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8화
'리얼, 정글에 가다' 제작진 몇 명과 이번 극한 생존 편에 자원한 연예인들이 생존 훈련을 위해 극비리에 출국했다.
보안을 위해 시간을 두고 한 명, 두 명씩 출발했다.
진호는 그들 중 두 번째로 도착 했고, 마중 나온 차로 다시 이동했다.
"후."
생존 훈련을 배우러 가는 것뿐인데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긴장인지 흥분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았다.
차는 도심을 벗어나더니 숲 속으로 들어갔다.
문명의 흔적이 사라지고, 울창한 숲만 나타나자 가슴은 더욱 흔들렸다.
카가각! 드르륵!
차가 멈춰 서자마자 내린 진호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마치 휴양림처럼 목을 꺾어 올려 다봐도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나무들로 둘러싸인 생존 캠프는 굉장히 새로운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줄지어 선 천막 텐트들과 입구를 바라보는 목조건물.
캠프라는 생각 때문인지 분위기가 약간은 어둡게 느껴졌다.
공기도 왠지 습한 것 같았다.
'그런데 의외로 크지 않네.'
천막과 건물이 지어진 터의 너비는 학교 운동장보다 약간 작아 보였다.
"오! 왔어요?"
생존 캠프에는 이미 서정문이 도착해 있었다.
그를 다시 본 느낌은 놀랍게도 이곳과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는 것이었다. 마치 이곳에서 사는 사람 같은 느낌. 이질감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몇 명과 함께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래. 진호도 말 편하게 해. 그런데 정말로 스케줄을 다 취소 하고 온 거야?"
"완전히 다 취소한 건 아니고, 2 주 뒤로 미뤘습니다."
이게 아니었다면 다미앙은 무조건 반대했을 것이다.
연예인으로서 얼굴을 많이 알리지 못했을 뿐이지, 모델로서의 이진호는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훈련 끝나고 일주일 뒤에 출국이잖아."
즉 3주 동안의 스케줄을 일주일 안에 해결해야 한단 소리다.
"생존지에서 푹 자면 됩니다."
"어이구, 쉽지 않을 텐데."
서정문의 눈에 걱정이 서린다. 진호의 나이는 이제 스물한 살.
그가 일찍 결혼을 했다면 이만한 아들이 있을 정도다 보니, 자연스레 눈길이 갔다.
"그래도 패기는 좋다. 아, 이쪽은 통역을 맡아 줄 데이먼 최. 그리고 훈련하는 모습을 촬영할 촬영 팀."
인사를 한 진호는 의아해했다.
"통역요?"
"여기 훈련 교관들이 프랑스와 영국 출신이래. 프랑스 외인부대와 영국 SAS알지? 아직 군대를 다녀 오지 않아서 모르려나?"
"아뇨.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한국의 707특임대나 UDT 같은 특수부대다.
리셋 라이프에서 어느 스토리를 진행하며 알게 되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프랑스어를 전공했으니 도울 일이 있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알아?"
"제2 외국어가 프랑스어였습니다. Bonjour. Damon Choi."
진호는 신뢰를 주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넸다.
이번 편에 함께할 연예인은 진호 자신과 서정문을 포함해 여섯 명. 통역은 한 명보단 두 명이 나았다. 혀에 버터를 바른 듯 섹시한 그의 발음에 사람들이 놀랐다. 통역관은 더 놀랐다. 제대로 배우지 않는 이상 발음하기 힘든 R 발음. 그는 약간 흥분하며 여러 말을 던졌고, 진호도 유쾌하게 받아쳤다.
"호우. 저보다 훨씬 나은데요? 프랑스 현지에서 사는 중상류층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진호를 보는 눈빛이 약간 달라졌다.
그냥 사람에서 약간 도움이 되는 사람 정도지만 말이다.
"아, 진호 씨가 머물 곳은 저기 6번 천막입니다."
"네! 그럼 짐 좀 풀고 오겠습니다."
"피곤하면 자고 와도 돼. 다른 연예인들 도착하려면 멀었으니까."
고개를 꾸벅 숙인 진호는 천막으로 향했다.
실물로는 처음 본 천막 텐트와 군용 야전 침대는 진호의 눈을 반짝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오오!"
여기저기 살피고 열어 보며 충분히 감상한 진호는 짐을 풀고는 천막을 나섰고, 이 생존 캠프가 엄청 나게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야영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중간 중간 만나는 캠프 스태프에게 물어물어 거미줄처럼 난 길을 모두 둘러보니 드는 감정은 '의외로 깔끔하다'였다.
기구 같은 것도 녹슨 것 하나 없어서 이런 곳은 으레 더럽겠거니 했던 편견을 부숴 버렸다. 무척이나 믿음이 갔다.
걱정을 하나 덜어 내며 야영지로 돌아오니 연예인이 몇 명 도착해 있었다. 서정문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던 진호는 깜짝 놀랐다.
"어? 경만이 형!"
"진호야!"
정문 족장에게는 부족원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는데, 혹여 그들과 친해지지 못하면 어쩔까 걱정을 했던 진호.
같이할 연예인이 누구인지까지 보안이 지켜졌기 때문에 더욱 놀람고, 더욱 반가웠다.
타지에서 만난 지인에 둘은 서로 끌어안고 방방 뛰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선배님!"
걸그룹 출신으로서 배우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김유빈. 한참 선배인 여성이자 정문 부족에서 여 전사라 불리는 이였다.
"어머, 이게 웬 꽃돌이야? 반가워, 김유빈이야. 엄청 젊어 보이는데 몇 살이야?"
"스물한 살입니다."
"……편하게 누나라고 불러. 이모 안 된다."
"하하, 예!"
이윽고 나머지 두 명이 입소를 하면서 캠프의 문이 닫혔다.
아직 저녁을 먹기 전, 진호는 같이 천막을 쓰게 된 외국인 사내를 멍하니 바라봤다.
거의 2미터에 가까운 신장에 떡 벌어진 어깨와 커다란 주먹. 위협적인 몸이라는 건 이 사람을 두고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근육으로 꽉 찼다 여긴 자신의 몸이 초라해질 정도였다.
"몇 살?"
"스물한 살입니다, 선배님."
모델로서도 선배인 사람이었다.
"그래."
고개를 끄덕인 그는 묵묵히 짐을 풀었다.
참 과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 가방에서 손도끼도 나오고, 영화 람보에서 주인공 람보가 쓴 칼도 나와서 목덜미를 서늘하게 만들었다.
'저건 대체 어떻게 가져온 거지?'
그런 게 문제가 아니다. 그냥 무서운 사람이었다.
땡땡땡!
진호는 약간 빠르게 천막을 벗어나 식당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은 후 바로 이론 교육이 시작되었다.
칼조차 없을 상황에서 생존 도구를 만드는 방법이나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방위를 잡는 방법 등 굉장히 유용한 정보였다.
교육이 시작되자마자 선하고 경쾌했던 서정문과 김유빈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같은 천막을 쓰는 사뮤엘 강도 날카로운 기세를 뿜으며 필기를 했다.
그에 정신을 바짝 차린 진호도 교관의 말을 하나라도 놓칠까 온 신경을 집중했다.
교육은 11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야! 첫날부터 빡세네!"
"코 골며 잔 놈이 빡세긴 뭐가 빡세! 너 이럴 거면 그냥 가!"
"에이, 그건 영어라 못 알아들어서 그런 거고. 정문이 형, 나 산군이야. 리얼정가의 원년 멤버이자 형의 부족원. 나 못 믿어?"
"네 어디를 보고 믿는데? 살 좀 빼라. 그러다 죽어, 인마. 이번엔 진짜 위험해."
서정문이란 개그맨이 있다는 걸 대중에게 각인시킨 장수 개그 프로그램에서, 서정문과 함께 달인의 법칙을 찍은 신군은 120킬로그램이 넘어 보이는 거구였다.
"죽으면 뭐 죽는 거지. 위험했던 게 한두 번인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는 그에게서 무언가 있어 보이는 듯한 느낌이 물씬 났다. 김유빈과 사뮤엘 강은 다른 말 않고 그를 스쳐 지나갔다. 무시가 아니라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라는 믿음이 그 둘에게서 느껴졌다.
슬쩍 그 사이에 끼어 있는 허경만도 그랬다.
'정글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사람은 다르구나.'
그들에게선 긴장감과 함께 여유가 느껴졌다.
보이지 않는 벽이 자신과 저들 사이에 놓인 듯했다.
오기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2주 안에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도록 하자. 최소한 발목은 잡지 말아야지.'
생존에 대한 공부만이 아니라 다른 목표도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이후 이론 교육은 이틀에 걸쳐 이뤄졌고, 나머지는 실습이었다. 바닷가에서 물을 얻는 법, 쉼터를 제작하는 법, 불을 피우는 법 등 안돼도 될 때까지 했다.
요리 손재주가 생존의 손재주가 아님을 알게 된 진호는 손바닥이 엉망진창이 되도록 연습을 하고 또 연습을 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2주가 끝날 때쯤엔 정문 족장과 부족원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캠프를 수료하고 정확히 일주일 후. 그들은 생존지와 가장 가까이 있는 공항에 모이게 됐다. 그렇게 모인 그들은 다시 경비행기를 타고 3시간을 날아가고, 차로 5시간을 이동한 뒤에야 2차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제 여기서 배를 타고 1차 생존지로 향해야 한다.
"진호 괜찮아? 너 안색 안 좋아. 형이 약 줄까?"
분명 첫 만남 때만 해도 과묵하고 무서웠던 형인데, 지금은 투머 치토커가 따로 없었다.
"오빠, 그만 좀 해. 진호가 애야?"
"이것도 모자라. 똑똑한 진호 때문에 우리가 그렇게 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던 거 잊었어?"
진호는 교육을 받는 중에도 실시간 통역을 해 주었고, 교육받은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다가 저녁에 모여 복기를 할 때도 머릿속에서 한 번 정리해 설명했다.
"우리가 이렇게 당당한 이유, 다 진호 때문이야. 소중한 요리사, 아, 아니! 브레인!"
"목적이 그거구만!"
"……."
'……요리를 괜히 해 준 건가?'
고작 2주라고는 하지만, 한국 음식이 생각나지 않을 리 없었다. 캠프에 있는 재료와 가지고 들어 간 재료로 파전이라든지, 탕이라든지 등을 만들어 주었더니 이렇게 감싸고 돌았다.
'그래도 인정받아서 다행이다.'
이제 남은 건 무인도와 정글에서의 쿡방&먹방이었다.
간이 냄비 만드는 법도 배웠으니, 극한 생존이란 타이틀은 약간 빛을 바랠 것이다. 사람은 잘 먹으면 없던 힘도 낼 수 있었다.
1차 생존지인 무인도에서 이틀 밤 숙박 후 넷목을 만들어 2차 생존지인 정글을 가로질러 최종 목적지까지 가는 게 이번 편의 플랜. 전에 정글 입구에서 바닷가까지 갔으니 이번엔 반대로 하자는 극악한 계획이었다.
"흠. 날이 꽤 흐리네."
김유빈이 하늘을 보며 낯빛을 흐리자 산군이 코웃음을 쳤다.
"우리가 언제 날 좋은 날 간 적 있냐. 태풍경보 떠도 간 적 있잖아."
"아, 인정. 그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시원한 거지."
"아! 날씨 좋다-! 진호야, 날씨 겁나 좋아!"
'……이게?'
흐릿한 하늘에선 햇빛을 찾아볼 수 없고, 바람은 옷을 찢을 듯 강하게 분다. 그런데도 정문 족장과 3인의 부족원들은 해맑게 웃고 있다. 진호는 슬쩍 허경만을 보았다.
다행히도 그의 얼굴엔 수심이 내려앉아 있었다. 동지가 있어 참 다행이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예!"
"출발-!"
'뭐, 저렇게 경쾌한 것을 보면 딱히 별일 없을 듯하고.'
고개를 끄덕인 진호도 시름을 거의 내려놓으며 그들의 뒤를 쫓았다. 어쩌면 그게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투어 배처럼 지붕을 씌운 배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가는 도중 날이 화창하게 개어 모두 소풍 가는 분위기였다. 바다다. 해산물이 풍족한 섬이다. 이제부터 쿡방&먹방 시작이다.
"……네?"
"이제부터 이진호 씨는 2박 3일 동안 혼자 생존하시면 됩니다."
"네?"
머릿속이 과부하를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