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30화 (3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5화

열의가 달라졌지만 경기는 5 대2로 끝났다.

다른 구기 종목들과 줄다리기 같은 완력 싸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골프는 달랐다. 한국대학교 스포츠 센터에 만들어진 스크린 골프장에서 치른 경기에서 당당히 조 1등으로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수영과 스쿼시도 본선에 진출하고 이제 남은 건 테니스뿐이었다.

파앙!

"포, 포티 러브."

코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진호의 눈빛은 고요했고, 얼굴을 일그러트린 상대 선수의 눈엔 미미한 절망이 감돌고 있었다.

서비스 에이스. 단 한 번도 서브를 받아치지 못했다.

어디서 프로 선수를 데려왔냐며 항변하고 싶지만, 진호가 예전에 테니스를 치지 않았다는 건 전력 분석을 한 그가 더 잘 알았다.

'얼른 끝내야겠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여기서 시간을 더 끄는 건 오히려 상대를 조롱하는 행위였다.

진호는 공을 평소보다 낮게 토스 했다.

팡!

방금 전보다 느린 속도에 상대 선수는 결국 반응했다.

드디어 지쳤다고 좋아하며 라켓을 휘두르던 선수는 눈을 부릅떴다.

"흡?"

어느새 네트에 진호가 있었다.

'잘 가세요.'

퍼엉! 저 멀리 튕기는 공에 상대는 결국 라켓을 늘어트리고 말았다.

* * *

찌익찍! 첨벙! 찍찍찍! 첨벙! 기이한 소리가 울리는 천막 안, 사람들이 한곳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진호야, 너 요리할 줄 알았어?"

"에이, 이 정도 가지고 뭘. 기본이지."

"아닌데? 절대 아닌데?"

진호가 재료를 모두 다듬는다기에 코웃음을 쳤던 사람들은 인정 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 주먹보다 큰 양파를 아기 주먹처럼 만드는 자신들은 방해만 될 뿐이라는 걸.

'잘생긴 애가 요리까지 잘해?'

손가락에 생긴 흉터마저 섹시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여성들이 핸드폰을 슬그미니 조작했다. 좋은 건 공유하는 거였다.

"손질 끝! 자, 이제 쉽시다!"

"응? 안 자르는 거야?"

"미리 잘라 놓으면 맛이 떨어져서 안돼."

부우웅! 끽!

"왔다!"

진호는 재빨리 천막 밖으로 튀어나갔다.

1톤 트럭에 온갖 물품들이 실려 있었다. 진호는 그중에서 한 가지 조리기구를 보며 눈을 빛냈다.

'흐흐, 화려한 요리로는 이만한 게 또 없지.'

타앙! 문을 닫고 내린 구영재가 머리를 긁었다.

"아는 분에게 싸게 빌리긴 했지만, 정말 쓸 수 있는 거냐? 그냥 프라이팬을 쓰는 게 어때?"

"걱정 마십쇼. 완벽하게 오케이니까!"

"맞아요, 선배님! 진호 요리 엄청 잘해요! 칼질 몇 번 하니까 채소가 막! 식당 이모를 보는 줄! 벌써 다 다듬었어요!"

뒤따라 나온 남녀 학생들이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벌써?'

기구를 가지러 갔다 온 지 겨우 한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다.

"……MT에선 똥손이었잖아."

"하. 하. 하. 어서 옮기죠! 예선전 가야 하잖아요!"

"됐어. 어차피 우리가 이겨. 중문학과정도야. 훗."

경제학과나 동아리 연합회 테니스 동아리, 사범대 테니스 동아리가 아니면 레귤러 모두가 출전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가서 응원해야죠."

축구 동아리가 응원을 통해 한 골을 밀어 넣었다. 그만큼 응원은 중요했다.

"아, 이 성실한 놈. 알았어, 인마."

구영재는 박수를 크게 쳤고, 주점 스태프들이 모두 트럭에 달라붙어 기구를 내리기 시작했다.

진호는 조심스럽게 내려지는 커다란 기구를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매출에 종지부를 찍어 줄 비장의 무기였다.

"흐흐흐."

그렇게 경영학과 주점의 오픈 준비가 완료되었다.

* * *

날이 어두워지며 주점들이 전등을 켜자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각 학과의 주점들은 어떻게든 매출을 올리기 위해 있는 인맥 없는 인맥을 다 동원했고, 그건 교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러지 않아도 사람이 미어터지는 곳이 있었다. 초장부터 만들어진 무려 30미터의 줄.

"이씨,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이진호, 이 나쁜 놈."

"진호가 나쁜 게 아니라 네 외모가 나쁜 거야."

"야, 우리 성별만 다른 사람끼리 뼈는 때리지 말자."

이런 현상은 한국대 축제에서 언제나 매출 톱을 찍었던 식품영양 학과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러게 준비 좀 제대로 하라고 했제?"

작은 키의 장년 여성이 혀를 찼다.

그녀는 한국대에서 한 달 동안 특별 초청한, 오스트리아에서 유명식당을 운영하는 한국 출신의 스타 셰프였다.

학생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후우, 갸가 그렇게 잘생겼드나?"

"잘생긴 정도가 아니에요! 보세요!"

여학생들이 벌 떼처럼 달려들어 사진을 보여 주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온갖 연예인들을 만나왔는데 그보다 더 빛나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치아라. 판 접어쁘라. 이거 못 이긴다."

"아앙, 교수님─!"

만난 지며칠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교수라고 마음이 약해졌다.

"3학년 과대야! 여기에 자리 하나 만들어 봐라! 이 살 떨리게 생긴 얼라는 어찌 못하더라도 그쪽의 방법은 베껴야 하지 않겠나! 주점을 연 순간부터 니들은 프로 인기라!"

학생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들은 제발 데려가 달라는 듯 박 코흐트를 바라봤고, 그녀는 몇 명을 뽑아 경영학과의 주점으로 향했다.

'이것 봐라?'

박 코흐트는 살짝 놀랐다. 길게 늘어선 여자 손님들로 가득하기에 얼굴만 믿나 싶었는데, 의외로 냄새가 그럴싸했다.

'그런데 이 소리는?'

따당따당! 굉장히 익숙한 소리였다. 그 순간이었다. 천막 천장을 향해 불꽃이 솟구쳤다.

"꺅!"

"와아!"

불꽃을 피해 물러나는 사람들 틈 사이로 드러난 조리기구를 본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철판?"

그랬다. 진호가 생각한 비장의 무기는 철판 요리였다.

"……허어, 이놈아들 아주 작정을 했네. 근데 철판이란 게 쉽게 다룰 기구가 아닐 긴데?"

왠지 돌파구가 보이는 듯했다.

"응? 조개탕? 김치볶음? 보소, 이런 것도 합니까?"

"하하, 저희 셰프가 고집이 세서요."

벽면에 걸린 메뉴가 다양했다. 무 알코올 칵테일도 있었다.

돌파구가 더욱 커지는 것 같았다.

"그럼 조개탕이랑 김치볶음, 철판 스테이크 이렇게 가져다주소."

"옙!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학생이 사라지자 박 코흐트는 일행들을 보았다.

"잘 보고 분석해라. 돌파구가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허울만 좋을 수 있다는 소리죠?"

"단단히 명심해라. 손님의 혀는 정말 냉정하데이. 그러니까 학교가 맛까지 가르치려고 나 같은 세프들을 부르는 기다."

학생들의 얼굴은 굳어졌고, 그녀는 그들을 부럽다는 뜻 보았다.

'이런 대우를 받으며 배우니 인정을 받는 기제.'

이윽고 요리들이 나왔다.

먹기 전 냄새를 맡은 박 코흐트는 미간을 좁혔다.

조개탕을 한입 먹고는 더 심각한 표정을 지은 그녀는 김치볶음, 잘 잘린 목살 스테이크도 한입씩 먹었다.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뭐꼬, 이건?"

"왜 그러세요?"

박 코흐트는 잔뜩 굳은 얼굴로 경영학과 학생을 불렀다.

"보소, 여기 좀 와 보이소."

"네. 무슨 일이신가요, 교수님?"

"이거 만든 사람 좀 봅시다. 내 그 염치없는 사람에게 한 소리 해야겠으니."

험한 분위기에 낯빛을 굳힌 경영학과 학생은 주저하다가 이내 안 쪽으로 향했다.

'프로가 우째 이런 판에 끼어드는 기고? 세프로서의 존심을 얼마 안 되는 돈에 팔아 버린 기가?'

학생들의 주점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학생이 해결해야 했다. 피치 못한 사정으로 끼어들었다면 플레이팅이라도 제대로 해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일반 중국집도 이보단 성의 있게 플레이팅을 했을 것이다.

박 코흐트는 단단히 면박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절 부르셨다고요?"

"그래. 어디 얼마나 못난 얼굴인 지 함……. 이진호?"

"네, 안녕하세요."

박 코흐트와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 * *

촤아악! 따당따당!

수많은 사람들의 몽롱한 시선을 받으며 잘린 스테이크를 볶던 진호는 코를 한번 움찔하더니 왼쪽을 보았다.

"진영이 누나, 지금 고추 넣으세요. 명제 형! 지금 뒤집으세요!"

"알았어!"

철판을 중심으로 좌우로 펼쳐진 주방이 진호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철판 요리를 비롯해 볶음 요리 전부를 맡은 진호는 이런 명령을 내리게 만드는 자신의 감각 기관에 경의를 느꼈다.

'와, 진짜.'

손님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온갖 소음과 온갖 향기를 풍기는데도 요리가 익어가는 소리와 향기가 모두 느껴졌다.

얼굴이 익을 만큼 뜨거운 불판의 온도마저도 마치 온도를 측정하는 정밀 기계처럼 세밀하게 느껴졌다. 이 공간 전체가 마치 몸속에 있는 것 같았다.

'화력이 강하네. 그럼 더 빠르게 볶아야지.'

진호의 양손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 순간이었다. 진호의 콧속으로 진한 스킨 냄새가 파고들었다.

"휴, 만나기가 정말 어렵군요. 안 녕하십니까, 진호 씨. 저는 PJY 소속의 스카우터……."

의도치 않게 미간이 찌푸려졌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몰랐다.

'일하는 거 안 보이나?'

PJY. 흔히 말하는 3대 기획사. 손님으로 온 사람들이 이름을 듣자마자 놀랄 만큼 대단한 기획사인 건 알지만 굉장히 무례한 사람 같았다.

"진호야, 손님께서 좀 보자는데? 교수님이셔."

"교수님요?"

손님의 부름. TV에서나 보았던 일이었다.

"자, 잠시만요. 이것만 담고요!"

다 조리한 스테이크를 접시에 담은 진호는 철판을 벗어났다.

스카우터라는 이가 따라붙자 진호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캐스팅 이야기는 주점이 끝난 후에 하면 안 될까요? 지금은 많이 바빠서요."

"아니, 잠깐이면……."

"죄송합니다. 어디예요?"

"응? 아, 이쪽이야."

선배를 따라간 진호는 순간 콧속으로 파고드는 다채로운 냄새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와! 진짜 요리사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게 확실했다.

"정말 이 요리를 학생이 만든 겁니 꺼?"

"네! 맛은 어떠셨나요?"

"……손 좀 봅시다."

"네? 아! 그, 그럼 저도 볼 수 있을까요?"

"……그럼 같이 봅시다."

"영광입니다!"

그렇게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고, 둘의 얼굴은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기가? 우째 이게 이런 실력의 세프……."

"와아! 셰프님 요리를 한번 먹어 보고 싶네요!"

진호가 박 코흐트의 손을 코앞까지 가져오자 향기가 폭발하듯 진해졌다.

"정통이 아니라 퓨전을 주로 하시죠? 오늘은 연어와 요거트를 쓰셨고요!"

박 코흐트의 입이 다물어졌다. 정답이었다.

"날 암니꺼?"

"아뇨! 하지만 정말 엄청난 분이신 건 알겠어요. 이 손과 몸에 가득한 식재료와 조리의 냄새들! 마치 향수 같습니다!"

진호는 진심이었다. 극한으로 발달되어 버린 감각 때문에 황홀해 미칠 것 같았다.

그의 빛나는 눈동자를 보자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미청년이 박 코흐트 자신을 모른다는 걸 말이다.

"허, 코가 개코입니꺼?"

"흐흐, 제가 감각이 좀 많이 발달 돼서요. 후와아, 정말 먹고 싶네요. 아, 제가 만든 요리는 어떠셨어요? 재료 준비부터 손수 다 했거든요! 그리고 말 편히 하세요!"

어이없다는 듯 웃은 박 코흐트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가리켰다.

"이리 오차 없는 썰기에 이런 불 조절, 소스도 직접 만들었제?"

"예! 돈을 받는 순간 저는 프로여야 하니까요!"

"……마음까지 프로네. 봐라, 이게 노력하는 천재인 기라."

식품영양학과 학생들은 입을 다물었고, 박 코흐트가 누군지 알아 차린 주위 사람들은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런 그들은 곧 경악했다. 눈을 빛낸 박 코흐트의 말 때문이었다.

"니, 내 주방에 안 올래?"

시끄럽던 주점이 삽시간에 조용 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 안돼요!"

"설아 씨?"

이게 기폭점이 되었다.

"무, 무슨 소릴! 진호 씨는 우리 기획사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허! 어디서 선수를 쳐!"

주점이 다른 의미로 시끄러워졌다.

난장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