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8화
하얗게 질려 들어온 진호는 다미앙에게 다가갔다.
"회의를 할 수 있을까요?"
"음? 무슨 일 있습니까?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방금 전 믿기지 않는 말을 들어서…… 이건 다 함께 들어야 좋을 것 같아요."
"흠. 마침 회의를 할 시간이군요."
정확히 아홉 시가 되자 장경아가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팀, 회의하겠습니다."
그 말과 동시에 모든 스태프가 일어서 회의실로 향했다.
옅게 웃은 다미앙도 몸을 일으켰다.
얼떨결에 쫓아 들어가니 장경아가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었고, 각 자의 자리엔 서류들이 올라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회의가 시작되었다.
"어젯밤 모두 방송을 모니터링 했을 겁니다. 소감들을 말해 주세요."
"잘생긴 우리 진호 이미지 만들어졌네?"
"잘생기고 성실한 애가 재주도 좋다? 광고 들어오겠네? 실제로 오늘 아침 증권가 찌라시를 훑어 보니 몇몇 기업에서 진호를 모델로 생각하고 있다 합니다."
"팬이 늘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오늘 아침 공식 팬클럽 지니어스의 회원수가 3만 명을 돌파 했습니다."
이 외에도 온갖 칭찬들이 흘러나왔다.
정신을 차리지 못한 진호는 그에 반응하지 못했다.
"진호 씨?"
"……아, 네. 장경아 실장님."
서로 간의 호칭이 애매했기에 이렇게 부르기로 하였다.
"요리는 어디까지 가능하십니까?"
"……음. 레시피만 있다면 불로 조리되는 모든 음식을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쉐프고유의 비법은 따라 할 수 없을 테지만요."
사람들의 눈이 빛났다.
"콘텐츠?"
"예, 조리 강습 채널과 커버 연주 채널을 미튜브에 열겠습니다. 이름은 '참 쉽죠?'와 커버 연주로 할까 합니다."
"괜찮군요. 대신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로 자막을 입히세요."
"알겠습니다, 다미앙 디렉터님."
"마케팅?"
"3페이지부터 봐 주십시오. 1차로 나온 굿즈 시안입니다. 시안이 통과되면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면서 팬미팅 응모권도 같이 배부 할 예정이니 관심을 가지고 봐 주십시오."
굿즈. 그 단어에 정신을 차린 진호가 손을 들었다.
"저 잠시 발언 좀 해도 될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몰렸다.
"아, 할 말이 있다고 하셨죠."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아직도 현실인지 잘 분간이 가질 않았다.
"음…… 방금 전 디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다미앙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패션위크에 관한 이야기입니까?"
"아뇨. 굿즈에 대해서요. 디올에서 굿즈 의상을 콜라보하고 싶답니다."
"예?"
"네."
회의실이 정적에 빠졌다.
"자, 잠깐. 저, 정말이십니까?"
다미앙도 놀라 입을 더듬거렸다.
일단 말을 뱉고 나니 놀랍게도 머리가 차갑게 식은 진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상황을 어떻게 안지 모르겠지만, 현재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 팀 존스가 그에 관한 디자인 시안을 디올 코리아에 보낸 상태라고 합니다. 원단은 디올 저가 형 라인의 원단이고, 가격은 이쪽에서 정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관한 공문은 곧 보낸다고 했습니다."
툭! 장경아의 손에서 볼펜이 떨어지고, 직원들은 입을 벌렸다.
띠리리! 지직 지직!
사람들의 고개가 급히 회의실 바깥으로 향했다.
"……정 대리? 가져와 주세요."
"예, 예!"
정 대리는 뛰어나간 것처럼 뛰어 들어왔다.
받아 들어 살핀 다미앙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었다.
그는 눈앞에 놓인 굿즈 시안을 뒤집었다.
"다시 짜야겠습니다."
"……당연히 그래야죠."
"내일 아침에 다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저."
사람들이 기겁하며 진호를 보았다.
마찬가지로 놀란 진호는 머리를 긁었다.
"굿즈 말인데요. 저도 생각해 본 게 몇 개 있어서요. 혹시 이런 게 될까요?"
진호는 그동안 생각했던 걸 말했고, 사람들의 입은 다시 벌어졌다.
다미앙도 다시 헛웃음을 터트렸다.
* * *
다다다닥! 계단을 날듯 뛴 강경미는 문을 열자마자 크게 외쳤다.
"엄마! 택배 어디 있어!"
"다녀왔습니다는!"
"다녀왔습니다!"
"어이구, 네 방에 있어!"
보통 사이즈의 우체국 택배 상자.
그녀는 재빨리 테이프를 뜯었다.
"……와."
가장 먼저 검은색의 텀블러가 눈에 들어왔다.
하얀색의 필기체로 멋들어지게 적힌 Genius. 팬클럽 이름이다.
"…… 진짜 실생활에 쓰라고 만들었구나."
조금 아쉽기는 했다.
그녀는 다음 물건을 꺼냈다. 진호의 얼굴이 박힌 CD였다.
"흐히히히히. 안경 쓴 모습도 존잘. 완전 뇌섹남."
"어이구. 잘한다. 이번에 반한 놈팡이가 걔야? 뭐, 잘생기긴 했네."
"놈팡이라니!"
"그럼? 어린애들 코 묻은 돈 뜯어다가 배를 불리는 놈들이 놈팡이 아니면 뭔데?"
"아니거든! 이거 고1 영어 강의 동영상이거든!"
진호가 생각한 굿즈가 바로 이것이었다.
"……얘가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어디서! 엄마가 말했지! 한 번만 더 쓸데없는데 돈 쓰면 아예 용돈을 끊어 버리겠다고! 너 진짜 각오해!"
"진짜야! 아 씨, 잠깐만 있어 봐!"
강경미는 포장을 뜯어야 하는 이 상황에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컴퓨터에 CD를 집어넣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칠판 앞에 선 진호가 나왔다.
"어머?"
-안녕, 지니어스? 이걸 본다는 건 나보다 어리다는 뜻일 테니까 반말할게?
"네!"
"얘가 진짜……."
-일단 학생들이 수학 다음으로 포기하는 게 영어야. 왜 그런 걸까? 왜 영어는 어려운 걸까? 1챔터에서는 이 궁금증에 대해…….
강경미는 동영상을 끄며 엄마 이옥자를 보았다.
"봤지? 영어 강의 동영상 맞지?"
"……홍! 그래 봤자 코 묻은 돈을 갈취하는 건 마찬가지지. 연예인이 똑똑해 봤자 얼마나 똑똑하다고. 검증은 된 거라고 하니?"
"엄마. 우리 오빠 한국대 경영학과야. 그것도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 전년도 수능 유일 만점."
이옥자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경미는 다음 물건을 꺼냈다.
"이건 기본 요리 30선 강의 동영상. 이건 화보집이니 패스. 달력도 패스. 포스터도 패스. 이건 여름용 셔츠. 근데 이게 진짜란 말이지. 엄마, 명품 브랜드 디올 옴므 알지? 정장 한 벌에 수백만 원씩 하는."
"……그런데?"
"이게 그 디올 옴므의 수석 디자이너인 팀 존스가 직접 디자인해 준 거야. 봐, 디올 보이지?"
"얘, 얘가 미쳤어!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이런 걸 입어! 당장 반품해!"
"아직 말 안 끝났거든? 이거 한 벌에 고작 5만 원이야!"
"……뭐?"
"우리 오빠가 팀 존스의 뮤즈라서 공짜로 디자인해 준 거야. 이제 알았어? 이 딸은 정말 합리적인 소비를 한 거라고."
"그, 그래서 얼만데?"
"다 해서 20만 원."
"돌았니!"
"엄마 잘 생각해 봐. 한국대 전체 수석이 하는 영어 강의야. 한국대 언니 오빠들한테 과외 받으면 얼마 들어? 과목당 달에 천만 원씩 들지? 그렇지? 물론 심화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대생이야."
"……."
이옥자는 반박하지 못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요리는 또 뭐야?"
"황재상 쉐프, 박 코흐트 쉐프, 레이먼 최 쉐프 알지? 우리 오빠 그분들이 공인한 요리 천재야."
이옥자는 눈을 껌뻑였다.
"한번 봐 볼래?"
"아니기만 해 봐라."
강경미는 어디까지 먹힐까 1회를 다시 보기로 틀어 주었다.
그렇게 1시간이 흐른 후.
"얘가 누구라고? 강의는 영어밖에 없다니?"
강경미는 속으로 씩 웃었다.
그건 진호의 여중고생 팬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 * *
《굿즈.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 하다.
영어 강의 동영상, 수학 강의 동영상, 국어 강의 동영상.
제목을 보고 클릭한 독자들은 지금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런데 방금 언급된 이것들은 엄연히 판매되고 있는 한 모델의 굿즈다.
이 모델은 현재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어디까지 먹 힐까'에서 황재상 쉐프의 오른팔인 이진호다.
보통 굿즈라 하면 부채나 야광봉, 포스터를 떠올릴 테지만, 이진호의 굿즈는 다르다.
국어, 수학, 영어 등 기본 교과 모두가 망라된 동영상 강의가 굿즈 숍에서 판매되고 있다.
물론 이것만이 아니라 다른 연예인처럼 화보집, 달력 같은 것을 판다. 디올과 콜라보레이선 한 의상도 한정판으로 판매한다.
누군가는 그의 학력을 이것이야 말로 외모만 믿는 악덕 상술이 아니냐고 꼬집을 수 있지만, 우린 이진호가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유일한 수능 만점. 한국대 전체 수석. 한국대 경영학과 입학.
그의 학력이다.
<중략>
이렇듯 팬과 연예인 모두 원윈 할 수 있는 굿즈야말로 진정한 굿즈가 아닐까 한다.》
-네, 다음 기레기.
┗팩트만 썼는데? 솔까 이게 진짜 굿즈 아냐?
┗네, 다음 듣보잡 팬.
┗ㅋㅋ 지들 연예인 못한다고 열폭하기는.
┗아니거든! 우리 오빠들도 다 할 수 있거든!
-미쳤네. 그러니까 천만 원짜리 과외가 단돈 만 원이라고?
┗동생이 샀길래 한번 봤는데, 연예인 따라다니는 애들 공부시키기에는 좋겠더라. 이런 오빠 어디 없나…….
┗미챠! ㅋㅋㅋㅋ! 팀 존스 디자인이, 디올이 고작 5만 원이야!
툭!
핸드폰을 끈 장경아는 굿즈 숍에 접속해 보았다.
한정판으로 각 디자인별로 3천 장씩만 뽑은 디올 의류는 모두 솔드아웃이었고, 화보집과 달력, 포스터, 텀블러 등의 한정품도 솔드 아웃이었다.
강의 동영상은 과목별로 들쭉날 쭉했지만, 평균 판매량이 무려 만 장이었다. 총 판매량이 아니라 과목별로 말이다.
"……이게 정말 통할 줄이야."
그 어떤 아이돌도 시도해 본 적이 없던 방식의 굿즈.
다미앙이 관련 서류를 만들고, 사업자를 냈을 때까지만 해도 말렸던 그녀는 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진호와 다미앙은 자신이 예측할수 있는 범주를 쉽게 벗어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장경아는 사무실 한편에 놓인 소파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정말 이직하길 잘했어. 성공한 덕후가.'
"네?"
"아닙니다. 일하세요."
그녀의 눈은 다시 소파에 앉은 진호에게로 향했다.
부르르!
"응? 응?"
갑자기 드는 오한에 주위를 둘러 본 진호는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다시 노트북에 어디까지 먹힐까를 쳐 봤다.
2화 시청률 10.3퍼센트로 마무리 됐다. 엄청난 대성공이었다.
입이 절로 찢어졌다.
우우웅!
동기였다.
"예, 동기님. 잘 계셨습니까?"
-님아. 숨질래요? 그 강한번 건너 보실래요?
"언제 적 드립이세요?"
-말 잘해라. 지금 내 옆에 방망이 들고 있는 놈만 다섯이다.
"……소주 무한으로 살게!"
-그렇지!
-우리 진호가 도의를 알아, 응?
"선배님들은?"
-당연히 잡히면 가만 안 두겠다고 하지. 그러게 그런 광역 도발은 왜 했냐? 그것도 그런 재밌는 예능에서.
"난 맹세코 편집해 주실 줄 알았다. 그 외에는?"
진호의 눈이 빛났다.
"내 강의 영상은 어땠어? 귀에 좀 들렸어?"
-아, 그거? 전혀.
순간 심장이 서늘하게 식어 버렸다.
-뭔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딱 거기까지? 만 원이니까 여동생 던져 줬지 안 그랬으면 바로 반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