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6화 (2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2권 1화

1.

부우우우웅! 끼이이익!

작은 핸드폰 화면에서 자동차들이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현란한 시프트다운에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드리프트하는 푸른 두줄 스트라이프의 하얀색 스카이라인.

취이익!

분사되는 니트로가 엔진 피스톤을 격렬하게 움직이게 하면서 운전자의 몸을 뒤로 잡아당기며 올라간 다리를 뛰어넘는다.

-오!

"오!"

"언제 적 영화냐? 너 이런 취향 이었어?"

"영재 형, 차는 어떤 게 좋을까요?"

어제 과외비와 모델비가 입금이 되었다. 모델은 개인사업자로 등록 해야 세금 감면이 유리하다면서 미영이 세무사도 소개시켜 주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은 바로 시작되지 않았다. 감독을 구하고 스태프도 구하고 콘티를 짜야 해서 10일정도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타이틀 곡 활동도 그 즈음에서 접는다고 했는데, 너무 빨리 후속 곡을 발표하면 안 좋은 이미지가 씌워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난 벤츠가 가장 낫더라. 아우디나 애스턴마틴도 괜찮고."

'부잣집 아들이세요?'

입고 다니는 옷의 브랜드를 보면 그런 것도 같았다.

"음, 역시 좀 더 고민해 봐야겠네요."

승용차를 탈지 SUV를 탈지도 결정해야 했다. 아주 행복한 고민이었다.

"근데 그건 뭐냐? 토플? 시험 보게?"

"네, 시간 될 때 따 놔야죠."

"플렉스나 오픽도 괜찮아. 플텍스는 2년짜리지만, 경험 삼아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따 놓으면 쓸 곳도 많고."

고맙다는 듯 싱긋 웃은 진호는 테니스 라켓을 들고 일어섰다.

"5월 체육 대회 준비해야죠. 연습 합시다."

"축제다, 인마. 축제. 총장배 관악 대동제."

"가장 재미없는 축제잖아요."

정확히는 체육 대회 겸 축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대 축제는 모든 대학 축제 중 가장 재미없기로 유명하다.

"이번엔 라라랜드가 오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네게 줄게 붐 붐. 발끝까지 붐 붐."

그러나 선배들을 통해 들은 역대 한국대 축제 선발 라인업은 정말 처참했다.

'일해라, 학생회.'

우울해하며 코트에 선 진호는 공을 통통 튀겼다.

"그럼 갑니다."

높이 토스시킨 공을 향해 진호의 무릎도 살짝 떠올랐다. 그리고 전신을 채찍처럼 휘둘러 테니스공을 후려쳤다.

퍼엉!

진호는 옆에서 침묵하는 구영재를 보며 씩 웃었다.

"서비스 에이스. 피프틴 러브."

프로의 서브는 시속 200킬로미터를 넘는다고 했다.

빠직!

"응?"

"헉! 헉! 왜?"

진호는 땀을 비 오듯 흘리는 학과 선배를 향해 테니스 라켓을 보여 줬다.

"이거 금 갔는데요?"

"뭐?"

"엥?"

진호와의 연습에 나가떨어졌던 선배들이 달려왔다. 그들은 쫙 금이 간 라켓의 목 부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와, 나 여기에 금 가는 거 처음 봐."

"얼마나 세게 휘둘러야 이렇게 되는 거야?"

보통 충격량이 쌓이지 않고는 손상이 가지 않는 부위다.

"진호야, 다른 라켓 줄까?"

"……아뇨. 이 기회에 제 전용 라켓을 사는 게 낫겠네요."

헤드의 크기, 그립의 길이, 두께, 무게, 재질 등등 수많은 조건에 의해 라켓의 종류도 달라진다.

"혹시 아는 라켓 매장 있으세요?"

"아, 동대문 쪽에 아는 매장 있어. 작은 곳인데, 구성품이 알차. 알려 줄까?"

"그럼 감사하죠. 지금 씻고 가봐야겠네요. 저도 좀 지치네요."

"……괴물 새끼."

여섯 명을 6-2 내지 6-1로 이겼는데도 멀쩡히 말하고 있다.

히죽 웃은 진호는 먼저 갑니다, 하고 외치며 동아리실 옆에 있는 샤워장으로 향했다.

'알찬 만큼 비싸구나.'

라켓 프레임 가격만 30만 원에 근접했다. 그런데 급격히 늘어난 통장 잔고 때문인지 옆에서 지름 신이 계속 유혹하고 있었다.

'하나는 파워용, 하나는 테크니션 용, 하나는 범용형, 다 사는 거야. 여기 있는 거 다 사는 거야.'

테니스 슈즈는 왜 이리 다들 예쁜지, 스트링(테니스 줄)은 왜 이리 종류별로 많은지, 이곳이 파라 다이스였다.

'……그래, 사자.'

"사장님 ─!"

사장님은 굉장히 친절했고, 아는 것도 많았다. 진호에게 딱 맞는 텐션(장력)도 형성해 주었다.

덕분에 한 번 더 지름신이 강림한 진호는 무거워진 라켓 가방을 꼭 끌어안은 채 두타몰로 향했다. 동대문에 온 김에 장덕제에게도 들르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진호가 등장하자 두타몰이 술렁였다.

"형, 많이 파셨어요?"

"진호야!"

달려온 장덕제가 진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정말, 너 때문에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진호는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뿌듯했다.

"에이, 다 형 옷이 예뻐서 잘 팔린 거죠. 전 숟가락 얹은 거밖에 없어요. 안 팔리면 말해요, 다시 찍을 테니까. 대신 비싸요?"

"……짜식이 형을 계속 울려. 저녁 먹었냐?"

"허어, 안 사 주시려고 그랬어요? 이 형님 보소?"

"흐흐, 가자. 너 먹고 싶은 거 다 쏜다."

"그럼 쉑쉑버거 먹죠."

"형이 직원을 두 명이나 늘렸다."

"다섯 세트 먹을 건데요? 운동하고 와서 배 엄청 고파요."

"……하이 패션 모델이 그렇게 먹어도 돼?"

하이 패션 모델은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를 입고 화보를 찍거나 런웨이에서는 이들을 뜻하는데, 모델하면 떠오르는 깡마른 이미지는 이들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모델계에서 정점에서 있는 계층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먹어도 안 쪄요. 1그램도."

"그, 그거 놀랍네. 그거 소문내지 마라. 걔들한테 돌 맞는다."

"완력으론 내가 이겨요……. 응?"

그때 낯익은 뒤통수가 보였다. 전국을 돌아다니고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장덕제에게 양해를 구한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어느 매장에서 그곳의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에 협찬을 해 주시면 무료로 홍보도 되고."

"설아 씨?"

"헤헤, 안녕하세요. 3년차 신인 가수 이설……. 희! 사, 사람 잘못 보셨습니다!"

하얗게 질린 이설아가 급히 도망치려는 모습을 보이자 진호는 반 사적으로 그녀의 팔을 잡았다.

"왜 그러세요?"

"……흐잉, 들켰다."

"네?"

루엠 엔터테인먼트는 가수라곤 이설아 하나뿐인 영세 기획사다.

1집과 2집을 거하게 말아먹고 모든 돈을 탈탈 털어 제작한 3집이 니만큼 코디네이터를 유지할 자금이 없었다.

그래서 이설아가 직접 후속곡 뮤직비디오 촬영에 쓰일 의상을 구하러 다닌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진호에게 들키고 말았다. 사정을 들은 진호는 웃음을 터트렸다.

"걱정 마세요. 계약금을 받은 이상 루엠의 사정이 어떻더라도 제가 도중에 그만두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저, 정말요? 저희가 곧 망할 기획사라고 해도요?"

진호는 디올이라는 초거대 패션 브랜드에서 뮤즈라 불리는이다. 콧바람 한번 불면 루엠 따윈 허물어지기 직전까지 가야 한다고 봐야 했다. 페이탈 북 팔로워 숫자도 몇십만이었다.

"첫 경험에 돈이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첫 경험, 딱 한 번, 딱 하루,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경험은 경험이고, 돈은 돈이었다.

"진호 씨……."

연상 미인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은 심장에 좋지 못했다.

"그런데 콘티가 나왔나 봐요?"

"맞아. 내일 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만났으니 한번 보세요."

이설아는 메고 있는 기타 가방에서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생되는 그녀의 후속곡과 콘티의 그림이 어우러지자 진호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재밌는 내용이었다.

"소녀의 애타는 짝사랑이라."

계약 이후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 몇십 편을 찾아봐서 그런지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진호 자신의 역할은 동네 오빠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동네 소녀와 동네 오빠.

"타이틀곡과 콘셉트가 비슷하네요?"

"스토리 있게 가자고 해서요. 원래 이 후속곡은 타이틀 곡 전 내용이거든요."

"……좀 미련한 여자네요."

'아니면 곡이 설아 씨와 맞지 않든가.'

이렇게 예쁜 이설아인데 짝사랑 만한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곡 초반에 소녀가 예쁘게 변신한다는 부분이 있기에 기대해 볼만 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이런 것도 잘 표현해야 가수죠!"

"오오!"

짝짝짝!

"히히히."

뒤통수를 긁적이는 이설아의 모습은 굉장히 귀여웠다.

"그래서 의상은 다 골랐어요?"

"……아뇨, 솔직히 옷은 잘 몰라서."

청바지에 펑퍼짐한 회색 티셔츠를 입은 것을 보면 딱 그렇게 보이긴 했다. 진호는 눈을 빛냈다.

"도와드릴까요?"

"네?"

생에 처음 촬영하는 뮤직비디오의 의상을 직접고른다. 다 찍었을 때와 훗날 봤을 때의 성취감이 남 다를 것 같았다.

"그, 그래 주시면 감사하지만 폐가 아닐지……."

"괜찮아요. 저도 재밌을 것 같아서 돕는 거니까. 일단 여성복부터 고르러 가죠."

댄서들을 위한 남성복은 버킷이 있다.

"이모, 여기 혹시 꽃무늬 원피스 있어요? 시폰 미니로요."

"어휴, 있죠. 왜? 진호 씨 촬영에 쓰게요?"

"어? 제 이름은 어떻게 아셨어요?"

"왜 몰라요, 동대문에 소문이 파다한데."

"하하, 그래요?"

진호는 눈을 빛냈다. 잘하면 엄청 깎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옷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내가 다 보여 드릴게."

매장 주인은 꽃무늬가 들어간 모든 원피스를 보여 주었다. 그중 몇 개가 진호의 눈에 들어왔다.

"이거 어때요? 톤이 진해서 괜찮을 듯한데."

"그, 글쎄요."

"설아 씨가 입을 건데 가수 마음에 들어야죠. 한번 입어 보세요."

"음."

이설아가 옷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눈엔 꺼림칙함이 있었다.

'아냐. 사람들이 이렇게 노력해 주는데, 나도 노력하기로 했는데 이 정도 옷은 입어야지. 핫팬츠도 아니잖아.'

미니 원피스지만 이번 타이틀 곡때문에 음악 방송 무대에 섰을 때 입은 핫팬츠보다는 훨씬 길었다. 진호를 힐끗 본 그녀는 옷을 꼭 쥐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진호가 혼자 남자 매장 주인이 슬그미니 다가왔다.

"그래서 무슨 촬영인데요?"

"방금 들어간 가수님 뮤직비디오 촬영이요. 목소리가 아주, 제가 거기에 반해서 출연하는 거잖아요."

"어머, 그래요?!"

매장 주인의 눈이 번뜩였다. 진호도 속으로 눈을 빛냈다.

"그럼 막 홍보도 해 주나?"

"싸게 주면 홍보뿐이겠어요? 여기 이름도 말해 주지."

촤륵!

"괘, 괜찮아요?"

탈의실에서 나온 이설아가 치맛단을 잡아 내리며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심장을 습격했다. 진호는 태연한 척 엄지를 치켜세웠다.

"봐요. 어떤 촌스런 옷을 입혀도 명품으로 만드는 베이글이잖아요. 어떻게 하실래요? 아니면 나 다른데 가고요."

"……그래, 졌다. 내가 공짜로 드릴게! 진호 씨가 홍보해 준다는데 옷값이 문제겠어?"

"오오, 내가 또 그런 건 거부 안 하죠. 탁월한 선택이십니다. 보세요, 지금도 홍보되잖아요."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여성들이 진호를 향해 핸드폰을 들이밀고 있었다.

"으이그, 말이나 못하면! 몇 벌 이나 필요한데?"

"설아 씨, 몇 벌 필요해요?"

진호는 얼른 말하라는 듯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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