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51화 (5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3권 1화

1. 상해의 푸드 트럭

중국 상해. 상하이는 인구 이천사 백만 명이 넘는 도시다. 그 상해의 공항 입국 게이트로 일단의 사람들이 걸어나온다.

"여기가 상해! 상하이!"

"오오. 깔끔해."

진호와 사람들은 공항 내부를 둘러보며 의외란 감정을 가졌다. 더럽고 시끄러운 이미지의 나라가 중국이건만 공항은 의외로 깔끔하고 깨끗했다.

하지만 그런 감상도 잠시였다.

곧 두 눈에 전의와 흥분이 가득 해진 사람들은 마저 입국 게이트를 넘었다.

"PD님. 우리 옷은 어떻게 해요?"

"맞아요, 저희 옷부터 사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허경만, 윤서아가 빈 캐리어를 퉁퉁 두드린다.

홀쭉한 등산 배낭을 멘 황재상만이 씁쓸히 웃고 있다.

"우리 옷까지 사 주다니. 제작비가 감당되겠어요?"

제작진 측에서 옷은 걱정말라며, 속옷만 가져오라고 했다.

협찬인가 싶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더운 날씨다 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협찬은 촬영이 끝나면 돌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수로 찢어지기라도 했다가는 물어 줘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아, 그 전에 일단 여권부터 주세요. 저희가 보관하고 있다가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실 때 돌려 드리겠습니다."

박영후 PD의 미소가 왠지 이상 했지만, 출연자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여권을 맡겼다. 리얼한 그림을 위해 매니저는 따라오지 못하게한 상황이다 보니 개인이 보관 하고 있는 것보다는 제작진이 가지고 있는 게 나았다.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의아한 점이 있었다.

"PD님. 저희는 입국부터 촬영하는 건가요? 시즌1 때는 안 그랬잖아요."

움찔! 몸을 굳힌 PD가 싱그립게 웃었다.

"그때는 오랜 비행에 모두 피곤 해하셔서요. 찍기는 했지만, 다 날렸습니다."

"아아."

'음? 겨우 다섯 시간 비행인데?'

뭔가 이상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상황이다.

분명 지금 자신들의 입장에선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두운 황재상 쉐프의 낯빛도 젖은 바지처럼 찝찝했다.

'왜 우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으시지?'

이런 진호의 의문은 이어진 박영후 PD의 말에 잊혔다.

"자, 그럼 나가실까요? 밖에 여러분의 파트너인 푸드 트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오오!"

맞다. 파트너다. 앞으로 20일 동안 함께해야 하는 파트너.

몸이 단 진호는 빠르게 발을 뗐고, 사람들도 재빨리 따랐다.

황재상 쉐프의 발걸음만 무거웠다.

"우와, 이게 뭐야?"

"우와와."

"오!"

공항 주차장에 주차된 빨갛고 커다란 푸드 트럭과 푸드 트럭 앞에 놓인 테이블들이 심장을 거세게 뛰게 했다.

푹푹 찌는 무더운 날씨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와!"

이름은 좀 웃겼다.

"어먹반점."

"아, 어디까지 먹힐까니까 어먹반점인 거야?"

어디까지 먹힐까, 이번에 출연하게 된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한국식 다른 나라요리가 현지에서 얼마나 통할까? 하는 명제에서 출발한 프로그램이다.

참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었다. 앞으로 함께할 동료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프흐흐. 그래도 한국어 간판이라서 다행이네요."

한자였으면 꽤 난해했을 것이다.

진호는 걷는 속도를 높였다.

"오!"

"이 테이블 좀 봐! 너무 예뻐!"

허경만과 윤서아가 테이블을 보며 흥분한 사이 푸드 트럭 내부로 들어온 진호는 눈을 빛냈다.

"와아."

푸드 트럭 내부는 예상했던 것과 달리 굉장히 넓고 깨끗했다.

무쇠 웍에 식칼 세트, 온갖 조리 도구들.

마치 중식당의 주방을 축소시켜 놓은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채망이었다.

'오오오! 저건 그 삶은 면을 건지는!'

일본 라멘 만화에서 본 그 채망. 넓고 큰 채망도 있었다.

"이야, 여기 대박인데? 완전 식당이다, 야."

뒤따라 들어온 황재상이 한껏 만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게도 아직 가스가 연결되지 않았다.

"쉐프님, 이 칼 좀 보세요."

스릉, 꽂이에서 빠져나온 중식도의 서늘한 날이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했다.

만져 보니 날도 제법 서 있었다.

뭐든 썰어 봐야 알 테지만, 손에 착 감기는 감촉에서부터 명품의 향기가 났다.

"칼 좋다."

진호와 황재상은 그때부터 신이 나서 푸드 트럭을 뒤졌다.

"진호, 너 이거 뭔지 알아?"

"알려 주시면 외우겠습니다."

"자세 좋네. 소희와 레이먼이 칭찬한 이유가 있었어."

"으흐흐."

황재상도 흐뭇하게 웃었다.

"이건 반찬 냉장고라는 건데, 여기가 차가워서……."

"오오오."

"이것과 이건 냉장고. 음, 여기엔 면을 넣으면 되겠다."

황재상은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고, 진호는 그 모두를 외우면서 푸드 트럭 주방을 머릿속에 담았다.

그러자 걱정스런 부분이 생겼다.

"좁아서 그런지 동선이 꼬이면 골치 아파지겠네요."

"확실히 그렇겠네."

"흠. 쉐프님이 여기 웍과 냄비를 잡아야 하시니까 저는...."

황재상이 깜짝 놀랐다.

"식당에서 일해 본 적 있어?"

"중학교 때 잠깐 차이나 레스토랑에서 홀 서빙을 해 본 적 있습니다."

'겨우 3주지만.'

유통의 제왕이란 스토리가 있는데, 차이나 레스토랑 서빙 파트에 취직해 홀과 주방을 통해 동선의 간결함을 알게 된 주인공은 물류 회사에 취직해 유통 라인을 뒤바꾸며 결국 세계 최고의 유통 회사회장이 된다.

'누가 허위 신고만 안 했어도 한 달을 채웠을 텐데.'

진호가 일했던 차이나 레스토랑은 위생 불량 및 미성년자 주류 판매로 인해 영업 정지를 받았다. 주방은 정말 깨끗했고,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건 일했던 진호가 장담할 수 있었다.

진호는 그때 부모님 결혼기념일 선물을 사 드리고 싶다는 거짓말로 딱 한 달만 일하게 해 달라며 애원하고 애원해서 취직했던 거였다.

'거기가 북경의…….'

"아니, 한국대생이 그런 곳에서 일했단 말이야?"

"제가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안 해서요."

"자랑이다!"

"흐흐흐."

마주 웃은 황재상이 박수를 쳤다.

"자, 그럼 뭘 판매할지부터 생각 해 보자! 다들 모여 봐!"

회의를 거듭한 결과 메뉴의 테마는 '면'으로 좁혀졌다.

한국의 중국요리집, 하면 면.

면, 하면 중국요리집이었다.

거기다 상해, 하면 풍부한 해산물이 유명하다.

그렇게 두 번째 메뉴를 고를 때였다.

꼬르륵!

사람들의 시선이 진호에게로 몰렸다.

"……푸크크크!"

"소리 한번 우렁차다!"

스태프들도 크게 웃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진호야, 배고파?"

양손으로 턱을 괴며 눈을 깜빡이는 윤서아의 모습이 참 얄미웠다. 정말 비행기에 탑승한 순간부터 말을 놓더니 꽤 장난을 쳐 오고 있었다. 허경만과 함께 말이다.

'이 누나가.'

방금 전 그녀의 배 속에서도 꼬르륵 소리가 났었다.

분명히 들었다.

"……죄송합니다."

"모두 다 둘러보셨나요?"

웃으며 다가온 박영후 PD가 구원자 같았다.

"옙!"

"네!"

"그럼 경만 씨? 이것 받으세요."

"어? 뭡니까? 어? 돈이다!"

하얀 봉투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육천이백 위안입니다. 한화로 약 백만 원. 자, 받으셨죠?"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하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공항을 나서면서부터 생겼던 찝찝함이 갑자기 거대하게 부풀어 엄습했다. 나연석 사단. 선금.

머릿속에서 두 가지 단어가 조합 된 순간 진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잠깐! 나 이거 어디서 봤어요!"

고개를 모로 기울이던 허경만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스톱-! 모두 멈춰! 움직이지 마!"

"왜 그러시죠?"

천연덕스레 고개를 모로 기울이는 박영후 PD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래도 혹시 몰랐다.

"정말 실례한 말인데, 정말 아닐 걸 아는데, 백만 원을 줄 테니 숙식, 아니 의식주를 모두 해결하라, 뭐 그런 건 아니시죠?"

"……푸하하하하하!"

잠시 멍해졌다 터지는 웃음이 마음을 참 안심시켰다.

"하하하하하! 죄송."

"어떻게 아셨어요? 진호 씨, 경만 씨. 눈치 빠르시네."

"……."

순간 뜨거운 게 울컥 목구멍을 건드렸다.

진호는 진짜 초인적으로 눌렀지만, 허경만은 아니었다.

"이런 씨! 이거 표절 아입니까? 막 이래도 되는 겁니까? 상도의는 어디로 간 겁니까!"

이런 진행 방식은 나연석의 전매 특허다.

다른 PD의 플랫폼을 그대로 가져오는 건 지탄을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박영후 PD는 당당했다.

"괜찮습니다. 허락받았어요."

머릿속이 하얗게 물드는 말이었다.

진호는 입을 벌린 채 말을 잃었다.

박영후 PD는 넋을 놓은 넷을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처음 이 '어디까지 먹힐까'의 기획서를 검토받을 때, 나연석이 먼저 이런 식으로 굴리면 재밌겠다고 했었다.

그때는 생각해 보겠다 말하며 박영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즌1을 제작했다. 그리고 처참하게 망했다.

최고 시청률은 겨우 1.2퍼센트.

모두 성공한 나연석 사단 가운데 유일한 실패였다.

그때부터 대체 뭐가 부족했는지 궁리하기 시작했고, 결국 한 가지의 결론에 도달했다.

간절함이 없다.

푸드 트럭. 푸드 트럭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미지인데, 정작 출연하는 사람이 간절하지 않았다.

성공한 쉐프로서의 철학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존심 모두 버리고 나연석에게 양해를 구했고, 다행히도 흔쾌히 허락을 받았다.

'최종 검토 받을 때 출연진을 보곤 쉽지 않겠다고 말하며 아리까리하게 웃은 게 좀 걸리긴 하지만…… 간절함을 가지게 될 세 번째 장사부터는 원래대로 할 생각이니까.'

좋은 숙소도 제공하고, 연습할 식재료도 무한정 제공하며 분발하는 출연진의 모습과 만족하고, 혹은 싫어하는 손님들에게만 집중하는 기존의 촬영 방식.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간절함을 통해 발현될, 스타 쉐프의 요리 경영 철학이 나올 그때부터 말이다.

'설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기겠어?'

"상해 물가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육천이백 위안이면 충분히 숙소를 구하고 장사를 준비할 수 있을 겁니다. 가스, 유류 등등. 모두를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와!"

"옷은요? PD님! 저 진짜 속옷과 잠옷만 가져오라고 해서 집에서 입는 것만 가져왔단 말이에요!"

정신을 차린 윤서아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 저희는 이만 방관자가 될 테니, 서로 상의해서 앞으로의 방향을 정하세요."

그렇게 박영후 PD가 물러나자 출연자들은 뒤집어졌다.

"쉐프님! 쉐프님은 알고 계셨죠?"

황재상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그는 배신감 가득한 눈으로 박영후를 바라봤다.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꽤 살벌했다.

"PD 양반. 숙소는 지원해 준다고 했지 않았나? 연습용 식재료도! 아니, 연습용 식재료가 없으면 어떡해!"

"그래서 돈을 많이 드렸잖아요."

또 어디선가 어느 프로그램에서 들은 얄미운 말.

아주 못된 것만 배웠다.

얼굴을 구긴 황재성이 자리를 박찼다.

"에이, 나 안 해. 돌아가!"

"네! 가시죠!"

"근데 여권이 저분들한테 있잖아요, 오빠."

"……여권 내놔! 이 양아치들아-!"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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