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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12화 (12/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12화

'후.'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여도 이탈리아에 갈 테지만, 그래도 난항이 예상되니 입맛이 썼다. 하지만, 여기서 좌절할 수는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가가야 했다.

진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목표로 잡고서 엉덩이를 뗐다.

그 순간이었다.

끼이익!

적막에 빠져 있던 강의실이라 사람들이 모두 앞문을 바라보았다.

'……이런.'

나이가 지긋하게 든 교수님이었다.

교수는 기묘한 강의실의 분위기와 진호의 외모에 살짝 놀랐다가 이내 신색을 회복하며 강단에 섰다.

"허흠, 모두들 나를 처음 보는 것이겠지? 내가 오늘부터 경영학원론을 가르칠 전공 교수 김재관이다."

그렇게 말한 교수는 다시 당황했다.

박수가 터져 나와야 할 타이밍인데, 강의실이 조용했다.

2초도 안 되는 찰나의 시간, 교수와 학생들 모두가 당황하고 말았다.

그때였다.

짝짝짝짝짝짝!

진호는 열렬히 박수를 쳤고, 사람들의 시선을 모았다.

그에 당황했지만, 그는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든 새내기 배움터에 참가 하지 못한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정신을 차린 학생들도 하나둘씩 박수를 치더니 이내 강의 실은 우레와 같은 박수 소리로 시끄러워졌다.

"흠흠, 그럼 출석을 부르지."

진호는 이쪽을 보며 고맙다는 듯 눈인사를 하는 교수의 모습에 '아자!'속으로 기뻐했다.

"이진호."

"예!"

사람들의 눈빛이 변했다.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출석부를 다시 살폈다.

"……호오. 자네가 전체 수석인 그 이진호인가?"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오호오. 잘생긴 청년이 대답도 잘하는군. 패션도 요새 애들답지 않아서 좋군."

요새 애들답지 않다는 말에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고, 진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아, 한국내일 인터뷰 잘 봤네. 발간된 지 겨우 이틀밖에 안 됐는데, 증쇄를 한다지? 덕분에 학과 위상이 높아졌어. 역시 전체 수석 다워."

학생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시기, 질투, 기쁨과 선망.

다채로운 감정들이 이 공간 안에서 피어났다.

"그런데 동아리는 들었나?"

대학생활의 꽃 중 하나인 동아리.

"동아리 말입니까? 아뇨, 아직 들지 않았습니다."

"흐음. 그래. 신중한 모습도 보기 좋군. 그래도 동기, 선배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대학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라면 드는 게 좋네. 참고로 나는 과 동아리 중 골프 동아리의 고문을 맡고 있지. 최철규 교수의 등산 같은 의미 없는 과동아리보단 훨씬 나을 게야."

권위의 상징인 교수가 직접적으로 권유하고 있었다.

그것도 다른 교수를 깎아내리면서까지 말이다.

진호는 이게 미영이 말한 인간의 가치인 것인가 싶었다.

"아, 네."

"그래, 참고로만 듣게."

그 참고가 참 무겁게 다가왔다.

"그럼 다시 출석을 시작하지."

'동아리라…….'

굉장히 흥미가 갔다.

* * *

경영학원론은 말 그대로 경영학이 어떤 학문인지를 설명하고 있었다.

어려운 단어와 심플한 뜻을 길게 늘여 놓은 문장이 가득한 학문.

예전이었다면 그중단 한 글자조차 이해할 수 없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다.

외국어를 익히는 것과는 다른 재미였다.

'공부가 재밌어지다니…… 나도 참.'

외국어야 그 나라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목적이 있어서 재밌게 익힐 수 있었지만, 진호는 이것마저 그럴 줄은 몰랐다.

'흠. 그럼 움직여 볼까?'

진호는 강의 시작 전 타깃으로 삼았던 이를 향해 움직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무산되었다.

"저, 안녕?"

무리를 지어 다가온 여자 동기들 때문이었다.

진호는 아쉬웠지만, 반갑게 맞이 했다.

"안녕? 이영지, 박유정, 김연희. 맞지?"

용기를 내어 진호에게 다가온 셋 뿐만 아니라, 은근히 주목하고 있던 다른 이들마저도 놀랐다.

"우, 우리 이름을 알아?"

"아까 교수님께서 출석을 불렀잖아."

"……그, 그걸 외웠어?"

"응. 외웠어."

'외워지더라고.'

이젠 그도 자신의 두뇌가 무서울 정도였다.

"앞으로 4년간 같이 다녀야 할 소중한 동기들이잖아."

태연하게 속내를 감춘 진호가 웃자 여자 동기들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진호는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예전이었다면 같은 말을 했어도 경멸 어린 시선만 받았을 테니 말이다.

'인간의 가치. 정말 대우를 받는 구나.'

더 이상 새내기 배움터 불참석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진호는 슬쩍 자신의 옷을 보았다.

'정말 이상한가?'

"저……."

머뭇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진호는 얼른 선수를 쳤다.

"너희도 다음 수업이 필수 교양인 대학국어지? 실례가 안 된다면, 나도 같이 갈 수 있을까?"

셋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럼! 당연하지!"

"우리도 그걸 물어보려고 온 거야!"

진호는 속으로 주먹을 쥐었다.

"하하! 다행이다. 내가 조금 아웃 사이더라서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정말 막막했거든. 휴우, 정말 살았다. 역시 새터에 참가할 걸 그랬나 봐. 아, 다음 강의까지 시간 있으니까 내가 밥 살게!"

셋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하지만, 이내 곧 구겨졌다.

"우리도 같이 갈 수 있을까?"

"나도. 나도."

강의실을 나가지 않은 여자들이 모두 다가온 듯싶었다.

남자들도 몇 명 있었다.

진호는 약간 난처해졌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동기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니, 다 소 출혈을 감수하기로 한 것이다.

"그래! 다 같이 가자!"

"와아!"

"좋았어!"

강의실이 후끈 달아올랐다.

이윽고 한국대에서는 오십여 명이 함께 움직이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그들은 멀리 가지 못했다.

너무도 넓은 교정 때문에 멀리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진호에겐 천만다행으로 교내 식당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캔커피로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아갔다. 한국대 여자들은 모두 가지고 있을 거라며 한국내일 잡지를 보여 주면서 사진도 같이 찍었다.

그들은 묻지 않았는데도 여러가지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각자의 성장사라든지, 좋아하는 색, 피해야 할 선배나 친절한 선배, 선배들에게 듣고 또 경험한 과외에 대한 노하우 등 여러가지를 말이다.

덕분에 진호는 선배들과 만나지도 않았는데, 정말 많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근데 내 패션이 좀 그래?"

"……아하하."

"괘, 괜찮아. 넌 잘생겨서 뭘 입어도 멋있어!"

"으응. 네 옷차림 때문에 좀 허술해 보여서 쉽게 말을 걸었지만, 정말 멋있어!"

확인사살이었다.

입술을 삐죽 내민 진호는 그날 저녁 동기들과 술을 마시며 우애를 다졌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우글우글.

전체적으로 하얀 공간에 사람들이 많았다.

"아, 짜증. 이 좋은 봄날, 천금 같은 휴일에 난 왜 남자 새끼랑 어울려야 하는 거지?"

"그럼 여길 나 혼자 올까?"

"혼자 오면 안 됐을까?"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진호는 재준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주위에서 헛숨들이 터졌다.

재준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동대문이냐. 저가 브랜드가 얼마나 많은데."

동대문 두타몰.

재준으로서는 십 대 중반에나 몇 번와 본 곳이었다.

"괜찮아. 내가 입으면 다 명품이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다른 목적이 있었다.

'덕제 형 가게가 어디더라.'

3년 전 자신을 도와준 사람이었다.

"지랄. 하아, 진짜."

못 이기는 척 따라나서던 재준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나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데, 너랑 다니니까 아주 그냥……."

주위 모든 여자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아까부터 몰래 쫓아 오고 있었다.

잘생긴 외모 때문에 어딜 가던 이성의 주목을 받았던 재준이지만, 이 정도까지 노골적으로 받은 적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너 만날 이러냐?"

"다가올 사람은 알아서 올 거야. 신경 꺼."

"오올, 이진호. 그런 말도 할 줄 알게 되고, 응?"

진호는 장난스럽게 콧대를 세웠다.

"아, 저기다."

아주 따가운 주위 사장님들의 시선과 외침 속에서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유니크한 염소수염.

왠지 울 듯한 그 눈빛에 그 진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여전하네.'

"하필이면 이런 외각에……."

중앙을 관통하는 사거리도 아니고, 계단이나 엘리베이터 근처도 아닌 후미지고 작은 곳이었다.

그러나 재준도 사장의 눈빛을 보고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들어가자, 들어가."

진호와 재준은 한 옷가게에 들어갔다.

인상 좋은 젊은 사장, 장덕제가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맞이했다.

* * *

"아니, 갑자기 관둔다고 하면 어떡해요. 오늘 봄 신상 라인이 나왔는데!"

-계속하고 싶지만, 세 달째 월급을 안 주셨잖아요. 저도 힘들어요. 이젠 그만둘게요.

뚝!

전화가 끊겼다.

"……하아."

패션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청년 창업 지원금도 받아 두타올에 가게를 오픈하고, 통 크게 인터넷 쇼핑 몰도 열었던 장덕제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방금 전,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직원이 관두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토요일.

너도 나도 쇼핑하는 날임에도 가게엔 파리만날렸다.

서울 스트리트 패션의 메카인 동 대문 두타몰인데도 그랬다.

다른 가게들에게 가려진 데다가 앞에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계단도 아닌 그냥 빈 공터, 크기도 작은 애매한 곳이었다.

월세가 좀 싸다고 이곳을 고르는 게 아니었다.

쇼핑몰도 마찬가지.

인터넷에서 난립하는 쇼핑몰들

사이에서 인지도를 얻기란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라도 않았을 것이다.

대출을 받아 예쁘고 잘생긴 피팅 모델도 구해 봤고, 브로커에게 쇼핑몰 순위를 올려 달라고도 해 봤다.

직접 한 디자인이 구린가 싶어서 잘 팔리는 다른 브랜드 옷들도 몇 개 들여놨다.

그런데도 안 됐다.

3년을 노력했지만, 직원 월급은 커녕 내일 옷을 떼을 돈도 없는 빈 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앞으로 다시 3년을 노력해야 갚을 수 있을까 싶은 빚도 있었다.

"빌어먹을……."

이젠 정말로 접어야 할 때인가 싶었다.

"그래. 이 바닥에서 3년이면 오래 버렸지. 내일 다 정리해서 근처 고아원에나……."

소위 말하는 땡처리를 해 봤자 백만 원이라도 건지면 다행이었다. 3년 노력의 결과물이 겨우 백만원.

그렇게 비참해질 바에는 차라리 착한 일이라도 하는 게 나았다.

"응?"

웅성웅성.

쇼핑몰이라 시끄러운 건 당연한 데, 평소보다 더 시끄러웠다. 고개를 돌린 장덕제는 눈을 크게 떴다.

"동묘에서나 볼 법한 저런 구린 패션도 어울리다니……."

아니, 어울리는 정도가 아니라 옷이 브랜드처럼 보였다.

인생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았다.

"저런 친구가 내 쇼핑몰 모델이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인생이 이렇게 처참해 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3년의 하루하루가 스쳐 지나가자 장덕제는 울고 싶어졌다.

'저녁에 술이나 한잔할까?'

그 순간이었다.

'어? 어? 이쪽으로 온다?'

자신도 모르게 일어섰던 그는 진호가 안으로 들어오자 습관적으로 웃어 버렸다.

"잘 왔어요. 내가 싸게 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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