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24화
하고 싶다는 제의를 넣자마자 오디션도 보지 않고 바로 합격됐다. 직원들은 당연하다는 반응이어서 더 당황스러웠다.
풀리지 않는 의구심을 품고 도착한 액션 스튜디오는 진호를 놀라게 했다.
'와.'
높고 넓었다.
서울 외곽에 공장처럼 지어진 거대한 스튜디오는 띔틀, 매트, 트램 펄린, 철봉, 장애물 등 온갖 기구가 배치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그것들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오직 이번 작품을 위해 따로 대여되고 만들어진 스튜디오. 즉, 이 곳에 있는 사람 모두 함께 연기할 배우였다.
"오오."
"누구?"
트레이닝복을 걸친 장년 남성이 어슬렁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무이를 맡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무이!"
'응?'
스튜디오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활기차졌다.
눈앞의 중년인이 진호를 위아래로 훑었다.
"빨리 왔네요? 배우님들은 보름 뒤에나 모일 텐데?"
그리고 두 달 후 본 촬영에 들어 간다.
"제가 액션 연기에 기초가 없다 보니 다른 분들에게 폐를 끼칠 수 없어서 미리 오게 됐습니다."
무이는 살수다.
액션은 필수였다.
그렇지만 큰 걱정은 없다.
[스킬 : 연신연왕]은 배역 그 자체가 되는 매소드를 기초로 그 어떤 연기라도 쉽게 해낼 수 있게 만드는 스킬이다.
연기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주는 스킬.
즉, 액션 '연기'도 배우면 곧 잘 할 수 있다.
'매소드의 신 스토리에서도 주인공은 온갖 배역을 소화했지.'
그럼에도 미리 온 이유는 본 촬영에 들어갔을 때 최대한 NG를 내지 않기 위해서다.
특히나 액션신은 아차 하는 순간 사고가 터진다.
매소드의 신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그 때문에 스토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적이 한 번 있고, 그럴 뻔한 경험이 몇 번 있다.
액션이 많은 작품을 찍을 때는 꼭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 모두 현실에서도 충분히 있을 법한 사고들.
그런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선 한 번이라도 많이 합을 맞춰 보는 게 좋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예, 방해를 했다면 죄송합니다."
"흐음. 알았어요. 들어와요. 아, 난 이번 작품의 무술 감독 김홍근 이에요."
"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진호입니다!"
김홍근은 진호를 탈의실로 안내 했다.
"일단 옷 갈아입고, 몸부터 풀어요. 그런 후에 기본 자세를 배울 거예요. 옷은 가져왔어요?"
"예! 걱정 마십시오!"
준비해 온 옷으로 갈아입은 진호는 발목부터 신중히 풀기 시작했다.
테니스를 할 때도 그렇다.
몸이 덜 풀리면 꼭 쥐가 났다.
목까지 모두 푼 진호는 스튜디오 외곽을 뛰기 시작했다.
"훅훅훅훅훅!"
그런 그에게 김홍근이 다가왔다.
"운동했나 봐요? 몸 푸는 게 일반인이 아닌데?"
"아, 네. 취미 삼아 테니스를 하고 있습니다."
"테니스, 좋지. 알았어요. 10분만 더 몸 풀어요."
"예."
진호는 50미터를 걷다 다시 질주를 시작했다.
숨은 금세 차올랐지만, 컨디션은 굉장히 좋았다.
아니, 가파르게 좋아지고 있었다.
'아, 이제야 몸이 좀 풀리는 것같네.'
벌써 몇 주째 테니스를 못했다.
스케줄 때문이다.
씩 웃은 진호는 속도를 조금 더 높였다.
마무리 스트레칭마저 끝나자 김 홍근이 다시 다가왔다.
"태권도부터 볼래요, 검술부터 볼래요? 아님 유도?"
무이는 검술과 박투술 모두 쓰는 인물이다. 암기도 쓴다.
"태권도부터 하겠습니다."
무이는 길거리 태생이다.
"흠, 그래요. 어차피 이런 게 있다는 것만 알면 되는 거라 뭘 먼저 하든 상관없을 테니까. 철민아! 와서 발차기 시범 좀 보여라!"
"예!"
빠르게 달려온 사내가 발차기 시범을 보였고, 김홍근은 그 발차기의 타격점이 어딘지 가르쳐 주었다.
"와."
화려하다.
파바밧! 쭉쭉 시원하게 뻗는 발 차기가 눈길을 빼앗는다.
시범이 끝나자 진호는 손바닥이 터져라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얼른 해 보고 싶어 몸이 절로 들썩였다.
"앞차기부터 하면 되나요?"
"아니요. 낙법부터 해요."
"……네?"
"원래 액션의 기본은 낙법이에요. 철민아 잘 가르쳐. 소중한 배우님 다치면 너 신장 팔아도 안 된다."
"예!"
진호는 멀어지는 김홍근의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전방낙법, 후방낙법, 측방낙법, 전방회전낙법, 후방회전낙법 .
지난 4일 동안 한 것은 이 다섯 가지 낙법이 전부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업어치기를 당하면서부터다.
지옥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흐엇!"
몸과 시야가 빙글 도는 순간 땅에 내리꽂힌다.
느린 속도임에도 빠르게 세상이 돌았다.
"낙법!"
'큽!'
진호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퍼억! 이렇게 몇 번을 내던져졌는지 몰랐다.
진호는 결국 녹색의 푹신한 매트 위에 대자로 뻗어 버렸다.
"흐억. 흐억. 흐어."
"후우우. 쉬신 후에 낙법 연습 하십시오."
터미네이터인가 싶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저렇게 멀쩡할 리가 없었다.
진호 자신은 매쳐지고 업어쳐지는 입장이라지만, 사내는 업어치는 입장이니 말이다. 그것도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인간이라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정도로 끝나면 안 된다.
유도복의 옷깃을 정리한 사내는 진호를 기이하다는 듯 보다가 목례를 하곤 돌아섰다.
진호는 그 등을 바라보다 뒤로 발라당 누웠다.
'……이러다 그 스킬을 얻겠는데.'
낙법에서부터 시작하는 스킬이 하나 있다.
무술 관련 스토리다.
'오늘 몇 번 던져졌더라.'
아침 8시부터 지금까지 족히 300 번 이상은 던져진 것 같다.
지금도 온몸과 내장이 흔들리는 것 같다.
"흠."
'솔직히 108배에 비하면 견딜 만 해.'
정말 그때는 죽는 줄 알았다. 도중에 잠시 혼절한 적도 있다.
따라 놓은 정화수도 108배 하는 중얼어 버릴 정도였으니, 맨날 따라왔던 행자승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큰일 났을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은 1시간 낙법을 하면 1시간을 쉰다.
그래도 고민이 된다.
"저기……."
"아, 네."
여성 스턴트가 다가왔다.
"이것 좀 마시면서 하세요."
시원한 물이었다. 본능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감사합니다!"
이것이 시작이었다. 눈치를 보던 여성들이 다가와 사탕을 나눠 주기 시작했다. 이 스튜디오의 유일한 간식이다.
그렇지 않아도 당이 고팠던 진호는 날름날름 받아먹었고, 얼굴에 환하고 황홀한 미소가 가득해진 여성들은 더 적극적이 됐다. 그럴수록 남성 스턴트들의 눈빛이 살벌해져 갔다.
드르륵! 액션 스튜디오 부지에 주차된 그랜드 스타X의 뒷문이 열리며 진호가 오른다.
"사람들 참 너무하다, 그치? 벌써 며칠째야? 액션은 가르쳐 주지 않고, 만날 낙법만 시키고 말이야."
"흐. 그러게요. 너무하네요. 아, 여기 오늘 치 사탕이요."
"땡큐. 너는 아주 간식이 마르지 않는구나?"
"흐흐흐."
빙구처럼 웃은 진호는 순간 눈빛을 가라앉혔다.
"정 대리님. 정 대리님은 여기 회사에 오시기 전에 5년 동안 로드 매니저를 하셨다고 했죠? 그럼 이런 곳도 많이 와 보셨겠네요?"
"그렇지. 많이 와 봤지."
다행이었다.
"그럼 스턴트와 액션 연기를 위해 무술을 배우는 이유도 알고 계세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말고요."
"흠. 나도 그게 궁금해서 물어본 적 있지. 솔직히 액션 연기란 게 합만 연습하면 되는 거잖아."
맞다. 합만 연습하면 그럴듯한 그림이 만들어지는데, 굳이 무술을 배울 필요는 없다.
그래서 지금도 굳이 이런 상황에서 얻을 것이 있는지에 대해 고민 중이었다.
낙법에 대해 감이 잡혀 가는 중 이라서 더 그랬다.
"그런데 어느 무술 사범이 그러더라. 알고 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건 카메라에 비춰질 때 선이 다르다고. 정말 죽어라 합을 맞춰도 다르다고. 몇십억 백억 투자하는 영화야 수십 수백 번 찍어서 수정할 수 있지만, 드라마는 시간상 힘들다고. 화려한데 왠지 조잡해 보이는 액션 연기를 본 적 있지?"
"아."
바로 이해가 되었다.
그러자 답이 정해졌다.
'얻어야겠네.'
1차 해금 조건이 정말 극악이다. 하지만, [스킬 : 연신연왕]에 도움을 준다.
앞으로의 연기 활동에 큰 자산이 된다.
'할 거면 제대로 잘해야지.'
지금 당장만 놓고 보더라도 스킬을 습득하면, 무이를 더 멋지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아, 무이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알면 좋겠는데. 작가님이 설정집 같은 거 안 만들어 주시나?'
대략적인 과거만 몇 줄만 있으니 깊게 몰입할 수가 없다.
"고마워요, 정 대리님."
"음? 뭐가?"
"아뇨. 가요."
씩 웃은 진호는 눈을 감았다.
'뇌물을 준비해야겠네.'
"저 눈 좀 감고 있을게요. 자는 거 아니에요."
"그래. 도착하면 깨울게."
눈을 감은 진호는 팔과 다리 상체를 꾹꾹 눌렀다.
[스킬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를 얻으며 익힌 마사지였다.
지금 자면, 곧 있을 스케줄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
다음 날부터 진호는 적극적으로 덤비기 시작했다.
업어치기를 당하자마자 오뚝이처럼 일어나 파이팅을 외치며 달려 들었다.
1차 해금 조건인 7일 동안 업어 치기당하며 낙법 300번 하기'를 달성하려면 쉬는 시간도 아까웠다. 중간에 스케줄도 있으니 말이다.
7일 동안 합쳐서 300번이 아니라 하루에 300번씩 7일이다.
사내의 얼굴이 드디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참 통쾌했다.
김홍근이 말한 보름 후가 되자 배우들이 도착했다.
그러나 2차 해금을 해야 하는 진호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처음엔 진호가 있는 줄도 몰랐던 배우들은 놀랐다가 이내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 * *
오랜만에 진호의 집을 찾은 재준은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자신의 친구를 보자 흠칫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괜찮냐?"
살을 빼고 잘생겨진 순간부터 언제나 얼굴이 '선하다'란 단어로 가득한 진호지만, 친구로서 장담할 수 있었다. 지금 진호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다.
"……아니."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렬하게 하기 싫어."
"쯧쯧. 대체 어떻길래 그래?"
"……후후후."
진호의 웃음은 위험했다.
극악 다음은 지옥이었다.
오늘이 '리얼, 정글에 가다 극한 생존 편' 첫 화 방영 일만 아니었으면, 이대로 자 버렸을 것이다. 정글에 다녀온 지 벌써 두 달 반의 시간이 흘렸다.
내일이면 본 촬영 시작이다.
부모님은 모임에 가셨고, 다미앙과 직원들은 사무실에서 대기 중이다. 진호도 그곳에 있으려고 했지만, 그들이 뜯어말렸다.
진호는 2차 해금 조건을 떠올렸다.
"타이어 끌고 1시간 달리기, 타이어 메고 10미터 줄 오르고 내리기30번. 합기도, 검도, 무에타이, 유슈 기본 자세 백 번씩. 이게 준비운동."
타이어는 2차 해금 조건으로서 한 달 동안 해야 했고, 무술 백 번씩은 3차 해금 조건이다.
"미쳤냐! 그걸 시킨다고 다 했어? 사람들이 뭐라 안 해?"
"아니? 내가 하겠다고 한 건데? 배역에 몰입하려면 날 한계까지 몰아세울 필요가 있어서."
더 이상 타이어를 끌지 않아도 되지만, 지금까지 멘 건 그 이유 때문이었다.
한 달 전 무이에 대한 설정집이 도착했다.
작가님이 고맙게도 A4용지 4장 분량으로 보내줬다.
덕분에 무이에 대해 더 명확히 알 수 있게 됐다.
대본 리딩때 만났으면 감사를 표했을 테지만, 최은수 작가는 집필을 이유로 모든 리딩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서 많이 아쉬웠다.
'무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지옥이 따로 없던 유년 시절이었다.
무이는 지독한 배고픔에 그런 선택을 했다.
그런 무이를 이해하기 위해 나흘을 굶어 보았다.
배가 고프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물며 현대인인 자신이 그런데 그 시대에서 짐승처럼 살았던 무이로서는 그보다 더할 수밖에 없었다.
무이는 살기 위해 무엇이든 몸이 부서져라 했다.
"때문인지 선배님들이 걱정된다고 이것저것 챙겨 주셨어. 나 완전 예쁨 받아."
대부분의 배우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잘해 주었다.
"덕분에 이런 것도 하게 됐고."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 양손 바닥을 땅에 댄 진호는 순간 몸에 힘을 주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어? 어? 도랏?"
마치 줄에 묶인 다리가 허공에 들리는 것처럼 천천히 물구나무가 서졌다. 티셔츠가 말리며 선명한 근육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숨결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3차 해금을 하면서 온전히 스킬을 얻은 효과다.
근육의 질이 변했다.
"와 씨!"
"흐흐흐. 어때. 죽이지…….잠깐."
이제야 친구를 제대로 보았던 진호는 재준이 멘 크로스백의 줄에 붙어 있는 핸드폰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카메라가 이쪽을 향해 있고, 한 손엔 켜진 핸드폰을 들고 있다.
그 전에, 귀찮은 게 싫어 책가방도 빈 것 그대로 들고 다녔던 재준이 크로스백을 멘 것 자체부터 말이 안 됐다.
"너 그거 뭐야. 설마…… 아니지?"
아닐 거다. 자신의 친구 재준은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재준은 씩 웃었다.
"고맙다, 친구야."
"야 이씨!"
재준의 개인 방송국 시청사 수가 폭증했다.
[스킬 : 사상 최강의 제자]
[자고로 제자는 죽이지도 살리지도 말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