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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5화 (35/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10화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었다.

열한 시가 넘어가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아이들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아저씨, 또 올 거야?"

옷자락을 잡는 힘없는 손들. 지혜 뿐만이 아니었다.

코에 호흡기를 단 소년 소녀의 물기 어린 눈과 안절부절못하는 보호자들을 보자 진호는 깨달았다. 하지만 고마웠다. 감사했다.

'내게 재능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스킬을 얻어서 참 다행이야.'

진호는 무릎을 굽혀 아이들과 눈을 맞췄다.

"내일 무슨 노래 듣고 싶어?"

"으음……."

"내일 저녁에 아저씨가 올 때까지 생각해 봐. 알았지?"

"……응!"

아마 아이들은 내일 하루 종일행복한 고민을 할 터였다.

'내일 하루만 더 늦게 가지 뭐.'

오늘로써 약속된 열흘이 끝났다. 내일 오후에 와서 인수인계만 하면 되었다.

"자, 그럼 자야지?"

"네─! 엄마, 가자!"

아이 엄마는 진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이고서 아이와 함께 병실로 향했다.

병동은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조용해졌다.

차현성은 잠든 지혜의 촉촉이 젖은 머리칼을 쓰다듬다가 돌아섰다.

"고맙습니다."

"아뇨, 저도 즐거웠는걸요."

잠시나마 피로를 잊을 수 있었다. 정말 몇 주 만인지 몰랐다.

진호는 기타를 메고 일어섰다.

'뭘로 어떻게 꼬드겨야 이놈이 넘어올까…….'

역시 재준이밖에 없었다.

"아뇨,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삶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예?"

"아뇨,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요."

진호는 손사래를 쳤지만 차현성은 아니었다.

이진호. 톱 모델의 관문인 서울패션위크에서지 않았는데도 한국에 입점한 모든 명품 브랜드가 욕심을 내는 블루칩.

테니스와 박 코흐트의 칭찬을 받았다는 오피셜에 스포츠 브랜드와 주방용품 브랜드가 물밑 작업을 펼치고 있었다. 그에 증권가에서도 주목을 하고 있었다.

아마 엄청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이 병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진호는 한국대 경영학과였다.

'모든 걸 가졌는데도 이렇게 착하고 성실하다니…….'

"진호 씨는 힘들지 않습니까?"

"네?"

"저도 한국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아…… 선배님이셨군요."

그것으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차현성이 왜 이렇게 힘이 없어 보였는지에 대해 말이다.

'번 아웃이구나.'

젊은 나이에 과장이 되었다.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진호 자신도 그랬다. 매일같이 하는 게임이 질리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럼에도 리셋 라이프를 계속했던 건 너무 재밌기도 하지만 이것밖에 없어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니, 번 아웃이었구나.'

무엇 때문에 벗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참 다행이었다.

"당연히 재밌고 좋아서죠."

"예?"

진호는 잠시 창밖의 밤하늘을 보았다. 좁은 창 밖에는 아주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전 욕심이 아주 많아요. 새롭고 즐거워 보이는 일은 어떻게든 해야 직성이 풀리죠."

"모델 겸 테니스 선수 겸 기타리스트 겸 요리사 겸 스타일리스……."

차현성은 딸의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짚어 보니 모두 말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더 경악했다.

"아마 이제 곧 마사지사가 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님 야매 수면의라든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겁니까?"

"방금 말씀드렸잖아요. 재밌고 좋아서라고. 한 가지 일에만 몰두하지 않아서 정말 즐길 수 있는 거죠."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

삶을 살아가는 방식엔 정답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차현성은 한결 더 밝게 웃을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오늘 일은 제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를 정도로."

진호는 갑자기 허리를 숙인 그의 모습에 당황했다.

"저, 정말 별거 아니었……. 아!"

진호는 차현성을 보았다.

오늘 보고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

"방법이 있을까요?"

"아뇨. 그런 걸 바란 게 아니니까요. 그럼 수고하세요."

7년 우정도 흔들릴 일을 처음 본 사람에게 부탁할 순 없었다.

싱긋 웃은 진호는 돌아섰고, 차현성은 멍하니 그 등을 바라보다 주먹을 꽉 쥐었다.

'분명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런데도…….'

잠시의 머뭇거림이 오해에 쐐기를 박았다.

차현성은 어떻게든 이 은혜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그런 그에게로 김이나가 다가섰다.

* * *

"날이 더워져서 환청이 들리나……. 알몸으로 뭐? 마사지?"

다음 날, 간식을 만들어 준단 진호의 말에 강의가 끝나자마자 달려온 재준은 귀를 후볐다.

"참고로 말하는데, 나도 이러기 싫었다."

3차 해금 조건은 만든 마사지 오일과 향초를 타인의 몸에 실험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꼼꼼하게, 구석구석, 마사지와 함께 말이다. 분명 완벽한 조합법을 아는데도 해금 조건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차현성에게 부탁할 수 없었다.

"진호야, 너 혹시……."

"아니다. 네가 지금 생각하는 거 절대 아니다."

"그, 그래. 아니지? 여자 좋아하는 거 맞지?"

"당연하지! 날 뭘로 보고!"

"……그런데 왜 나보고 오일 마사지를 받으라는 건데! 뭐? 엉덩이 속까지 발라야 한다고? 꺼져, 이 게이 새끼야!"

"나도 싫어, 인마! 하지만 오죽했으면 널 불렀겠냐! 친구야!"

"누구세요?"

"……아오!"

"나간다."

진호는 급히 재준의 발을 잡았다. 재준이 거절하면 답이 없었다.

"친구야! 일생일대의 부탁이다!"

'잠 좀 푹 자자!'

재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진호가 매달리고 있었다.

'이 새끼…… 지금 여자랑 썸 타나? 설마 그 이설아?'

순간 울컥 화가 났다.

'그러니까 지금 제 여자 친구랑 스킨십하려고……. 와,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이런 참신한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이 참 원망스러웠다.

지독한 오해였지만, 재준으로서는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너 이번에 파리 갈 거지?"

"그, 그렇지!"

진호는 재빨리 대답했다. 재준이 활짝 웃었다.

"그럼 나도 간다."

"……네?"

"나도 간다고, 파리. 내가 너 이탈리아 갔을 때 얼마나 피눈물을 흘렸는지 아냐? 엉? 이번엔 무조건 간다! 까짓 거 F 받으면 돼!"

"어음. 뭐……."

설마 정말로 따라을까 싶었다. 진호는 활짝 웃었다.

"그래. 가자, 파리!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게!"

"좋았으! 어머니 저녁에 오시는 거 맞지?"

"그럼! 방금 운동을 가셨으니까 최소 두 시간은 안 오실 거다!"

진호는 재빨리 방으로 들어가 향초도 켜고 커다란 목욕 수건도 깔았다. 방안에 달큰하면서도 부드러운 향기가 퍼져 갔다.

"냄새 좋네."

재준은 팬티까지 벗고 수건 위에 누웠다.

"헛짓거리하면 뒈진다."

"너나 느끼지 마라."

숨을 토해낸 진호는 맨살의 등 위로 오일을 머금은 하얗고 가는 손을 올렸다.

"윽!"

"소리 내지 마라."

"안내겠냐! 기분 존나 이상해!"

"나도 이상해!"

남자의 맨살을 문지르는 느낌은 좋은 말로 표현해도 더러웠다. 그렇게 등을 다 마사지하고 엉덩이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린 진호와 재준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두 눈이 격하게 흔들리는 작은 얼굴. 매일 보는 얼굴이자 지금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얼굴이었다.

"……엄마?"

나진희는 슬그미니 문을 닫았다.

"어, 엄마는 다, 다 이해해. 여, 열심히 하렴."

쿵!

진호는 몸에서 피가 빠져나간다는 게 이런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엄마! 그런 거 아니야! 오해야!"

"어머니─!"

진호와 재준은 급히 뛰쳐나갔다.

* * *

그날, 진호는 엄마에게 해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어찌어찌 오해는 풀었지만 털려 버린 멘탈에 아이들을 위한 공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기뻐해 줘서 다행이었고, '다음엔 다 나아서 찾아와 줘'라고 말을 한 게 너무도 자랑스러울 정도였다.

무슨 일인지 강신일이 '고맙다'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진호는 아직도 잘 몰랐다.

그리고 3차 해금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전화로 눌러야 할 부분과 시간을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3차 해금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몸에 실험을 하는 거지, 그게 스킬을 얻어야 하는 본인일 필요는 없었다.

4차 해금 조건은 그렇게 완성된 마사지 오일을 자신의 몸에 바르는 것이다.

그렇게 진호는 스킬을 얻게 되었다.

'푹 자고 일어났는데도 해가 뜨기 전이었지.'

그 상쾌한 기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었다.

'정말 쓸모없는 재능은 없는 거구나.'

진호는 다시 하늘을 보며 지그시 주먹을 쥐었다.

푹 잔 재준은 오일과 향초를 얻을 수 없냐고 말했다.

아들이 이상한 길에 빠지게 둘 수 없다며 등에 오일을 발라 주다가 몇 번 존 어머니도 향초에 대해 진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렇듯 스킬을 얻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 효과를 보았다.

'99가지 스킬…… 나만의 스토리…….'

진호는 머릿속이 간질간질해지기 시작했다.

"아, 뭔데. 뭐냐고."

어느새 몰려든 동기들의 얼굴에 간절함이 가득했다.

진호는 활짝 웃었다.

"내가 이번에 지인에게서 향초를 얻었거든. 효과가 꽤 좋더라."

"정말? 나도 얻어 줄 수 있어? 밥 살게!"

"스테이크 쓴다! 진짜 부탁할게!"

[스킬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동안의 필수 요건인 수면. 자는 동안 세포는 재생하고, 피로는 풀리며, 뇌는 다음 날을 준비한다. 푹 자라, 피부가 좋아진다. 푹 자라, 병이 낫는다. 푹 자라, 잠이 보약이다.]

4.

기이이잉!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소리로 가득한 인천공항의 한민 항공 라운지.

진호가 어이없는 듯 재준을 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너 가람대 합격한 거 아니지?"

대학생이라면 6월에, 그것도 기말 시험을 준비하는 6월에 이렇게 쫓아올리 없었다.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어이구."

'……하긴 나도 1학기 성적은 포기했는데, 뭘.'

교수들에게 양해를 구했다지만 출석이 제대로 반영될지는 미지수였다.

그리고 선배들이 말하길 1학년 1 학기는 버리라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재준과 함께 여행을 간다니 흥분이 되었다.

"흐흐흐, 이게 비행기 표라는 거 구나."

"미영 이모한테 감사해라."

기필코 따라온다기에 진호는 재준이 동행한다는 것만 미영에게 말했는데, 그녀는 무려 비즈니스 클래스의 비행기 표를 주었다. 진호도 비즈니스 클래스였다.

"아쉽습니다. 저도 비행기 표를 선물해 드릴 수 있었는데요."

"아뇨, 괜찮습니다."

진호는 옆에서 웃고 있는 다미앙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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