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11화
기악과가 개설한 음악으로의 여행으로 수강 신청을 하려는 이유에는 이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노래는 음치 소리 듣지 않을 정도로 부를 줄 알기에 기타부터 배우려는 것이었다.
"하긴 네 얼굴로 기타 치면서 노래하면 미치긴 하겠다. 최소 여자 동기들과 선배들은. 요새는 아이돌 음악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것도 잘 먹히기도 하잖아. 그런데 한 달 만에 되겠냐?"
"날 뭘로 보는 거냐. 나 이진호다. 공부 하나 안 하고 한국대 간 천재 이진호."
"이거나 드세요. 그러는 놈이 패션이 그따위냐? 얼굴도 잘생긴 놈이 아깝게 말이야. 패션 고자 새끼."
진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엄마가 사 준 건데?"
"……어쩐지 중후한 멋이 나더라. 완전 아방가르드 해."
코웃음을 친 진호는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고, 재준은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이윽고 둘은 서로를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딸랑!
손님이 들어오자 진호는 일어섰다.
슬슬 약속 시간이었다.
"나간다. 수고해."
"그래, 나중에 봐, 그렇게 편의점을 나선 진호는 약속 장소인 카페로 향했다.
* * *
모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카페에는 단연코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었다.
온몸을 명품으로 치장했고, 숏컷에 짙은 눈 화장이 인상적인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미녀.
꽃다발을 든 채 문을 열고 들어 오며 시선을 빼앗은 진호는 그녀를 보곤 자신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여전하시네.'
여전히 예쁘고 멋있었다.
그는 테블릿 PC를 보고 있는 여인을 향해 다가가 테이블을 두드렸다.
똑똑!
고개를 든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야!"
"쿡쿡. 오랜만이에요, 미영 이모."
"……진희 년 말이 정말이었구나!"
겉보기엔 30대 중반처럼 보여도 40대 중반인 어머니 나진희와 동갑이었다. 어머니도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안 미녀였지만 말이다.
미영은 호들갑을 떨다가 진호의 팔뚝을 짝 쳤다.
"거 봐, 이 이모가 살 빼면 더 잘 생겨질 거라고 했지?"
미영은 집에 올 때마다 그가 잘 생겼다고 칭찬을 했었다.
"하하하, 정말 그렇게 됐네요."
"허이구, 그래! 우리 아들, 오랜만에 안아 보자."
아들이 없는 미영은 진호를 아들이라고 부르며 예뻐했다.
진호는 그런 미영을 꼭 안았다. 오랜만에 안는 이모의 품은 참 포근했다.
"왜 요새는 안 오셨어요?"
진호가 그녀의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승진 때문에 좀 바빴어. 진희한테 말했는데, 못 들었니?"
"아뇨. 못 들었어요. 그럼 이제 전무 이사인 거예요?"
"아니, 부사장!"
"오오오!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진호는 박수를 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래, 나도 늦었지만, 우리 아들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 축하해. 이건 우리 아들 입학 선물."
그녀는 노트북이 든 백팩을 내밀었다.
그 백팩은 패션을 모르는 진호도 잘 아는 명품이었다.
부담스럽지만, 거부하면 다음엔 더 대단한 걸 준비하는 걸 그녀기에 지금 받아야 했다.
"아, 전 이것밖에 준비 못했는데, 어쩌죠?"
"어머! 예쁘다! 이거면 충분하지. 또 뭘 사 주려고. 됐어."
"최고로 예쁜 걸로 골랐어요."
잠시 공기가 훈훈해졌다.
"그런데 정말 모델이라고 해도 믿겠다, 아들."
진호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미영만 알라는 듯 작게 말했다.
"이탈리아 갔을 때, 길거리 캐스팅돼서 화보도 찍었어요."
"아…… 보그!"
"어? 아시네요?"
진호는 깜짝 놀랐다가 이내 수긍 했다.
그녀는 패션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어머나, 어머나! 걔가 너였구나. 어쩐지 딱 눈에 들어오더라. 우리 아들, 진짜 성공했네? 이 이모는 서운해서 어째? 벌써 다 자랐어."
"이제 시작이에요. 계속 도와주시면 되죠."
"일단 사인 좀 해 줘. 아니지, 사진부터 찍자."
"하하, 예."
한바탕 소란을 떤 미영은 갑자기 재밌다는 듯 웃었다.
"어이구, 우리 딸내미 어째? 아주 임자를 제대로 만나게 생겼네. 아주 잘됐다, 이년."
"지영이요?"
"응. 그 빠가사리가 이 이모의 배경 믿고 안하무인으로 자랐거든."
좁혀지는 그녀의 눈이 묘하게 슬픔을 머금었다.
진호는 의아해 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요."
예전에 봤을 때만 해도 지영은 하는 행동이 모두 귀여운 초등학생이었다.
첫 만남은 정말 싸가지가 없었지만, 그랬다.
성적도 꽤 잘 나왔었던 걸로 기억 했다.
"돈과 권력은 사람을 순식간에 타락시켜. 삐끗하면 나락으로 끌고 가는 거야. 그걸 명심해야 해, 아들."
대기업의 임원으로서 많은 사람을 다스려 본 여인의 말이다. 가슴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그럴게요. 고마워요, 이모."
"뭘, 우리 사이에."
진호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전 어떤 과목을 하면 돼요? 다 해요?"
부자인 그녀가 과외를 시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아무거나. 아들이 가르치기 편한 과목으로 해."
서늘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진호는 눈을 크게 떴다.
역시 그녀는 다스리는 사람이었다.
"본보기군요?"
"……아들, 그냥 지금 퇴학하고 이모 회사에 입사할래? 내가 왜 우리 아들의 이런 면모를 모르고 있었을까? 하긴, 우리 아들이 천재라는 것도 모르고 있던 머저리 년이지."
"하하하."
어색하게 웃은 진호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영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이 뭐예요?"
"……영어야. 20점대. 얘가 날 닮은 건지 수학은 꽤 하는데, 단어 외우는 게 쥐약이더라고. 닮으려면 다 닮지, 에휴. 70점대로만 올려 주면 이 이모는 더 바랄 게 없다!"
"하하, 노력해 볼게요."
정 안 되면 스킬의 도움을 빌려야 할지도 몰랐지만, 그 전까지는 일단 지금의 능력으로 해 보고 싶었다.
"아, 맞아. 중요한 걸 이야기 안 했구나. 얼마나 줄까?"
"적당히 주세요. 여태까지 이모한테 받은 게 얼만데요."
"그래? 흐응……."
의미심장하게 떠지는 눈에 진호는 급히 입을 열었다.
"과하게 주시면 다신 이모 안 볼 거예요."
미영은 정색했다.
"아들, 인간은 저마다 각자의 가치가 다르게 있어. 잘난 사람이 대우를 받는 건 당연한 거야."
"그렇게 말해도 안돼요."
미영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진호는 활짝 웃었다.
"많이 받으면 부담스러워서 못해요. 그렇게 많은 돈도 필요 없고요."
돈 벌 수단이야 차고 넘쳤다.
돈은 미영이 아닌 다른 곳에서 벌어도 됐다.
그런 진호를 빤히 바라보던 미영은 순간 의미심장한 눈빛을 지었다가 곧바로 서운한 척했다.
"……칫, 알았어. 대신 내가 주는 대로 받기다?"
"그럴게요."
"약속한 거야."
"네, 네."
그녀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답했지만, 진호가 경고를 했으니, 제아무리 이모라도 폭주할 수는 없을 거라고 여겼다.
순진한 생각이었다.
4.
보통 천만 원 단위로 형성되는 고액 과외.
그 돈을 받는 순간 조카와 이모라는 관계는 사라지고 만다.
그건 결국 어머니 나진희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되리라.
누군가는 짧은 생각이다, 굴러들어온 호박을 걷어찼다고 할 수 있지만, 진호는 돈보다 인간관계가 우선이었다.
옅게 웃은 진호는 방을 나섰다.
"응? 어디 가세요?"
어머니가 레깅스와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신발장 앞에서 있었다.
"운동 가지, 아들."
"운동? 엄마 운동도 했어?"
"몰랐니? 엄마 이모들이랑에어 로빅하잖아. 요새 아들 때문에 멤버가 늘었…… 몰랐구나."
진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미, 미안! 깜빡했어요. 스쿼시도 하잖아요. 무진 피트니스 센터에서. 조심히 다녀와요. 뼈에 무리 갈라."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인데, 뒷말은 아웃이야. 저녁에 봐, 아들."
"다녀오세요!"
띠릭!
문이 잠기자 진호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하마터면 내일부터 밥에 간장만 먹을 뻔했다.
"하아."
진호는 제 머리를 내려쳤다.
잘난 아들이 되려고만 생각했지, 정작 부모님이 뭘 좋아하시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아직 멀었네."
입맛이 썼다.
고개를 저은 그는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학교에 가야 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대학생활의 시작이었다.
* * *
"내가 미쳤지. 그냥 버스 탈걸."
괜히 첫 등교 분위기를 낸답시고, 정문에서 내렸다.
경영학과만이 있는 단과 대학인 경영 대학으로 가는 길이 한세월이었다.
경영 대학원은 경영 대학 옆에 붙어 있었다.
그래도 한국대의 교정은 참 서늘 하고 좋았다.
봄이 빨리 찾아온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쉽기도 했지만 말이다.
'차를 살까?'
성인 하면 자동차였다.
통장에 남은 돈이라면 중고차를 한 대 장만할 수 있었다.
그 차를 타고 재준과 함께 바다로 여행 갈 생각을 하니 진호는 그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일단 그 전에 면허부터 따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걸으니 어느덧 경영 대학 건물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란 말이지.'
대학은 과연 어떤 걸 어떻게 가르치고,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참기대되었다.
그런데 너무 빨리 왔나 싶었다. 강의실엔 아무도 없었다.
* * *
새내기 김연희는 첫 강의에 부푼 가슴을 누르며 강의실 앞에 섰다. 대한민국 최고 두뇌들만 모인다는 한국대 경영학과.
이곳에 오기 위해 지난 16년을 고생했나 싶었다.
영어 유치원을 시작으로 사립, 사립, 사립.
중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 하루 5시간 이상을 자본 적이 없었다. 정말 감회가 남달랐다.
그녀는 조용히 강의실 안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후훗, 대학교도 내가 첫 등교인가?"
왠지 뿌듯했다.
아무도 등교하지 않은 교실에 앉아 집에선 들을 수 없는 아이돌 음악을 들으며 만화책 다섯 페이지를 읽는 그 짜릿한 일탈.
몸이 단 그녀는 강하게 문을 열었다.
쾅!
"흡!"
예상과는 달리 사람들이 많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상했다.
사람들은 이쪽을 쳐다보지 않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린 그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쏟아지는 햇살을 맞으며 책을 읽고 있는, 마치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미남.
긴 눈썹과 우수에 젖은 눈망울, 날카로운 콧날, 선홍빛 입술.
현실에는 없다 여긴 만화 속 주인공이 거기에 있었다.
그것도 작가를 먼지가 되도록 갈아 버려야 나을 완벽한 주인공이 말이다.
옷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헉!"
아이돌, 순정 만화, 최애캐…….
그 누구도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마른침을 삼킨 그녀는 새내기 배움터에서 친해진 이들을 찾았다. 그리고 만찢남, 진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강의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한편, 습관적으로 뒷자리에 앉으려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앞자리에 앉은 진호는 이쪽을 보기만 할 뿐, 다가오지 않는 동기들의 모습에 한숨을 내뱉었다.
'역시 새터에 참가하지 않아서 다가오지 않는 건가?'
누구 한 명 반경 2미터 안으로 들어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잘생긴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TV에서 보면 탑배우들에게도 스스럼없이 안기는 게 대한민국 사람이었다.
그러니 이건 배척 받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