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21화
2주 후에 있을 MT에서 같이 할 조원들과 만든 방이었다.
[다들 생각해 봤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리니…….]
[난 대나무 헬리콥터. 난 대나무 헬리콥터. 난 대나무 헬리콥터.]
절로 한숨이 나오는 답변들만 이어졌다.
진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선배들은 진호 자신의 단독 장기 자랑을 원한다지만, 그래서는 너무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조원들에게 넌지시 물어 봤고, 그들은 적극찬성했다.
그 순간 새로운 톡이 올라왔다.
[내가 4학년인 사촌 언니한테 물어봤는데…….]
꽤 장문의 톡 내용은 작년에 1학년이었던 선배들의 장기 자랑 내용이었다.
대박 자료였다.
모두가 놀라며 이걸 오마쥬하자며 채팅창이 시끄러워졌다.
하지만, 진호는 아니었다.
'이러면 너무 재미없잖아. 영재 형 때도 이런 걸 했다던데.'
"……아."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영상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진호는 빠르게 타자를 쳤다.
[헉!]
[O_O?]
[헐! 대박!]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모두 불만 없지?]
[옛썰.]
[캬! 역시 전체 수석! 창의력이 아주 그냥!]
"흐흐흐."
[그럼 보고 연습들 하자. 난 무조건 그때까지 준비 맞춰 놓을게.]
[ㅇㅋㅇㅋ!]
진호는 씩 웃으며 핸드폰을 꼈다.
빵빵!
고개를 든 진호는 앞에 멈춘 커다란 검은색 벤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올랐다.
"어? 조 부장님이 직접 오신 거 예요?"
처음 팀 존스를 데리고 나타났던 그 중년 여성이었다.
부장 정도의 사람이 나타난 건 이미 본사에서 아니 디올의 CEO 피에트로가 적극찬성했기 때문이다. 파리패션 위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팀 존스에게는 비밀이었다.
"회사원은 언제나 회사를 벗어나고 싶은 법이랍니다, 진호 씨."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시던데…"
'그런데 이제 곧 퇴근 시간이지 않나?'
아무래도 직장인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야근이 예약되어 있는데, 도망쳐 온 것 같았다.
"아, 말 편하게 하세요."
"앞으로 계속 보게 될 테니까 천천히 할게요. 그럼 출발해도 될까요?"
"넵!"
진호를 태운 벤은 힘차게 출발했다.
8.
커다란 실내 스튜디오에 불만이 가득하다.
"아무튼 이 바닥은 스폰이 다지."
"디올도 다 됐네. 작년 옷까지 재 촬영하고 말이야."
잡지사의 스태프가 앞 페이지를 장식하는 명품 브랜드를 펌하하는 발언을 하고 있지만, 오늘 촬영을 책임 질에디터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패션 잡지인 보그다.
전 세계 23개국에서 출판을 하며, 수많은 패션 잡지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힌다고 할 수 있는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자신들이 일반인, 그것도 모델도 아닌 이를 촬영하고 개재해야 한다.
만약 크리스찬 디올이라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아니었다면, 단칼에 거부했을 제안이었다.
"그래도 영 아닌 건 아닌 것 같던데? 평이 엄청 좋아."
"아, 맞아 나도 그 소리 들었어. 엘르, 세씨 등등 개하고 작업한 곳 은 다음 달에도 작업하자더래."
"홍, 넌 그 말을 믿어? 그 디올이잖아, 디올. 패션 화보 하나 실으면 돈이 얼마나 더 들어오는데, 당연히 그렇게 말해야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되니까 그런 말이 나왔겠지."
누군가의 말에 스태프들은 입을 다물었다.
정론이었다.
"오셨습니다!"
"그래. 대체 얼마나 잘난 놈인지 한번…… 헉!"
"흐읍!"
스튜디오 안에 경악의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들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했다.
'걔잖아! 팀 존스의 뮤즈!'
대한민국 패션계를 뒤집어 놨던 팀 존스의 내한 사건.
실물로 본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의 뮤즈는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한 아우라를 풍기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이진호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딜 가서든 인사는 크고 우렁차게.
원래 첫인상이 평가의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실내 스튜디오에서 진행 된 화보촬영은 이탈리아에서 겪었던 경험과 별다를 게 없었다.
지난 이주 동안 바쁘게 움직이면서 찍은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후우, 쉬었다 갑시다!"
고작 1시간 촬영에 탈진해 버린 포토그래퍼의 선언에 스태프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진호를 힐끔힐끔 보는 그들의 눈빛엔 온기가 가득했다.
진호는 느긋이 포토그래퍼에게로 다가갔다.
"잘 나왔어요?"
이제는 찍은 사진을 검토할 여유를 가지게 된 진호였다.
"지금 나 놀려? 감정을 그렇게나 표현해 놓고? 자, 봐."
"오."
역시 보그 코리아 전속 포토그래퍼라서 그런지 실력이 대단했다.
"진호 씨도 얼른 가서 좀 쉬어."
마호가니 원목의 화장대가 한쪽 벽에 줄지어서 있는 커다란 대기실.
톱스타가 올 때나 개방되는 곳이지만, 그걸 모르는 진호는 멀뚱히 앉아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손에 얼굴을 맡겼다.
"이게 성인 피부야, 아기 피부야? 자기, 화장품 뭐 써?"
"다른 사람이랑 똑같죠. 폼 클랜징으로 세안하고, 보습하고."
폼 클렌징은 여드름이 가득할 때 부터 썼다.
일주일에 한 통씩 썼다.
"특별히 어떤 브랜드를 선호하지는 않아요."
"선천적으로 타고난 거구나."
부럽다는 듯 쳐다본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화장을 마저 보수하고는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스타일리스트들까지 나가자 진호는 기타를 빼들었다. 당장 내일이면 MT였다.
* * *
디리링! 딩딩! 디디딩!
열 손가락이 부드럽게 여섯 개의 현을 누볐다.
어제와는 달리 머리와 가슴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그는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한 내 기억 속에."
갑자기 끼어드는 목소리에 진호는 뒤를 돌아봤다.
"연습해야 한다니까요, 김 주임 님."
기다란 소파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의 사내가 손을 들었다.
"미안, 미안. 나도 모르게. 엠티 장기 자랑 연습이라고 했지?"
"네. 그것 때문에 골치가 좀 아프죠. 선배들 벼르고 있을 텐데."
"그렇게 잘 치면서 골치 아프긴. 천재면서!"
어제까지만 해도 뚱띵뚱띵 코드 조차 제대로 집지 못하던 진호가 오늘은 너무도 잘 치고 있다.
'역시 천재라서 요령을 빨리 깨달은 건가?'
"에이, 천재긴요. 이 정도는 누구나 쳐요."
그동안 찾아본 폴 메카트니나 잉베이 맘스틴, 에릭 클립튼 등과 비교하면 한참 모자랐다.
"너야말로 에이다. 웃기지 마, 인마. 완전 가수 뺨치는데?"
"요새 음대, 예대 입시가 얼마나 빡센데요. 아는 교수님이 걔들 실기면접 동영상을 보내 주셨는데, 표현력이 아주…… 대한민국 음악천재들은 다 거기에 있는 뜻. 이 정돈 그냥 취미 수준이에요."
스킬 때문에 얻게 된 음악적 감성으로 보고 들으니 그들은 정말 어마어마한 기교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진호는 그래도 믿지 못하는 듯한 김주임의 모습에 이번 서울예대 수석 입학의 피아노 자율 연주를 재생시켜 주었다.
엄청난 재즈 선율이 대기실 안을 울렸다.
'죽어라 노력해야 최고의 기타 세션이라도 되겠지.'
그것이 이 스킬을 얻는 스토리의 결말이다.
"호, 호오. 요새 애들 무섭네. 하긴 나 때도 빡셌지. 그런데 계속 우울한 노래를 부르려고?"
"당연히 아니죠. 신나는 노래 쳐 볼까요?"
"오오!"
피크를 꺼내 든 진호는 기타 줄을 경쾌하게 긁었다.
관객이 있으니 왠지 힘이 났다.
"어? 이 노래는? 아, 뭐였더라?"
절로 어깨가 들썩이는 음.
분명히 유명한 노래였는데, 기억이 나질 않았다.
진호는 머리를 싸매는 그를 보며 살짝 웃고는 입을 열었다.
"Almost heaven. West Virgini a."
"아! Blue Ridge Mountains She nandoah River."
한 구절씩 주고받으며 웃던 그들은 곧 목청 터져라 외쳤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To the place. I belong!"
기교도 없고, 그저 즐거움만 가득한 외침이었지만, 진호가 이 스킬을 얻기로하며 바랐던 모습이었다.
'역시 옥탑방 스타.'
음악을 사랑했지만, 찢어지게 가난하던 주인공이 지인에게서 얻은 기타를 통해 자신의 재능을 깨닫고,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 세션이 되는 '가난하지만 낭만이다.'스토리의 스킬 '옥탑방 스타.' 스토리는 진호가 좋아하던 스토리 중 하나다.
매주 주말 주인공이 사는 옥탑방이 있는 옥상에서 기타를 칠 때엔 집주인 NPC가 고기와 직접 기른 상추 등을 가져오고, 같은 건물에 사는 입주민들이 올라와 고기를 굽고, 술잔을 기울이며 주인공의 기타 연주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른다.
인정 넘치는 집주인, 가난하지만 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입주민들. 그들과 어울리며 위안을 주고 위안을 받는 주인공.
팍팍한 현대의 삶에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참 마음에 들었던 스토리였다.
이렇듯 기타 하나면 모두가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풍경.
스킬의 1차 해금 조건은 남이 기타를 주는 것이고, 2차 해금 조건은 각기 다른 노래 30곡을 열 번 씩 들은 후 열 번씩 틀린 곳 없이 연주하는 것이다.
둘은 서로를 보며 진짜 절정 구간을 부르기 위해 입을 열었다.
"West Virginia! mountain mom ma."
"West Virginia! mountain mom ma."
"응?"
갑자기 이질적인 음색이 끼어들었다.
진호와 김주임은 입을 다물며 한쪽을 바라봤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
마무리 되는 노래처럼 몸을 움츠 리는 기타를 맨 앳된 얼굴의 성숙한 몸매를 지닌 여성.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여성의 모습에 피식 웃은 진호는 다시피크를 힘차게 털며 입을 열었다.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친구였다.
거기다 여기서 멈추면 여성이 울 것만 같았다.
"All my memories gather roundher."
다시 시작 된 노래에 눈을 동그랗게 뜬 여성은 이내 수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김주임도 에라이하며 따라 외쳤다.
"Country roads, take me home.To the place. I belong."
대기실이 순식간에 노래방으로 변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이었다.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앵콜!"
진호는 김주임을 따라 외치는 여성을 어이없다는 듯 보았다. 여성은 혀를 빼물며 웃었다.
* * *
허름한 숙소를 나서는 올해로 3 년차 가수인 스물세 살 이설아는 어깨를 짓누르는 기타의 무게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냥 때려치울까?'
아무리 노래해도 사람들은 자신의 몸만 보니, 정말 그래 버리고 싶었다.
발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가슴, 경비실 창문에 비추는 자신의 몸을 보니 뮤지션이 아니라 섹시 콘셉트 걸그룹 멤버가 있었다.
그래도 차라리 걸 그룹이 낫다. 연체동물인 듯 유연한 몸과 뛰어난 춤 솜씨, 온몸에 장착한 애교는 어디서든 소요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는 오늘도 한숨을 내뱉으며 감옥과도 같은 낡은 카니발에 몸을 실었다.
"오늘은 보그 코리아에서 인터뷰 촬영을 할 거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30대 후반의 뚱뚱한 매니저의 말에 이설아는 놀라고 말았다.
"내, 내가?"
"이번에 곡이 죽이게 나왔잖아. 대표님이 정말 무리한 거야. 그러니까 인터뷰 잘해야 돼."
'죽이게 나오기는…….'
뮤직비디오 촬영에 입어야 했던 짧은 핫팬츠에 단추를 두 개 푼 블라우스, 짧은 원피스와 유치하기 짝이 없는 가사의 댄스곡.
후속곡도 댄스곡이었지만, 다행히도 비용 문제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찍지 못했다.
그토록 싫어하는 장르의 곡임에도 녹음했던 건 대표와 눈앞의 매니저가 딱 이번만 하자고 매달렸기 때문이다.
"후, 알았어."
"……그래."
입술을 오물거리던 매니저는 이내 결국 차를 출발시켰고, 이설아는 눈을 감았다. 낡은 카니발 안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차는 곧 보그 코리아에 도착을 했다.
"음료수 사 올 테니까 먼저 대기실에가 있어."
그녀는 내리기 위해 습관처럼 옆자리에 둔 기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멈추었다.
기타 치는 걸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토가 나올 정도였다.
뮤지션인데, 싱어송라이터인데 이제 더 이상 기타를 치고 싶지 않았다.
"죽고 싶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이를 악물며 참은 그녀는 결국 기타를 놓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렇게 대기실이 몰려 있는 층에 내린 순간이었다.
디리링!
쿵!
먹먹하고도 쓸쓸한 기타 선율이 그녀의 심장을 옥죄었다.
다른 악기 없이 오직 기타 소리 하나뿐인데, 마음이 공허해졌다.
'누, 누구지? 대선배님인가? 이, 인사드려야 하나?'
고민을 하던 그녀는 이내 기타 소리를 쫓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이내 경악했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보이는 커다란 대기실.
혼이 나갈 만큼 잘생긴 외모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저, 젊어! 엠티 장기 자랑? 뭐, 취미 수준?'
그녀는 혼란스러워졌다.
그런데 미남의 말과 표정은 너무도 진솔했다.
그러며 폭발하는 재즈 선율.
이설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 이게 나보다 어린 얘들 실력 이라고? 저, 정말 내 실력은 취미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야? 그래서 인기가 없었던 거야?'
어쿠스틱 선율 속에 절절한 이별과 사랑을 담았던 1집과 2집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오만과 자만이 산산이 깨져 버리는 느낌이었다.
"……난 잘난 게 아니구나. 하!"
왠지 그냥 웃음이 터져 나왔다. 곡이 나빴던 게 아니다. 쓸데없이 큰 몸이 나빴던 게 아니다.
그냥 이설아 자신의 실력이 모자랐던 것이다.
참치캔 세트, 식용유 세트를 얻으려 서울에서 열리는 노래자랑 가요제를 쫓아다니던 14살 때와 달라진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 주제에 뜨지 않는 걸 소속사 탓, 곡 탓, 몸 탓을 하고 있었다.
햇병아리 주제에 뮤지션, 싱어송 라이터를 논하고 있었다.
화가 나고 오기가 생기고, 대표님과 매니저, 스스로에게 미안했다.
딩딩딩딩딩딩딩!
"Almost heaven. West Virgini a."
목소리는 좋지만, 일반인 수준의 가창력이었다.
하지만, 어깨가 절로 흔들렸다.
'이게 노랜데.'
"이게 음악인데."
그녀는 두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투정부리지 말자, 이설아.'
환하게 웃으며 한발 내디딘 그녀는 입을 열었다.
지금 이 벅차오르는 감정을 토해 내지 않고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스킬 : 옥탑방 스타.]
[음악은 시간과 장소, 상황을 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