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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65화 (65/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5화

진호는 아예 자리를 잡고 뒤풀이 메인 메뉴인 통돼지를 작살내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해. 어떻게 그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쪄?"

"흐흐흐."

"그래서 이젠 뭐 할 거야?"

"스케줄 하겠죠. 형들과 누나는요?"

질문은 세 명에게 던졌지만, 답은 하나였다.

연말 시상식까지 푹 쉰다는 것.

주연 배우인 그들로서는 몸매 관리 때문에 쉬어도 쉬는 게 아닐 테지만 말이다.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주연 배우들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자리를 떴다. 어느 정도 배가 찬 진호도 술병을 들고 일어섰다.

"진호 너 꼭 나랑 다음 작품 하는 거다. 알았지?"

"흥. 좋은 대본이 있어야 같이 하지. 진호야, 나만 믿어. 내가 다음 것도 죽이게 쓸 테니까."

"흐흐흐. 불러만 주십시오!"

"오케이. 약속한 거야!"

'막장만 아니면요.'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막장은 스타일이 아니었다. 인과 관계를 이해하려는데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씩 웃으며 돌아서 다른 배우, 스태프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다니던 진호는 유독 조용한 공간을 발견 하곤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아.'

공간의 중심엔 김혜림이 있었다. 후에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지만,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듯싶었다.

잠시 고민하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마지막이니까.'

"수고 많으셨습니다."

"누구…… 아."

진호도 속으로 탄성을 터트렸다.

풀려 버린 초점과 터질 듯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취했다.

"여우다."

'역시 괜히 왔나?'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일어서려던 진호는 김혜림을 보았다.

김혜림이 풀린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날 술자리에서 네가 한 말 때문에 연기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깨닫게 됐어. 나보다 더 월등한 조건인 너도 그렇게 노력하는데, 난 여태까지 뭘 하고 있었을까."

'음? 술자리?'

"처음엔 되게 오해 많이 했어. 어디서 저런 여우가 나타났나 싶었다니까?"

'아.'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비춰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진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털어 버렸다.

남이 어떻게 바라보든 내 자신이 떳떳하면 된 것이었다.

좋아서 하는 일인데 시선을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내가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나 미워하지…… 마."

쿵! 김혜림은 끝내 정신을 놓았다.

'갑자기 결론?'

난처해진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침 그녀의 매니저가 다급히 다가오는 게 보였다.

"죄송합니다, 이진호 배우님."

"아뇨. 혜림…… 누나가 많이 취하신 것 같네요. 잘 부탁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매니저는 부축해서 나갔고, 진호는 저 사람도 참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옆자리에 박혜선이 앉았다.

"쟤가 뒤에서 너 욕하고 다닌 거 알아? 그것 때문에 단역들이 널 굉장히 안 좋게 봤잖아."

"그랬어요?"

전혀 몰랐다.

진호의 얼굴을 본 박혜선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누가 널 미워할 수 있겠니. 좋다, 우리 진호!"

"아, 이 누나도 취하셨나."

"그래, 취했따! 왜! 한잔 마셔!"

"예이, 예이."

술잔을 들던 진호는 잠시 멈칫했다.

'욕하고 다녔다고?'

가만히 생각하던 그는 이내 웃으며 술을 넘겼다. 지금 욕하지 않으면 된 것이었다.

진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6. 팬미팅

날은 갈수록 추워져 갔다.

이젠 점퍼가 아니면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웠지만, 진호는 몸이 열 개라도 모자를 만큼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도 단가가 높아지고, 들어오는 광고의 숫자나 질도 높아져서 그런지 지치지가 않았다.

그렇게 스케줄을 쫓다 보니 어느 덧 크리스마스를 앞두게 되었다. 거리에선 캐롤이 울리고 장식된 트리가 세워지는데 진호는 그 모습을 공허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올해 크리스마스는 솔로네."

-올해 크리스마스도 솔로겠지.

'죽일까?'

진호는 핸드폰을 보며 고민했다.

-음, 안돼. 그 생각 넣어 둬.

"킁. 그러는 너도 솔로잖아."

-나는 안 만나는 거고. 씁. 어허, 넣어두랬지.

"……어디냐?"

- 제주도!

"이 겨울에? 누구랑?"

-새해 일출 방송 답사차 왔지. 여자 BJ들과!

"끊는다."

통화를 종료한 진호는 사무실 한 쪽 벽면에 걸린 달력을 바라봤다. 앞으로 5일 후면 크리스마스 이브다.

팬클럽회원 수를 확인한 진호는 장 실장을 보았다.

"장 실장님, 크리스마스이브에 하는 팬미팅 있잖아요."

"예. 사회자 섭외 최종 확인 받았고, 다음 팬미팅을 위해 접촉해 온 기업들 명단을 정리하는 중입니다."

"그거……."

"예."

"솔로 팬만 오게 할 수 있을까요?"

"……예?"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그러나 진호는 진지했다.

* * *

5일이란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진호의 팬미팅이 열리는 장소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팬미팅 참가 인원수는 고작 200 명에 불과한데, 그 열 배는 온 듯 싶었다. 모두 팬미팅에서만 파는 한정 굿즈를 사기 위해서다.

혹여 진호의 얼굴이라도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혼란을 막기 위해 뒷문으로 들어온 진호는 메이크업을 받으며 기타 줄을 조율하고 있을 뿐이었다.

똑똑! 문이 열리며 오늘 사회를 맡을 허경만이 들어왔다.

"와 줘서 고마워요, 형."

"뭘, 내가 다고맙지. 그보다 방송을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되어서 팬미팅이라... 진짜 어마어마하다? 몇 명이라고 했지?"

"육만 오천 명 정도요. 이번 드라마 때문에 엄청 늘었어요. 정확한 숫자는……."

"됐어. 내 팬 아니야. 먹을 거 있어?"

"거기 테이블에 도시락 있어요."

"오!"

냉큼 달려가 도시락을 꺼내 먹기 시작한 허경만은 순간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다 미간을 좁히며 진호를 보았다.

"진짜 설마 해서 하는 말인데, 너 이거 직접 만들었냐?"

"어? 티 나요?"

"아까 들어올 때 슬쩍 보니까 입장하는 애들한테 도시락을 나눠 주던데, 그것도?"

"제가 뭐 해 줄 건 없고, 생각나는 게 그거뿐이더라고요."

"근데 그런 건 말 안 해 주던데?"

"안 먹는 사람이 생길까 봐요. 커뮤니케이션 팀장님이 그러는데 팬들 중에는 자기 연예인이 손수 만든 쿠키 같은 걸 썩을 때까지 보관하는 부류도 있대요. 이 추위를 뚫고 왔는데 그렇게 둘 수 있나요."

어이없다는 듯 진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은 허경만은 빠르게 식사를 마쳤다.

"그럼 난 먼저 가서 분위기 띄우고 있을게."

"벌써요?"

"30분밖에 안 남았어. 간다."

'30분이나 남은 거 아닌가?'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고, 허경만은 도시락 하나를 챙겨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빠르게 걸음을 옮겨 회장 안으로 들어간 그는 깜짝 놀라는 사람들을 향해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다들 식사는 맛있게 하고 계신 가요?"

"네-!"

"아, 치사해라. 자기들끼리만 먹고 있어."

웃음이 터졌다.

"혹시 아직 개봉도 안 하신 분?"

여기저기서 손이 들렸다.

"왜 안 먹었어요?"

여러 대답이 나왔는데, 대부분 아직 배가 안 고프다는 것이었다.

"그럼 안돼. 오늘 4시간 동안 하는데, 중간에 배고프면 어쩌려고? 돌아갈 때 기쁜 마음으로 가야지, 배움켜쥐고 가면 되겠어요? 그럼 진호가 얼마나 미안해하겠어요. 그냥 지금 나랑 같이 먹읍시다."

사람들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허경만도 관객석 빈 의자에 앉아도시락을 열었다.

그는 옆 사람들과 떠들며 도시락을 비웠다.

시작 5분 전이 되자 무대로 올라 온 그는 사람들 숫자를 셌다.

"와, 그 연예인 에 그 팬이야? 5 분 전인데 다 들어왔어. 이렇게 성실해도 되는 거야? 아직 도시락 안 드신분?"

주위를 둘러본 사람들은 고개를 저었다.

허경만은 한쪽을 향해 신호를 보냈고, 곧 계단에 세워 두었던 쓰레기통들이 수거되었다.

그제야 경만은 입을 열었다.

"내가 왜 계속 도시락 먹었냐고 물었는지 알아요?"

'아뇨-!'라는 대답들 사이로 몇 명의 동요가 퍼져 갔다.

경만은 미소를 지었다.

"방금 여러분이 드신 도시락 모두 진호가 새벽부터 일어나 만든 거예요. 아마 걔 성격이면 재료도 다 손수 골랐을걸요?"

"헉!"

"꺄악!"

울컥 감동하는 사람도 있고,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고,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다.

"왜 말 안 했냐면, 방금 화내시는 분들처럼 지금 안 먹고 집에 가져 가서 보관할까 봐 그랬대요. 자기 굿즈 사 준 것도 모자라 이 추위를 뚫고 와 줬는데, 그렇게 둘 수 없었대요."

객석이 숙연해졌다.

"마음이 참 기특하죠?"

"네-!"

사람들은 정말 감동하며 대답했다.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면서, 손수 만들었다며 쿠기 같은 걸 주는 연예인이 많다.

그러나 9찬 도시락을 주는 연예인은 단 한 명도 없다.

외모에 한 번 반한 그들이 또 한 번 반한 그 성실함이라면 다른 연예인처럼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정말 혼자서 만들었을 터였기에 그들이 받은 감동은 무척이나 컸다.

누군가는 눈물을 닦았다.

"그럼 조금 이르지만, 돌잔치나 결혼식도 아닌데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여러분의 강한 요구로 만들게 된 진호의 성장사를 감상 하도록 할게요. 괜찮죠?"

"네에-!"

팬들은 자세를 바로하며 무대로 내려오는 하얀 스크린을 응시했다. 그리고 아랫도리가 훤히 드러난 돌 사진을 보고 경악했다.

디올 아래 지니어스라 적힌 후드 티와 청바지를 입은 진호는 무대로 향하는 문 앞에 대기했다. 스타일리스트 최 실장이 마지막 점검에 들어갔고, 진호는 안쪽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왜 조용하지? 너무 조용한데?'

혹여 팬들이 오지 않은 것은 아닌지, 아니면 중간에 돌아간 사람이 많은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이 들었다.

모두 후문으로 돌아와서 굿즈를 판매하는 입구의 상황을 모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자 그럼! 우리 연예인 이진호를 불러 보겠습니다!

호응이 없다.

"……너무 빨리 한 걸까요?"

"일단 들어가요."

입술을 깨물며 발을 떼던 진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단 한 명이 왔어도 감사 하다.

단 한 번도 말을 섞지 않은 누군가를 이렇게 좋아해 준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진호는 온갖 잡생각을 버리며 싱긋 웃었다.

'그래. 그 사람을 위해 오늘 이 한 몸 불태워……?'

"헉!"

사람이 많다. 관객석이 거의 다 채워졌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푸크크크크. 얼빠진 거 봐라. 짜잔!"

"몰래카메라─!"

"속았지 ─!"

"아, 진짜."

진호의 물기 섞인 짜증은 핀 마이크를 통해 객석에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팬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마음을 진정시킨 진호는 입을 열었다.

"제가 누군지 아시죠?"

"네─!"

"이진호─!"

"잘생겼다─!"

"좋아. 정말 내 팬들 맞아."

다시 웃음이 터졌다.

"식사들은 맛있게 하셨어요?"

"잘 먹었어, 진호야!"

"애미야! 간이 싱겁다─!"

"잉?"

뭔가 반응이 이상했다.

진호는 설마하며 허경만을 보았다.

"그래. 내가 다 말했어, 인마. 그리고 돌 사진 귀엽더라."

"꺄아아아아아!"

"돌 사진요? 무슨 돌 사진?"

"네 어머니가 보내 주신 돌 사진. 진호, 그때부터 우람했구나."

"꺄아아아아아아!"

공간이 터질 듯한 비명과 함성이다.

"자, 잠깐 설마!"

"응."

"진짜 그거요? 내 유일한 누드?"

"응. 위아래가 뒤바뀐 누드."

온몸에서 피가 빠지는 소리가 났다.

생애 첫 팬미팅. 시작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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