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9화
장 비서(장영진)와 어깨동무를 한 선임의 얼굴이 흐릿한 사진. 무척 거슬렸다.
"흐음."
"어라? 핸드폰이네?"
뒤따라온 김동민이 벽장 속에 걸린 옷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이건 또 뭐야? 진호야, 이것 좀 봐 봐!"
"뭔데요?"
방금 전의 거슬림이 싹 사라지는 내용의 문자가 있었다.
진호는 다급히 장 비서(장영진)를 찾았다.
"장 비서 씨! 이 최 회장과의 대화는 뭔가요! 2억은 왜 빌리려고 하셨어요!"
장 비서(장영진)에게도 혐의점이 생겼다.
"내가 그분을 곁에서 뫼신 지 무려 8년이잖습니까. 그래서 날 얼마나 생각하는지 한번 떠봤습니다. 고아 출신에다가 원한까지 가지고 있는 김 남편을 손녀사위로 맞을 정도면 나는 더 대우해 주겠거니 했습니다. 하지만…… 보시다시피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사직서를 썼고요."
장 비서(장영진)가 벽장 속에 걸린 옷에서 사직서를 꺼냈다.
'에라이.'
진호는 자책했다.
사직서를 먼저 발견했다면 상황을 조금 더 재밌게 꾸밀 수 있었는데 너무 쉽게 끝나 버렸다.
예능 특화 개그맨 김동민도 너무 아쉬워하고 있었다.
"PD님! 우리 이거 끊어 갈 수 있어요?"
PD도 아쉬워했지만, 머리 위로 엑스를 그렸다.
그렇게 장비서(장영진)는 동기는 있지만, 살해할 정도까지는 아닌 걸로 판명되었다.
사람들은 흩어졌고, 진호는 침대에 앉아 머리를 신경질 적으로 긁고 있는 장동민을 위로했다.
"괜찮아요. 형 때문이 아니에요. 제가 설레발 쳤어요."
"그래도……에휴. 이제 어디 남았어?"
"전 김 남편 객실하고 최 손녀 객실, 그리고 형 객실요. 형은요?"
"난 김 남편 객실. 같이 갈래?"
"흠. 그러죠, 뭐."
둘은 김 승무원(김동민)이 쉰 직원 객실 맞은편에 만들어진 김 남편의 객실을 찾았다.
샅샅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종료 시각까지 10분 전. 종료 시각까지 10분 전.
마음을 다급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희한하네. 왜 아무것도 없지?"
"그러게요."
'크리미널 크라임'에서 의미 없는 장소는 없다.
"침대도 살펴보셨죠?"
"응. 근데 없어."
"……와, 진짜 제작진."
김 남편(김재훈)이 잠시 머문 방. 장소 자체가 교란용이었다. 악독해도 너무 악독했다.
"후. 최 손녀 객실로 가죠."
둘은 장비서 객실 바로 맞은편에 만들어진 최 손녀 객실을 찾았다.
한차례 사람들이 휩쓸고 간 듯 최 손녀 객실은 어질러져 있었다. 침대엔 앨범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고, 화장대는 어질러져 있었다.
'응? 저게 왜 저기 있어?'
화장대를 굴러다니는 화장품 사이에 놓인 TS-1 이라 적힌 약병. 진호는 뒤따라 들어온 김동민을 보았다.
"형. 여기 살폈다고 했죠? 저게 뭔지 알아요?"
"두통약이라던데?"
"누구 거요?"
"김 남편. 놓고 갔대."
"……아, 그래요?"
'이상해.'
갑자기 김동민이 거슬리기 시작 했다.
진호는 일단 모른 척하며 처음부터 거슬렸던 앨범을 살폈다.
'진짜 윤지 누나 어릴 적 사진인가 보네.'
시청자, 정확히는 팬들이 좋아할 그런 사진이 몇 장 있었다. 따라다니는 카메라가 집요하게 찍었다.
나머지는 사고로 죽었다던 최 아들, 김 며느리와 같이 찍은 것처럼 보이는 조잡한 합성 사진이었다.
'잉?'
"이것 뭐지?"
앨범 속 가장 낡아 얼굴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가족사진 속 부부의 옷은 그리 비싼 브랜드가 아니었다. 손목시계도 마찬가지였다.
녹화 시작부터 계속 신경을 건드렸던 위화감이 갑자기 커졌다. 앨범을 가득 채운 10살 무렵의 최 손녀(최윤지)는 참 귀엽고 예뻤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와 동시에 하나의 가설이 머릿 속에 세워졌다.
'허? 뭐야, 이건?'
너무도 말이 안 되는 추론이었다. 그러나 아직 모자랐다. 결정적인 단서가 하나 부족했다.
진호는 슬그미니 일어나 벽장을 살폈다.
그녀의 벽장 안에도 수많은 명품들이 가득했다.
진호는 가장 안쪽에 숨겨진 이질적인 존재를 꺼내 들었다.
남성용 핸드백처럼 생긴 커다란 백이었다.
지이익!
'……역시.'
놀라는 카메라맨에게 조용히 하라 신호 준 진호는 그걸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놓은 후 김동민을 보았다.
"형, 최 손녀 취미가 요리잖아요."
"그랬지."
"그러면 나이프 백 같은 거 발견 못하셨어요?"
"나이프 백?"
"네. 요리에 능숙한 사람은 보통 자기 칼을 가지고 다니거든요. 대부분 천이 돌돌 말려 있거나 사각 금속제 케이스로요."
테니스 동호회 회뭔이 테니스 라켓이 든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런 건 못 봤는데? 그리고 야, 어느 누가 결혼식인데 그런 걸 가지고 다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진호는 흔들리던 그의 눈을 놓치지 않았다.
'……뭐야. 그렇게 된 거야?'
진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김동민이 계속 따라다닌 이유가 있었다.
이건 배신이었다. 그것도 아주 악질이었다.
투덜거린 김동민은 다시 여기저기 뒤지기 시작했고, 진호는 그런 그를 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이러니 퍼즐이 안 맞춰졌지.'
기준이 되는 조각이 처음부터 잘못 맞춰져 있었다.
"저 마지막으로 형 방 좀 살필게요."
"어, 그래."
진호는 김 승무원(김동민)의 객실을 찾았다.
여기도 누가 휩쓸고 간 듯 어지럽혀져 있었고, 미대생답게 놓인 이젤 위엔 스케치북이 있었다. 그리고 한 뭉텅이의 편지가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남은 시간은 1분여. 진호는 얼른 그중 한 장을 빼 펼쳤다.
대학 졸업까지 학비와 생활비를 후원해 준 후원가에게 쓴 일기 같은 감사 편지였다.
진호는 입가를 비틀었다.
하지만 이건 그가 찾고자 했던 결정적인 단서가 아니었다.
진호는 마지막으로 스케치북을 열어 보았다.
그가 갑판에서 그렸다던 최 손녀 김 남편의 목탄화가 있었다.
"……빙고."
마지막 퍼즐이 맞춰졌다.
오늘 나온 단서 중 버릴 만한 단서는 하나도 없었다.
그와 함께 2차 조사 종료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다.
* * *
범인 투표시간이 됐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박지연은 진호의 멱살을 잡기 위해 달려들었고, 진호는 그녀를 피해 투표함이 있는 브리핑실로 달려갔다. 씨근거리던 박지연이 김동민을 보며 옅게 웃었다.
김동민도 마찬가지였다.
"속았을까?"
"속았어. 오늘 건 셜록 할애비가 와도 못 풀어. 내가 누구야?"
"그렇겠지? 아, 드디어 진호를 속여 보는구나. 오늘 걸린 상금이 대체 얼마야?"
"김 PD! 상금 준비했지?"
둘의 목소리가 컸지만, 다른 이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박지연, 김동민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랬다. 오늘은 출연자들 전체가 진호를 속이는 편이었다.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PD와 제작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다 진호가 나오자 모두 재빨리 표정을 바꿨다.
이윽고 투표가 끝나자 사람들이 감옥 옆에 섰다.
"누구 뽑았어?"
김동민이 물어 오자 진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에이. 그러지 말고 알려 줘 봐."
"곧 알게 되실 거예요."
때마침 방송 종료를 알리는 성우의 목소리가 울리며 개표가 시작 됐다.
-김동민 1표, 박지연 1표, 장영진 1표, 최윤지 1표, 김재훈 1표!
출연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가 투표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투표를 기권하신 분은 탐정 이진호 씨입니다! 사람들이 놀라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짝다리를 짚으며 한껏 불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니,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한마음 한뜻으로 감쪽같이 속일 수 있어요? 모두 공범이잖아요. 윤지 누나 앨범과 경구용 항암제 TS-1, 감사 편지와 목탄화가 아니었다면 정말 속았겠네!"
사람들이 입을 떡 벌렸다.
"언제 알아차렸냐고요? TS-1을 봤을 때요. 곧 죽을 사람이 원한까지 가지고 있는데, 훗날의 돈을 노린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이상하다 느낀 건 장 비서 씨 방에 걸린 탁상용 액자 사진. 선임이 차고 있던 금시계와 박 부인의 낡은 핸드백 속에서 발견한 금시계가 똑같더라고요. 윤지 누나 앨범 속 이상한 사진의 남성이 낀 금시계도."
"……헐."
"아니 항암제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병원에서 의약품 창고 관리하면서 외웠죠.'
진호는 그걸 꾹 숨겼다.
"그리고 가장 어이없던 건 여기 누구도 최 손녀 객실에서 나이프 백을 발견하지 못한 거죠. 스케치 북 속 목탄화도."
마치 서로가 서로를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이게 말이 돼요? 정말 다 나빴어."
"……설마 살해 수법도 알아차린 거야?"
"범행이 벌어진 시각은 대략 6시30분 이후. 장비서가 연회홀에서 거의 모든 승무원들을 모아 놓았을 때, 김 남편이 최 회장을 죽인다. 김 승무원은 망을 보다가 최 회장과 김 남편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자 달려와 최 회장을 잡았다. 하지만 최 회장이 초인적으로 뿌리쳤고, 그 후 문은 닫혔습니다. 이후 김 승무원은 원래대로 떨어진 피 청소. 최 손녀는 살해도구 준비. 나이프 백에서 칼 한 자루가 없었죠. 그리고 마지막 박 부인은…… 이 모든 걸 주도해 계획한 진범 중 진범. 자살한 김 사장의 부인. 아니에요?"
박지연이 어이없다는 듯 가슴에 찬 명찰을 뜯었다.
박 부인 이름 안에는 박 사모라는 이름이 있었다.
"윤지 누나는 자살한 김 사장의 딸. 아마 자살한 김 사장과 인연이 있었을 최 아들 김 며느리가 입양 했겠죠. 이유도 있으니까."
최 손녀가 김 차녀로 바뀌었고, 김 남편은 김 장남으로 바뀌었다.
"장비서 씨는 자살한 김 사장에게 군대에서 큰 도움을 받았을 거고, 김 승무원은 생활비 및 학비 지원. 마지막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겉돌았던 빵 조각. 목탄화를 수정 할 땐 지우개보다 빵이 더 좋죠. 방에서 두 사람의 그림을 수정하던 김 승무원은 시간이 되자 나왔다가 최 회장과 몸싸움을 하며 최 회장 몸에 묻히게 됐을 겁니다. 꽃은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교란용. 아니에요?"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전부 다 알아차렸다.
"와…… 이걸 어떻게 알아차려?"
"아오! 이번엔 속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은 발을 동동굴렀지만, 그럴수록 진호의 표정은 나빠졌다.
"진짜 다 나빴어. 그중에 형이 제일 나빠요. 내가 진실에 접근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방해한! 진짜 콱."
식겁한 김동민이 진호의 입을 막았다.
"살려 주라! 사랑한다, 진호야!"
입이 막힌 진호는 다른 출연자들을 눈으로 훑었다.
당신들 비밀을 다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제, 제작진이 속이자고 했어!"
"그래! 힘없는 연예인이 어떻게 PD의 뜻을 거스르겠니!"
"사랑해!"
진호는 제작진을 보았다.
"아, 아니 그동안 진호 씨가 너무 잘하셔서 어디까지 할 수 있나…… 사랑해요!"
제작진도 황급히 머리 위로 하트를 그렸다.
김동민의 손을 떼 낸 진호는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됐고. 상금 주세요."
그렇게 '특집, 진호를 속여라' 편은 진호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4. 간택을 받다
상금도 받고 승리도 했지만,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방송국을 나오던 진호는 재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빙송은 열심히 하고 계셔?"
-야. 너희 회사 얼마나 좋냐?
"뜬금없이?"
-잔말 말고 대답.
"……흠. HU를 말하는 거야, 아니면 팀 이진호를 말하는 거야?"
-둘다.
"모델 입장에서는 둘 다 좋지. 하지만 너 같은 스트리머는 글쎄다. 일단 그쪽 분야에 베테랑인 사람이 없어."
-다른 쪽은 있고?
"팀 이진호는. 거의 모두 가수와 배우 기획사에서 실장 및 팀장이라 불리던 분들이니까. 코디나 매니저만이 아니라 회사 중추에서 계셨던. 이번에 스태프를 더 늘리기로 했고."
-그렇단 말이지…….
친구의 목소리가 제법 심각했다.
진호는 피식 웃으며 농담을 꺼냈다.
"왜? 다미앙 씨가 너보고 같이하재?"
-어.
"크크. 그래, 아니…… 뭐?"
진호는 순간 멍해졌다.
-나랑 하재. 여러 말했지만, 다른 사람 배불려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내가 낫겠대. 너 오늘 김동민 씨랑 인방 찍었다며? 거기서 후원 제법 터졌다더라. 나도 너 나을 때 마다 평소보다 후원금이 오십 배 이상 쏟아졌고. 그것 때문에 고민 하고 있었단다.
"어……."
예측조차 못했던 일이라 뇌가 잠시 활동을 멈추었다.
* * *
다미앙의 생각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BJ, 스트리머, 크리에이터. 잘나 가는 사람은 한 달에 1억이 넘는 수익을 올린다.
진호 자신도 미튜브에 개설한 채널로 인해 제법 소득을 올리고 있다. 달에 거의 사회 초년생 연봉 수준이다.
이렇게 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정확히는 [스킬 : 나는야 자연의 왕자]를 얻고 한국에 돌아와 찍은 '사이먼&가펑클의 엘 콘도르 파사 기타 커버곡'이 조회수 300 만을 넘긴 이후지만, 그래도 엄청 나다 할 수 있다.
덕분에 가입자나 팬들이 많이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번 재준의 방송에 출연했다 하면 3시간 안에 몇백만 원의 후원금이 쏟아지니 다미앙도 꽤 갈등했을 거다.
또 다른 수익 모델이자 '이진호'라는 존재를 보여 줄 수 있는 또 다른 창구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뭐, 나야 재준이가 들어오면 좋지."
친구가 함께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든든해졌다.
솔직히 그동안은 좀 외로웠다. 괜히 다른 모델이나 연예인을 영입하자고 말한 게 아니다.
여기에 다미앙이 서포트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을 것이기에 계약 조건도 재준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그런데 그 많지 않은 부분도 재준에게는 동아줄 같을 거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저작권이 있는 노래를 부를 때.
그 복잡한 저작권법은 회사가 있어야 처리가 편하다.
모두에게 좋은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