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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6화 (6/424)

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6화

'아, 좁아.'

다리가 길어지니 이런 불편함도 생겼다.

한국을 대표하는 항공사라서 저가 항공보다 의자의 사이 간격이 넓다고 했는데, 모두 거짓말인 것 같았다.

진호는 몸을 뒤척이다가 결국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승무원이 다가왔다.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손님?"

온화한 미소마저 예쁜 승무원이었지만, 벌써 15번째였다.

그때마다 항공사의 일반 서비스라며 새 담요니, 목 배개니, 물이니 가져다줘서 고맙고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변한 외모가 주는 혜택에 익숙해지기에는 아직 시간이 모자랐다. 그래도 주머니 속에 든 그녀의 전화번호는 스킬을 얻길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요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 주세요."

"네, 수고하세요;'

눈웃음을 지으며 멀어지는 승무 원을 보며 볼을 긁적이던 진호는 역시 창가 쪽에 앉아야 했다고 생각하며 여행책자에 다시 시선을 돌렸다.

"와, 역시 사람은 잘생기고 봐야하네."

"……하긴 제가 좀 잘생기긴 했죠?"

"어머, 얘 좀 봐?"

진호는 장난이라는 듯 씩 웃었고, 이번 여행에 인솔자 중 한 명으로 따라온 NBS 소속의 여작가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런데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언젠가 자유 시간을 주실 거잖아요. 그때를 대비하는 거죠."

"풋, 이탈리아어는 할 줄 아니? 거기 영어 잘 안 써."

진호는 슬쩍 콧대를 세웠다.

"이번에 익혔어요."

"……와, 정말?"

'익히는 김에 다른 언어들도 익혔다고 말하면 안 믿겠지?'

머릿속에 쏙쏙 들어와 새겨지니, 77일이란 시간도 남아돌았다.

띵띵띵!

"승객 여러분. 본 항공기는……."

잠시 후, 안내 방송이 울리며, 도착을 알렸다.

몸이 쏠리는 듯한 기묘한 느낌과 함께 덜컹거리며 비행기가 착륙하였다.

* * *

"정말 여행을 위해 온 겁니까?"

복잡하고 정신없이 움직여 도착한 입국심사대의 입국심사관이 여권과 입국심사서를 번갈아 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물어 왔다. 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탈리아어로 말했다.

"네. 거기에 적혀 있듯이 여행을 위해 왔습니다. 방금 전 제 앞에서 통과한 사람들처럼요."

입국심사관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이탈리아어가 아주 능숙하군요. 현지인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그런데 그 거짓말 진짜입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제가 한국에서 유명한 퀴즈쇼 우승자거든요. 그리고 여행을 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는 필수죠."

"하핫, 패션의 도시에 온 걸 환영 합니다."

"축구의 도시기도 하고요?"

이곳은 패션과 축구의 도시 밀라노였다.

지금은 인기가 없어진 리그라고 하여도 한 때엔 세계 삼대 리그로 불렸던 곳.

그중 밀란 더비로 유명한 AC밀란과 인터 밀란은 세리에 A를 주름잡던 강팀들이다.

"하하핫!"

쾅!

"다음!"

입국심사관이 웃으면서 건넨 여권을 챙긴 진호는 미소를 지으며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왔다.

"후아."

심장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괜히 겁먹어서 말을 제대로 못하면, 입국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인터넷 조사 때문이었다.

"응? 왜요?"

먼저 나온 사람들이 멍하니 쳐다 보고 있었다.

"너 진짜 이탈리아어 할 줄 아나 보구나?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한 거야?"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요."

누군가에게 말할 만큼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윽고 일행 모두가 입국심사대를 통과하자 그들은 인솔자의 안내에 따라 이동했다.

기다림 끝에 캐리어를 찾는 것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외국인들도, 왠지 무거운 듯한 공기도 모두 진호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런 그의 주위엔 여자들이 모여 있었다.

부끄러운 건지 미묘하게 거리를 둔 채 말이다.

"와!"

"우와!"

학생들은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보며 눈을 빛냈다.

이번 해외 연수의 주제인 '바로크를 찾아서'와 딱 들어맞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부서지는 석양빛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고층 빌딩이 거의 보이지 않아서 더 아름다웠다.

진호는 장시간 비행의 피로를 잠시 잊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학생들도 그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 * *

"끄으-."

눈을 뜬 진호는 멍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법 깔끔하지만, 올드한 느낌이 가득 나는 방엔 두 명의 청년들이 더 자고 있었다.

리셋 라이프 때문에 학창 시절 그 흔한 수학여행도 가지 않았던 그로서는 굉장히 낯선 광경이었다.

'아, 여기 밀라노였지. 참.'

오후 늦게 숙소로 쓸 레지던스 호텔에 도착한 그들은 너무도 피곤한 나머지 저녁을 먹자마자 잠 들어 버렸다.

야경을 보며 와인 한 잔을 마셔 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진호도 혼 절하듯 잠들어 버렸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그는 바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좌아아!

쏟아지는 물줄기에 정신을 차린 그는 옷을 대충 챙겨 입고 렌즈를 정성스럽게 착용한 후 호텔을 나섰다.

외모는 환골탈태했지만, 시력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그가 향한 곳은 어제 호텔에 들어오기 전 보았던 베이커리 카페였다.

세월이 가득 묻어나는 카페 밖 테이블엔 사람들이 제법 많이 앉아 있었다.

AC밀란의 후드티를 입은 채 졸며 빵을 먹는 부류, 한껏 치장을 한 채 코트나 점퍼를 입고 있는 여자들.

사람 한 명 없는 호텔 레스토랑 보단 훨씬 활기찼다.

고소한 빵 냄새와 커피 향에 몸이 달은 진호는 얼른 주문을 하고는 빈 테이블에 앉았다.

이윽고 크루아상처럼 생긴 브리오쉬와 카푸치노가 나오자 진호는 재빨리 커피잔을 들었다.

후룩!

'아, 별로다.'

커피가 아니라 쓴 커피물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는 빵에 시선을 주었다.

빵하면 유럽, 유럽하면 빵이다. 버터의 고소한 향기마저 솔솔 올라오니 무척이나 기대되었다.

와삭!

순간 눈이 동그래진 진호는 재빨리 빵 안을 살폈다.

"잼?"

크루아상 속에 묽은 잼이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 녹색 잼의 맛이 굉장히 독특하면서도 맛있었다. 진호는 마침 나오는 종업원에게 잼이 무엇인지 물어보았고, 종업원은 친절하게 답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멀어지는 벽안의 종업원을 보자 이제야 이탈리아에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

와삭!

다시 베어 문 빵은 또 한 번 감동을 주었다.

당분이 들어가니 멍해 있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채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이들이 들어왔다.

'……어디.'

진호는 그들을 따라 다리를 꼬며 커피 잔을 들어 올리며 감동했다.

"와, 나도 이제 다리가 꼬아지는 구나. 흐흐흐."

"풋!"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던 진호는 옆자리에서 이쪽을 보며 웃고 있는 20대 초반의 미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크흠, 죄송합니다."

진호는 슬그미니 다리를 풀며 고개를 돌린 채 커피를 홀짝였다.

그 모습에 미녀는 다시 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일어나 진호의 옆에 앉았다.

'헉!'

진한 향수 냄새가 심장을 멎게 했다.

"쿡쿡. 표정이 굉장히 다채롭네요. 모델? 아니면 배우?"

"아, 아뇨. 학생입니다. 올해 대학교에 들어가요."

"와우! 대체 그 아까운 재능을 얼마나 썩히고 있는 거죠?"

"……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봐주시니 정말 감사하네요. 그쪽도 굉장히 아름다워요."

꽤 용기내서 한 말이었다.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서 그런지 본능과 이성이 외치는데로 전달 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돌아오는 반응은 역시나였다.

"풋. 많이 노력하셔야겠네요. 너무 얌전해요. 조금 더 당당해져 봐요. 허리도 좀 펴고."

"……아하하하하."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외모가 바뀌어서 자신감이 넘쳐 나게 됐다지만, 이건 별개의 문제였다.

"후훗, 이거 받아요."

그녀가 내민 것은 한 장의 명함이었다.

"생각 있으면 연락해요."

쪽!

볼에 닿는 촉촉한 부드러움에 깜짝 놀란 진호는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등을 돌리며 멀어지고 있었다.

"……와, 이탈리아는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거침없다는 말이 진짜인가 보구나."

뭔가 폭풍이 몰아친 기분이었다.

그래도 난생처음 당한 그것도 외국인 미녀에게 당한 헌팅은 너무도 짜릿했다.

어두운 금발에 녹색 눈동자, 코트로도 가려지지 않던 육감적인 몸매. 이제 어른의 계단을 넘을 때가 왔나 싶었다.

단아하기만한 스튜어디스의 외모는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흐흐."

씩 웃은 진호는 명함을 살폈다.

그러고는 크게 실망했다.

"HU agency? 아, 모델 에이전시구나……."

부끄러워 미칠 것 같았다.

진호는 그제야 어제의 입국심사관의 그 날카로운 물음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넌 이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도 헌팅을 당하는구나?"

"아, 누나."

부스스한 얼굴의 여작가, 30대 중반의 김승미가 못 말리겠다는 듯 웃으며 다가왔다.

분명 이모뻘이었지만, 그렇게 불렸다가는 가만두지 않겠다는 경고를 받은지라 진호는 누나라고 부르는 중이었다.

진호는 뒤통수를 긁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런데 꽤 성실하네? 이른 아침 부터 일어나 있고?"

"두근거려서 빨리 깼나 봐요."

새로운 나라, 새로운 문화, 새로운 인종.

심장이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멋진 일도 겪었기에 오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호호, 그러니?"

김승미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잘생기고 똑똑한 얘가 이렇게 천진난만하기까지 하다.

절로 정감이 갈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탐이 났다.

이윽고 그녀 몫의 아침식사 세트가 나왔다.

"으응? 이, 이것들은 시키지 않았는데?"

그녀의 접시엔 두 가지의 빵과 치즈, 잘린 햄과 소세지, 버터도 올라가 있었고, 오렌지 음료까지 있었다.

빵과 커피가 전부였던 진호의 아침식사와 너무 비교가 되었다. 진호는 음식을 가지고 나온 후덕한 덩치의 노인을 보았다.

"아름다운 여성분을 위한 서비스 라고 전해 줘요."

"아, 아름다워요?"

지금 김승미는 다크서클까지 내려온 민낯이었다.

주인으로 보이는 노인의 시력이 의심스러웠다.

"그럼! 여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여성이기에 아름답지! 자네도 남자라면 새겨듣게! 아까처럼 얌체같이 굴지 말고!"

"억!"

순간 버터의 향기가 강하게 느껴지면서도 다시 한 번 쥐구멍에 숨고 싶어졌다.

"뭐래? 뭐라고 하셔?"

진호는 떠듬떠듬 노인의 말을 설명해 주었고, 멍해진 그녀는 이내 쑥스럽다는 뜻 웃으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주인은 윙크를 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머어머, 이탈리아 남자는 나보다 작은 여자는 요정이고, 나와 키가 같으면 공주, 나보다 크면 여왕이라고 생각한다는 게 정말이었구나. 나 이런 경험 처음이야. 화장이라도 하고 올걸!"

진호는 소녀처럼 좋아하는 그녀의 모습에 의아함을 표했다.

"불쾌하지 않으세요?"

지금 노인의 행동은 어찌 보면 추파였다.

"예쁘다는 말을 싫어하는 여자도 있니?"

"하지만……."

"순수한 호의잖아. 아니라도 제법 유쾌하고."

"아,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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