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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9화 (9/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9화

무언가 미묘하지만, 확 달라졌다. 수능 만점을 받았다고 말한 이후 떠난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보다 훨씬 더 당당했다.

마치 사내가 된 것처럼 말이다.

"응? 뭐가?"

"설마……."

진호는 가늘게 떠지는 어머니의 눈에 불길함을 느꼈다.

"원나잇이라도 했니?"

푸확!

"콜록! 콜록! 엄마-!"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해 본 말이야! 호호호!"

"……어휴, 진짜."

고개를 저은 진호는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너무도 충격적인 말을 들어서 그런지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숟가락 속도만 높아질 뿐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절반쯤 마쳤을 때, 다시 평소와 같은 페이스를 찾은 진호는 왠지 우물쭈물하는 것 같은 어머니를 보곤 의아했다.

"왜? 하고 싶은 말 있어?"

"그게…… 진숙이 이모 알지?"

모를 수가 없었다.

진호는 어머니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한국대에 들어가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역시 사람은 똑똑하고 봐야 하는 것 같았다.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어머니와 진호 자신의 속을 썩여 온 진숙 이모의 아들은 가르치기 싫었다.

"진숙 이모가 과외비를 감당할 수 있겠어?"

알아본 바에 따르면, 한국대생은 한 회에 20만 원 이상씩 받았다. 이런 진호의 은근한 거절에 나진희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호호호! 그렇지?"

"미안해요, 엄마. 하지만, 내가 몸 값을 깎으면 한국대에 다니는 다른 학생들이 피해 봐."

"아니야, 아들. 이 엄마가 생각이 짧았지! 다른 얘들한테도 그렇게 말해야겠네. 호호호!"

세상 밝아지고, 후련해 보이는 어머니의 모습에 진호도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 아들, 혹시 미영이 이모는 기억하니?"

"……아! 나 중학교 때 용돈 자주 주셨던 그 이모?"

지금은 무슨 일인지 집에 오지 않지만, 그때만 해도 올 때마다 용돈을 두둑하게 주었다.

잊어버렸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걸 크러시, 성공한 여성의 표본 같은 이모였잖아."

당시에도 무슨 대기업에 다닌다고 했는데, 직급도 상무 이사였다.

"기억하네? 그 이모가 과외 좀 해 줄 수 있냐고 하는데, 가능하겠어?"

"알았어. 할게. 언제까지 용돈을 받을 수도 없고."

이는 진심이었다.

일반적인 대학생이었으면 용돈을 받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에겐 능력이 있었다.

여기에 돈을 벌면서 새로운 일도 겪을 테니 일석이조라 할 수 있었다.

"어이구, 우리 아들이 기특한 말도 할 줄 아네?"

진호는 가슴을 쭉 폈다.

"나도 이제 대학생이고, 은혜는 갚아야지."

진호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자신이 참 뿌듯했다.

"대신 주에 한 회도 괜찮냐고 물어봐요."

돈도 중요하지만, 캠퍼스 라이프도 중요했다.

"호호호! 알았어. 그럼 그렇게 알고 연락한다?"

"응. 그렇게 해."

진호는 신이 나서 일어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정말로 [스킬 : 전국수석]을 얻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그는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오늘은 그토록 기다리던 입학식이었다.

밀라노에서 얻은 정장을 입은 진호는 포마드 스타일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방을 나섰다.

입학식 때는 무조건 정장이라고 재준이 말했기에 옷매무새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어머니 나진희는 마치 모델 같은 아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말았다.

"아들, 이번 주 수요일 저녁에 시간 괜찮아?"

"미영 이모 때문에? 알았어. 그렇게 해요."

진호의 시원한 대답에 나진희는 활짝 웃었다.

그러다가 곧 낯빛을 흐렸다.

"정말 같이 안 가도 되겠어?"

"졸업식도 아닌 입학식인데, 뭘. 괜찮아요."

"그래도……."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늦을 수도 있어요."

"그래, 적당히 마셔, 싱긋 웃어 준 진호는 마찬가지로 밀라노에서 얻은 구두를 신고 힘차게 집을 나섰다.

그리고 잠시 후.

"박재준 이 개자식!"

한국대 입구, 정장을 입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 *

진지하게 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입학식이 열리는 종합운동장엔 화사하게 꾸민 이들은 많았지만, 정장을 입은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몇 명이라도 있어서 겨우 면피만 가능할 정도였다.

"이걸 어떻게 죽이지?"

우웅!

신경질적으로 스마트 폰을 확인한 진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오늘 입학식이지? 잘하고, 술 너무 많이 마시지마. 그 국보급 피부 상할라. 다시 한번 한국대생이 된 걸 축하해.]

골든 빅 벨의 작가 김승미였다.

그녀와는 지금도 이렇게 연락을 하고 지냈다.

자기가 메인 작가가 된다면 꼭 출연시키겠다면서 말이다.

답문을 보낸 진호는 이탈리아에서 함께했던 일행 중 오늘 입학식을 하는 이들에게 문자를 보낸 후 주위를 둘러보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저기 있다."

학과 팻말을 향해 발을 성큼 땐 그는 잠시 후 발을 멈춰야 했다.

"이진호, 아직 안 왔어?"

"새내기 배움터에도 참가하지 않은 놈을 내가 어떻게 알아!"

"너희 학과잖아! 아씨, 곧 입학식 시작인데! 연락 좀 해 봐!"

"이 새끼, 새터에 참가 안 할 때 부터 알아봤다! 뭐? 연수? 지랄!"

선배로 보이는 이들이 험악한 분위기를 마구 풍기고 있었다.

진호는 재빨리 발을 옮겼다.

처음부터 입보였다가는 대학생활에 큰 애로사항이 꽃필 수 있었다.

이젠 베테랑이라며 잘난 척했다가 스토리를 다시 시작했던 게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리셋 라이프를 통해 대학생활은 간접적으로 많이 겪어 보았지만, 현실은 이게 처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경영학과 신입생, 이진호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당신이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인 그들은 다시 한 번 물었다.

"작년 유일한 수능만점?"

"네, 그렇습니다! 여기!"

진호는 이탈리아를 다녀오는 동안 집으로 배달되었던 학생증을 내밀었다.

한국대의 로고인 '한'이 확실하게 박혀 있었다.

그는 처음 정치외교학부나 지리 학과 등 세계 전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학과를 선택하려 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것들을 보고 느끼며 겪길 원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런 직업에 얽매이지 않아도 세계는 언제든 돌아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결국 선택한 게 경영학과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인들이 다니는 한국대학교 대학생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최고의 지성인이 가는 곳이라고 불리는 학과.

무엇을 해도 용납과 이해를 받는 한국대학교 내에서도 더 용납과 이해를 받을 수 있기에 진호가 그리고 있는 삶에 딱 들어맞는 곳이었다.

"정말이네……."

왠지 믿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그들의 모습에 진호는 다시 한 번 허리를 숙였다.

"일생에 한 번뿐인 기회라고 생각해서 새내기 배움터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리고 말 편히 하십시오!"

한마디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고, 웃는 낯에는 침을 뱉지 못한다고 했다.

구십 도로 굽은 허리, 미안함이 잔뜩 풍기는 목소리.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진심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내가 제일 잘 나가 스킬이 빛을 발한 것이지만, 그것을 모르는 학과 선배들은 괜히 어림짐작했나 하는 생각에 머리를 긁었다.

그러자 그제야 진호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외모 다음으로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이탈리아 명품의 슈트와 구두였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 그것도 외모와 두뇌까지 갖춘 세상 혼자 사는 놈이었다.

그런 이가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고 있었다.

응어리졌던 것이 사르르 녹아 버렸다.

이는 오해였지만, 그들은 그것을 몰랐다.

"음…… 진호야?"

"옙!"

대답은 짧고 강하게.

리셋 라이프뿐만 아니라 부모님 께도 배운 행동이었다.

"……거참."

서로를 보며 영 빠진 놈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 그들은 진호의 어깨를 토닥였다.

"괜찮아.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미안한 걸 알면 된 거야. 어차피 많이 늦지도 않았어. 그렇지?"

"그래, 너무 얼어 있지 마. 이 형 들 그렇게 무서운 사람 아니다. 그 보다 선서문은 다 외웠지?"

입학생 대표 선서문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호는 전년도 수능에서 유일한 만점이었기에 이번 한국대 전체 수석 입학이었고, 메일로 입학생 대표 선서문을 받았다.

진호는 갑자기 온화해진 선배들의 모습에 역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고 생각하며 환하게 웃었다.

"네! 다 외웠습니다!"

"……어후. 야, 그렇게 웃지 마라. 심장 떨린다."

"오! 성실하기까지 하네? 정장도 입고 왔어? 준비성이 좋은데? 좋아, 너 이 형이 앞으로 케어해 준다! 형만 믿고 따라와!"

"좀 있다가 떨지 말고 잘해. 오늘은 네가 우리 학과 얼굴이다."

"예! 감사합니다!"

진호는 다시 한번 사과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좋아. 첫 단추를 제대로 꿰었다.'

이제 남은 것은 단상에서 떨지 않고 선서문을 옮는 것이었다.

평생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경험.

긴장 때문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종합운동장에 놓인 수많은 의자가 채워져 갔다.

그럴수록 진호의 얼굴에선 혈색이 사라져 갔다.

"스읍, 후우."

골든 빅 벨에서 수많은 학생의 주목을 받은 경험이 있어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천 명, 어쩌면 그 이상. 머릿속이 점점 하얗게 변해 갔다.

"괜찮냐?"

"……아니요."

"우황청심환이라도 줄까?"

"괜찮습니다. 먹고 왔어요."

"야, 당당하게 가슴 펴. 어차피 저놈들 아무것도 아냐. 다 너보다 밑이야."

솔직히 그건 아니었다.

저들은 엉덩이가 짓물러지도록

노력한 대가로 이곳, 이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어떤 초월적인 무언가의 의지인 지, 아니면 우연의 산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운으로 전국수석이 된 진호로서는 그들을 깔보고, 얕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계속 숙이고 움츠리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거였으면 애초부터 한국대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진호 자신은 그저 저들보다운이, 그리고 재능이 더 많게 됐을 뿐이었다.

기회가 왔고 그것을 잡았을 뿐이었다.

누군가 개소리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그렇기에.

"그렇죠. 출발선은 이제 같아졌죠."

어차피 인생이란 누군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었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보다 몇 배는 많았다.

그때마다 움츠려서는 다짐처럼 인생을 즐길 수가 없었다. 미안하지만,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되기로 했다.

핸드폰 게임만 하던 인생 낙오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한국대학교 전체 수석입학자 이진호만 있을 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진호가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심장이 놀랍도록 차가워졌다.

"감사합니다, 선배. 덕분에 도움이 됐습니다."

진호는 '이것 봐라?'하면서 눈을 빛내는 3학년 과대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단상을 향해 발을 뗐다.

차례였다.

그는 이쪽을 보며 놀라고, 경악하고, 질시와 증오의 시선을 보내는 수천 군중을 보며 오른손을 들었다.

"선서! 나 이진호는 지성의 요람 한국대학교의 자랑스러운 입학생 대표로서 몸과 마음을 다해 학문에 정진할 것임을 드높고 곧은 관악의 정신 아래 맹세합니다!"

진호의 낭랑하고도 강한 음성이 푸르른 3월의 하늘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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