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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7화 (17/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17화

뜨겁게 달아올랐던 분위기가 단숨에 식었다.

"……흐흐. 맞아, 그냥 신입생들의 재롱이지? 야, 미안하다."

"……끄응."

경제학과생은 해 놓은 말이 있는 바람에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걸 보며 실실 웃던 구영재가 놀란 얼굴로 진호에게 다가왔다. 관람하고 있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서커스는 언제 익힌 거야? 너 정말 테니스 쳤었지?"

"아뇨. 어제 만화책 읽다가 몇 번 해 보니까 되더라고요."

진실이었다. 하루 종일 테니스 라켓을 가지고 놀다 보니 할 수 있게 됐다.

순간 얼굴이 썩은 그들은 하늘을 보았다.

"……저건 왜 단 한 번도 공평한 적이 없을까."

"아하하."

진호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래! 가서 놀다 와라! 내일부터 형이 제대로 가르쳐 줄게!"

"나도 가르쳐 준다."

"하하. 옙!"

이번엔 진호가 서브를 넣을 차례였다.

"호, 포기하는 게 좋을 텐데? 내가 비록 운은 졌어도 테니스로는 지지 않을 거거든."

"아, 그래."

베이스라인으로 돌아와 통통 공을 튕긴 진호는 공을 높이 토스했다.

그러며 2등을 바라봤다.

그는 네트를 향해 달려나오고 있었다.

'그래, 그럴 줄 알았다.'

기술을 연습하려는 걸로 생각을 바꿨지만, 거듭된 비매너 플레이에 화가 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이게 되려나?'

진호는 어젯밤 본 만화책의 누군가처럼 온몸을 과배기 틀 듯 비틀었다가 풀며 공을 깎아 내듯 강하게 쳤다.

몸이 이렇게까지 꼬일 수도 있나 진호 자신도 놀랄 정도였다.

빠앙!

예상외의 빠른 속도에 놀랐던 사내는 콧방귀를 뀌며 공을 따라잡았다.

그렇게 바운드 되는 순간이었다.

공이 요상하게 튀었다.

정확히는 사내의 얼굴을 향해서였다.

마치 뱀이 먹이를 향해 날아들 듯 말이다.

"헉!"

식겁한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았고, 공은 그의 허리 높이까지 떠올랐다가 코트 밖으로 나갔다.

코트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우오오오오!"

"토, 토네이도 샷!"

"우와아아! 저게 가능할 줄이야!"

함성을 터트리는 이들은 경영학과 선배들이었다.

'그러게요.'

진호도 될 줄은 몰랐다.

'대체 몸이 어떻게 바뀐 거지?'

"이런 씨!"

얼떨떨해다가 정신을 차린 진호는 벌떡 일어나는 사내를 향해 싸늘하게 웃으며 라켓을 왼손으로 쥐었다.

"역시 오른손은 잘 안 튀어 오르네."

코트가 다시 조용해졌다.

사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계속할 거지?"

진호는 사납게 웃으며 2등을 내려다봤다.

정상이 약속된 모델의 연기력이 빛을 발했다.

9등신 장신의 키에서 뿜어지는 사나운 눈빛은 공부만 하던 샌님이 버틸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사내의 낯빛은 파랗게 질려 버렸고, 그 눈은 땅을 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브라보! 원더풀!"

사람들은 갑자기 난입한 외국인을 보며 저건 또 뭐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몇 이들은 달랐다.

구경하고 있던 의류학과 학생들이 경악했다.

"팀 존스!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

테니스 코트에 다시 침묵이 내려 앉았다.

* * *

공항에서 바로 한국대로 향한 팀 존스는 경악하고 말았다.

고귀한 황태자가 땀을 흩날리며 코트를 누비고 있었다.

허공에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는 테니스공조차 우아하고, 날카로 웠으며, 교활했다.

그런데 몸이 달랐다.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날카롭고, 위협적이었으며, 아름다웠다.

핏의 차이는 고작 몇 밀리미터에 불과했지만, 패션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그런 몸이 그를 더욱 황홀하게 만들었다.

흥분한 그는 곧 보게 되었다. 진호의 진면목을 말이다.

마치 뱀처럼 먹이를 노리는 그 악독한 이빨.

오만하게 깔보는 포식자의 눈빛.

귀족이었다. 왕이었다.

그 순간 완전히 사랑에 빠져 버린 팀 존스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어느새 꺼낸 디자인 노트에 두 벌의 스포츠 의류를 스케치해 버린 후였다.

스포츠맨십을 던져 버린 이름 모를 상대에 대한 분노도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다.

'역시 나의 뮤즈다!'

발을 들고 내디디며 달리는 모습 조차도 세계정상에 선 모델이 작정하고 포즈를 취하는 것 같았다.

"브라보! 원더풀!"

달리듯 걸어간 팀 존스는 진호를 와락 끌어 앉고는 볼에 키스했다. 진호는 당황한 나머지 반응도 못하고 당해 버렸다.

"윽!"

"브라보, 나의 뮤즈는 이런 야성미까지 갖추고 있었군요. 거기다 이렇게 탄력적인 몸이라니!"

오싸악!

등을 더듬는 낯선 남자의 손길에 진호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누, 누구세요?"

"……이런 나도 아직 멀었군요. 반갑습니다, 뮤즈. 디올 옴므 수석 디자이너 팀 존스라고 합니다."

진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디올 옴므.

크리스챤 디올이 남성을 위해 만든 의류 브랜드.

밀라노를 다녀온 사람으로서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진호에게 명품 브랜드란 그냥 비싼 옷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달라졌다. 여전히 흥분에 차 있는 팀 존스가 떨리는 손으로 디자인 노트를 펼쳐진호에게 보여 주었다.

"이걸 봐 주시겠습니까?"

진호의 눈이 부릅떠졌다.

[스킬 : 우리 동네 패셔니스타] 덕분인지, 그려진 옷들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뱃속에서 욕심의 불길이 치솟았다.

"이, 이건……."

'갖고 싶다!'

"판타스턱! 디자인을 보는 눈까지 갖추고 있을 줄이야!"

팀 존스의 눈이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의 사랑은 더욱 깊어지고 말았다.

"정말 멋진 디자인입니다! 이렇게 우아하면서도 이토록 실용적일 줄 이야! 이걸 당신이 그린 겁니까?"

순간 끌어안을 뻔한 팀 존스는 초인적으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정색하며 말했다.

"이 모두 당신 거예요. 뮤즈."

"네?"

"여기 스케치에 있는 모든 옷은 내가 당신을 위해 그린 것들이란 말입니다."

"네에?"

진호는 식겁하며 팀 존스를 보았다.

사람들은 경악했다.

* * *

친선 경기는 그렇게 어수선하게 종료되었고, 팀 존스는 마치 사랑의 열병을 앓는 소녀처럼 일방적인 구애를 하였다.

그런 그가 내민 제안은 진호로 하여금 의심을 들게 했다.

"그냥 입기만 하면 된다고요? 다른 거 없이?"

"……끄음! 솔직히 진, 당신이 내 패션쇼에서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대중에게 알려 주고 싶습니다. 진짜 뮤즈란 이런 존재라고."

팀 존스는 진호를 진, 지니라 부르기로 했다.

'그럼 그렇지.'

이만한 사람이 그냥 올리는 없었다.

'그나저나 모델이라…….'

사진작가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칠 수 있다.

심미안은 각자 다르니 말이다.

하지만, 증쇄를 한 흔국내일과 완판을 한 장덕제.

여기에 언제나 모델이냐는 말을 들었다.

진호는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하지만, 절대 안 됩니다!

"……네? 왜죠?"

"나의 뮤즈를 다른 디자이너들과 공유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절대 안 됩니다!"

진호는 눈앞의 사람이 마흔 살의 중년인인지, 초등학생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옷들을 공짜로 입을 순 없습니다. 페이탈 북에 올리는 것도 안 된다니……."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다.

"어차피 당신의 옷을 입는 이상 전 드러나고 말 겁니다. 지금은 SNS로 지구 전체가 연결된 세상이니까요."

"……하아, 당신은 정말 욕심이 없군요."

팀 존스는 이제 헤어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졌다.

"좋습니다. 이 문제는 다음에 이야기하도록 하죠. 일단은 진이 내 옷을 입은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요.

"저도 팀의 옷을 입고 싶습니다. 간절히."

이는 진심이었다.

그걸 느낀 팀 존스는 함박 미소를 지으며 소녀처럼 좋아했다.

"허흠!"

"어? 교수님! 부학장님!"

진호가 벌떡 일어났다.

김재관 교수와 최철규 교수, 그리고 테니스 동아리고문인 부학장이었다.

그들의 뒤로는 교수들로 보이는 노년의 남녀가 있었다.

"허헛, 역시 우리 진호 학생은 어딜 가든 돋보이는군."

"칭찬 감사합니다, 부학장님."

입학식 때 잠깐 인사한 것에 불과했지만, 진호는 아닌 척 여유롭게 웃었다.

"그런데 여기까진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우리 학과의 위상을 드높여 주는 일이 생겼다고 해서 와 봤네. 아, 이쪽은 저기 생활과학대의 의류학과 교수들이네. 하도 사정해서 데리고 왔지."

"허흠!"

"험!"

진호는 그들이 나타난 이유를 대번에 깨달을 수가 있었다.

그는 의아해 하는 팀 존스를 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팀, 이쪽은 의류학과 교수님들입니다. 아무래도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온 것 같네요."

팀 존스와 부학장, 저울의 추는 부학장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그는 환하게 웃어 주었다.

"오! 패션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저야 언제나 환영이죠! 이로써 당신이 내 옷만 입게 만들 확률을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아니 그건 곤란……."

"하하하! 반갑습니다, 교수님들!"

교수들은 점잖게 반기면서도 숨길 수 없는 기쁨을 드러냈고, 금세 팀 존스와 어울려 버렸다.

진호는 아프기 시작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허허허! 개교 이래로 이런 일은 처음이구먼. 정말 엄청난 보배가 우리 학과에 들어왔어."

"……모두 여기 두 분 교수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동아리 일을 떠올린 진호는 재빨리 아부했다.

두 교수를 보는 부학장의 눈빛이 아주 따뜻해졌고, 두 교수는 진호를 보며 감동 어린 표정을 지었다.

"모레 대학의 내일 인터뷰를 하러 간다지?"

"예!"

"허허, 이렇게 학과의 위상을 드 높여 주는 학생에게는 그만한 보상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조치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쿵 하면 짝이었다.

진호는 속으로 크게 웃었다.

'최소 B 학점 확정이구나!'

이젠 피치 못할 사정으로 하루 이틀 정도 빠져도 괜찮을 듯싶었다.

"가서 한국대 경영학과가 어떤 곳인지 알려 주고 오겠습니다!"

"그래, 기대하겠네. 이제 볼일도 끝났으니, 우린 이만 가 보지."

"안녕히 가십시오!"

그렇게 교수들이 사라지자 진호는 숨을 길게 내뱉었다.

"후우, 정말 정신없는 하루네."

교수들과 이야기를 끝낸 팀 존스가 이번엔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무서워질 지경이었다.

거기다가 팀 존스를 따라온 중년 여성의 눈빛도 마음에 걸렸다.

뱀을 마주한 듯 오싹함을 느끼게 했던 눈빛이었다.

그 자신도 모르게 중년 여성을 찾았던 진호는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중년 여성이 그 자신보다 어려 보이는 여성에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놀랍게도 아는 사람이었다.

"이, 이모?"

"아들─."

해맑게 손을 흔들어 주는 그녀.

이게 무슨 일인지 머리가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안젤라─!"

팀 존스가 날 듯이 달려가 미영과 볼 뽀뽀를 나누었다.

진호는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 * *

띠리링!

"네, 여보세요? 네? 한국대 전체 수석이 입은 옷이요? 예, 사이트에 가면 다 있…… 잠시만요. 전화가 와서요. 네, 여보…… 네? 한국대 경영학과 이진호가 입은 다른 옷은 없냐고요? 네, 사이트……."

전화가 또 왔다. 계속 왔다. 배터리를 충전할 틈이 없어서 결국 꺼져 버린 뜨거운 핸드폰을 보던 장덕제는 사이트에 관리자 접속을 했다가 경악하고 말았다.

전부 품절이었다.

"이, 이게 뭔 일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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