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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8화 (28/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3화

트럼펫을 든 요정 곱슬머리 이재형이 디올의 목걸이를 내밀면서 그녀의 신데렐라 변신이 시작됐다. 잠시 촬영이 중단된 촬영장은 그에 맞는 진한 메이크업과 의상을 갖춰 입고 수줍게 걸어나오는 이설아에 의해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대표와 매니저 박충식은 경악하며 침까지 흘렸다.

가슴을 조금 드러낸 육감적인 몸 매가 오뜨꾸뛰르 라인의 우아한 드레스에 색기를 더하고 있었다. 거기에 메이크업에 의해 귀여우면서도 고혹적인, 상반된 매력을 여실히 내뿜고 있었다.

그 모습은 여신, 그 한마디로 정의가 되었다. 야누스도 이보단 나았다.

진호는 김주임의 옆구리를 톡 치며 조명희 부장을 보았다.

"이 정도면 디올을 입어도 될 만 하죠?"

만약 이설아가 디올에 어울리지 않았다면 진호는 디올의 후원을 거부했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도 중요하지만 이설아보단 디올이 훨씬 더 중요했다.

"……우리 사원들은 다 눈이 삐었네요."

진호 때문이라지만, 별 거지 같은 거에게 디올을 치장시켜야 해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조명희 부장은 반성했다.

"전혀요. 설아 씨의 숨어 있는 매력을 저 정도까지 표현해 준 건 디올의 사원들이잖아요."

진호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었다.

"타이틀 곡 뮤비를 보세요."

나름 화장을 했지만 촌스러웠다.

"역시 그렇죠?"

"그럼요."

"괘, 괜찮아요?"

훅 풍겨 오는 향수 냄새에 진호는 순간 심장이 답답해졌다.

"예뻐요, 정말로."

이 말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

진심이 가득 담긴 진호의 눈빛에 이설아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고, 아차한 그도 고개를 슬쩍 돌렸다.

둘 사이에 핑크빛의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진호는 슬그머니 핸드폰을 내밀었다.

"우, 우리 사진 찍을까요? 예쁜 옷 입은 겸."

"그, 그럴까요?"

둘은 여전히 어색해하며 사진을 찍었다.

찰칵!

"푸훗."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자식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딱딱한 모습이었다. 그 웃긴 모습 때문인지 긴장이 풀렸다.

"다시 찍어요."

"그래요."

둘은 자연스럽게 서로 밀착하며 셀카 포즈를 취했다.

"자, 스마일~ ."

치즈- 찰칵!

이번엔 아주 예쁘게 나왔다.

"역시 연예인. 아무렇게나 찍어도 예뻐."

"……진호 씨가 할 말이에요?"

"하하, 번호 알려 주세요. 보내 드릴게요."

"네."

둘은 자연스럽게 번호를 교환했다.

"연애는 촬영 끝나고 하면 안 될까?"

"꺅!"

감독이 약간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들이밀었다.

'연애'란 단어에 얼굴이 붉어진 둘은 어색하게 웃고는 딱딱한 걸음으로 다시 세트 위에 섰다.

"이번 신은 관심 없던 진호 씨가 변신한 설아에게 반하는 겁니다. 물론 설아의 상상이죠. 현실은 시궁창…… 아니 상상인 것만 명심 합시다!"

몇 초 나오지 않을 신이지만 이 뮤직비디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었다. 디올이 나오는 부분도 딱 여기만이다. 기본적으로 뮤비 내에서의 이설아는 꾸며도 촌스러운 여자였다.

촬영장에 웃음이 터졌다.

"자, 하이 큐!"

다시 음악이 울리고, 카페로 꾸며진 세트에서 책을 보던 진호가 향긋한 향수 냄새에 고개를 들었다.

'아, 큰일 났다.'

그녀가 너무 예뻤다.

* * *

촬영은 점심이 지나고 저녁이 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감독은 굉장히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이설아도 마찬가지였다.

디올이라는 거대 브랜드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인지 그녀는 무척 이나 적극적이고 집요하게 덤벼들었다.

진호도 화보 촬영과는 다른 방식의 연기에 재밌어하며 지치는 줄을 몰랐다.

찰칵! 찰칵!

셔터 소리에 맞춰 자세와 감정을 바꿔야 하는 화보와 달리 카메라 앞의 연기는 한 가지 감정을 오래 가져가는, 마치 세상이 느려진 것 같아서 재밌었다.

"……."

매콤한 제육에 새콤한 탕수육, 어묵볶음, 잘 익은 김치 등등이 차려진 테이블.

엉덩이가 절로 들썩이고, 턱이 아릿했다.

"안돼요. 배 나와요."

"……크흑!"

'안 나오는데!'

입술을 내민 그는 기타를 챙겨 들고 벌떡 일어나 거리처럼 꾸며진 세트로 향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 공복감을 잊기 위해 기타 줄을 훑었다.

디리링!

그는 내 식사는 어디에 있냐는 마음을 듬뿍 담아 기타를 쳤다. 다 들으라고 가사를 크게 외치려던 그때, 이설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서로의 눈이 마주친 순간, 그들은 서로의 감정을 이해했다.

'크흑!'

'흑!'

삼겹살을 굽는 설명에 침을 삼켰을 때부터 이미 그녀의 식탐을 이해하고 있었던 진호는 감정을 더 담아 기타를 연주했고, 이설아의 목소리는 더욱 아련해졌다.

디리링!

"……앵콜! 앵콜! 앵콜!"

"와아아아!"

이래서 살인이 나는 건가 싶었다.

"끝나고 나서 삼겹살에 된장찌개 어때요?"

"……흑! 먹을 수가 없어요."

"……기타 칠게요."

"우울한 걸로 같이 쳐요. 저 사람들 다 체해 버리게."

"오케이."

그녀는 가져온 기타를 들며 진호의 옆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이내 둘은 온 감정을 가득 쏟으며 기타 줄을 뜯고 목을 열었다.

그렇게 서로가 통하는 밤은 깊어 갔다.

그리고 이 장면을 담은 메이킹 필름은 화제가 되었다.

2.

처음은 디올의 뮤즈, 이진호의 뮤직비디오 출연이라는 조금 과장된 제목의 기사였다.

기사는 마치 누가 조종이라도 하는 듯 삽시간에 퍼져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메이킹 필름까지 담은 무려 7분짜리의 뮤직비디오가 미튜브에 선보여졌고, 진호는 이제 비밀 서약을 지키지 않아도 됐기에 촬영장에서 찍은 셀카 사진을 SNS에 올렸다.

이설아와 찍은 사진은 프라이버시를 위해 올리지 않았다.

수십만 팔로워들의 힘은 대단했다.

노래가 좋아서인지 아니면 단 몇 초밖에 나오지 않았던 여신 버전 이설아의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던 건지 조회수가 폭증하면서 미튜브 인기 순위를 비롯해 포탈 검색어 상위를 차지해 버렸다. '좋은 하루'가 대한민국을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진호의 가치와 디올 코리아의 매출도 덩달아 상승했다.

5월은 가정의 달, 선물의 달이었다.

"허허허허허."

5월, 바야흐로 봄과 축제의 계절이었다.

그러나 경영학과의 모든 이들은 헛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아니, 대한민국 모든 대학생들이 헛웃음과 경악, 분노를 터트리고 있었다. 축제에서 주류 판매를 금지한다는 교육부의 발표 때문이었다. 지난 몇 년간 유예를 주었기에 올해의 발표는 단호했다.

그렇지 않아도 재미없다고 악명 높은 축제가 더 재미없게 되어 버릴 위기에 처하자 한국대생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학교 앞 술집 사장님들을 모셔 오는 게 어떨까?"

"술잔에 가격을 매기자. 판매는 아니니까!"

"로스쿨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올게!"

목표가 서자 그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술을 향한 대학생들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건 진호도 마찬가지였다. 대학 축제는 대학생활의 로망 중 하나 였고, 주점은 꽃이었다. 절대 재미 없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들 사이에 껴서 움직이려던 그는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잠시 멈춰야 했다.

"이모!"

-응, 아들. 지금 시간 돼?

그는 멈춰 선 선배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네, 잠깐 낼 수 있어요. 무슨 일 이세요?"

-다름이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서 연락이 와서 그래.

"일본과 중국? 아, 디올 재팬, 디올 차이나요? 왜요, 저를 메인 모델로 세우고 싶대요?"

피식 웃으며 말했던 진호는 미영의 대답에 낯빛을 굳혀야 했다.

-맞아. 그러고 싶대. 특히 일본 쪽이 열렬히 구애하고 있어. 디올 코리아의 매출 상승은 물론이고, 무명 가수도 1위 후보로 만들었잖니. 아들의 가치를 알게 된 거지.

"……일본은 커머셜이 강세잖아요."

동양인 가운데서도 유독 작은 축에 속하는 일본인은 소위 명품이라고 부르는 하이패션 의류를 쉽게 소화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스트리트 패션처럼 자유로운 스타일의 커머셜 패션이 발달했는데, 일본에서 이를 입는 커머셜 모델들은 패션모델과 다른 직종으로 편성될 만큼 독자적인 인기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쪽은 세계적 모델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고요."

패션계에서 중국은 동아시아에 판매되는 옷의 사이즈를 그들에게 맞출 만큼 엄청난 매출을 올려 주는 나라다. 때문인지 정상급 모델을 다수 배출했다.

-미남은 만국 공통어란다, 아들.

"흠, 일단 생각해 볼게요. 그쪽에서 얼마를 제시한 건지는 모르지만, 파리에 다녀오면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굿 아이디어. 이왕이면 피에트로 CEO와 사진도 찍으렴. 모델료 조정해야 하니까 강의 끝나면 오고.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절대 다른 브랜드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돼! 알았지?

"걱정 마세요. 집에 더 들어갈 곳도 없어요."

-절대절대절대 안돼! 알았지? 응?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은 진호는 이쪽을 보고 있는 선배들에게 사정을 대강 설명했다.

"오! 축하한다."

"이야, 세계로 나가는 거냐? 우리진호 술 사 줘야겠네!"

'하하, 감사합니다. 그럼 가죠!"

"……그래, 가야지."

그들은 총학생회가 있는 본관 건물을 보며 전의 어린 표정을 지었다.

* * *

학교 근처 어느 카페 안, 집행부 선배들의 얼굴이 어둡다.

실패였다.

총학생회는 이빨조차 들어가지 않았고, 유예기간 동안 온갖 꼼수를 펼쳐서 그런지 생각나는 모든 방법을 막아 버렸다.

주류법상 1도 이상의 주정을 희석시켜서 팔아도 안 되었다.

로스쿨에 진학한 선배나 현직 변호사, 판검사 선배들의 법률 자문 까지 받았지만 구멍이 보이질 않았다.

진호는 로망을 경험하지 못하게 된 사태에 절망하고 말았다.

"1도 미만 술을 마실 바에는 차라리 과일 음료를 마시고……."

'응? 과일 음료? 과일 소주?'

맞은편 건물의 퓨전 포차가 눈에 들어왔다.

진호는 창문 밖을 주욱 둘러보았다. 고깃집, 칵테일 바, 바, 호프, 온갖 술집들이 있었다.

그의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 했다.

우우웅!

전화번호를 확인한 진호는 혀를 차며 핸드폰을 뒤집었다.

"누구야?"

"모르는 번호요."

번호가 꽤 길긴 했지만, 어차피 기획사나 에이전시일 것이다. 어쩌면 NBS1TV의 PD들일 수도 있다.

뜸했던 연락이 뮤직비디오 발표 후 쏟아지고 있었다.

'정말 매니저를 구하든가 해야지, 원.'

진호는 웃으며 방금 떠올린 이야기를 했다.

"차라리 술을 섞어 마실 수 있는 과일 음료를 판매하는 건 어때요? 이쪽에서 술을 팔지 못하면, 가지고 들어오게 하는 거죠."

선배들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밖의 마트를 가리켰다.

"이 근처 마트들과 협업도 맺어서 마트가 술을 조금 비싸게 판매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차익을 우리가……."

"잠깐."

구영재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지금 네 말은 마트에서 술을 사 오는 사람에 한해서 안주 할인을 해 주자, 뭐 그런 거냐? 매출 증가를 미끼로 마트와 교섭도 할 수 있으니?"

구영재는 이게 맞냐는 듯 진호를 보았다.

"네, 대충 그런 거죠. 콘셉트는 셸프 믹싱 바."

진호는 옅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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