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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52화 (5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2화

"진호야, 넌 뭐 하고 있어? 같이 성토해야지! 이대로 이 땡볕에 노숙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니죠."

"하하. 농담입니다. 숙소와 연습용 식재료, 여분의 옷. 모두 저희 제작진이 준비해 두었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사람들은 이내 허탈하게 웃으며 PD를 흘겨봤다. 그러나 진호는 안심하지 않고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그냥 드리면 너무 심심 하겠죠?"

사람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역시.'

나연석에게 허락을 맡았다고 했다. 뒤에 나올 말이 예상됐다.

"그래서 저희 제작진이 간단한 미션을 드릴까 합니다."

"아인데! 심심해도 되는데! 지금 엄청 재밌는데!"

"그런 것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PD님!"

"미션 종목은."

"서아야, 저 입 막아! 이 사람들이 지금!"

다시 난장판이 됐지만, 무더위가 금세 진압시켰다.

"큼. 미션 종목은 총 네 개입니다. 상식, 스포츠, 요리, 연기. 각 미션당 상품은 숙소, 연습용 식재료, 여분의 옷. 그리고 상해 최고의 중식당에서의 근사한 저녁 식사입니다."

사람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모두 중요했다.

진호는 속으로 웃음을 참으며 조용히 주먹을 쥐었다.

연기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 있는 분야였다.

'상식이야 전국 수석이 있고, 스포츠는 테니스의 황태자. 요리는 불을 지배하는 자가 있어.'

특히 요리는 뭐가 나와도 자신 있었다.

[스킬: 불을 지배하는 자]로 인해 촉각은 물론이고 미각과 청각, 후각이 발달되었다. 특히 후각과 청각이 엄청나게 발달되었다.

눈을 다친 주인공의 눈이 되어 줘야 했던 청각과 후각.

그리고 촉각, 정밀한 손과 팔의 컨트롤.

진호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만 믿으세요. 저기서 최소 두 개는 자신 있어요."

주위에 있는 출연자들에게만 닿을 작은 목소리.

흠칫 놀랐던 출연자들이 입을 가리며 옅게 웃었다.

'맞아. 진호가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했지?'

'한국대 다니는데 상식 정도야!'

출연자들의 눈에 기대감이 서렸다.

큼! 헛기침을 한 진호가 모른 척 손을 들었다.

"미션 참가자는 저희가 정할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렇지! 됐다!'

'아자!'

진호와 출연자들의 미소가 짙어졌다.

불길하게도 PD의 미소도 짙어졌다.

"단, 미션 하나에 도전자는 한 명 입니다. 중복 출전 할 수 없습니다."

쿵! 나연석 사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 * *

진호와 출연자들은 패닉에 빠졌다.

박영후 PD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자, 잠시 저희끼리 회의를 해도 되겠습니까?"

여기서 예능 출연이 가장 많은 허경만이 센스를 발휘했다.

"네. 얼마든지요. 시간 많습니다."

"어후, 얄미워라. 다들 모여 주세요."

그렇게 둥글게 모였다.

"요리는 쉐프님이 하시면 될 것 같고. 연기는 서아가. 문제는 상식과 스포츤데…… 휘이, 뭐 하는 겁니까? 염탐해요?"

허경만이 카메라맨을 쫓았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에이. 진호야, 뭐 할래? 난 솔직히 둘 다 자신 없다."

미간이 절로 찌푸려지는 질문이었다.

한데 지금은 그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

"그런데 저희 문제 유형과 문제에 걸린 상품이 뭔지도 모르지 않나요?"

잠시 그들 사이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급히 PD를 봤다.

"피, PD님? 문제 유형과 상품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네에. 얼마든지요. 상품의 사진도 함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왜인지 PD가 가까이 다가와 A4 용지를 보여 주었다.

역시 이유가 있었다.

윤서아가 얼굴을 가리며 주저앉았고, 허경만은 결국 박영후 PD의 멱살을 잡았다. 황재상의 얼굴도 빨갛게 달아올랐다.

"야, 이 양아치야! 이게 상식이냐! 이게 스포츠야! 요리냐고!"

"나 지금 냄새 못 맡는다고 이러는 거지!"

다시 난장판. 진호는 허탈하게 웃었다.

'역시 나영석 사단. 뒤통수 뒤에 또 뒤통수를 때리는구나.'

출연자 맞춤 저격 미션들. 뒤통수 뒤에 또 뒤통수.

나연석을 불신의 아이콘으로 만든 시그니처 진행이었다.

"저흰 해도, 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저흰 정말 생각해서 기회를 드리는 건데…… 뭐, 안 하실 거면 마시고요."

덥썩! 허경만이 PD의 어깨를 잡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누, 누가 안 한다고 했습니까. 너, 너무 좋아서 그런 거죠."

"그, 그럼요. 호호호."

"하하하하핫."

"다시 회의를 해도 될까요?"

박영후 PD가 보살처럼 웃었다.

"예. 의견이 맞춰질 때까지 천천히 하세요."

물러나 다시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보았다.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하아. 일단 정리해 보죠. 상식인 노래 제목 맞히기는 연습용 식재료, 스포츠인 테니스공 리프팅은 여분의 옷, 연기인 동물 흉내내기는 근사한 저녁 식사. 요리는…… 냄새로 중식 대표 식재료 맞히기."

요리가 가장 중요한 숙소다.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2층의 주택. 그런데 그걸 포기해야 했다.

"힘드시죠?"

"그렇지."

황재상이 씁쓸히 웃었다.

그는 사고로 인해 후각을 거의 상실했다.

"연기는 어쩔 수 없이 서아 네가 해야 돼."

"……네."

사람들의 얼굴이 더 우울해졌다.

"후, 문제는 정말로 상식과 스포츠네."

"그런데 꼭 요리를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진호를 보았다.

진호는 옅게 웃고 있었다.

"뭐?"

"제가 요리할게요."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호는 정말 자신 있었다. 다미앙 씨가 로비를 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시험해 보셔도 됩니다."

"숙소는 포기. 옷은 이진호, 식재료는 허경만, 식사는 윤서아."

"참 잘 배웠어. 어떻게 그런 못된 것만 배웠어?"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 법이지."

"그렇다고 그런 사기가 용납되는 건 아닐 텐데?"

출연자들에게 보여준 고급 숙소는 원래부터 잡지 않았다. 실패할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넷 중 하나는 쉬운 걸 넣었다.

하나쯤은 성공해야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멋진 자막이나 생각해."

"나 못 믿어? 아, 정해졌나 보다."

"저희 정해졌습니다!"

제작진들은 다 알고 있다는 듯 여유롭게 웃었다.

출연진을 촬영하던 카메라맨의 어색한 미소는 닿지 않았다.

"네. 그럼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예! 상식은 저! 연기는 서아! 그리고 스포츠는."

'이진호겠지.'

"황재상 쉐프님입니다!"

"……네?"

제작진은 갑자기 뒤통수가 얼얼 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진호와 출연자들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당황한 박영후 PD는 다시 물었지만, 도전자는 바뀌지 않았다. 다 실패해도 나름의 그림인지라 촬영은 그대로 시작됐다.

역시나라면 역시나였다.

"라-?"

"땡!"

"아니, 라마는 어떻게 흉내내야 하는데요!"

"정근아!"

한 마리의 인간 라마가 제작진 사이에서 걸어나왔다. 실패해 울상을 지었던 윤서아도 웃음을 피할 수 없었다.

발등으로 테니스공 리프팅은 연습할 시간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었던 것 같다.

"어? 어?"

"팔! 구! 시입-! 이야야야!"

"쉐프니임─!"

"으하핫! 내가 재작년까지 조기축구회 회원이었던 건 몰랐지?"

제작진은 크게 동요했지만, 이내 진정했다. 어차피 여분의 옷이 걸린 리프팅은 출연자들을 위한 제작진의 선물이었다.

경쾌하고 요란한 비트음이 울려 퍼진다. 듣는 순간 허경만은 넋을 놓았다. 힙합이다. 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

"……."

"땡!"

이제 드디어 문제의 마지막이다.

그러나 제작진은 평온했다.

쉐프도 아닌 일반인. 그들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진호 씨는 이것들, 아니 이 안대로 눈을 가리세요."

제작진은 같이 내밀었던 수건을 가져갔다.

이는 얕보고 있다는 뜻이었기에 진호는 속으로 웃으며 안대를 썼다. 눈앞이 껌껌해지자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그럼 첫 번째 식재료입니다."

저벅저벅 발소리와 함께 코앞에 무언가 내밀어졌다.

풋풋하면서도 달큰하며 상큼한 매운 향기.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식재료가 있기 때문에 일반인은 잘 골라내지 못하며, 어린아이가 꽤 골라내는 식재료 중 하나였다.

"정답 피망."

"……정답."

너무 빠른 답변에 놀란 나머지 한 박자 늦게 대답한 제작진은 다음 식재료를 준비했다. 그런 그들은 침착했다.

'뭐, 이건 쉬운 거니까.'

원래 역경은 뒤에 오는 법이었다.

그러나 제작진은 역경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

"정답 죽순."

"정답."

"정답. 너무하신다, 정말. 대파."

"……정답. 혹시 모르니까 진호 씨는 이 수건으로도 눈을 가려 주세요."

"정답! 와, 진짜 이건 반칙 아니에요? 꼴뚜기!"

"……정답. 지금부터 입 열면 실패로 간주하겠습니다!"

박영후 PD의 관자놀이에서 식은 땀이 흐른다.

그의 뒤에선 제작진도 동요를 보였다.

그러나 진호의 정답 퍼레이드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대망의 마지막 식재료만 남게 되었다.

숨 막히는 긴장이 공간을 지배하는 가운데 진호는 평온했다.

마지막 식재료가 코앞에 오기도 전에 이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너무도 독특한 향기도 있지만, 소거법으로 지워 가니 냄새를 맡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중식의 대표 식재료는 이것만 남았을 뿐이었다.

"정답 고……."

"잠깐! 다시 생각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틀리면 무조건 씻기도 힘들고 에어컨도 없는 도미트리에서 주무셔야 해요."

협박이라고 보기엔 목소리가 너무 떨렸다. 진호는 씩 웃었다.

"정답 고수."

"……우아아아아! 숙소다! 에어컨이다!"

"이야야야야! 진호야─!"

안대와 수건을 벗은 진호는 PD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고, 하얗게 질린 PD는 비척비척 다가와 쪼그려 앉는 척 슬그미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우리 협상하실래요?"

협상은 없었다. 여분의 옷과 숙소를 얻은 마당이니, 식사와 연습용 식재료는 제작진이 지급한 선금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제작진이 1시간 동안 어르고 달랬지만, 이미 뒤통수를 맞은 네 사람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제작진은 사정을 설명하였고, 지금 예약할 수 있는 숙소는 보여준 것보다 약간 좋지 못한 곳이라는 걸 시인했다.

예능 경험이 많은 허경만은 그걸 꼬투리 잡으며 식사권까지 얻어 냈고, 제작진은 그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뭔 사람의 코가……."

멘탈이 나간 박영후가 혀를 내둘렸다.

'연석 형님이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한 게 이거였구나.'

황재상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진호라는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작정하고 넣은 것까지 모두 맞혔다.

그런데 왠지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밉지가 않았다.

"윤지야. 그림 죽이게 나온 것 같지?"

"말이라고 해? 오빠는 이걸 이용 할 생각만 해."

영상이 너무 기가 막히게 빠졌다. 캐릭터가 모두 살아 있었다.

통으로 다 날려 버린 후 시즌1 때처럼 진행하돈지, 아니면 다 살리든지. 두 개의 선택지밖에 없었다.

박영후의 생각은 후자로 기울 수 밖에 없었다.

그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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