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23화
조원들도 진호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진호가 그들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좀 이따 보자."
"오케이."
진호는 기타를 챙겨 들고 앞으로 나섰다.
그렇게 강단 뒤편의 대기실로 향하니 동기들이 모여 있다.
모든 조원이 춤 연습을 하는 조도 있고, 개그나 차력을 준비하는 조도 있었고, 기타를 메고 온 조도 있었다.
특히 기타를 메고 온 조가 많았다.
그들 사이에서 진호만이 유일하게 혼자였다.
하지만 진호는 자신만만했다.
'이거 우리가 이기겠는데?'
연습하는 곡들을 들으니 이런 자신감이 번뜩 들었다.
"진호야, 기타 치려고?"
같은 교양 강의를 듣는 여자 동기가 비웃듯 물었다.
기타를 메고 온 동기들 모두 같은 교양을 듣는 이들이었다.
학업 스트레스를 기타 연주로 풀었다거나 중학교 때까지 통기타부에 있었다던 동기들 모두가 가소롭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 요령 깨달았다."
"그제까지 코드조차 제대로 못 짚었잖아."
"걱정 마라. 1등은 내 거, 아니 우리 조차지니까."
"호호! 그래그래. 우리 진호, 파이팅?"
"저게……."
살랑살랑 멀어지는 동기를 보던 진호는 이내 곧 속으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좀 있다가도 그럴 수 있나 보자.'
-이예! 맥썹 노이즈─!
장기 자랑이 시작되었다.
"하앗! 차압!"
-아야, 안 아프냐?
"아이 라이크 티티!"
-저스트 라이크 티티!
"울며 떠─ 나가 버렸네─!"
-캬아! 좋다.
구영재의 추임새가장기 자랑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어…… 또 통기타네요.'내 말 맞조?'가 연주하고 부릅니다. 김광석 씨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와아아아……."
아무리 좋은 노래, 좋은 연주라도 한두 번이었다.
그것이 발라드, 컨트리 송이라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록이나 메탈이었으면 나았을 텐데.'
다음 순번이라 대기하고 있던 진호는 살짝 일그러지는 동기들의 얼굴에 안쓰러움을 느꼈다.
그렇게 2절까지 마친 그들은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이 무대를 빠져나갔다.
-오! 다음 순번은 경영학과 모든 여학우가 기다리던 놈이죠?
"꺄─!"
"진호야─!"
-아놔, 그냥 뒤졌으면.
체육관에 웃음이 터졌다.
-야, 이진호. 얼른 올라와라.
"넵!"
"꺄아아아……."
"오오오오 "
날카로운 환호성이 진호의 손에 들린 통기타를 보자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또냐…… 그래. 해라, 해. '우리가 일등이조'의…… 엥?
구영재가 맞냐는 듯 쳐다봤고, 진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핫! 이번 곡은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냥 들어 보세요.
의아해 하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은 진호가 잭을 꽂은 기타에 손을 얹었다. 정명진 교수가 준 기타는 잭을 꽂을 수 있는 기타였다.
'후우.'
기대감이 사라지는 눈들이고, 누군가는 딴짓을 하고 있지만, 무려 200명이 넘는 사람들 앞이었다. 긴장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이 역시도 새로운 경험이라는 사실이 그를 흥분시켰다.
'내가 왜 하겠다고 했는데?'
"후우,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진호의 입가가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띠리리리링! 띵띵띵! 띵!
사람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무도 익숙한 음율.
미튜브 조회수 1위를 갈아치운 그 노래였다.
그 순간이었다.
벌떡 일어난 진호의 조원들이 무대를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이익!
"어?"
조원들이 트레이닝복 저지의 지퍼를 내리는 그 순간 일어난 진호가 마이크를 향해 크게 외쳤다.
"자, 즐겨봅시다! 아이-! 진호!"
탱크톱에 가슴이 푹 파인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과 민소매 티를 입은 채 메이크업과 오일로 그럴듯하게 만든 상체 근육들을 선보이는 남자들.
진호는 숫제 경악하는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Si sabes que ya llevo un rato mirandote. Tengo que bailar con tigo hoy!"
전 세계를 열광시킨 그 곡 데스파시토.
죽어라 스페인어 발음을 연습했던 그 곡.
"꺄아아아악!"
"우와아아아아아!"
체육관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1등은 당연히 진호의 조의 차지였다.
9.
-Des pa cito. Quiero respirar tu cuello despacito.
"……허."
일반적인 사무실처럼 꾸며진 공간. 푸근한 인상의 중년인이 화질도 흐릿하고, 소리도 비명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영상을 보며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흔한 한국대생들의 노는 법'이라는 제목의 영상이었다.
"기타도 칠 줄 알아?"
그것도 보통 실력이 아니었다. 음악을 했던 사람이기에 기교만 있는 죽은 연주인지, 감성이 실린 진짜 연주인지 첫 소절만 들어도 알 수가 있었다.
똑똑똑!
"들어와."
문이 열리며 이설아의 매니저인 박충식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중년인은 소파에 앉으라고 손짓 했다.
"전에 그 이진호를 만났다고 했지?"
"10 대 0도 말했습니다."
"그랬지. 그래서 나도 포기했지. 후."
"무슨 일 있으십니까? 요새 회사 사정 어렵습니까? 설아 이번에 반응 좋잖습니까!"
무리를 해서라도 보그 코리아 인터뷰를 잡고, 재녹음까지 하기를 잘했다.
1집, 2집 앨범과는 다른 반응이 오고 있었다.
"한번 봐 봐."
박충식은 중년인이 내민 영상을 보곤 깜짝 놀랐다.
"어?"
그는 단번에 영상의 주인공이 이진호임을 알아봤다.
제목에도 한국대생이 들어가지 않는가.
"이, 이건?"
"누가 보내 준 건데, 허 참……."
중년인은 테이블에 놓인 여러 패션 잡지 표지를 장식한 이진호를 보며 낯빛을 굳혔다.
동시에 국내 유명 패션 잡지들의 표지 모델이 되면서 대중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보통 패션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한 가지 잡지만 보는 게 아닌데, 보는 패션 잡지마다 표지 모델이 똑같은 사람이었다.
인터넷이 난리였다.
"아무래도 9대 1을 주고서라도 모셔 와야 할 것 같지?"
그동안 소위 미친 비주얼을 지니고 있는데도 강하게 매달리지 않았던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타성.
아무리 잘생긴 놈을 데려다 놔도 스타성이 없으면 묻히는 곳이 바로 연예계였다.
그게 불분명했는데, 이 영상으로 생각이 달라졌다.
박충식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곡만 좋은 거 받으면 10만 장은 기본이겠네요."
"그렇지."
동시에 서로를 본 둘의 눈에 열기가 담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 * *
인터넷에 퍼진 영상은 경영학과에서도 이슈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경영학도 하면 엘리트적인 면모부터 생각되는데, 이런 이미지에 훼손을 입어서가 아니었다.
학장과 부학장은 경영학도가 놀기도 잘 논다며 흡족해 했다.
문제는 MT라는 학과만의 사적인 모습이 같은 경영학도에 의해 밖으로 퍼졌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선배들과 동기들이 범인 검거에 나섰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영상을 찍은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학과 집행부 선배들은 진호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지만, 진호는 딱히 별 관심이 없었다. 도촬이야 이미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우버? 우버 택시를 말하는 거야?"
날씨가 온연히 따뜻해진 4월. 경영학과 앞 벤치에 진호와 몇몇 이들이 모여 있다.
"그렇지. 그거 우리나라에서 사라졌잖아."
진호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 택시 업계랑 코코아 택시에 밀린 것뿐이지. 애초에 우버의 정의는 승객과 운송 수단을 이어 주는 모바일 서비스니까. 폭을 확대시키면 콜택시도 포함될걸?"
"끙."
"으음."
이번 전공 조별 과제를 위해 모인 조원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학 입학 후 첫 조별 과제라서 그런지 모두 인상이 펴지지 않았다.
한 가지 기업과 그 기업의 주력 상품을 정하여 경영학적인 측면에서 장단점을 조사하라는 과제였다.
"맞아, 카풀 서비스는 어… 아, 그건 한계가 명확하구나."
진호와 조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단점만 조사하면 되지만, 이건 단점만 있었다.
고작 1학년일 뿐인데도 과제의 난이도가 상상 이상이었다.
"아마존은 벌써 누가 착수했을 테고."
"애플이나 오성 그룹도 마찬가지 일걸?"
분위기는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호는 그런 그들을 보며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모바일 게임은 어때?"
"모바일?"
진호는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눈을 굴렸다.
'뭐지? 이 반응은? 정말 모르나?'
"다들 톱급 연예인이 모바일 게임 광고하는 거 본 적 없어?"
"어?"
"……아?"
조원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뭔가를 알아차린 그들의 모습에 진호는 속으로 웃었다.
게임은 진호 자신의 분야였다.
"과연 모바일 게임 업체가 돈이 남아 돌아서 그런 연예인을 썼을까?"
"……잠깐 그럼 진호 네 말은 모바일 게임이 그만한 수익성을 낸다는 소리야?"
"너희 혈통이라는 게임 몰라? 거기에 적게는 십만 원대부터 많게는 억까지 지르는 사람이 태반이야."
"미친. 그게 말이 돼?"
"무슨 게임 따위에 돈을 그렇게 써?"
진호는 믿지 못하는 그들이 더 답답했다.
"몬스터 GO가 왜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것 같아? 왜 사람들이 그 먼 속초까지 갔을까?"
"아니, 그건 좀 다른 이야기지."
"비슷한 맥락이야. 모바일 게임이 그만큼 재미가 있다는 거야.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라도 하고 싶고, 그를 위해 돈을 쓸 수 있다는 거지. 모바일 게임은 이미 취미의 한 종류로 자리 잡았어."
조원들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나도 이번 설에 시골 갔을 때, 사촌들 모두 모바일 게임만 하고 있더라."
"나도."
진호는 눈빛이 초롱초롱해지는 그들을 보며 씩 웃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거다?"
"오케이! 내가 모바일 게임 업체들 조사해 볼게. 그쪽 계통에 삼촌이 일하고 계셔."
"좋아. 일단 모바일 게임 업체들 명단이 나오면 그때 적당히 정해서 파트를 나누자. 그럼 조장은 누가 할까?"
진호의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진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네 아이디어잖아. 네가 해."
"어차피 학점 똑같잖아. 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 무리데스요. 더욱이 첫 번째 발표 과제라니. 어후, 토 나와."
다른 조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놔, 이 아싸들이."
"에이, 경영학과 연예인 왜 이러셔?"
"우리 루이스 진호, 어깨 주물러 줄까?"
진호는 피식 웃고 말았다.
졌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진호는 어느새 근처에 와있는 중년인들에 살짝 놀라고 말았다.
그들도 깜짝 놀라 허둥거렸다.
"누구세요?"
"아, 우리는……."
그들이 내미는 명함엔 벡터 엔터테인먼트라는 글자가 박혀 있었다. 진호는 입을 헤 벌렸다.
전화와 SNS에서만 연락했던 그들이 현실에도 나타나 버렸다.
보그 코리아에서 만난 박충식과는 다른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