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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2화 (2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22화

진호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 난입자의 실력은 정말로 대단 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악기는 사람의 목소리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구나.'

무어라 딱 꼬집어 설명할 수는 없을 만큼 복합적인 매력을 가진 목소리였다. 마음 같아선 계속 듣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이진호입니다."

"안녕하세요! 이……."

"설아야! 이설아! 앤 어디 있는 거…… 헉!"

"이설아입니다! 올해로 3년차인 신인 가수입니다!"

'3년차가 신인 가수?'

말이 이상했지만, 진호는 그녀의 이름을 완전히 외울 수 있었다.

'집에 가면 찾아봐야겠다.'

"헤에, 역시 모르시는구나.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아무튼 오늘 감사했어요. 매니저 오빠, 가요."

"어, 으응…… 아, 아니 잠깐만!"

매니저는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혹시 이진호 씨 아닙니까?"

"아, 네. 반갑습니다. 이진호입니다."

"역시! 반갑습니다! 로엠 엔터테이먼트의 박충식입니다."

진호는 꾸벅 허리를 숙인 매니저가 내미는 명함을 얼떨결에 받아들며 의아해 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지금 소속된 소속사가 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진호는 그제야 이해했다. 그는 살풋 웃었다.

의외의 장소에서 생각지도 못한 일을 당하게 됐지만, SNS에 범람 하는 스카웃 쪽지들을 매일같이 보는 상태라서 당혹스럽지는 않았다.

"없지만, 딱히 계약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계약을 맺게 된 순간부터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없을 테니까요."

"우리는 아닙……."

"100퍼센트 아니라고는 하실수 없겠죠?"

"죄송합니다. 9 대 1을, 아니 10 대 0을 주신다고 해도 자유를 억압받으면서까지 일을 하긴 싫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진호이기에 거리낌 없이 말 할 수 있었다.

매니저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스태프가 오네요. 그럼 전 이만. 김 주임님, 갔다 올게요."

"그래, 다녀와."

김 주임은 소파 앞 테이블에 올려 둔 노트북에 시선을 두었고, 이설아와 매니저는 대기실을 빠져나 가야 했다.

"……와, 똑똑한 놈이라서 그런지 말빨이 다르네."

조곤조곤 감정 변화 없이 말하는데, 너무 단호하고 자신만만해서 이빨이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았다.

"9대 1이라니. 그냥 계약을 하기 싫다는 거잖아."

"매니저 오빠, 저 사람이 누구예요?"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멀어지는 진호의 등을 보며 이설아가 눈을 빛냈다.

매니저는 한숨을 내뱉었다.

"요즘 대한민국의 모든 기획사가 눈독 들이는 애. 저 비주얼에 한국 대 전체 수석이란 타이틀,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 팀 존스가 쫓아을 만큼의 가치를 가진 블루칩."

'와, 역시 나는 입시 수준도 도달 못한 애송이가 맞구나.'

"근데 너 왜 그래?"

"뭐가요?"

"아까까지만 해도 우울했잖아. 그런데 지금은……."

꼭 처음 봤을 때의 이설아처럼 밝고통통 튀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인 아니 지망생 때처럼 욕심 내 보려고요. 아등바등, 언제나 배고프던 그때처럼."

"……그래, 인마! 넌 이렇게 밝은 게 어울려! 오늘 그냥 카메라를 잡아 먹어 버려!"

"당연하지! 헤헤. 가요! 아, 그리고 나 녹음 다시할 거예요!"

"뭐어? 야!"

도망치듯 달리는 그녀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그날의 촬영도 성공리에 끝마칠 수 있었다.

* * *

한국대 경영학과가 아침부터 시끄러웠다.

공지대로 옷을 편하게 차려입은 신입생들과 2, 3학년 집행부 선배들이 주차장에 주차 된 버스에 오르고 있었다.

"진호야, 잘 쓸게!"

"써 봤는데, 향기 좋더라? 잘 쓸 게!"

MT를 가기 3일 전인 3월 마지막 날에 디올 코리아에서 학과로 후원 물품을 보냈다.

손수건과 립밥이었지만, 학과 전체, 인원수로만 따지면 무려 500 명이 넘는 사람이 모두 하나씩 받게 되었다.

테니스 동아리에는 이탈리아 장인이 한땀 한땀 정성들여 만든 것 같은 트레이닝복이 후원되었다. 한국대학교 경영학과 테니스 클럽이라는 로고가 박혀서 말이다. 교수들을 위한 중후한 멋을 한껏 살린 트레이닝복도 있었다.

그것도 졸업생도 아닌 재학생이 끌고 온 후원.

부학장과 교수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흡족해 했고, 선배들과 동기들은 진호에게 후배 사랑, 동기사랑이 무엇인지는 알게 해줬다. 부학장과 교수들은 힘든 일이 있으면 언제든 문을 두드리라는 열린 마인드까지 보여 주었다.

우우웅!

움직이는 차 안.

방금 전까지 노래방 기계로 신나게 놀아서 그런지 모두 곯아떨어져 있었다.

"요새 좀 어때? 많이 힘들지?"

슬그미니 다가온 구영재가 옆자리에 둔 기타를 끌어안으며 앉았다. 진호의 옆자리에 앉기 위해 치열한 눈치싸움이 있었지만, 결국 승자는 아무도 없었다.

"힘들긴요."

진심이었다. 어차피 삼사일 간격으로 강의가 모두 끝난 후 잠깐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그것도 어제부로 끝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다음 주에는 모든 패션 잡지에서 네 얼굴을 보는 거냐?"

"길면 6월까지 볼 거예요."

한 번 작업한 패션 잡지들에서 인터뷰 촬영도 하자며 매달렸다. 어차피 그런 수순으로 가기로 했기에 진호는 당연히 승낙했다. 그래서 5월까지 촬영 스케줄이 잡혀 있는 상태였다.

'파리 이후 일은 그때 생각하자.'

매일 매일 즐거우니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오올, 그래도 테니스 연습은 빼먹지 않지?"

"당연하죠. 매일매일 연습하고 있습니다."

'만화책, 경기 영상 등등 만날 보고 있습니다.'

"장기 자랑 준비는? 전에 말한 대로 너 무조건 해야 한다."

진호는 씨익 웃으며 구영재가 끌어안은 기타를 통통 쳤다.

"아주 죽여 드리겠습니다."

어제 현직가수까지 끼어들 만큼 멋진 연주를 했다.

리허설은 끝났다.

"……짜식, 넌 언제나 자신감이 넘쳐서 좋아. 그럼 수고해라."

"가시게요?"

진호는 작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호의를 보내는 사람과의 대화는 언제나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제 시작해야지."

"뭘……."

'응? 빨간 모자?'

뒷주머니에서 나와 씌워지는 빨간색의 모자.

그런데 그 빨간 모자는 구영재만 쓰는 게 아니었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집행부 선배들도 모두 빨간 모자를 쓰며 일어서고 있었다.

왠지 굉장히 불길해졌다.

그 순간, 버스가 멈춰 섰다. 끼이이익!

그리고 선배들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전부 기상!"

"기상합니다. 밖으로 뛰어나갑니다악!"

진호는 입을 떡 벌렸다.

'구, 군대냐-!'

구르고, 구르고, 구른다.

털리고, 털리며, 털린다.

그렇게 따뜻하고 잘 대해줬던 선배들은 알고 보니 악마였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진호를 비롯한 신입생들은 입에서 단내가 난다는 게 뭔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 * *

쏴아아아아!

"끄으으."

"후우."

커다란 샤워장에 신음 소리가 울린다.

몇몇은 배수구 앞에서 토악질했다.

"어후, 넌 뭐…… 꼭 그렇게 다 가져야 후련했냐!"

옆 동기의 말에 진호는 가슴을 펴고 아랫배를 내밀었다.

"……이걸 죽여, 살려?"

"부러우면 부럽다고 그냥 말로 해."

"그래, 죽어라."

"스톱! 여기 샤워장이다! 장소가 좋지 않아!"

"소중했던 나의 수줍은 맘을 모두-."

옆 동기의 노래에 달려들던 동기는 급히 멈췄고, 샤워장에 웃음이 터졌다.

"야이, 씨!"

"푸헉! 켁! 객!"

진호는 한바탕 소란을 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

왠지 오늘 일로 인해 동기들과 훨씬 더 친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스스럼 없이 농담을 할 만큼.

진호는 다시 샤워를 시작했다.

아니, 시작하려고 했다.

"야, 이 벽 너머에 여자애들이 있겠지? 우리랑 같은 모습으로?"

왜 이런 말은 이렇게 잘 들리는 지 모르겠다.

모든 남자의 눈이 진호가 서 있는 벽으로 향했다.

진호도 자연스럽게 벽을 보았다.

"……에라이!"

빠악!

"신경 꺼, 인마! 아까 선배들 말 못 들었어? 동기는 이성이 아니라 동성이야! 내 옆에 있던 영미는 PT 8번 하면서 방귀 뀌더라!"

"그래도 CC가…… 엄마가 대학 가면 연애할 수 있다고 했는데."

"…나두."

샤워장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가라앉았다.

"진호야, 네 여자 친구는 어때? 예뻐?"

"……여자 친구가 있냐고 묻는 게 먼저 아니냐?"

분위기는 더 가라앉았다.

그들은 입을 다문 채 몸과 흐르는 마음의 눈물을 닦았다.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갈 때까지. 그래도 새 옷의 감촉은 참 좋았다.

그렇게 머리를 털며 나오던 진호는 순간 멈칫했다.

"까르르르르!"

"호호호호!"

젖은 채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목선과 코안 깊숙이 파고드는 향기로운 바디 로션 냄새.

'그놈이 괜한 말을 해서는…… 아.'

화장기가 하나도 없는 민낯을 보자 뛰던 심장이 착 가라앉았다. 올라오던 열기도 쏙 내려갔다.

같이 나온 동기들은 그게 아닌 것 같지만, 만날 멋지고 잘난 이들만 봐 온 진호로서는 흥미가 전혀 생기지 않았다.

역시 동기는 이성이 아니었다.

"어머. 진호야, 왜? 샤워한 여자 보니까 불끈해?"

여자들이 웃음을 터트리며 우 섹시한 포즈를 잡았다.

진호는 조롱을 가득 담아 피식 웃었다.

"눈과 눈썹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야!."

"나올 곳은 몰라도 들어갈 곳은 들어가야지. 살 빼."

코웃음을 친 진호는 매정하게 돌아섰다.

"야! 말 다했냐!"

"팩폭도 정도껏 해야지! 이 나쁜 놈아!"

진호는 걸음을 조금 재촉했다.

* * *

저녁은 각 조별로 만들어 먹어야 했다.

장소는 체육관이었는데, 기다란 책상이 줄지어서 있었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손에 물 한 번 제대로 묻혀 본 적 없이 공부만 하던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부, 불이다!"

"어머머머!"

"웩!"

그런 그들을 지켜보는 선배들은 익숙하다는 듯 웃기만 했다.

진호의 조도 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긴 책상 위에 놓인 결과물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히 제육 볶음을 만들었는데, 색깔이 검보랏빛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빨간색 아니었나?"

"그랬지?"

사람들이 진호를 보았다.

새벽에 부엌에 몇 번 기웃거린 전적이 있는 진호는 조리는 내가 하겠다며 자신 있게 나섰다.

속에서 식은 땀이 미친 듯 흘렸다.

"나 보지 마! 난 제대로 했어! 봐, 탄 부분이 하나도 없잖아!"

"……색깔은 이래도 먹어 보면 다르지 않을까?"

"흠."

그들은 미심쩍어하면서도 일단 젓가락을 들었다.

반나절 동안 굴러서 그런지 배가 미친 듯 고팠다.

오물!

순간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맵고, 짜고, 달고, 시고, 씁쓸했다.

진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여기다 블루베리잼 넣었냐. 말로 할 때, 자수해라."

시큼하면서도 단맛이 보통이 아니었다.

"……나야. 원래 음식은 단짠단짠이잖아."

여자 동기가 미안한 얼굴로 나섰다.

"단짠단짠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 텐데?"

"응. 나도 방금 알게 됐어……."

"워후! 밥 얻어먹으…… 뭐야, 이 괴생물체는!"

혐오 가득한 표정을 지은 구영재는 슬그머니 물러나 도망치듯 사라졌다.

'이거 나중에 혼자 살려면 요리는 필수겠구나.'

이상한 곳에서 인생을 사는데

꼭 얻어야 할 스킬을 알게 됐지만, 기쁘지 않았다.

"……라면 끓일까?"

"역시 밖에 나오면 라면이 최고지?"

진호와 동기들은 서로를 보며 애써 웃었다.

진호는 커다란 냄비를 들었다.

"물 떠올게. 너희들은 치우고 있어."

이들의 손에 맡겼다가는 라면도 단짠단짠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호는 냄비 손잡이를 강하게 쥐었다.

그렇게 도착한 수돗가에는 동기들이 냄비를 든 채 줄 서 있었다.

* * *

-캬! 올해도 죄다 라면이구나!

체육관 단상에서서 마이크를 잡은 구영재의 말에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 라면도 실패한 조가 있는 것 같지만 말이야.

몇몇 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중엔 진호도 껴 있었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먹을 라면의 물을 맞추는 건 의외로 어려웠다.

'이건 내가 라면을 끓여 먹던 냄비가 아니라서 그래! 내 찌그러진 양은 냄비만 있었어도!'

-어떻게 바지락에 콩나물, 김치에 새우까지 줬는데도 실패하냐?

진호는 필사적으로 동기들의 눈을 피했다.

그는 구영재가 얼른 다음 말을 하길 빌었다.

-그래도 배는 채웠으니까 술 마실 준비는 됐지?

"예-!"

진호와 라면 물을 실패한 동기들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목소리가 작은데? 술 마시기 싫어? 야, 조교 모자 가져와.

"아니요!"

"아니에요!"

체육관이 떠나갈 듯 소란이 일었다.

-술 마실 준비는 됐지!

"네에-!"

-흐흐, 진작 이래야지. 그럼 장기 자랑 경품을 소개한다! 5등! 주류 회사에서 근무 중인 선배님들께서 후원하신 맥주 3박스와 치킨 체인점에서 근무 중인 선배님들께서 후원한 치킨 세 마리!

"와아아아아!"

겨우 5등인데도 경품이 셌다.

진호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4등은 소주 1박스와 맥주 4박스에 치킨다섯 마리, 3등은 소주 2 박스와 맥주 다섯 박스치킨 10마리, 2등은 맥주 소주 막걸리 안주 무한대였다.

-대망의 1등은! 두구두구두구! 무려 양주, 그것도 로열 살루트 다섯 병-! 거기에 술, 안주 무한대! 먹고 뒤져 버려-!

"……우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악!"

"야! 잘해라!"

"잘하자! 아자! 아자!"

체육관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심사위원은 당연하게도 오늘 따라온 교수들이었다.

교수들을 죽 둘러본 진호는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조원들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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