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14화
5.
교정을 걷는 진호가 흐뭇하게 웃으며 핸드폰을 보고 있다.
"흐흐흐."
가장 많이 달린 좋아요 개수가 1, 087개다.
얼른 끝내 버릴 생각으로 재준이 자주 가는 카페와 각종 유머사이트에 올라온 자신의 사진을 찾아 슬그미니 페이탈 북 링크가 걸린 댓글을 달았더니, 결국 이틀 만에 천 개를 돌파하고 말았다.
그 후 진호는 그 링크 댓글을 모두 지워 버렸다.
진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 저 매치는에런데. 저 여자는 머리를 푸는 게 더 예쁠테고.'
숙 훑어보기만 해도 단점이나 고쳐야 할 점들이 생각났다.
소위 말하는 심미안이 생긴 것 같았다.
진호는 자신의 옷을 다시 봤다.
"음, 좋아."
손목에 찬 전자시계까지 완벽했다.
그렇게 경영 대학 건물에 도착한 그는 바로 과실로 향했다.
대학생활 꽃 중 하나라는 동아 리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교수들의 은근한 권유를 더 이상 무시할 수만은 없었으니까.
"안녕하십니까!"
호기롭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진호는 소파에 널브러진 시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끄으…… 뭐야."
곧 죽을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들었던 남자가 진호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진호!"
"안녕하세요, 구영재 선배님."
입학식에 옆에서 이것저것 알려 주었던 그 3학년 과대 선배였다.
"피곤하신 것 같은데, 다음에 오겠습니다."
"……아냐, 됐어. 어차피 나도 일어나야 했어. 그래서 무슨 일?"
"동아리지원서를 받아 가려고 왔습니다."
"동아리!"
벌떡 일어난 구영재가 성큼성큼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어떤 동아리 들게? 과 동아리가 다섯 개인 건 알지?"
골프, 등산, 스터디, 테니스, 축구.
과 동아리는 이렇게 다섯 개였다.
"네, 테니스 동아리에 들려고요."
골프는 초기 자본이 너무 많이 들 것 같고, 등산은 더 이상 하기 싫었다.
자격증 취득에 정보와 도움을 준다는 스터디에는 아직 관심이 없었다.
외국어 자격증은 따놓을 참이지만 말이다.
축구는 너무 땀 냄새가 날 것 같아서 싫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 나진희가 스쿼시를 한다는 게 생각났다.
'배워서 같이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 순간, 구영재의 눈빛이 부담스러을 정도로 빛나기 시작했다.
"캬! 어쩐지 어젯밤 여기서 자고 싶더라니! B학점 확정이다! 금요일 날 스케줄 취소다! 으하하핫!"
'미친 건가?'
"여기 앉아 있어. 형이 얼른 입부서 가져다줄게."
"아뇨. 어디에 있는지 알려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아냐. 형이 해 주고 싶어서 그래. 착하지?"
'뭐지?'
너무 과도한 호의를 받고 있다.
진호는 구영재가 가져다준 입부서를 작성하고, 그걸 들고 사진까지 같이 찍었다.
"흐흐흐. 잠깐만?"
구영재는 코코아 톡에 접속해 방금 찍은 사진을 올렸다.
그 순간, 그의 핸드폰에 전화가 온 듯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핸드폰을 소파에 던져 버린 구영재는 미간을 좁히고 있는 진호를 보며 피식 웃고는 이유를 설명했다.
"대학의 내일 표지 모델이요?"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늦은 감이 없잖아 있었다.
"학장님이 흡족해 하고 계셔. 그런데 그거 때문에 교수님들 사이에서 경쟁이 붙었다는 말이지."
진호는 그제야 아까 전 구영재의 말까지 완벽하게 이해를 했다.
과 동아리는 보통 교수가 고문이었다.
"뇌물…… 아니, 눈치 살피기네요."
"그렇긴 하지만, 거북스럽게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뇨. 괜찮습니다. 그런 식으로라도 교수님들께 좋은 인식을 심어 드릴 수 있으면 저도 좋은 거죠."
대학교에 들어온 이상 학점은 당연히 중요했다.
어쩌다 보니 두 전공 교수의 동 아리를 선택하지 않았지만, 곧 있으면 있을 MT에서 교수님 한 명이라도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분위기로 봐서는 구영재를 비롯한테니스 동아리 선배들이 모두 편이 되어 줄 것 같지만 말이다.
"흐흐. 역시 싹수가 있다니까. 다 알았을 텐데도 묻지도 않고."
B학점, 스케줄 취소.
'물어볼 타이밍을 놓친 건데.'
너무 흡족한 표정을 지으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럼 동아리실로가 볼까!"
"아, 10시에 강의 있습니다. 최철규 교수님의 경제원론."
일반교양도 아니고 전공과목이었다.
"……그럼 안 되겠네. 알았어, 다녀와. 어차피 이젠 빼도 박도 못하니까, 흐흐흐."
* * *
대체 어디서 어떻게 들은 건지 최철규 교수는 아쉬움을 표하며 2 학기를 기다린다는 말로 부담을 팍팍 주었다.
왠지 고단한 반년이 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전공은 단 한 번이라도 빠지면 안 되겠다.'
그렇게 교양 강의까지 끝나자 진호는 구영재에게 납치가 되듯 동 아리실로 갔다가 유명 스포츠 브랜드 의류와 라켓, 라켓 가방 등 온갖 것들을 받아야 했다.
"졸업생 선배님들의 후원이야."
역시 한국대 경영학과였다. 물어보고 사려고 했던 계획은 그렇게 무산이 되었다.
파앙! 팡!
테니스 코트에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다 학과 선배들이었다.
진호는 그들의 연습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왔도다-!"
"……이 자식! 네가 정말 해냈구나!"
"잘했어! 아자, B 마이너스는 먹고 간다!"
"캬! 옷 잘 어울리는 거 보소!"
'학점이란 이렇게 무서운 존재구나.'
오는 중 구영재가 준 스포츠의 류로 갈아입고 온 진호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반겨 주니 MT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싶었다.
"테니스쳐 봤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곧 잘 칠 예정이지만, 아닌 척 힘차게 대답했다.
그걸 모르는 구영재는 된 놈이 왔다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일단 쥐는 법부터 알려 줄게."
구영재는 서브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가르쳐 주었다.
학점 때문인지 그의 눈빛은 참 따뜻했다.
파앙!
노란 테니스공이 코트에 꽂혔다.
"그렇지! 운동 신경이 있네!"
전혀 아니었다.
노렸던 곳에서 한참 벗어났다. 이번 한 번이 아니라, 계속 그래서 답답했다.
진호는 서브를 하며 옆 코트를 슬쩍슬쩍 보았다.
파앙!
내려꽂히는 테니스공을 쫓아 땀을 흩날리며 달려가 이를 악물고 되돌려 보낸다.
그 경쾌하고도 빠른 속도와 열기가 왠지 가슴을 간질거리게 했다.
'아, 나도 저렇게 쳐 보고 싶다.'
단순했던 입부 이유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진호는 자신의 변화에 잠시 놀라고 말았다. 스포츠에 대한 열정이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었다.
'하긴, 승부욕이 없다면 삐끗하면 처음으로 리셋되는 리셋 라이프에게 계속 덤비지는 못했을 테지.'
여기에 구영재에게 계속 칭찬을 받으면서 우쭐해진 것도 한몫을 하며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불러 일으킨 게 분명했다.
"하긴 서브와 리턴만 1시간이면, 지루하기는 하지?"
"죄, 죄송합니다!"
"……뭘 그렇게 얼어서 대답해. 여기 군대 아니야. 편하게 해."
"그래도요……."
구영재는 진호를 신기하다는 듯 보았다.
한국대에 들어올 정도면 그 고집과 아집이 엄청날 텐데도 이렇게 선배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이거 정말 재밌는 놈이 들어왔네?'
"됐어, 인마. 어차피 동아리잖아. 재밌는 게 최고지."
진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린 구영재는 반대편 코트로 향했다.
진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자세를 잡았다.
"랠리는 가볍게 할 테니까, 긴장 하지 마. 서비스 라인 에서."
"넵!"
힘차게 대답한 진호는 네트와 평행선을 이루는 첫 번째 선 뒤에 섰다. 구영재가 언더핸드로 툭 가벼운 서브를 넣자 진호도 가볍게 받아넘겼다.
"좋은데? 감각 있어."
"감사합니다!"
"치고 난 다음에는 제자리로. 그럼 계속 간다."
퉁! 퉁! 퉁! 퉁!
구영재의 배려 덕에 한 발만 우 측으로 움직였지만, 금세 몸에 열이 올랐다.
테니스는 의외로 격한 운동이었다.
"이제 조금씩 넓게 갈 거야."
"옙!"
힘차게 대답한 진호는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퉁! 퉁! 퉁! 퉁!
한 발이 두발로 변하자 금세 땀이 흐르고 숨결이 거칠어졌다. 하지만 진호는 선본사를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왼쪽으로도 간다! 백핸드 가르쳐 줬지? 맞춘다고만 생각해!"
"네! 윽!"
퉁! 속도가 느려서 겨우 맞췄다.
자세를 빨리 바르게 한 진호는 다음 공을 쫓아 몸을 움직였다.
'예순셋!'
"빠르게 간다."
팡! 철컹! 통! 통! 통!
"아……."
진호는 펜스에 부딪혀 구르는 테니스공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순간 속도가 두 배나 빨라지는 바람에 놓쳐 버린 것이다.
"괜찮아?"
입가에 걸린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참 얄미웠다.
"……후우우."
거칠어진 숨을 다스린 진호는 구 영재를 향해 씩 웃었다.
당해 버렸지만,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기분 좋게 땀을 흘려서 그런지도 몰랐다.
"다시 부탁드리겠습니다."
"……푸하핫! 그래, 다시 해 보자. 속도는 처음같이?"
"부탁드릴게요."
"그래그래."
돌아서는 구영재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운동 신경도 있지만, 어떻게든 가르쳐 준 대로 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여기에 찡그림 없이 열정적으로 덤빈다. 끈기도 좋았다.
요새 애들답지가 않았다.
'진짜 마음에 드는데? 더 이상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정말 오랜만에 예뻐해 주고 싶은 후배가 들어왔다.
점점 진호가 마음에 든 구영재는 재밌다는 듯 웃으며 서비스 라인과 베이스라인 중간에서서 언더 핸드로 서브를 넣었다.
긴장하고 있던 진호는 발을 움직여 다시 리턴시켰다.
"백핸드."
퉁! 공을 돌려보낸 진호는 얼른 자세를 잡았다.
'예순넷!'
"다시 백핸드."
"윽!"
진호는 이를 악물고 그가 보내는 공을 쫓았다.
'구십구…… 백-!'
드디어 2차 해금의 조건인 랠리 백 번이 완료됐다.
1차 해금 조건은 테니스 라켓을 잡는 것이다.
테니스에 대한 관심은 커녕 당장 오늘 알바를 걱정하던 주인공이 테니스 클럽코트 관리 알바를 하다가 테니스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과 재미를 깨달아 세계적인 플레이어, 황제로 군림하게 되는 테니스의 황제 스토리를 관통하는 [스킬 : 테니스의 황태자]가 완전히 해금된 것이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좋아! 뒤로 두 발 물러나고 포 핸드!"
팡!
공의 속도가 갑자기 다시 두 배 빨라진 순간이었다.
'어? 이건 뭐지?'
공이 느리게 날아왔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서비스 라인에 맞고 튕겨지는 공의 털들이 모두 보이는 것 같았다.
진호는 얼떨떨해하며 라켓을 휘둘렀다.
테니스공이 찌그러지는 모습조차도 보이는 것 같았다.
'손목을 꺾어?'
머리가 그렇게 외쳤고, 진호는 그 명령에 따랐다.
파앙! 철컹! 퉁! 퉁! 퉁!
코트가 싸늘해졌다.
진호는 구영재의 등 뒤에서 구르는 테니스공을 멍하니 보았다.
"토, 톱 스핀?"
믿기지 않는다는 구영재의 눈빛에 진호는 뜨끔했지만, 얼른 철판을 깔았다.
"방금 그게 톱 스핀이에요?"
"……초심자의 행운인가? 손목은 괜찮아?"
"……네."
진호는 손목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왠지 손목이 짱짱해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