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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66화 (6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6화

원래 솔로 아닌 사람 있으면 나가라고 진심 가득한 개그를 치려고 했는데, 그 모든 게 어그러졌다.

아니, 그냥 머릿속이 어그러졌다.

"정신 차려. 안 차리니?"

"아 씨, 몰라요. 그냥 가요. 나 좀 내버려 둬."

"그래도 찍은 사람은 없어."

진호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형이나, 여기 팬들이나, 직원들이나 다 똑같아. 다 나쁜 사람들이야. 그런 거 볼 때는 눈 좀 감고! 어?"

"크크크크크."

"괜찮아!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요! 내가!"

"푸하하하핫!"

"괜찮아! 괜찮아!"

"에휴. 그래, 합시다. 해야죠, 팬 미팅. 시작해 주세요."

"니가 저기서 기타 쳐야지."

"……맞는 말인데, 진짜 얄밉다."

"그게 내 직업이야."

역시 말발로는 당할 수가 없었다. 입술을 내민 진호는 무대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옆에 세워진 기타를 들었다.

팬들은 숨소리를 죽여 갔고, 진호도 마음을 다스렸다.

이윽고 그의 길고 가는 손가락이 기타 줄을 훑었다.

그렇게 팬미팅이 시작되었다.

* * *

시작이 좀 어그러지긴 했지만, 팬 미팅은 뜨거운 반응 속에서 진행 되었다.

진호는 여기 온 모든 팬들과 허그나 백허그, 볼 뽀뽀를 하였다. 여타 팬미팅에서는 추첨을 통해 일부 몇 명만 하지만, 진호는 그냥 다 해 버렸다.

위험한 곳으로 손을 넣거나 끌어 당기는 사람들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팬이 무안해했지만, 진호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한 선을 그었다. 날 좋아해 주는 것만큼 나도 여러분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고 말이다.

몇몇 이들이 못마땅해했지만, 대다수의 팬들은 잘했다며 박수를 쳤다.

이후 진호는 중간 중간 막춤을 추거나 박강호를 연기하고, 팬들과 게임을 하거나 팬들이 가져온 선물을 받는 등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노력했다.

"음. 이제 마지막 순서만 남겨 두었네요."

객석에서 아쉬움 가득한 탄성이 터졌다.

마지막은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이번은 추첨식이라서 그런지 팬들 모두 눈을 빛냈다.

무대중앙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는 진호에게로 뽑기 상자가 배달되었고, 진호는 그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137번?"

"꺅! 나다!"

방방 뛰는 여성 팬에게 마이크가 전달되었다.

여성 팬은 자신이 몇 살인지, 어디에 사는지 등을 자세히 말했다. 토끼 귀 머리띠를 한 진호는 원래 이런 건가 싶어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귀담아들었다.

"오빠는 한국대 전체 수석하셨잖아요. 제가 내년에 고3인데, 팁 같은 것 좀 알려 주실 수 있어요?"

학생 팬들의 눈이 빛났다.

"음. 일단 지옥에 입성하는 걸 축하할게."

"아아앙, 오빠!"

"농담아고. 팁이라…… 글쎄. 방송이나 인터뷰에서 몇 번 말했지만, 내가 원래 학창 시절에는 게임만 했어. 그래서 내 공부 방법은 좀 달랐어. 그냥 외웠어. 모두다. 어떤 단어, 어떤 문장, 어떤 포인트가 아니라 그냥 교과서건 참고 서건 페이지 전체를……."

"우우우우."

"별로 도움이 안 됐지? 대신라고 하긴 뭐하지만, 게시판에 동기들 공부 비법들을 올려놓을게. 그래도 될까?"

"음…… 네!"

"고맙네. 그럼 다음은……."

"53 번?"

20대 후반의 여성이 일어났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 진호야, 누나한테 시집올 생각 없니?"

"꺄아!"

"안돼-!"

"강남에 30평대 아파트 있다. 내 명의고, 대출 없어."

"아, 그거 좀 끌리는데."

"안돼!"

"안돼애-!"

"하지만 뭐…… 우리 사이에 벽이 너무 많네요."

진호는 방방 뛰는 팬들을 가리켰고, 여성 팬은 혀를 차며 앉았다.

포기하지 않았는지 눈빛이 굉장히 위험했다.

이후 추첨은 계속되었다.

팬들은 연애관이나 이상형, 앞으로의 활동 방향, 기타를 왜 그렇게 잘 치는지, 요리 실력 키우는 팁 등등 정말 다양한 걸 물었다. 진호는 스킬에 관련된 건 해금 내용을 적당히 각색해 대답해 주었다.

그렇게 마지막 추첨만 남았다.

"음. 7번이네요. 행운의 7번요."

"아싸!"

20대 초반처럼 보이는 여성이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송영일보 연예부 김나래 기자입니다."

순간 정적이 내려앉고, 뒤의 스태프들이 동요했다.

"앞으로 커버 기사는 제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누가 우리 진호를 깐다 싶으면 제가 그놈을 까겠습니다!"

"오오오. 부탁드릴게요. 단, 이유가 있으면 안돼요?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저를 때려 주세요."

"음…… 그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제 질문을 해도 되겠습니까?"

"네."

진호는 자세를 바로 했다.

"방금 전 질의응답 시간에 진호 씨는 여러가지 대답을 해 주셨습니다. 자신의 공부하는 비법이라든 지, 요리 비법, 패션 비법 등을 말이죠. 이 모두가 수준급, 아니 그 이상입니다."

"네. 그래서 부모님께 언제나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김나래가 잔뜩 기대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혹시 가지고 있는데 밝히지 않은 재능이 있습니까? 이를테면 근육이라든지? 랩이라든지?"

"오!"

"꺄!"

몸을 불태워 버릴 듯 노려보는 시선에 어이없다는 듯 웃은 진호는 이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글쎄요……."

뭔가 있어 보이는 듯한 모습에 팬들은 애가 탔다.

그들은 말해 달라 외쳤지만, 진호는 '알아 가는, 또 기대하는 재미도 있을 테니 기다려 달라.'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팬미팅은 그렇게 끝났다.

* * *

새해가 밝으며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었다.

연말 시상식에 참여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상을 타지 못했다. 본격적으로 활동한 기간이 짧은 탓이다.

어쩔 수 없이 다음을 기약한 진호는 밀려드는 스케줄을 소화해 가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덧 설날이 되었다.

작년에는 이탈리아에 가느라, 본격적으로 활동하느라 설과 추석 모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진호는 무조건 쉬겠다고 말했고, 다미앙은 통 크게도 전직원에게 명절 포함 열흘의 휴가를 주었다.

"할머니 ─!"

도착하기 전부터 엉덩이를 들썩 이던 진호는 시골집 앞에서자마 자 바로 차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여느 시골집과 다름없는 집의 문은 언제나처럼 열려 있었다.

마당 한구석에 만든 닭장에 모이를 주고 있던 작은 키의 노파는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고, 내 새끼! 아이고, 내 새끼!"

"잘 계셨죠? 작년에는 바빠서 못 왔어요. 죄송해요."

"아녀.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다 이해한다는 듯 푸근히 웃는 미소에 더 죄송스러웠다.

"할아버지는요?"

"그 영감탱이는…… 응. 저기 나오네."

"누구 왔어?"

할아버지는 누가 왔는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언제나처럼 모른 척 뒷짐을 진 채 걸어나왔다.

"할아버지!"

"허흠, 왔냐? 왔으면 들어와. 추워."

"아버님, 어머님. 저희도 왔어요."

"명절이면 보는 얼굴들. 인사는 무슨. 들어오기나 해. 추워."

할아버지는 좋으면서도 싫은 척 하는 전형적인 시골 할아버지셨다. 진호는 따라 들어온 할머니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았다.

"아이고. 비계 자리를 넉살이 채웠나. 아주 곰살맞네."

"부럽다면 부럽다고 해, 이 영감탱이야! 괜히 내 예쁜 새끼 질책 하지 말고!"

"자식들 앞이야!"

"그래서!"

삿대질을 할 정도로 언성이 높아 졌지만, 언제나 보아 오던 모습이라서 웃음만 나왔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른 척 가져 온 선물을 내밀었다.

"아버님은 양복이고, 어머님은 백이랑 화장품이에요."

그 외에도 쇼핑백이 한 가득이었다.

"뭘 이렇게나 많이 가져와? 됐어, 가져가."

"허이구, 됐다. 이 나이에 백 같은 거 들고 다녀서 뭐하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언제나처럼 몸을 돌려 앉았다.

이 집도 아버지 이형만이 크게 보태어서 언제나 미안하신 것이다. 그래도 놓고 가면 알뜰살뜰 쓰시지만, 진호는 지금 당장 보고 싶었다.

진호가 할머니 김경자에게 팔짱을 꼈다.

"할머니. 다 이 장손이 고른 거야. 그런데도 안 입을 거예요?"

움찔!

"……우리 장손이?"

"네. 이번 명절 선물은 모두 진호가 직접 번 돈으로 산 거예요."

"진호가 1년 버는 게 제가 5년 번 것보다 많아요, 아버지. 곧 이사할지도 몰라요."

조부모님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어이쿠, 그렇게나?"

"어이구, 내 새끼. 수고했다, 수고했어. 이제 손주며느리만 들이면 되겠네."

"그건 아직 멀었고요. 어서 입어 봐요. 그래야 밥 먹지. 나 배고파요, 할머니."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서로를 보더니 슬그머니 일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일어나 도우러 들어가셨다.

안방으로 들어간 두 분은 곧 어색해하며 나오셨고, 진호는 활짝 웃었다.

검게 탄 얼굴이 주름으로 자글자글하지만,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

헛기침을 한 할아버지는 안으로 들어가 냉큼 다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 옷 역시도 진호가 사 온 것이었다.

"어흠. 임자, 밥 내와. 장손이 배고프다잖어."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 어이 구 우리 장손. 밥은 제대로 먹고 다녀? 아주 얼굴이 반의반의 반쪽이 됐네."

"말도 마세요, 어머니. 밥을 고봉으로 세 그릇이나 먹고 다녀요."

"그럼! 사람은 밥심이 최고지!"

할머니가 부엌에 식사를 차리러 간 사이 일가친척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모두 아버지 이형만이 출발하기 전에 전화했기 때문이다. 고모들을 비롯한 숙모들은 모두 부엌으로 들어갔고, 어머니의 고갯짓 명령이 시작됐다.

이제야 제대로 살피게 된 어머니의 고갯짓 명령은 정말 웃음만 나오게 했다.

"동서 간이 짜네?"

"아이고 형님, 간이 더 싱거워진 거 아니에요?"

'크크크. 진짜 왕이시네.'

아버지는 삼촌 고모부들과 술을 드시기 시작하셨다.

진호는 따가운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왜?"

"……너 맞지?"

"그럼 아닐까?"

어색해하는 모습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여태껏 명절이라 시골에 내려와도 만날 게임만 했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리셋 라이프 자료 조사였다.

"아, 맞아. 장호 너 따라와 봐. 줄 거 있으니까."

"응?"

"오!"

눈치 빠른 사촌들 모두가 일어섰다.

트렁크와 뒷자리를 가득 채운 짐들을 본 그들은 깜짝 놀랐다.

"헉! 디올 옴므 청바지!"

"태그호이어 시계!"

"우아악! 플스도 있어! 고마워, 형!"

"고마워, 오빠! 진짜 잘 쓸게!"

정말 기뻐하는 그들을 보자 가슴이 뻐근해질 정도로 좋았다.

그동안 자기들 잘못이 아님에도, 아버지 이형만에게 빚을 진 부모님 때문에 말소리 한번 크게 내지 못한 사촌들이다.

기억이 난다.

3살 어린 장호가 8살이었을 때, 온 지 2시간도 안 되어가자고 땡 깡을 부렸고, 둘째 삼촌과 숙모는 아버지 어머니 눈치를 보며 장호를 쥐 잡듯 잡았다. 장호뿐만이 아니다. 다 그랬다.

"연예인 동생, 연예인 형 오빠 좋다는 게 뭐야. 이럴 때 좋은 거지."

사촌들의 소란에 나와 보았던 어른들이 못 본 척 슬그미니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들의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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