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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81화 (8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4권 6화

부우웅!

진호를 태운 차가 달린다.

'다미앙 팀장님, 무섭네.'

"응? 무슨 말하셨어요?"

이설아가 보낸 삐친 듯한 이모티콘을 보며 웃던 진호는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아서 고개를 들었다.

"아니, 아니야. 그보다 우리 회사에도 그런 힘이 있을 줄은 몰랐네. 잘나가는 기획사가 아니면 쓰기 힘든 방법이잖아, 그거."

"어, 그래요?"

그건 몰랐다.

"정확히는 겁을 주는 거지. 끝까지 가면 누가 손해겠냐. 감당할 수 있겠냐. 연예계란 곳이 원래 동네 북이었지만, 지금은 알지?"

아시아 한류를 넘어 세계를 열광 시킨 아이돌이 나왔다. 할리우드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도 있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진호는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정 대리 님은 뭔가 잘못 생각하고 계신 것 같네요. 음, 아니면 아직 실감을 못하는 것일지도."

"뭐가?"

"정 대리님. HU는 글로벌 기업 이에요."

백미러 속 정 대리의 미간이 좁혀진다.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다.

"전문 모델이 필요한 나라에는 무조건 지사가 있는 에이전시라고요. 거기에 소속된 직원과 모델들을 모두 합하면 몇만 명일 것 같아요? 한 해 매출 몇십, 몇백억 이상의 톱 모델의 숫자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브랜드의 종류와 숫자는요?"

에이전시 전체의 가치는 한류 아이돌을 데리고 있는 기획사들보다 몇 배는 높다.

……꿀꺽.

눈가가 파르르 떨린 정 대리가 반박했다.

"하지만 우리 회사 규모를 봐."

진호는 그가 왜 그런 말을 했는 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는구나. 아니면 믿지 못하거나.'

이미 얼마 전장경아 실장과 마케팅 실장이 스캔들을 막은 전적이 있다. 작다 하여도 하나의 소속사에게 경고까지 주었다.

'아까 놀란 걸 보니 그분들도 아직 다 파악하지 못한 거려나?'

왠지 그럴 확률이 높아 보였다.

"정 대리님. 이 팀은 오직 저만을 위해 존재하는 거예요. 편의상 회사라고 부르는 거지 HU라는 거대한 개미집안에 있는 하나의 작은 방일 뿐이에요. 매니지먼트로 치자면 서브 레이블 하나 정도. 지금은 중간쯤에 있어서 버리기는 제법 아까운."

그래서 진호는 이 방의 크기를 키우고 싶었다.

버릴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많은 걸 포기한 다미앙 때문도 있지만, 에이전시의 꼭대기에서 왕 혹은 공주처럼 대접받는 톱 모델들과 나란히 서고 싶어서다.

지금 품고 있는 수많은 욕심 중 하나였다.

한번 '제대로' 시작했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을 봐야 했다. 그것이 진호 자신의 성격이었다.

"정 대리님은 여왕개미 방을 제외한 큰방들 중 하나인 아시아 총괄 지사와 계약을 한 거고요. 그리고 아까 한 말을 이어가자면, 아직 중간에 위치한 저조차도 많은 브랜드가 얽혀 있어요. 굵직한 것만 따지면 디올, 지방시, 태그호이어. 한 해 제게 주는 후원금과 후원 물품을 합치면 억대."

진호는 옆에 놓인 물병의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번 스캔들이 악의에 의해 생겨나 확대되고 추잡해져 진흙탕 싸움이 된다면 그들의 매출은 얼마나 타격을 입을까요? 브랜드 이미지 손해는? 결국 참지 못한 그들이 움직였을 때 그 손배액을 저희가 감당할 수 있을까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여 그렇게 되면 감당 못한다.

"자, 잠깐 그럼?"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즈니스는 사람과의 관계처럼 이해가 없어요. 그 인터넷 신문사가 우릴 얕보고 깨물었지만, 별로 아프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로 끝내는 거예요. 아니었으면 HU와 제휴 혹은 전속 변호인단이 나섰을 거예요. 비록 제가 있는 곳이 중간에 있는 작은 방일 뿐이지만, 그래도 HU라는 거대한 회사의 일원이니까요. 다미앙 씨가 말한 것도 그런 의미고. 우리가 물어뜯길 수는 없죠."

작년 한국대 재학 당시 과제 때문에 기업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어서 확실히 안다.

기업은 결코 손해 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손해를 봤다면 어떻게든 메우려고 한다.

그렇기에 HU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 인터넷 신문사보다 진호 자신의 가치가 더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빚이 생긴다. 목줄이 잡혀 끌려 다니는 신세가 될 수는 없었다.

'절대 그될 수는 없지.'

정 대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 정말 대단한 곳에 입사했구나. 그리고 대단한 배우를 데리고 다니는 거고."

"에이, 아직 그 정도는 아니죠. 이제야 인기 좀 얻은 거 가지고 무슨."

순간 진호의 눈이 화륵 타올랐다.

"이왕 연예인이 됐으면 전 국민이 이름만들어도 아는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더 넘어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지금 품고 있는 욕심 중 하나였다.

제대로 시작한 이상 누구도 잊지 못할 발자취 정도는 남기고 싶었다. 모델과 연예인. 분명 두 마리 혹은 세 마리 토끼를 쫓는 거지만 자신 있었다.

자신에겐 '리셋 라이프'가 있었다.

어깨를 으쓱인 진호는 다시 핸드폰을 보며 피식 웃었고, 정 대리는 백미러로 그런 그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다미앙 팀장님이 말하길 진호의 가장 큰 무기는 외모도 아니고, 끝을 모를 재능도 아닌 두뇌라더니…….'

여태까지 맡았던, 대본 몇 줄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연예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잠깐. 그럼 팀장님의 그 말에 그렇게 웃었던 의미는…… 그리고 우리가 물어뜯길 수는 없다는 말의 의미는?'

오싹!

'마냥 착한 것만은 아니라는 건가.'

"네?"

"아, 아냐."

차는 그렇게 달려 '크리미널 크라임'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3. 크리미널 크라임

대기실에 도착하자 출연자들이 짓궂은 장난을 쳐 왔다.

그러다 검사라는 말에 입을 다물었다.

"제가 서부지검 범죄 예방 홍보 대사라 그에 대한 일정을 상의하러 오신 거예요. 그분 동생이 제팬이라서 자원하셨대요."

거짓말도 하다 보니 느는 것 같았다.

"아, 하, 하. 그랬어? 그런 거라면 진즉에 말하지. 난 또. 그럼 난 이만 쉬도록 할게. 아, 너 절대 먼저 몰입하지 마. 알았어? 아주 너 때문에 죽겠다, 인마!"

출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역대 최고로 재밌다고 평가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출연자들은 그만큼 힘들었다.

막장 드라마 추리 예능. 이게 지금 '크리미널 크라임'을 일컫는 말이다.

"흐흐흐. 사랑합니다."

"그래 나도 사랑해, 진호야!"

다시 한 번 하트를 그린 진호는 허허롭게 웃고 있는 장영진의 옆으로 향했다.

"죄송합니다."

"응? 아냐, 아냐. 나도 몰입해서 좋은걸, 뭐. 싫었다면 이야기했지. 덕분에 캐릭터도 많이 만들고, 또 더 유명해 졌어. 그건 쟤들도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얼마든지, 지금 보다 더 몰입해도 돼."

장영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크리미널 크라임' 이번 시즌 때문에 재조명 받은 출연자 모두 스케줄과 광고가 쏟아지는 중이다. 진호는 이렇게 말해 주는 장영진이 고마웠다.

어제 스케줄이 고됐는지 눈을 감고 있던 김재훈도 손을 저었다.

'정말 좋은 분들이야.'

"진호야."

김동민이 핸드폰을 들고 다가왔다.

"인사 좀 해 줘. 형이 후원 많이 들어오면 밥 한 끼 쏠게."

그러고 보니 동민은 짬짬이 인터넷 방송을 했다.

"감독님도, 덜 미남 배우도 한마디 해."

최지훈이 벌떡 일어났다.

"이런 씨! 안녕하세요. 덜 미남 배우 김재훈입니다!"

오늘은 '크리미널 크라임'의 멤버로만 녹화를 진행한다.

"내가 인마, 어? 너 때문에 덜 미남 소리 듣고, 어? 아오. 이럴 줄 알았으면 출연 안 하는 건데. 죽어라!"

김재훈이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만날 이렇게 노는지라 진호는 초탈한 얼굴로 흔들려 주었다.

"허어억!"

진호와 사람들은 김동민을 보았다.

하지만 김동민은 신경 쓸 수 없었다.

갑자기 접속자 수가 폭증했기 때문이다.

새로 유입된 사람들 모두 진호를 외치고 있었다.

진호는 멍하니 이쪽을 보는 김동민의 모습에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그건 이지훈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둘의 모습은 강아지 형제같아 보였다.

채팅창이 폭발했다.

* * *

김동민이 상황을 설명하자 진호와 김재훈은 더 붙어서 투닥투닥 꽁냥거렸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녹화 시간이 가까워졌다.

분장을 마친 진호는 먼저 스튜디오로 향했다.

'오늘도 재밌겠네.'

시즌이 진행되는 동안 한 번도 맡아 보지 못한 탐정 역할이었다.

[스킬 : 셜록의 후예] 때문에 워낙 범인과 단서를 잘 찾아서 그런 지 모두 탐정 역할은 맡기지 않으려고 했다. 제작진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룰도 새로 추가되면서 더 재밌게 됐다.

"진호 씨,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예."

씩 웃었던 진호는 이내 낯빛을 날카롭게 굳혔다.

이제부터 자신은 탐정, 이 탐정이었다.

* * *

호화 요트 위에서 살인사건이 벌어졌다.

깜깜하고 적막한 스튜디오. 진호는 스포트라이트가 온전히 비추고 있는 사체로 다가갔다.

"이름 최 회장. 국내 대기업 최고 그룹의 회장. 사망 시간은 오후 7 시 경. 사인은 과다 출혈."

사건 경위서를 모두 읽자 [스킬 : 셜록의 후예]가 투명한 사람 두 명을 만들어 내 죽이고, 죽는 모습을 재현해 냈다.

진호는 일단 눈에 보이는 것을 메모했다.

1.최 회장은 문을 열고 나갔다가 칼에 두 번 찔렸다. (위험 부위)

2.최 회장은 문을 닫고 잠근 후 과다 출혈로 죽었다.

3.문턱에 튀어 있는 피.

4.문 앞, 깨끗한 복도에 떨어져 있는 꽃 한 송이.(범인이 흘린 것으로 추정됨. 단서.)

5.첫 발견자는 비서와 부인.(시간이 돼도 나타나지 않아서 찾으러왔다. 하나뿐인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상황은 이렇다.

소유한 섬에서 유일한 핏줄인 손녀의 약혼식을 마치고 육지로 돌아오는 길, 최 회장은 자신의 객실에서 살해를 당해 버렸다.

현장을 보면, 밀실 살인은 아니었다.

"용의자들 들어오세요."

침통하거나 슬픈 얼굴을 한 출연자들이 들어왔다.

"아이고, 여보!"

박 부인(박지연)이 통곡을 하며 달려들었다.

"아이고, 두 번째 사모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박 부인은 최 회장의 두 번째 부인이다.

"뭐예요? 하, 참. 탐정님. 지금 나 세컨드라고 무시해요?"

"이렇게 예쁜데 피를 묻히면 안 되죠."

"어머."

박지연이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탐정님. 날 그렇게 생각했어요? 어떻게 누나랑."

진호는 웃으며 손을 뺐다.

"옷을 말한 거예요."

"야."

스튜디오에 웃음이 터졌다.

씩 웃은 진호는 사람들을 피로연이 열린 연회홀로 모았다. 알리바이를 들어 봐야 했다.

"일단 김 남편님과 최 손녀 양의 약혼을 축하드립니다."

순간 최 손녀(걸그룹 멤버 최윤지)가 얼굴을 가리자 김 남편(김재훈)이 그녀를 토닥였다.

진호는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의 표정과 몸짓을 살폈다.

'언제나 그렇듯 다들 뭔가를 숨기고 있어.'

오늘은 좀 더 그런 경향이 강했다.

"알리바이 확인 에 앞서 하나 묻겠는데, 여러분 중에 최 회장님의 연락을 받은 사람 있습니까?"

서로를 본 사람들이 고개를 저었다. 알리바이가 없어 용의 선상에 오른 이들 다섯을 제외하고, 이 호화 여객선에 탔던 하객 포함 승무원들도 연락을 받지 못했다.

6.최 회장은 연락을 하지 않았다. (방 중앙에서 죽은 최 회장은 문을 잠근 후 핸드폰 내지 내선 전화를 잡기 위해 가던 중 정신을 잃었을 확률이 크다. 내선 전화 위치 침대 옆.)

새로운 단서가 나왔다.

"그럼 알리바이를 들어 보죠. 일단 첫 발견자인 박 부인 씨? 오늘 오후 5시 30분부터 7시 사이에 어디 계셨죠?"

발견 시간은 8시지만, 사인이 과다 출혈이었다.

즉, 찔린 시간은 그 이전이었다.

그런데 박 부인(박지연)은 7시부터 이곳 피로연장에 있었고, 최 회장은 5시 30분 이후부터 목격자가 없다.

"내 객실에서 피로연 때 입을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어요."

"증명해 줄 사람은 없고요."

"……네."

"그런데 왜 최 회장을 부르러 오신 거죠? 장 비서 씨만 보내도 될 텐데요."

박 부인(박지연)이 코웃음을 쳤다.

"안 그래도 오늘내일하던 양반이에요. 심장에 병도 있고. 그래서 죽은 건 아닌지 확인차 갔어요…… 나도 내가 얼마나 때 묻은 사람인지 아니까 그렇게 보지 마! 진호야, 이거 예능이야. 연기야. 누나 그런 거 생각하는 사람 아니 다? 응?"

"네, 다음 장 비서 씨."

"진호야!"

모든 용의자의 알리바이 확인이 끝났다.

진호는 정리한 내용을 응시했다.

7.박 부인은 사건 발생 시각 드레스를 골랐다.

8.최 회장은 지병이 있었다.

9.박 부인은 최 회장이 죽길 바라고 있다.

10.장비서는 6시 30분 전까지 방에서 쉬었다. 이후 연회홀로 가서 피로연 준비를 감독했다.

11.최 손녀는 사건 발생 시각 드레스를 고르다 7시에 연회홀로 향했다.(취미 요리)

12.김 남편은 다른 객실에 있었다가 7시 즈음 연회홀로 향했다. (아직은 약혼 관계라 다른 객실을 쓴다.)

13.미대출신 김 승무원은 5시 30분까지 갑판에서 최 손녀 김 남편을 그려 준 뒤, 7시까지 직원 객실에서 쉬었다.

14.김 승무원은 직원 객실 맞은 편 객실에서 김 남편이 쉬는 걸 목격했다.

'어라? 이러면 김 남편은 알리바이가 있는 거잖아.'

진호는 김 남편(김재훈)의 알리바이를 증언한 김 승무원(김동민)을 응시했다.

'동민이 형만 동떨어진 존재야.'

손녀 부부, 부인, 비서. 모두 최 회장의 측근인데, 김 승무원(김동민)만 최 회장과 관계가 없다. 시선을 느낀 것인지 눈을 마주친 김동민이 그 특유의 익살스런 미소를 지으며 입안에다가 술을 털어 넣는 시늉을 했다.

끝나고 한잔하자는 뜻이었다.

'아까 후원 많이 받으셨나 보네.'

성격이 드세지만, 정이 많고 빚진 건 못 참는 김동민이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에휴. 여태껏 관계없어 보이던 사람이 한두 명인가. 자, 그럼 1차 조사 시작하죠!"

알아야 할 건 다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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