 아주 천지 차이야. 이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 봐라."
예전, 이설아의 좋은 하루 뮤직비디오 촬영 때 감독님이다. 그때 좋게 봐서 그런지 칭찬 일색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보다 이 부분 다시 가도 될까요?"
"아니, 왜?"
"정말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을까 싶어서요."
"……아, 그건 생각 못했네. 흠, 그러면 콘티를 갈아엎어야 하는데."
식겁할 소리였다. 그렇게 되면 처음부터 다시 찍어야 한다.
"연애에서만 빼는 게 어떨까요?"
"오! 그거 그럴듯하다. 이 배우, 완전 연애 고수야?"
'이론만요.'
불리한 내용을 감춘 진호는 감독의 열렬한 지지하에 다시 촬영에 들어갔다. 이 모습은 모두 재준이 촬영하고 있었다.
"자! 잠시 쉬었다 갑시다!"
"푸후우."
진호가 배우 의자에 앉아 숨을 길게 내뱉자 정 대리와 최 실장이 달려와 진호를 케어했다.
재준이 혀를 내둘렀다.
"너 진짜 빡세게 일한다?"
"그러니까 너보다 많이 벌지."
"존니 맞는 말만 하네."
재준이 켜 놓은 핸드폰 속 채팅 창이 시끌벅적하다.
어차피 거리가 멀게 해 뮤직비디오 내용은 잘 볼 수 없도록 만들었기에 감독도 허락했다.
가만히 지켜보니 진호 자신과 재준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들끼리 잘 놀고 있었다. 가끔 수학 공식이 올라오기도 했다.
'여기서 공부를 해?'
그러다 렌즈를 응시하는 진호를 보곤 진하, 진호 하이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람이 8만 명을 넘겼다.
팬클럽 회원수가 '크리미널 크라임'의 영향으로 현재 17만 명까지 늘어난 상태다. 골 빈 연예인이 아니라고 부모님이 허락한 합법적 팬들. 여느 아이돌 뒤지지 않는 숫자였다.
"역시 내 팬들. 단결력 최고야. 후원도 안 하고 있죠?"
'네, 응'이란 채팅들이 빠르게 올라왔다.
"아나, 이 조련사 새끼."
"만약 이분들이 100원씩 후원하면 어쩔래?"
"진호 형님!"
"응, 하지 마. 그거 다 기부할 거야."
"치사하다!"
"내 팬은 내가 지켜, 인마."
'ㅋㅋㅋ'로 도배됐다.
그렇게 재준과 아옹다옹하며 시간을 보낸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이별. 끄응.'
연애야 여태껏 보아 온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흉내 낼 수 있지만, 이별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적이 없어서 감정을 잡기가 조금 난해 했다.
감독이 요구하는 감정선이 격렬 해서 더욱 그랬다.
메소드를 하려고 해도 스스로가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순간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떠올랐지만, 그건 너무 어릴 적이었다. 딱히 예뻐해 주시지도 않았다.
'끄으응.'
"저 잠시 걷고 올게요. 넌 그냥 거기 있어 줘."
정 대리와 최 실장도 따라 일어서려는 재준을 말렸다.
"어머, 안녕하세요."
오늘 촬영하는 뮤직비디오의 주인인 여성 발라드 그룹의 멤버였다. 보조개가 인상적이었다.
"아, 네.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어머나, 내가 안 반가우신가 보다."
'대체 뭔 욕심이 이리 덕지덕지 붙어 있는지.'
사심이 있어온 게 빤히 보였다. 진호는 냉큼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감정을 잡다 보니 반응하지 못했습니다!"
"……아, 아니에요. 배우인데, 당연히 그럴 수 있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래가 좋을 뿐이지 외모가 스타일인 건 아니었다.
"그럼 감정을 다시 잡으려고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어? 어, 그래요. 어휴, 내가 다 미안하네."
"감사합니다! 재준아! 너가 팬이라고 노래 부르시던 분 오셨어!"
"비, 비너스! 오오오오오! 형님 누님들 잠시만요!"
여성 가수를 재준에게 토스한 진호는 다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인적 드문 골목길이 마음을 좀 쓸쓸하게 만들었다.
"끙, 쓸쓸함이 아닌데."
후회에나 어울리는 감정이었다.
괜스레 담배가 떠올랐다.
힘들어 찾는다는 말이 떠올라서다.
"아냐. 그럼 엄마한테 맞아 죽어."
아버지도 10년 만에 야구 배트를 꺼내 들지 몰랐다.
고개를 저은 진호는 다시 터벅터벅 걷다가 멈춰 섰다.
누구도 없고, 아무런 소음도 없어서 집중하기 편할 것 같았다.
어느 건물 입구에 앉은 진호는 하늘을 보며 이별을 다룬 영화나 장면을 떠올려 갔다.
'격렬한 이별 장면들이…….'
스륵.
"응?"
무언가 발목을 스치기에 고개를 내렸던 진호는 가랑이 사이에 있는 하얗고 더러운 털 뭉치를 보곤 살짝 놀랐다.
미야옹.
"새끼 길냥이네."
보통 들고양이는 경계심이 강한데, 아무래도 [스킬 : 나는야, 자연의 왕자] 때문에 편안한 느낌을 받고 다가온 듯싶었다.
'아님 덩치 큰 동족이라고 생각하든가.'
동물도 자연의 일부였다.
그것만 믿고 맹수에게 접근했다 가는 한입거리가 될 테지만 말이다.
쿡쿡 웃은 진호는 고양이의 이마를 조심스레 쓸었다.
고르릉. 고르릉.
'여기까지.'
사람 냄새가 배면 어미 고양이가 다가오지 않는다는 말이 떠올랐다. 데려갈 것도 아닌데, 그런 민폐를 끼칠 순 없었다.
진호는 손을 저었다.
"가. 엄마가 찾고 있겠다."
미야!
진호의 손가락을 살짝 깨문 고양이가 길을 떠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걷다 멈춘 고양이가 진호를 보며 울었다.
미야앙!
"가, 인마. 가."
진호는 다시 손을 저었다.
몸을 돌린 고양이는 다시 걷다가 멈춰 진호를 보았다.
미야아!
"……설마 따라오라는 거냐?"
마치 그렇다는 듯 우는 소리에 시계를 본 진호는 몸을 일으켰다. 카메라가 세팅될 때까지 10분 남았다.
새끼고양이를 따라다니며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뜻 했다.
"먹이를 사 달라는 걸까나."
진호는 카드가 든 핸드폰을 확인 하고 뒤를 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