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18화
현란한 조명과 온몸을 터트릴 듯 부딪쳐 오는 비트.
그렇다. 지금 진호가 있는 이 공간은 클럽이었다.
팀 존스는 지치지도 않는 것인지 저녁이 되자마자 진호를 납치하다시피 클럽으로 끌고 왔다.
마치 피로를 춤으로 풀겠다는 듯 열광적으로 몸을 흔드는 팀 존스를 외면한 진호는 이쪽을 보며 짓궂게 웃고 있는 미영을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모가 디올 코리아의 부사장일 줄이야……."
"이모 패션이 그렇게 허접했니?"
미영의 미간이 한껏 찌푸려졌다.
"……확실히 범상치 않기는 했죠. 그래도."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이렇게도 이어지는가 싶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런데 팀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에요?"
"패션계는 의외로 좁단다."
대충 예상이 갔다.
"그런데 안 노니?"
"이모가 있는데, 어떻게 놀아요."
"진희한테는 비밀로 해 줄게."
"어젯밤 화장실을 몇 번 갔는지 조차 화제로 삼는 두 분이요?"
"……칫, 그걸 기억할 줄이야."
고개를 저은 진호는 맥주를 마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클럽이란 곳이 이런데였구나. 엄청나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미인들이 다 이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남녀 모두 말이다.
지금 들어오는 여성들도 175센티 미터는 되어 보이는 키에 슬림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옷도 참 슬림했다.
눈이 찢어져서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호호호!"
"응? 왜 웃으세요?"
미영이 배를 잡은 채 웃고 있었다.
조명희라고 소개한 사람과 디올 코리아 소속 회사원들도 소리 내 웃지는 않았지만, 고개를 돌린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아들, 쟤들이 일반인으로 보여?"
"설마 팀 때문이에요? 모델?"
"……연예인도 많아. 다 팀이나 디올의 눈에 들 수 있을까 해서 오는 거야. 보렴. 얼굴은 익숙하지만, 이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
'아니, 얼굴도 모르겠는데요…….'
리셋 라이프에 빠져 살아서 정말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고는 잘 알지 못했다.
"대단하네요."
그래도 이만큼 많은 숫자가 모였다. 외국인도 있었다.
"하지만, 죄다 헛물켜고 있는 거지. 팀 존스의 연인은 우리 아들이니까."
"애인이 아닙니다!"
진호는 발작하듯 외쳤고, 미영과 직원들은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데 정말 활동을 하지 않을 거야?"
미영이 아쉽다는 듯 물었다.
"정확히는 에이전시와의 계약이죠. 아직은 일을 찾아서 할 생각이 없어요. 제 대학생활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생각은 섰다.
한다. 해 보고 싶다.
하지만, 찾아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진호 자신의 연락처를 찾아 제안해 온다면 몰라도 말이다.
"그래?"
미영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이번 서울 패션 위크에 한 번 서 볼래?"
미영은 엄청난 말을 툭 던지듯 내뱉었다.
패션쇼,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이었다.
순간 욕심이 훅 들었다.
"……팀이 안 된다고 하던데요?"
"하긴, 아들이 그 정도 급은 아니지. 아들이 런웨이에 선다면, 파리 패션 위크 정도는 되어야 레벨이 맞지."
"하아…… 또 팔불출. 이러니까 지영이가 질투하지."
"걔가? 내 딸 지영이가?"
"아, 맞아. 안 그래도 지영이에 대해서 말할게 있었어요."
미영의 상체가 진호를 향해 더욱 기울었고, 진호는 그녀의 귀에 대고 지영의 현상태를 말해 주었다. 미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역시 난 빵점 엄마네……."
"지금부터 노력하면 팔십 점 엄마 정도는 될 수 있어요. 도와 드릴게요."
"……고마워, 아들. 그래, 기분이다! 가서 마음껏 놀아. 만약 오늘 일을 말하면 외제차라도 사 준다!"
진호의 눈동자가 크게 굴렀다.
'이,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저, 정말이죠? 딴말하기 없기예요?"
"아들, 사업가가 돈에 관한 걸 이야기한 거야."
"……이르면 진짜 삐질 겁니다."
슬그미니 일어난 진호는 스테이지로 향했다.
몸을 터트릴 듯 부딪쳐 오는 비트가 절로 몸을 흔들었다.
그렇게 몸을 흔들다 보니 어느덧 비트에 익숙해져 갔다.
아니, 술기운 때문인지 몸이 붕 뜨는 게 춤을 신나게 춰 보고 싶었다.
'오! 나 혹시 클럽체질인가?'
"……에라이!"
진호는 오늘 정신을 좀 놓기로 했다.
그런 진호의 주위로 여성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 * *
온몸의 열기가 모두 머리로 올라 온 느낌이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여성의 농밀 한 스킨쉽은 혼을 쏙 빼놓을 정도였다.
셔츠 안으로 들어오는 손길, 팔과 허벅지에 닿는 여성의 은밀한 부위, 목과 쇄골에 닿는 말랑하고 뜨거운 입술들.
귓가에 닿는 유혹의 숨결들.
'으핫!'
좋다. 하지만, 싫다. 그런데 좋다.
진호는 터질 것 같이 부풀은 아랫배의 어느 곳에 급히 화장실로 향했다.
여자 경험 한 번 없는 청년에겐 너무도 큰 자극들이었다.
"어멋!"
한 여자가 비틀거리며 다가오다가 팔에 부딪쳐 휘청거렸다.
그런데 누가 보아도 일부러 부딪친 거였다.
"죄송합니다."
"아니, 잠……."
진호는 무시하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푸하! 푸후!"
세수를 했는데도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후아!"
진호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클럽은 엄청난 세상이었다.
왜 여태껏 모르고 지냈는지 안타까울 정도로 말이다.
"계속 즐기지, 왜?"
어느새 따라온 팀이 짓궂게 웃었다.
그에 진호는 어쩐 일인지 씁쓸히 웃었다.
"저라는 사람 자체만 보고 온 분들이 아니잖아요."
아니었다면 미영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벌써 호텔로 향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잘못 얽혔다가는 발목이 아니라 발 하나를 떼 줘야 할지도 몰랐다.
연애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지만, 눈치까지 없는 건 아니었다.
"눈치와 절제력까지 좋다니! 정말 당신은!"
"스탑. 장소가 좋지 않아요."
"……하하하! 위트도 넘치는군요!"
'위트가 아닌데.'
"그런데 계속 이렇게 놀 건가요?"
진호는 화제를 돌렸다.
왠지 더 이상 즐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죠! 몸도 데웠으니 이제부터 한국의 밤 문화를 제대로 즐겨 봐야죠. 추천해 주고 싶은 게 있나요?"
"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치맥이네요. 삼쏘도 있고요."
솔직히 먹는 것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진호는 그걸 속으로만 생각했다.
"치맥? 삼소?"
"치킨과 맥주, 삼겹살과 소주.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엄지를 치켜드는 환상의 궁합이죠. 한국 사람들은 신이 주신 음식이라고 말 합니다."
"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바삭! 베어 무는 쫄깃하고 부드러운 닭다리 살에 꿀꺽꿀꺽 목구멍을 얼리듯 시원하게 넘어가는 맥주 한 잔. 크으─!"
"……꿀꺽!"
요리의 불모지, 영국 출신인 팀 존스는 침을 꼴딱꼴딱 삼켰다.
"지금 맛보실래요?"
클럽은 나중에 재준과 함께 와서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Oui! (네!) 어차피 클럽은 프랑스에서도 갈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둘의 밤 문화 탐방이 시작되었다.
아니, 밤 먹거리 탐방이었다.
팀 존스는 그날 신세계를 경험했다.
7.
팀 존스의 유명세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았다.
한국대 모델, 한국대 존잘남, 이진호 등이 몇 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해 버렸다.
덕분에 강의가 끝나고 간 대학의 내일에서도 그에 관한 질문을 받아야 했다.
"엄청나네."
대학의 내일 촬영을 마치고, 건물을나서던 진호는 폭증하다시피 한 SNS 팔로워 숫자에 혀를 내둘렸다.
거의 열 배 가까이 늘었다.
밤새 확인하지 않은 사이 쪽지도 엄청나게 쌓였는데, 이상한 내용들이 있었다.
" 에이전시? 기획사?"
죄다 oo엔터테이먼트인데 한번 만나고 싶다 등의 내용들이었다. 진호는 단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곳들이었다.
"뭐, 나야 3대 기획사밖에 모르지만……."
그것도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 재준 덕분에 안 것이었다.
빵빵!
"응?"
고개를 든 진호는 깜짝 놀랐다.
검은색의 커다란 벤 안에 팀 존스가 타고 있었다.
"진! 어서 들어와요! 내 옷을 입어 봐야죠!"
다크서클이 진하게 내려앉은 퉁 퉁 부은 얼굴로 해맑게 웃는 중년인 팀 존스.
헛웃음이 나왔다.
'어제 안 자고 만든 겁니까…….'
고개를 저은 진호는 차에 올랐다.
* * *
"이 사람이 나의 뮤즈입니다. 어때요, 이제 만족하십니까?"
-……훌륭하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팀이 밤새 만들었다며, 건네준 옷을 입은 후 누군가와 잠시 통화를 해 줄 수 있냐는 그의 부탁에 응 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상대가 디올이라는 거대 명품 브랜드의 CEO였다. 커다란 모니터 안, 안경을 쓴 지적인 중년인, 정확히는 크리스찬 디올의 새로운 CEO 피에트로 베 타리가 박수를 치며 혀를 내둘렀다.
-그 모든 일을 제쳐 두고 날아간 이유를 확실히 이해됐습니다. 동양에 이런 외모가 있다니…….
"그래서 그런 디자인이 나올 수 있었군요. 진이라고 했습니까? 우리 디올의 모델이……"
"안 됩니다. 제 겁니다. 절대 나눠 줄 수 없습니다."
-끄응, 팀. 그룹의 매출이 달린 문제입니다. 저런 외모와 아우라를 지녔는데도 옷을 빛내 주는 모델이 또 있을 것 같습니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루이비통에도 나눠 줘야 합니다만?"
LVMH. 루이비통 모엣 헤네시. 루이비통과 크리스찬 디올의 모 회사인 초대형 패션 그룹으로서 유럽최고의 부자가 주인인 곳이었다.
-흠…… 이 문제는 차후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진?
"네, 말씀하십시오."
-팀의 뮤즈가 되어 준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개혁의 의미로 데려왔지만, 그 방랑벽 때문에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뇌물로 앞으로 3년간 디올이 당신의 스폰서가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뇌, 뇌물이요?"
-당신과 같은 뮤즈를 다른 브랜드에 넘겨줄 수 없으니까요. 하하하하!
진호는 헛웃음을 지었다.
'외국인들의 텐션은 원래 이러나?'
이탈리아도 그렇고, 정말 화끈하면서도 솔직했다.
그러나 그 말 중엔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음…… 그렇다면 전 그 뇌물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순간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진호의 표정이 진지했다.
"지, 진?"
-호오, 왜죠?
"예쁘고 멋진 것은 입고, 걸쳐야 하니까요."
명품 브랜드, 좋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스타일의 자유를 억제 받는다면 필요 없었다.
제아무리 세계적인 명품이라고 해도 몇 년 안에 원하는 걸 얼마 든지 사서 입을 자신도 있었다. 이런 진호의 의지에 둘의 표정이 오묘하게 일그러졌다.
진호는 얼음같이 차가워진 피에 트로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푸하하하! 팀이 진정한 뮤즈를 얻었군요. 아.
만족스럽다는 듯 웃던 피에트로가 자세를 정중히 했다.
-제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당신을 디올을 입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는 멍청한 이들로 생각해 버린 것 같습니다. 부디 제 사과를 받아주시겠습니까?
그의 사과는 굉장히 정중했다.
"저도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사과드립니다."
-하핫! 역시 한국은 예의의 나라 군요. 그래서 더 욕심이 납니다. 이른 시일 내에 함께 식사할 수 있기를 기대하죠.
프랑스에 한 번 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진호는 가볍게 웃었다.
"저 역시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