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16화
박현은 혼란스러워하며 라켓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라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몸을 풀던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까지의 이설아는 리턴은 커녕 서브 넣는 것조차 어려워하던 이였다.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서 눈이 갈 수밖에 없던 존재였다.
우리 동네 스포츠 공인 몸치. 그런 그녀가 랠리를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대, 대체 어떻게…….'
"와, 이게 테니스치는 재미군요? 더 안 하시나요, 코치님?"
"음, 연습을 많이 하셨나 보네요, 설아 씨."
"감사합니다!"
"비결이 있나요?"
"네! 딱 제가 두 발까지만 움직 일 거리에서 포핸드로 공을 넘기는 것에만 집중한 것뿐이에요. 그 외의 공은 놔두고요."
'…… 진짜 그랬다!'
박현은 경악했다. 몸이 둔한 그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스, 스폿은 어떻게 맞춘 겁니까?"
"양손으로 잡으면 스폿이 약간 어긋나도 괜찮다고 했는걸요? 이기는 게 아니라 일단 힘을 뺀 채 넘기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아차!"
"누가요?"
"아, 그, 그게……."
하얗게 질리는 이설아를 보며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박현은 달래 듯 웃었다.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닙니다. 설아 씨에게 너무 딱 맞는 조언이라서 그래요. 누가 말한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정말요?"
"네."
"……저기, 진호 씨요."
모두가 한꺼번에 진호를 찾았다. 미쳤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흥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가 이상함을 느껴 시선을 돌린 진호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박현이 그런 진호에게로 향했다.
'뭔지 모르겠지만…… 튈까?'
"진호야."
"넵?"
"네가 설아 씨한테 조언한 거야?"
"네, 그랬죠?"
"어떻게 그런 조언을 하게 된 건지 물어봐도 될까?"
"설아 씨는 운동 재능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녀의 운동 신경은 좋은 하루 뮤직비디오 녹화 때 알아차렸다.
"그런데 너무 이기는 것만 생각 하고 있더라고요. 물어보니까 프로그램 취지가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인데도 말이죠. 그래서 힘 빼고 선택과 집중을 하라고 한 거예요. 재미는 이기는 것에만 있는 게 아니니까."
일단 무엇이든 재미가 있어야 흥미가 생기고, 실력이 느는 법이다.
"아……."
부르르!
몸을 떤 박현은 반성했다. 테니스 부흥을 위해 너무 승리만 생각한 자신과 그 뜻을 밀어붙여 힘들게 만든 연예인들에게 말이다.
"어? 괜찮아요?"
"응, 괜찮아. 진호야, 미안한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방송 출연이라면 안 합니다."
진호는 단호하게 거부했지만 박현은 간절했다.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했다.
"연예인들을 조금 봐주기만 하면 돼. 오늘 확실히 알게 됐어, 내가 가르치는 건 잘못한다는 걸. 촬영 끝나면 밥 살게."
지금 당장이라도 코치를 데려오고 싶지만 그래서는 예약한 시간을 넘기게 된다. 당장 이틀 뒤에 우리 동네 스포츠의 첫 번째 대결이 있기에 박현으로서는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아뇨, 아무리 밥이라도……. 그리고 제가 뭐라고 그런 걸……."
"박현 선수 도와주면 이 아저씨가 오늘 가게에서 소고기 쏜다!"
"받고, 킹크랩 두 마리더!"
"받고, 라켓."
"으음……."
박현과 사람들은 흔들리는 진호를 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진호는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 속으로 한숨을 내뱉었다.
'뭐 어쩔 수 없나?'
그런데 그보다 더 욕심이 생기는 일이 있었다.
솔직히 그가 원하는 걸 이뤄 줄 자신은 없지만, 이건 거래다. 그냥 해 줄 수는 없었다.
진호는 이 기회를 빌려 그가 등장한 순간부터 들었던 욕심을 채우기로 했다. 방송 출연으로 인해 다시 섭외 전화가 빗발친다고 해도 그걸 감수할 만큼 크나큰 욕심이었다.
"좋아요. 단!"
환해지던 박현의 표정이 굳었다.
"박현 선수가 촬영 끝나고 저랑 한 게임 해 줄 수 있으면 도울게요. 제가 별 도움이 안돼도 진심으로 해 주신다면요."
'내 실력이 어느 정돈지 알고 싶어.'
국내 최정상에 세계에서도 통하는 플레이어다. 진호가 자신의 현재의 실력과 문제점을 알기에는 충분한 상대였다.
"그거면 돼? 정말 그거면 돼?"
박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넵."
"알았어. 한 게임이든 열 게임이 든 해 줄게. 아니, 나도 하고 싶었어. 고맙다."
"감사합니다!"
진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PD는 당연히 승낙을 하며 진호를 반겼다.
"오늘 일일 코치를 맡게 된 이진호입니다. 아직 미흡한 실력이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와아."
여자연예인들의 박수 소리가 크다. 남자연예인들도 나이가 제법 있어서 그런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반가워요. 리키숀의 숀이에요. 아, 친구처럼 젊은 사람은 모르겠구나. 한참 아저씨니까 편하게 아저씨라고 불러 줘요."
진호는 감탄을 터트렸다. 말투부터 선한 사람은 정말 처음이었다. 보이 그룹 멤버도 있고, 일반 방송인도 있었다.
그렇게 자기소개가 끝나자 진호는 곧바로 그들의 문제점을 알아 갔다.
방식은 별게 없었다. 그냥 서로 대결시키는 걸로 끝냈다. 그럼에도 그들의 문제점이 확실하게 보였다.
'역시…… 똑같아. 이기려고만 하고 있어.'
정확히는 돋보이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 억지로 공을 쫓고, 어렵게 보내고, 과하게 자책했다.
'게임을 하는 이상승리해야 재밌지만, 재미는 그것만 있는 게 아닌 데……. 왜지?'
진호는 방송 분량이라는 것에 연예인이 얼마나 목을 매는지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알겠어?"
"네. 한 가지 의문은 있지만, 답은 나왔어요."
진호가 찬 마이크를 통해 그가 한 말을 들은 PD 와 음향 감독은 깜짝 놀랐다.
진호는 놀란 박현을 보며 싱긋 웃었다.
"우리 지금부터 게임할까요?"
"……게임?"
"네, 게임. 저분들의 근본적인 문제를 확실하게 고칠 수 있는 그런 게임. 우승 상품은 무조건 먹히는 필승 위닝샷."
박현과 PD, 촬영 스태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1 번!"
파앙!
코트에 그려진, 무작위로 숫자 적힌 커다란 원들 중 1번 원에서 공이 바운드된다.
여유롭게 따라잡은 박현이 '4번'을 외치며 라켓을 휘두른다. 너무도 깊숙한 코스, 그러나 진호는 이미 도착한 상태였다.
"8번 로브!"
'큭?'
퉁!
8번이란 외침에 발을 됐던 박현은 이어지는 말에 급히 몸을 멈췄다.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공이 느리게 바운드했다.
"1번 드롤!"
"예상했습니다! 7번 드라이브 발리!"
뒤로 물러나려다 앞으로 힘껏 달린 진호는 그대로 몸을 날려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가다가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 순간 휘둘러진 라켓에 맞은 바운드되지 못한 공이 고속으로 날아가다가 뚝 떨어졌다.
그 순간 진호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너무 일렀다.
"챠앗!"
전력을 다해 따라붙은 박현이가 랑이 사이로 라켓을 휘둘렀다.
"5번!"
"큭!"
진호는 기겁하며 물러났지만 그의 기예 같은 샷을 따라잡을 수 없었다.
퉁. 퉁퉁!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아오! 이길 수 있었는데!"
머리를 잡으며 아쉬워하던 진호는 풀썩 웃으며 네트에 다가온 박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좋은 경기였어요."
"……촬영 끝나면 제대로 해 보자."
박현은 승부욕이 제대로 붙은 것 같았다.
"흐, 그러면 저야 감사하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진호는 이쪽을 초롱초롱 쳐다보는 연예인 들을 향해 씩 웃었다.
"그럼 누가 먼저 해 보실래요?"
연예인들의 손이 파파박 올라갔다. 이설아도 손을 들었다.
'역시 흥미는 뭐니 뭐니 해도 화려해야 끌리는 거지.'
"그럼 반코트부터 시작할까요?"
"네!"
크게 대답하는 연예인들에 PD도 스태프들도 환하게 웃었다.
* * *
번호를 외치며 라켓을 휘두르는 연예인들을 보던 박현이 진호를 응시했다. 그런 그의 눈은 따뜻했다.
"테니스는 누구에게 배웠어?"
진호가 한 게임은 박현도 해 본 것들이었다.
숫자가 그려진 원이나 색색의 마커 칩, 색이 다른 공들 중 코치가 외친 색의 공을 치는 것 등등.
모두 폼과 샷의 정교함, 집중력, 수 싸움 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이었다.
이렇게 서로 마주 보면서 한 것은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는 처음이지만 말이다.
'대체 어떤 분이 이런 수준까지 끌어올렸을까. 분명…….'
그의 머릿속에 수많은 테니스 명 코치들이 스쳐 지나갔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최소 10년은 그런 이들에게 갈고 닦여야만 이 정도의 실력이 나올 수 있었다. 정식 게임이었으면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어쩌면 졌을 수도 있다.
그는 야생의 짐승처럼 탄력적이고 공격적이며, 싸늘한 기계처럼 정확하면서도 학처럼 우아했다. 황제 페더러, 그의 향기가 너무도 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프로가 아닌 게 말이다.
그리고 기다려졌다, 촬영 후의 대결이.
"학과 선배님인데요?"
"……응?"
"테니스 배운 지 이제 5개월 정도예요."
"자, 잠깐!"
"왜요?"
"……정말이야?"
"제가 박현 선수를 속여서 뭐하게요."
맞는 말이다. PD에게 듣기로 진호는 한국대 경영학과에다 잘나가는 모델이었다.
"그, 그럼 이건 어떻게 생각한 거야?"
"아까 마커 칩 때리면서 생각한 건데요?"
진호는 번호를 외치는 연예인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뭐든 즐겁게 하는 게 최고죠. 저 봐요, 곧잘 하잖아요."
……오싹!
'뭐 이런 괴물 같은.'
박현은 온몸에 공포가 내달렸다. 그러면서도 욕심이 생겼다.
'고작 5개월에 이 정도…….'
"하하하하핫!"
갑자기 박현이 웃음을 터뜨리자 진호는 어디 웃긴 상황이 펼쳐졌나 주위를 살폈다.
"후아, 진호야."
"네?"
"나랑 형 동생 할래?"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 * *
당연히 안 될 것은 없었다. 진호는 흔쾌히 승낙했다.
두 시간의 촬영이 끝나자연예인 들은 지친 얼굴로 테니스 클럽을 빠져나갔다.
몇몇 연예인들은 진호와 전화번호를 나누고 사진도 찍었다.
"진짜 가기 싫다……."
"쿡쿡, 행사예요?"
"여수예요. 이잉."
"물들어왔으면 노 저어야죠. 어서가 봐요."
"막히는 점 있으면 연락할게요."
"너무 늦으면 안 받을지 몰라요."
"칫, 너무 도도해."
진호는 씩 웃었고, 이설아는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기며 클럽을 빠져나갔다.
"저, 이진호 씨."
PD가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네, 그러세요."
진호는 고민하지 않고 답했다. 아니, 이미 고민을 끝냈다는 게 맞았다.
여태까지도 방송 출연자체가 싫은 게 아니었다. 기획사라는 단체의 이익을 위해 원하지 않는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게 싫었던 것뿐. 이런 식으로 원하는 일만 할 수 있다면 상관없었다.
거기다 박현이 있고, 테니스가 있고, 이설아가 있다. 이설아가 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했다.
"저, 정말입니까?"
"하지만 너무 자주 부르시면 안돼요? 저도 생활이란 게 있으니까요."
"그럼요! 암요, 당연하죠! 하하핫! 정말 감사합니다! 곧 좋은 기회를 잡아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PD는 진호의 마음이 변할까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폭풍이 사라지자 진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땀도 흘리고, 좋은 인연들도 맺게 되었고,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시너지…….'
"몸은 풀려 있지?"
박현이 사납게 웃으며 다가왔다.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 전해져 왔다.
'이게 국내 정상의 프레셔.'
진호도 지지 않겠다는 듯 이를 드러냈다.
"당연하죠."
둘의 대결에 클럽안 사람들이 마른침을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