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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55화 (55/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5화

결국 끝났다. 손님들은 모두 만족 스런 미소로 돌아갔고, 남아 있던 구경꾼도 발길을 돌렸다.

"진호야, 대충 하고 와. 좀 쉬고 청소하자."

"이것만 하고 갈게요."

그렇게 세 명이 테이블에 앉아 물을 마시자 진호는 슬그미니 빈 그릇에 면과 백짬뽕 국물을 담아 푸드 트럭 옆으로 향했다.

"이것 좀 드세요, 할아버지."

푸드 트럭 옆 벤치, 나무가 만든 그늘에 누워 있던 허름한 옷차림의 노인이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빛바랜 티셔츠에 여기저기 찢어진 청바지.

"……날 말하는 겁니까?"

진호는 노인의 눈이 의외로 맑고 깊은 것에 놀랐다.

"많이 힘드시죠? 날도 무척 덥고. 별거 아니지만, 힘내세요."

"그러니까 날 주려는 겁니까?"

당황으로 물든 눈을 보니 안쓰러움이 앞섰다.

"단골을 만들려는 작은 상술이죠. 할아버지만 아세요. 단골이 되시면 새우 한 마리와 오징어 세 점을 더 넣어 드려요."

"……허허. 고맙습니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

"오래 사시는 게 은혜를 갚는 거 예요. 오래 사세요."

"허허허헛. 그러지요."

고개를 꾸벅 숙인 진호는 사람들이 앉은 테이블에 앉으며 그제야 넋을 놓았다. 머리에서 푼 두건이 힘없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누구야?"

"늦은 연세임에도 도전하시려나 봐요."

사람들은 금방 사정을 알아차렸지만, 이내 곧 모른 척 너스레를 떨었다.

"아니, 그런 사람에게 쉐프님의 요리를 준 거야? 저 나이 드신분에게? 그러다 아까처럼 낙담하면 어쩌려고?"

실제로 맛을 보고 절망하는 사람도 있었다.

"장사하는데 나이가 있나요. 어리든 나이를 드셨든 손님을 상대하는 건 똑같은데요. 그리고 장사를 하려면 그 정도 각오는 있어야죠."

진호는 단호히 말했다. 좀 민감한 이야기라 분위기가 식었지만, 황재상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장사하려면 쓴 소리를 넘어 독도 삼킬 줄 알아야지. 부모님이 잘 키우셨네. 나중에 부모님 모시고 가게에 들러. 좋은 사람은 사귀고 봐야지."

"흐흐. 제가 또 그런 건 거부 안 하죠. 미리 잘 먹겠습니다!"

분위기가 다시 밝아졌다.

"크흐흐. 오늘은 얼마나 팔았을까나?"

"짜장면 32그릇, 짬뽕 67그릇, 백 짬뽕 45그릇요."

"짜장 서른둘, 짬뽕 예순일곱 백 짬뽕 마흔다섯."

경만의 말에 동시에 답한 진호와 황재상은 풀썩 웃고 말았다.

허경만과 윤서아, 제작진은 둘을 괴물 보듯 보았다.

"그러면 매출이……."

"딱 4천 위안요. 한화로 약 67만 원?"

짜장면 20원, 짬뽕 30원, 백짤뽕30 원.

"……나 그냥 내 가게 접고, 여기서 장사할까 봐."

사람들은 황재상의 너스레에 웃지 못했다.

2시간 반 만에 67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아무리 카메라가 있고 진호가 있어도 이건 미쳤다고 봐야 했다.

"저는 스태프에서 빼주세요. 미루어 놓은 일이 많아서."

"에이. 진호 네가 빠지면 안 되지. 손님이 안 오잖아."

"저도 잘생겼습니다만!"

"저도요!"

"그래. 경만이랑 서아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음하하하핫!"

웃음꽃이 피자 몸이 좀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제작진도 긴장을 풀고 웃었다.

"그래서 그 쉐프들이 우리 음식 어떻게 평가했어?"

쩌적! 박영후 PD가 경악한 눈으로 황재상을 보았다.

"진호 때문에 다 들켰어. 세 명이었잖아."

"제가 좀 개코라서. 흐흐."

씩 웃은 진호는 미션 클리어 상품을 달라며 양손을 내밀었다.

PD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제작진도 허탈하게 웃었다.

"……맞습니다. 오늘 특별히 초청 한 쉐프 세 분께서 별 다섯 개 중 다섯 개 만점을 주셨습니다. 후."

서프라이즈로 놀래 주려고 했는데 다 망쳐 버렸다.

PD는 맥이 빠졌다.

"이번 미션 클리어 상품은 여러분의 옷입니다."

"옷?"

"매니저분들께서 여러분의 옷을 보내오셨습니다. 황재상 쉐프님은 아내분께서……."

"필요 없는데?"

"저도 필요 없는데요? 여름이라 빨아도 금방 마르는데요, 뭘."

공기가 다시 얼어붙었다.

"경만이랑 서아는?"

황재상과 진호의 은근한 눈빛에 두 남녀는 눈을 빛냈다.

"저도 뭐. 옷이야 시장통에서 사면 됩니다. 오늘 돈도 벌었고."

"저도 땀을 흘리다 보니, 옷이 딱히 필요가……."

"그러시다네요."

어떻게 할 거냐는 듯한 진호의 시선에 눈동자를 굴린 PD가 슬그머니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진호는 무조건 옷을 받아야 했다.

그게 후원의 조건이었다.

"뭘 원하십니까?"

"숙소에 세탁기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죠, 쉐프님. 푸드 트럭을 더 큰 걸로 교체해야죠. 튀김류나 상해 명물인 만두 같은 걸 메뉴로 하면 지금 저걸로는 무리일 텐데요."

"말을 들으니 또 그러네. 탕수육이나 멘보사야 튀김기가 있으니 상관없다고 해도 만두는 이야기가 또 다르지."

사오롱바오, 소룡포. 상해의 명물 요리 중 하나로서 찐만두다.

"부디 작은 걸로 부탁드리겠습니다!"

"흐음…… 쉐프님. 몸이 좀 찌뿌둥하지 않으세요?"

"그러게. 오늘 다들 수고했으니까 마사지나 받을까?"

척 하면 착이었다.

어제오늘 호흡을 맞추며 마음이 통한 둘은 서로를 보며 웃었고, 박영후 PD의 얼굴에서 식은 땀이 흘렸다.

마사지는 미션 클리어 상품이 아니라 협상을 위한 테이블이었다.

결국 마사지와 옷, 근사한 저녁 식사를 받는 것까지 해서 미션 클리어 상품을 수령했다.

PD와 제작진은 머리털을 쥐어뜯 었지만, 또 심술을 부린 대가였다. 평가단으로 현역 셰프는 너무했다. 다음 날, 푸드 트럭은 어느 대학 근처로 이동했다.

전날 저녁부터 비가 내려 걱정이 앞섰지만, 다행히도 장사할 시간이 되자 날이 개었다.

그래도 거리엔 사람들이 돌아다니지 않았다.

적당히라도 있으면 화려한 불꽃 쇼로 시선이라도 끌어 모으겠는데, 정말 없었다. 네 사람의 얼굴에 수심이 드리워졌다.

"앉아 있지 마. 핸드폰 보지 마. 그런 곳엔 손님 안 와. 차라리 멍 때려도 되니까 테이블 닦아."

"예!"

"진호 넌."

"호객 행위를 하겠습니다."

"나도 도울게."

"오! 누나가 도와주면 고맙죠. 남자 손님 많이 오겠다."

기분이 좋았는지 진호의 팔을 툭 친 윤서아가 눈을 흘기며 거리로 나섰다. 진호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어떻게 하긴요. 그냥 냅다 질러야지."

진호는 양손을 입 앞으로 모으고서 크게 소리쳤다.

"미남 미녀들의 푸드 트럭입니다! 한국 중화요리의 대가께서 직접 요리를 하십니다! 엄청 잘생기셨습니다─!"

현지 코디네이터를 통해 통역받은 제작진은 사례가 들었고, 황재상도 어이없다는 듯 웃어 버렸다. 진호는 윤서아에게도 가르쳐 주었다. 재밌어 보였는지 허경만도 같이했고, 곧 효과를 보았다.

손님 한 명이 들어온 것이다. 상관없다. 한 명이라도 앉아 있으면 된다.

그 순간이었다.

우르르르르, 지축이 흔들리는 듯 한 소리가 들리더니 수십 명의 사람들이 푸드 트럭을 세워 놓은 공터 안으로 진입했다.

깜짝 놀란 진호는 이내 익숙한 얼굴을 발견하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앗! 당신들은?"

"오늘 보자고 했죠?"

"……와, 진짜 중국에서도 팬미팅 해야겠다."

"그럼 고맙죠!"

"그 전에 전화번호부터 주세요. 좀 이따가 장사 끝나고 밥 사 드릴게요. 드시고 싶은 건 뭐든."

너무 고마워서 뭐라도 해 주고 싶었다.

어제의 그 여성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진호야!"

"네! 좀 이따가 봐요!"

진호는 다급히면을 삶는 냄비로 향했다가 다시 굳어 버렸다.

우르르르, 다시 사람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상큼한 여대생들이 아니라 염색을 하고 청반바지를 입은, 꽤 프리한 옷차림의 남녀들이었다.

"어? 할아버지는?"

어제의 그 노숙자 할아버지였다.

오늘 옷은 청바지에 반팔 남방으로 꽤 깔끔했다.

"제가 이 은혜를 꼭 갚는다고 했지요? 매상 올려 주려고 왔습니다."

진호는 의아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여대생들이 깜짝 놀라 노인을 보고 있었다.

"자, 장칭?"

* * *

"대장군 역할 맡은 그 배우 맞지?"

"어머! 어머! 어떡해!"

"사인 받을까?"

여대생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 유명하신 분인가 봐요?"

"허헛. 그저 상해 연극 바닥에서 죽지 않고 버티는 지독한 늙은이에 불과합니다. 운 좋게 저를 아는 사람들인가 보군요. 아, 이 아이들은 제 극단의 단원들입니다."

눈이 동그래지는 말이었다.

소개를 하자마자 고개를 숙이는 단원들의 모습을 보니, 그의 인망이 얼마나 대단한지 예상되었다. 얼굴이 절로 달아올랐다.

"죄, 죄송합니다. 정말 할 말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거지역할을 한다고 그런 옷차림으로 벤치에 누워 있던 게 잘못이었죠. 그래도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제 연기가 일상에 스며 있다는 뜻이니, 연기자에게 그보다 더한 칭찬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

이젠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런데 촬영을 하는가 봅니다."

"아, 네!"

진호는 어디까지 먹힐까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과연 한국이군요. 발상이 참 특별합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주문하세요. 금방 내어 드릴게요."

"맞아. 단골이 되면 새우 한 점과 오징어 세 점을 더 넣어 준다고 했지요? 그 말 아직 유효합니까?"

"그, 그럼요! 주, 주문 받겠습니다!"

당장이라도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 * *

진호는 장칭과 그의 극단원들에게 직접 서빙을 하며, 입맛에는 맛는지 부족함은 없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여 대생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 때문에 온 손님들이니 끝까지 대접하려는 것이었다.

이후 식사를 다 마친 그들과 사진을 찍으며 짧은 교류를 가졌다. 장칭과는 메일 주소도 교환했다. 메신저로 친구도 맺었다.

흘러가는 작은 인연일 수도 있지만, 참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가진 분이었다.

알아 둬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호는 수고하란 말을 남기고 공 터를 빠져나가는 장칭을 바라보다가 이내 머리를 긁으며 다시 트럭으로 향했다.

첫 손님은 거하게 치렀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비 온 이후, 날이 급격히 습해져서 그런지 손님들이 찾질 않았다. 아무리 외쳐도, 진호와 황재상이 불쇼를 보이며 냄새를 풍겨도 손님의 발목을 붙잡지 못했다. 제작진의 표정도 좋지 않아졌다. PD는 10분 전에 피운 담배를 다시 피우기 위해 자리를 떴고, 메인 작가님은 손톱을 깨물었다.

"이러다가 다 팔지도 못하고 장사를 접어야 하는 거 아냐?"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긴장이 느슨해진 스태프들의 대화에 진호를 입술을 깨물었다.

황재상도 약간은 포기하는 눈빛을 보였다. 허경만도 윤서아도 테이블에 앉아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었다.

'기타를 쳐야 하려나?'

툭툭!

반사적으로 주위를 훑으며 악기 판매점을 살피던 진호는 깜짝 놀라 옆을 보았다. 부부처럼 보이는 장년의 남녀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서 있었다.

"저, 여기가 어먹반점인가요?"

"맞잖아. 한국어 간판. 웨이브에 올라온 사진과 똑같아."

'SNS에 알려졌구나!'

팬이라던 여대생들이 도움을 준 듯싶었다.

"예, 그럼요! 어서 오십시오! 한국 중식의 대가께서 요리를 하시는 어먹반점입니다!"

"봐, 맞대잖아!"

"와, 정말 여기가 장칭 배우가 칭찬한 그곳이 맞단 말이지?"

진호는 그들의 대화에 깜짝 놀랐다.

"자, 장칭 할아버지가요?"

"허헛. 여기 백해탕면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주문은 저기서 하면 되는 겁니까?"

"아, 예!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혼란해하면서도 그들을 허경만에게 안내한 진호는 장칭에게 메일을 보내려다 다시 들어오는 손님들에 핸드폰을 집어넣어야 했다. 이번엔 40대의 중년인 셋이었다.

"저, 이곳이 장칭 배우가 웨이보에 올린 그 한국 푸드 트럭 맞습니까?"

이것이 시작이었다.

방금 전까지 사람 몇 명 지나지 않았던 거리에 인파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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