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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67화 (6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7화

잠시 시간을 두고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 중학생 초등학생들은 플스 앞에 모여 앉았고, 여자들은 때 아닌 패션쇼를 벌였다.

언제나 웃음소리 가득했던 명절날 시골집이 더 떠들썩해졌다.

이제 스무 살 성인이라고 어른들에게 술을 받은 진호는 할머니가 아예 너희들끼리 마시라며 방에 차려 준 술상에 성인 남매들과 모여 앉았다.

"……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돼."

"울 여사님 외모 보고 이해 안돼?"

"아, 인정. 그럼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은?"

"아버지."

"……말 되네."

대기업 부장님인 아버지는 어려서부터 영재 소리를 듣고 자라셔서 집안 사정만 됐다면 유학을 갔을 거라는 말들이 파다했다.

"근데 괜찮아? 말 들어 보면 막 12년 노예 계약 같은 거 있잖아."

문을 열어 놔서 그런지 바깥에 계신 어른들까지 집중하는 게 느껴졌다.

"어, 괜찮아."

진호는 HU 에이전시와 계약 내용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하긴 외국계 기업이 수작을 안 부리기는 하지."

"그보다 태호 형은 어때? 이번에 부사관 지원했다며."

"이 짧은 머리 보면 모르겠냐?"

"오오오! 아, 맞아. 누나는? 임용 고시 합격했어?"

"작년에 합격했어. 소식 안 듣고 뭐 했어?"

"바빴습니다. 죄송합니다. 굽실굽실."

사촌들은 넉살이 부쩍는 진호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특히 진호보다 나이가 많은 사촌들은 더 그랬다.

장손이라 예쁨을 받았던 진호는 그만큼 애교를 피우고 다녔다. 그러다 살이 찌기 시작하고, 서울로 이사 가면서 말수가 급격히 줄더니 데면데면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씁, 어딜.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게."

"아, 형!"

"그래, 꺼져, 인마. 우리 성인들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치사하다! 자기들도 맨날 어른들 몰래 술 훔쳐 먹어 놓고!"

"저거 입 막아!"

그들은 지난 10년간 묵혀 두었던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그 후엔 예쁜 인형이 생긴 사촌 여동생들에게 시달려야 했다.

* * *

고모들은 설 전날에 떠났고, 삼촌들은 설 당일에 떠났다.

아버지가 첫째라 시골집을 모두 돈 진호도 설 다음 날이 돼서야 외갓집으로 향하는 차에 오를 수 있었다.

그는 배웅하러 집 앞까지 나오셨던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보이게 되자 어제오늘 친척집을 돌며 받은 세뱃돈부터 꺼냈다.

"하나, 둘, 셋…… 으흐흐. 풍년이구나. 이걸로 뭘 할까?"

물가가 상승하면서 세뱃돈도 함께 인상되었다.

성인이 된 것도 있었다.

원래 성인은 2만 원 고등학생은 만 원이었는데, 올해부터 성인은 3만 원, 고등학생은 2만 원이 되었다.

막내 고모는 작년에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5만 원을 주었다. 진호의 부모님은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아들의 모습에 흐뭇이 웃을 수 있었다.

과거 결혼자금 지원이나 사업 자금 지원 등의 일을 우려먹지 않아도 제대로 어깨를 펼 수 있어서 더 그랬다.

차 안에 훈훈한 공기가 퍼졌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외갓집에서는 별일이 없었다.

시골 출신인 아버지를 무시하고, 명문대를 나와 놓고 그런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를 깔아뭉개는 외가 쪽 친척들이 무슨 일인지 단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아서였다.

언제나 부모님이 도착할 때까지 남아 있던 그들이 말이다. 외할아버지만이 어색하게 맞이해 줄 뿐이었다.

'제사 때 제대로 누르셨구나!'

[스킬 : 불을 지배하는 자]를 얻을 당시 부모님은 제사 문제로 외갓집에 갔었다. 전신을 디올로 치장을 한 채 말이다.

'잘됐네.'

진호도 외가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외갓집에서는 그냥 안부 인사만한 부모님은 하룻밤 자기는 커녕 식사도 안 하고 바로 집으로 복귀 했다.

* * *

"으, 써."

아침에 눈을 비비고 나온 진호는 어머니가 내미는 한약을 쭉 들이 켜야 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갑자기 웬 한약?"

"네 외할아버지 드릴 거 사는 김에 네 것도 샀어."

"잉?"

"이젠 제 놈들이 설 자리를 잃을 때지."

차갑게 번지는 어머니의 미소에 주춤 물러선 진호는 못 들은 척 화장실로 향했다.

"아들. 후원 들어온 시계 좀 쓴다."

"네, 맘대로 쓰세요."

7단 서람장에 시계가 가득 차 있다.

몇 개 사라진다고 티 나지 않았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더니…….'

씻고 옷을 갈아입은 진호는 나갈 채비를 했다.

"밥은?"

"회사에서 먹을게요."

열흘 휴가가 끝났다.

아쉬워도 다시 출근할 때였다.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온 진호는 주머니에서 차키를 꺼냈다.

삐빅!

라이트가 깜빡이는 중고 SUV. 면허를 따자마자 다미앙을 통해 역수입한 물건이었다.

진호의 입이 오늘도 헤벌쭉 찢어졌다.

오는 도중 굉장히 욕을 먹은 기분이지만, 상쾌한 표정으로 내린 진호는 회사로 올라갔다.

직원들 모두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다.

바늘조차 안 박힐 장경아 실장도 축 늘어져 있었다.

그러다 진호를 발견하곤 눈빛을 굳히며 일어났다.

직원들도 눈빛이 변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았다.

'응?'

"명절 동안 팬들에게 덕질할 거리를 많이 던져 주셨더군요."

진호는 재빨리 아군을 찾았다. 그러나 아군은 없었다.

"상반신 탈의를 하지 않나."

'씻고 나온 걸 찍힌 건데…….'

"여자 화장을 하지 않나."

'그건 중고생 사촌 여동생들 때문에……."

"여자 한복을 입지 않나."

'그것도 사촌 여동생들 때문에…….'

여동생들의 말발과 애교는 당해 낼 수가 없었다.

"명절 음식 먹방을 찍지 않나. 아주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스윽! 고개를 돌린 진호는 안으로 들어오던 정 대리를 향해도와 달라 눈으로 외쳤다.

정 대리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다시 문을 닫았다.

'정 대리님!'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쉬고 있는데 일감을 던져 준 뜻싶었다.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조용히 주먹을 쥐는 아버지를 몇 번 본 적이 있는지라 굉장히 미안했다.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네?"

진심인가 싶었는데, 진심인 듯했다.

장경아 실장이 종이 몇 장을 내 밀었다.

"위의 목록은 국내 유명한복 디자이너분들이 보내신 것이고, 아래 대본들은 이번 일로 인해 들어온 작품들입니다. 모두 사극입니다."

눈이 절로 떠지는 말이었다. 여태껏 철부지, 막내, 재벌집 아들 같은 배역들만 들어왔기에 더욱 그랬다. 다음 작품을 고르지 못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호오. 어? 이분도 보내신 거예요?"

해외에까지 알려진 유명 디자이너, 아니 명인이다.

한국을 좋아하는 헐리웃 스타들 대부분이 이분의 한복을 산다.

"꽤 흥분하셔서 연락하셨습니다. 충격을 받은 듯하더군요."

장 실장의 양 볼에 홍조가 올라 왔다가 사라졌다.

여자 화장에 여자 한복을 입고 교태 가득한 포즈를 취한 진호는 너무도 치명적이었다.

그녀는 그걸 크게 프린트해서 액자로 만들었다.

"……좋아해야 하는 거 맞죠?"

"당연합니다. 마지막 장은 예능 섭외 목록입니다."

예능 섭외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흠. 알았어요."

대본과 목록을 받아든 진호는 연습실로 걸어가다가 아차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다미앙 씨는요?"

"아시아 총괄 지사의 일을 마치고 오후에 오신다고 했습니다."

'요즘 들어 자주 왔다 갔다 하시는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 되었다.

머리를 긁적인 진호는 연습실로 들어가 한구석의 소파에 앉았다. 슬그미니 문을 열고 다가온 정 대리가 따뜻한 커피를 내밀었다.

"마, 마시면서 봐."

"네, 감- 사합니다."

배신은 아직 잊히지 않았다.

정 대리는 어색히 웃으며 멀어졌고, 콧방귀를 뀐 진호는 대본을 집어 들었다.

한복은 그분의 이름을 보자마자 하겠다고 마음먹은 후였다.

'화랑이라. 흠…….'

하얀 얼굴에 붉은 눈매의 화랑. 왜 보내져 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첫 장을 펼치는 진호의 눈빛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재깍재깍!

시계 초침 소리만 돌아가는 적막한 연습실.

한구석에 놓인 소파에 앉은 진호가 오늘 들고 온 마지막 대본을 덮었다.

"흠."

아쉽게도 '이거다!'라고 끌리는 작품이 없었다.

그럼에도 흥미가 가는 부분이 생겼다. 들어온 배역 모두 서브 주연 급이었다.

진호는 소파 옆에 쌓인 대본들을 보았다.

그 대본들도 50퍼센트는 서브 주연으로 캐스팅하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어떤 건 완전 조연이었고, 어떤 건 주연이었다.

주연 작품은 엄청난 막장에다가 이해도 되지 않아 아예 머릿속에서 삭제시켰다.

주연이란 타이틀에 혹했다가는 수렁 밑바닥까지 끌려갈 판이었다. 이럼에도 선뜻 작품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배역이 모두 철부지, 막내, 재벌집 아들이기 때문이었다.

"쯧."

고개를 저은 진호는 네 권의 대본을 옆에 치우기 위해 들어 올렸다.

팔락!

"응? 아."

예능 섭외 목록이란 말이 그제야 떠올랐다.

어차피 최소 서브 주연을 하기 전까지는 예능을 자제하자는 다미앙의 말도 있고, 그간 들어온 섭외는 죄다 요리 관련이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집어 들었던 진호는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연락이 와 있던 것이다.

"와, 나도 얼굴을 좀 알리긴 했나 보구나."

최소 데뷔 3년차가 아니면 출연 하기도 힘든 메이저 예능.

TV를 보지 않던 진호도 초반에는 자주 봤던 프로그램이었다. 생각에 잠긴 진호는 이내 곧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의 손엔 목록표가 들려 있었다.

7. 극한 생존

아시아 총괄 지사가 있는 일본에서 돌아온 다미앙은 우려를 나타냈지만, 곧 허락했다.

달려라 박 과장이 26퍼센트 시청률로 마무리하면서 생각보다 빨리방송인 이미지가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제작진과의 미팅은 순식간에 잡혔다.

방송국의 복도. 미팅 장소로 향하는 진호의 발걸음이 가볍다.

리셋 라이프를 하는 중 만약 내가 진짜 연예인이 된다면 꼭 출연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프로그램이서 그런지 약간 흥분되기도 했다. 거기다 이번 편의 제목조차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런 진호를 따라온 다미앙이 다시 한 번 우려를 나타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네. 제 요리 실력과 결합되면 꽤 재밌는 그림이 그려질 것 같지 않나요?"

그간 그 프로그램을 보며 가장 아쉬웠고, 가장 재밌었던 게 요리였다.

"……흠. 확실히 그렇기는 합니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 성격상 희석된 요리 잘하는 모델 겸 방송인 이란 이미지가 부각되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언제까지 놀고 있을 수도 없고요."

'달려라 박 과장'이 끝난 지 벌써 한 달이 훌쩍 넘겼다.

"모델 활동은 계속하고 계시니, 무리하실 필요는 없습니다만…… 흠, 알겠습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그는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다.

그는 지금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다.

'미팅이 너무 빨리 잡혔다.'

어설픈 기획사나 연예인은 명함도 못 내미는 메이저 예능이다. 진호가 얼굴을 좀 알렸다지만, 이렇게 바로 연락 올 정도는 아니었다.

"안 가세요?"

"후."

다미앙은 찜찜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발을 뗐다.

그렇게 도착한 회의실엔 제작진 외에도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놀란 다미앙은 머릿속에서 맹렬히 울리는 위험 경보에 낯빛을 굳혔다.

그러나 진호는 아니었다.

"헉!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어디까지 먹힐까 재밌게 봤어요. 서정문이에요."

모를 리가 없다.

국민 족장 서정문.

이 방송국의 금요일 저녁 예능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그랬다. 지금 미팅을 하려는 곳은 벌써 5년째 장수하고 있는 프로그램인 '리얼, 정글에 가다'였다.

"반갑습니다. 담당 PD 여정호입니다."

검게 타고 주름이 많지만, 참 선한 인상이었다.

"……진호 씨의 치프 매니저 다미앙 토마소입니다."

"이진호입니다."

"반가워요, 이진호 배우."

"저 역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PD님."

인상처럼 선하게 웃은 여정호 PD가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미팅에 앞서 이것부터 사인해 주면 고맙겠어요."

"비밀 계약서?"

"오늘 나눈 이야기가 밖으로 새어나가면 좀 곤란해서요."

여정호 PD의 눈동자가 미약하게 흔들린다.

내용을 읽어 본 진호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정호 PD가 넘겨준 펜을 들었지만, 다미앙이 다급히 막았다.

진호의 손을 잡은 그는 여정호 PD를 보았다.

"설마 비밀을 지켜야 할 만큼 위험한 도전입니까?"

"……."

"맞군요. 죄송합니다. 제 연예인을 그런 위험한 촬영에……."

진호는 손을 했다.

"진호 씨?"

진호는 놀라는 다미앙과 여정호PD, 서정문을 보며 옅게 웃었다.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이미 보내 주신 제목에서부터 눈치했으니까요. 극한 생존 편. 아마 유일하게 실패한 시베리아와 몽골 편에 버금가는 생존지와 상황이겠죠. 맞죠?"

"……후우."

침묵하던 여정호 PD가졌다는 듯 입을 열었다.

서정문도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존지는 아니지만, 생존 상황은 그렇습니다. 생존 멤버가 가져갈 수 있는 도구는 오직 나침반과 지도 두 개. 의류를 제외한 그 외의 모든 도구는 불허합니다. 그래서 무사히 생존을 마치기 위해서바이벌 전문가에게 2주간의 훈련을 받을 예정입니다."

쿵.

회의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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