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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1화 (31/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6화

'네! 갈게요!'

엄청난 실력을 가지고 있는 세프의 주방이었다.

요리 실력이 늘어나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여태까지 겪어 보지 못한 일들이 아주 많이 다가올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대답하려고 했던 진호는 갑자기 나타나 제지해 준 이설아가 고마우면서도 왜 이곳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왜 안 된다는 겁니꺼?"

스카우트를 방해받은 박 코흐트는 기분이 나빠졌다.

시선이 몰리자 이설아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구, 군대도 가야 하고, 어, 한국 방송에도 출연해야 하고…… 아, 아무튼 안돼요! 진호 씨가 한국에서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아, 왜 이렇게 귀엽지?'

파닥파닥 양팔을 휘젓는 설아의 모습이 진호의 심장을 강하게 타격했다.

"아는 사람이가?"

"요새 한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가수인데, 제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어요."

"이거가?"

박 코흐트가 새끼손가락을 들자 사람들이 헛숨을 삼키며 이설아를 보았고, 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진호는 이번엔 자신에게 몰리는 시선에 살짝 난처해졌다.

"여사친이에요. 여자 사람 친구, 연예인 친구."

잘못 말했다가는 이설아의 앞날이 어두워지기에 진호는 빠르게 연기했다.

"치아라. 남녀 사이에 그런 게 어디 있노?"

"요샌 그런 거 많아요. 그보다 잠시 실례할게요."

그는 이설아의 앞에 섰다. 스캔들, 사람들이 숨을 죽였다.

"이번에 2위한 거 축하드려요. 그런데 여기까진 어찐 일이에요? 요새 많이 바쁘잖아요. 그리고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그녀는 아쉽게도 2위를 하고 말았다. 아이돌을 이길 수 없었다. 매니저 박충식이 고맙다는 듯 웃으며 마주인사했다.

이설아가 새초롬하게 눈을 떴다.

"몰랐어요? 저 오늘 축제공연에 출연해요."

문의가 들어오자마자 냉큼 승낙 했다.

"와아-!"

남자 학생들이 양팔을 들며 만세를 외쳤다.

"몰랐어요. 와, 총학생회가 드디어 일을 했네요."

한국대 학생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저 볼 겸 먼저 온 거예요?"

"네. 원래 한잔하고 부르는 노래가 더 맛깔나잖아요."

또 한 번 주위에 웃음이 터졌다.

"연예인이 그런 말을 해도 돼요?"

"저 스물셋이에요. 그리고 걸 그룹도 아니죠."

진호는 구영재를 바라봤다.

"형, 저 잠시 쉬어도 될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구영재에게로 몰렸다.

"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일하라고 하냐?"

"사랑합니다! 어서 가요. 우리 악덕 사장님 맘 변하기 전에."

"저런 씨……."

그가 움직이자 기획사 관계자들이 따라왔다.

속으로 혀를 찬 진호는 기획사 관계자들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계약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먼 길 오시느라 수고하셨는데, 좋은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거부에 기획사 관계자들은 당혹스러워했다.

"이유가 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30대의 백인사내가 나섰다.

정장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린 안경, 굉장히 사무적으로 생긴 외모였는데 한국어가 아주 유창했다.

"아, 인사가 늦었습니다. HU에 이전시 소속 아시아 담당 캐스팅 디렉터 다미앙입니다. 당신을 샤넬, 구찌 등 이름만 대면 아는 그런 브랜드의 런웨이에 세우기 위해 프랑스에서 날아왔습니다."

캐스팅 디렉터. 에이전시 혹은 브랜드 소속이거나 개인으로서 모델이 설 패션쇼와 광고를 주선하는 존재인데, 이런 이유 때문인지 패션계에서 제법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헛숨을 삼키고, 기획사 관계자들의 얼굴도 어두워졌다. 그러나 진호는 담담했다. 미영이 타 브랜드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고 말했을 때부터 짐작한 일이었다.

'HU 에이전시?'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제가 거기까지 알려졌나 보군요."

"그 팀 존스가 이 극동의 땅까지 날아오게 만든 뮤즈니까요. 그럼 제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진호는 생각할 것 없다는 듯 바로 답했다.

"신의를 배반할 일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에 고사하는 겁니다."

"호오, 과연. 디올을 말씀하시는 거군요."

"네. 어딘가와 계약을 맺게 되면 어떻게든 제가 원치 않는 일을 해야 하고, 그 일은 아마 디올의 경쟁사 광고가 될 수 있습니다. 이부분을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진호 씨는 더 많은 돈과 더 높은 명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상에 설 수도 있죠."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진호의 얼굴은 살짝 일그러졌다.

"그 정상이란 곳이 신의를 버리면서까지 얻어야 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겁니까?"

진호는 그것이 미영 이모, 팀 존스, 피에트로 CEO, 이 모든 이들을 외면할 정도로 메리트가 있는 지 의문이 들었다.

그 순간 다미앙의 눈이 빛났다.

"흐응, 그런 거군요. 아직 돈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어요."

"아뇨, 돈은 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올 차이나와 홍콩, 재팬에서 시간당 2천 달러를 제시했고, 디올 코리아에서도 그에 맞게 조정 했다는 소린 들었습니다."

'정보력이 대단하네. 극비리에 조정한 내용인데.'

이는 국내 톱급 모델의 대우였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예상을 벗어난 수익에 경악했지만, 표정을 관리했다.

보통 화보를 찍을 때 걸리는 시간은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사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의 돈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가소롭다는 듯 웃는 다미앙의 말에 진호의 미간이 좁혀졌다.

"저희 부모님은 겨우 그 정도라 표현하시는 것보다 훨씬 부족한 돈으로도 저를 키우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집을 사시고, 차도 사셨으며, 노후 대책에 제 결혼자금까지 모으셨습니다. 세상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그렇게 자식을 키우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고개를 끄덕이던 기획사 관계자들은 아차 했고, 다미앙은 눈을가 늘게 뜨며 입을 다물었다.

"돈, 물론 좋습니다. 지금보다 더 벌고 싶습니다. 하지만 제 사람을 아프게 하면서까지 벌고 싶진 않습니다. 그리고."

진호는 기획사 관계자들을 보았다.

"준비도 되지 않은 제가 작은 유명세에 기대어 연기를 하고, 음반을 내는 것은 저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그 일을 오랫동안 준비해 오신분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연기와 음악에 관련된 스킬을 얻을 순 있었다. 하지만 그건 이들의 압박에 못 이겨서 끌려가는 것이지 원해서 하는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하면서까지 연예인이란 직종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이게 이유로서 가장 컸다. 그는 아직 연예인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제 답변은 여기까지입니다. 원하시는 답변을 해 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나가시는 문은 저쪽입니다."

"흠, 실례했습니다."

정중한 다미앙과 다르게 기획사 관계자들은 두고 보자는 듯 눈을 부리부리하게 뜨며 주점을 빠져나갔다.

사람들은 진호를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잘생긴 외모에 거만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괜찮겠나? 저 못난 것들이 해코지할 수도 있을 낀데?"

그녀는 여러 방송에 출연하면서 온갖 군상들을 만나왔다. 그중에는 자기들 소속사에 들어오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며 협박을 하는 기획사도 있었다.

"그럼 연예인이나 모델 일을 안 하면 되죠. 세상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셰프님도 제게 스카우트를 권하셨잖아요."

"그래, 맞다! 우짤 끼고? 1년 후에 세프 시켜 줄게."

"죄송합니다. 아직은 더 많은 일을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끙, 이 동네도 너무 늦으면 힘들 데이. 생각 서면 전화해라."

박 코흐트가 명함을 내밀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안주나 데워 와라."

"예?"

"누구 때문에 음식이 식어릇다."

"……네."

어깨가 축 처진 진호가 다시 철판으로 향하자 사람들은 실소를 지으며 하던 일들을 다시 시작했고, 박 코흐트는 이설아에게 다가 섰다.

"아가씨, 저거 잡으려면 단단히 잡으소. 바람과 물 같은 놈이라 웬만한 족쇄가지고는 어림도 없을 거라예."

"네, 네? 그, 그런 거 아닌데요?"

"하이고마, 청춘이데이."

박 코흐트는 짓궂게 웃으며 돌아 섰고,

"저, 정말 아닌데……."

이설아는 발갛게 달아오른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 철판 앞에 선 진호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 * *

"싸가지 없는 새끼!"

대노의 관계자는 물고 있던 담배를 내팽개치며 울분을 토했다.

다른 기획사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사람 많은 자리에서 이런 쪽을 줘?"

그들은 자신들이 먼저 진호의 일상을 침범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를 어떻게 해야 잘 족쳤다고 소문이 날까."

그들의 머릿속에서 온갖 계략들이 떠올랐다.

잘나가던 스타를 매체에서 지워 버리는 일은 그들이 아주 잘하는 짓이었다.

"당신 생각은 어떻소?"

"……푸하하하핫!"

기획사 관계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지만 다미앙은 개의치 않았다. 서로의 영역이 달랐다. 그는 방금 전 진호의 발언을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그런 스팩에 신의까지 갖춘 찬란한 보석이 정작 자신을 드러냄으로써의 재미와 희열을 모르고 있다니!'

완벽하다. 너무 완벽해서 때가 묻지 않도록 꽁꽁 숨겨 두었다가 특별한 날 특별한 사람에게만 잠깐씩 보여 주고 싶었다.

'이들은 왜 이 사실을 모르는 거지? 등만 살짝 밀어 주면 되는데!'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후원 계약이 3년이었지, 아마?'

3년. 긴 듯하지만, 무척이나 짧은 시간이었다. 스물세 살이 된 이진호는 지금보다 훨씬 성숙해 있을 것이다.

훗날의 모습을 떠올린 다미앙은 다시 몸을 떨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례했던 이미지부터 지워야겠군.'

곧 전 세계 캐스팅 디렉터가 달라붙을 것이다. 그전에 숨겨야 했다. 그 순결한 몸에 쓸데없는 오물이 묻지 않도록 말이다.

"아, 실례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저는 그런 저급한 일에 끼어들고 싶진 않습니다가 되겠군요. 그럼... Bonne soi r6e(좋은 저녁 시간 되시길)."

기획사 관계자들은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 순간 핸드폰을 보던 누군가가 말했다.

"음, 뭘 해도 좀 힘들 것 같은데요? 미튜브, 페이탈 북, 인폴라그램 등등에 다올라왔습니다."

"뭐?"

그들은 급히 핸드폰을 조작했다.

정말이었다. 방금 전 상황이 생생하게 찍혀 있었다. 개념 발언이라는 댓글도 달리고 있었다.

"이러면 이설아를 묻어 버리는 것도 힘들겠는데……."

잘나가던 여자연예인이 스캔들에 휘말려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음식, 그놈 음식은 자격증이 있어서……."

"박 코흐트가 인정한 천재잖습니까. 그리고 재료 다듬는 모습도 풀 버전으로 올라왔어요."

음식 판매에 관한 법률을 따졌다 가는 전국 대학생들에게 반감을 사게 된다.

더욱이 진호는 한국대 경영학과 소속이다. 재벌이나 법조계 관련 인물들이 다수 포진한 학과 중 하나다. 자신들이 움직일 수 있는 선 보다 윗선이 움직일 수 있었다. 그리고 세계적 패션 그룹의 일각인 디올 코리아의 부사장 이미영이 진호의 뒤에 있었다.

"……빌어먹을."

완벽한 외통수였다.

이렇게 당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그저 무거운 한숨을 내뱉으며 걸음을 옮기는 수밖에.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하나의 시선도 웃으며 돌아섰다.

'운이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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