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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20화 (20/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20화

"……네 엄마,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나와 놓고도 이 못난 아빠한테 시집와서 이날 이때까지 백 원 한 푼 제대로 쓰지 못했던 사람이다. 사글세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 전세 대출 갚으려 아등바등, 그러다 서울 와서 또 아등바등. 내 집 마련했는데도 그렇게 살아온 삶 때문인지 부녀회 때문에 피트니스 센터 가야 한다고 울상 지으며 물어 왔던 사람이야."

"아버지……."

"그런 네 엄마가 오늘 소녀처럼 웃더구나. 그렇게 웃는 모습이 대체 얼마 만인지…… 아니, 그런 적은 있었는지……."

진호는 입을 열지 못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 아빠가 죄인이다.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 주지 못했는지. 백화점 앞에서 발을 멈출 때마다 왜 손 붙들고 들어가 사고 싶은 거 다 사라고 못했는지…… 그거 몇 푼이나 한다고. 몇 달고생하면 되는 것을 뭐 잘났다고 그리 한을 남겼는지."

씁쓸히 웃던 이형만은 진호를 보며 단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고 아들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마라. 넌 우리 부부에게 축복이었고, 신이 준 선물이었어.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하, 하지만……."

진호의 눈에 결국 눈물이 고였다.

"정말 아니다.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는 이 아버지가 장남이라서 그랬어."

"……아버지가 삼촌이랑 고모들 학비를 다 대 주셨다고 했죠?"

"학비뿐이었으면 말도 안 하지! 결혼…… 험. 그래서 그놈들이 지금도 이 아빠한테 끔뻑 죽는 거 아니냐!"

"흐흐, 그래서 삼촌 고모들이 저만 보면 용돈을 주셨던 거군요?"

진호는 화제를 돌리려는 아버지의 모습에 억지로 웃었다.

"그럼! 그때 그놈들이 이 아빠 등골을 얼마나 빼먹었는지 이야기 하면 한 달로도 부족해!"

이렇게 열변을 토하지만, 진호는 알고 있다.

아니, 기억해 냈다.

아주 어릴 적의 언젠가 돈 문제로 부모님이 싸울 때, 죽고 싶다고 우는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 농사짓는데 쓰는 소를 판 돈으로 대학을 나올 수 있었다고. 그래서 이렇게 번듯한 직장을 얻고 당신과 결혼할 수 있었다고. 그걸 다 갚아 우리 진호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으니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진호의 가슴에 눈물이라는 비가 내렸다.

부모님은 이런 고난 속에서 진호 자신을 키워 온 것이었다.

"와, 그럼 엄마는 시골 내려가면 아무것도 안 하셔도 되겠네요?"

"몰랐니? 네 엄마시골 내려가면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턱짓으로만 명령한다. 네 할머니 할아버지도 네 엄마한테는 꼼짝 못하셔."

"그, 그건 몰랐네요."

명절 전전날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평소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니 웃음이 나왔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앞으로 더 잘할게요.'

"그런데 요새 고모들이 좀 뜸한 것 같지 않아요? 들어 보니 막내 고모는 이번 설에 안 오신 것 같던데."

"흥! 저도 나이 먹었다 이거지. 걱정 마라. 이 아빠가 아주 단단히 혼줄을 냈으니까. 자기가 은수저, 자개장, 금침 이불, 모피코트…… 엉? 그런 거 들고 갈 수 있었던 게 누구 때문인데 말이야!"

"와, 너무하시네. 그런데도 저한테 3만 원만 주신 거예요?"

"뭐? 그랬어? 내 이놈을 그냥!"

진호는 지금 가슴에서 비가 내릴 아버지를 위해 화제를 돌렸다.

둘의 분위기는 삽시간에 화기애애해졌고, 곧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기……."

"아, 죄송합니다. 웃음소리가 컸죠? 주의하겠습니다."

"아, 아뇨! 그게 아니라 혹시 한국대 존잘남…… 아니세요?"

"마, 맞을걸요?"

긍정하면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만약 분위기가 심각할 때 왔다면 불쾌했을 테지만, 기분 좋은 술기 운이 목까지 치솟은 지금은 아니었다.

"어머! 이 동네 산다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 마주칠 줄이야! 오늘은 부모님과 쇼핑하셨죠? 아, 사인 좀 해 주세요!"

'그건 어떻게 알았데?'

"……전 연예인 아닌데요?"

"안 될.. 까요?"

금방 울상이 되어 버리는 여성의 모습에 진호는 순간 자신이 죄인이 된 듯했다.

"안 된다는 건 아니지만, 뭐…."

"감사합니다. 여기에 해 주세요!"

진호는 그녀가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해 주었고, 사진까지 같이 찍은 뒤에 그녀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깍깍 소리치는 여성들을 보니, 기분이 꽤 싱숭생숭했다.

"흐흐흐! 우리 아들, 아주 연예인이구나."

"……아버지는 마치 예비 며느리 보는 표정을 짓고 계시네요. 죄송 하지만, 아직 생각 없습니다."

"흠흠! 여기서 마무리하고 2차 갈까? 집에서 족쏘 어떠냐?"

"최고죠! 그런데 족쏘란 말은 어떻게 아세요?"

"네가 모르나 본데, 이 아빠가 신세대다! 뻐카충도 알아!"

"오오오!"

두 부자는 그렇게 웃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 때문에 부자가 아주 쌍으로 취했다고 등을 맞을 뻔했지만, 이내 다 같이 술을 마시며 웃음꽃을 피웠다.

* * *

진호는 다음 날부터 바빠지지 않았다.

팀 존스를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의 멋진 옷을 얼른 입어 보고 싶은 진호로서는 그 의견에 적극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이 보고를 받은 피에트로 CEO는 열렬히 지지했다.

그런 배려하에 아침 점심엔 공방에 틀어박히고, 저녁엔 진호와 서울 먹거리 탐방 및 관광을 나서며 시간을 알차게 보내던 팀 존스는 일주일째가 되던 날 왔을 때처럼 갑자기 떠나 버렸다.

"정말 당신이란 사람은……."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시간의 추억이 떠오르자 울컥했다.

"오늘의 이별은 영원한 게 아니잖습니까. 하하핫!"

"그땐 꼭 여유를 가지고 왔으면 좋겠네요. 보여 주지 못한 것들이 아직 많으니까요."

"오! 기대하겠습니다! 아, 시간이 됐군요."

팀 존스는 양팔을 활짝 벌렸고, 피식 웃은 진호는 그를 껴안으며 세 번의 볼 뽀뽀를 나누었다.

"다음은 프랑스에서 봤으면 좋겠군요."

은근한 그의 눈빛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네. 꼭 가겠습니다."

진호는 옅게 웃었는데, 팀 존스는 그 웃음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하핫! 걱정 마세요. 어디까지나 관객석에서 제 옷을 감상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일 뿐이니까요."

그렇게 말한 팀 존스는 다시 웃음을 터트리며 출국 게이트 안으로 향했고, 진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돌아서며 발을 크게 내디뎠다.

우우웅!

"네, 이모. 화보 촬영이 일주일 후라고요? 그때부터 시작이군요? 아, 인터뷰는 오늘 오후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전화를 끊은 그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라는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이거든요. 이번엔 당신이 놀라 보세요, 팀."

'나의 나이 많은 친구여.'

진호는 일주일 동안 서양인의 생각이나 문화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 좀 재촉하면 강의를 들을 수 있겠다."

벌써 2주나 교수의 사정으로 인해 결강했던 음악으로의 여행이라는 교양 수업이었다.

따블을 외치며 초고속으로 달린 그는 한국대의 음대로 향했다.

* * *

음악으로의 여행을 담당하는 정명진 교수는 강의실 앞에서 한숨을 내뱉었다.

'다섯 명이었던가? 수강 신청 인원이?'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학기 시작 전 넘겨받은 수강 신청 인원은 겨우 그 정도였다.

"이제 정말 폐강이구나."

폐강 수준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교수 계약도 끝난다.

대한민국에서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기타리스트라고 목에 힘을 준 게 문제였는지도 몰랐다.

기타란 그에게 생명이었고, 삶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기타를 허투루 생각하는 학생들의 작태를 참지 못했고, C와 F를 남발했다.

이후 급감하는 수강생 숫자와 학교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낭만이 살아 있던 8, 90년대와 현재가 다르다는 것을 무시해 버린 결과였다.

그 때문에 너무 심란한 나머지 지난 2주 동안 결강을 하며, 차후 계획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답이 없었다.

다시 음악계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다 갚지 못한 대출금에 실력이 쟁쟁한 후배들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학원도 예고, 예대, 유명 대학의 실용음악과, 어디의 세션 출신 등 등 실용음악을 가르치지 않는 한국대 교수 출신이라는 직함은 경쟁력이 없었다.

" 진짜 시골로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야 하나?"

뉴스를 보면 그것도 여의치 않다.

시골엔 더 이상 인심이 없었다.

'미치겠군.'

"후우, 그 이진호 학생이 내 수업에 들어오면 이런 고민도 안 하련만……."

한국대 슈퍼스타, 세상 혼자 사는 존잘남 등등, 들어 보니 경영학과 지정체육교양실기 과목엔 수강생이 넘쳐흐른다고 했다.

고작 1학점짜리인데도 수강생의 숫자가 무려 이백 명.

일주일에 이틀, 오전 오후에 총 네 번이나 하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D코드만 잡아도 에이쁠 줄 수 있는데……."

한숨을 크게 내쉰 그는 강의실의 문을 열었다.

"그래, 지금부터는 학점을 퍼 주자. 일단 소문부터 내야…… ."

우글우글! 시끌시끌!

잠시 침묵한 그는 뒷걸음질 쳐 강의실의 호수를 확인했다.

"맞는데?"

눈을 비벼 보았지만, 사람으로 가득한 강의실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어림잡아 60명. 강의 총 인원 제한 숫자보다 많았다.

그러다 정명진은 보게 되었다. 수십의 꽃들 사이에서 단연코 돋보이는 봉황한 마리, 이진호를 말이다.

"에이쁠─!"

순간 강의실이 조용해지며, 그에게로 시선이 모였다.

정명진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환하게 웃으며 교단에 섰다.

"우리 모두 에이쁠 받아야죠? 지난 이주 동안 결강을 해서 미안 합니다. 반갑습니다, 앞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음악 여행을 떠날 정명진이라고 합니다."

너무 황당한 등장이라서 그런지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짝짝짝!

그때, 진호가 크고 빠르게 박수를 쳤고, 그제야 다른 학생들도 빠르게 박수를 쳤다.

'학생은 무조건 에이뿔! 1년만 나랑 갑시다!'

그는 뇌물로 어떤 기타를 선물해야 할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 * *

진호는 어깨에 걸린 기타 케이스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정명진 교수가 세 번째로 산 기타 라고 했는데, 검색을 해 보니 80만 원대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로서 테니스 동아리 가입 때처럼 기타를 사러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사정이니 감사히 받긴 하겠는데…….이거 의도치 않게 1차 해금이 풀려 버렸네. 어차피 같이 교양을 듣는 동기들과 기타를 사러 갔어도 1차 해금을 풀었을 테지만……."

입맛을 다신 진호는 2차 해금 조건을 얼른 완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정명진 교수의 강의는 정말 재밌고, 알찼으며, 멋있었다. 기타의 구조만 가르치고는 바로 코드부터 알려 주는 게 무척이나 좋았다. 특히 중간중간 그렇게 알려 준 코드들로 연주를 하는 교수의 모습은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수강 변경하길 잘했다."

옅게 웃은 진호는 핸드폰을 들어 코코아 톡 단톡방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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