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폐인의 리셋 라이프 1권 3화
"정답은…… 앙가주망! 4번 앙가주망입니다! 이진호 학생 축하드립니다! 이진호 학생이 보문고등학교 최후의 1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와아아아아아!"
"괜찮아! 괜찮아!"
승자가 웃을 때, 패자는 등을 보인다고 했다.
이 놀라운 이변에 함성은 약간의 틈을 두고 터져 나왔다.
"빌어먹을!"
김창섭은 땅을 차며 퇴장했고, 다른 두 명의 학생들은 진호와 어정쩡하게 포옹을 하고는 돌아섰다. 이제 도전 골든 빅 벨은 온전히 진호만의 무대가 되었다.
'장학금 겟!'
주먹이 절로 불끈 쥐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도전 골든 빅 벨은 어떻게 보면 일종의 게임이다.
그것도 현실에서 누군가에게 자신만만하게 내보일 수 있는 타이틀이 걸린 이벤트.
앞으로 겨우 열세 문제.
게이머의 혼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현실엔, 그리고 앞으로의 삶엔 이런 이벤트들이 넘쳐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수많은 변수 와 아차 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마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세이브 로드도 없이 나아가야 했다.
극악했던 리셋 라이프와도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난이도. 그러나 좌절감이나 공포는 들지 않았다.
오히려 몸이 들썩일 정도로 재밌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서 이 알을 깨고 날아가고 싶었다.
'내가 왜 전국수석을 택했는데!'
리셋 라이프의 시크릿 스토리라고 생각했던 그때와 각오가 달라지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선택하기를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었다.
인생을 사는데 똑똑한 머리는 무척이나 중요했다.
지금처럼.
"이진호 학생, 드디어 마지막 문제입니다! 지금 굉장히 떨리고 있을 텐데요. 앞으로 한 문제만 더 풀면, 해외 어학 연수 티켓을 거머 쥐게 됩니다. 자신 있습니까?"
당연한 말을 하고 있었다.
"네, 자신 있……."
"뭐, 뭐라고-!"
진호는 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교장을 보았다.
그런 교장은 진호를 불타는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거기다가 선생들도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진호를 쳐다봤다. 웅성웅성.
동요하는 학생들처럼 진호도 덜컥 겁이 났다.
'내, 내가 뭘 잘못했나?'
진호는 여차하면 도망치기 위해 탈출구부터 살폈다.
그때, 무슨 일이 있는지 살피러갔던 스태프가 화들짝 놀라더니, 무전기를 들고 무언가를 외쳤고, 정면에 있는 방송국 사람들도 동요를 보였다.
급히 인이어를 낀 남녀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다.
진호는 슬그미니 엉덩이를 뗐다.
"지, 진호 학생?"
"네. 말씀하세요."
"호, 혹시 이번 수능 수험 번호가 어떻게 되는지 기억하나요?"
고개를 끄덕인 진호는 수험 번호를 말했다.
꿀꺽!
남자 아나운서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 그러면 자신이 혹시 수능 만점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나요?"
"……아!"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것은 수능을 본 그날 답안지 체크를 해 봐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물론,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지만, '어디서 구라를!'이라며 코웃음을 치셨기에 이후부터 설명을 포기했다.
누군가를 이해시킬 뚜렷한 증거도 없었거니와, 괜히 침 튀게 말해 봤자 입만 아팠기에 침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이렇게 밝혀질 줄은 몰랐다.
"그게 벌써 학교에 통보되나요?"
의아해 하는 그와 다르게 학생들은 모두 경악했다.
"거짓말─!"
재준이 소리를 질렀다.
진호는 그런 친구를 향해 씩 웃어 주었다.
'이제 나도 네 옆에 당당히 설수 있어. 부끄럽지 않은 친구가 되어 줄게, 재준아.'
7년간 재준과 함께 다닐 때마다 가슴 한구석을 후벼 팠던 열등감. 그러나 이젠 당당해질 수 있었다. 이는 도전 골든 빅 벨에 응시한 또 다른 이유였다.
진호는 하루라도 빨리 당당해지고 싶었다.
* * *
당연히 체육관은 혼란스러워졌다. 누구도 입을 제대로 열지 못하고, 버벅거렸다.
제일 빨리 움직인 것은 친구 재준도, 담임도, 같은 반 학생도 아닌 방송국 사람들이었다.
바라지도 않았는데,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
이런 걸 놓쳐서야 방송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집요하다시피 코치코치 캐물었고, 진호는 적당히 꾸며 낸 대답을 들려주었다.
그 덕분인지 체육관의 사람들은 어느새 방청객 모드로 돌아서 있었다.
그들은 진호의 대답에 감탄하고,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 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른 후, 다시 골 든 빅 벨의 문제가 흘러나왔고, 진호는 방금 전과는 차원이 다른 기대감 속에 화이트보드를 들어야 했다.
"정답은…… 노보시 효과! 노보시 효과가 맞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이진호 군이 골든 빅 벨을 울렸습니다!"
뎅! 뎅! 뎅! 뎅!
퍼엉! 촤아악!
"와아아아아아아!"
사방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날리는 꽃가루.
기다렸다는 듯 달려든 학생들이 끌어안고, 몸을 두드렸다.
"요놈! 요놈!"
"이 자식─!"
이미 정답임을 확신했지만, 이렇게 커다란 환호를 받으니 얼떨떨했다.
와락!
"윽!"
"좀 이따가 보자."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말을 뱉은 사람은 친구 재준이었다. 돌아서는 친구의 눈에서린 자랑스러움에 진호는 웃음이 나왔다. 이윽고 우승자 인터뷰를 마친 그는 몇 시간 동안 담임과 교장에게 시달려야 했다.
* * *
터덜, 터덜.
학교를 나서는 진호의 걸음이 무거웠다.
오늘 하루 많은 일이 있었기에 힘이 빠진 탓이다.
"후우, 적당히 볼 걸 그랬나?"
문제를 보자마자 머리가 답을 내 놓는 재미에 빠지다 보니 이번 수 능의 난이도가 역대급으로 높은 편인 줄도 몰랐다.
"아니지, 아니야. 뭔 배부른 투정 이냐."
쉽다고 느꼈지만, 그래도 전력으로 임했다.
앞에 고난이 예정되어 있을지라도 설렁설렁하는 것은 성미에 맞지 않았고, 수능은 앞으로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첫 번째 분기점으로 손색이 없었다.
그렇기에 모든 힘을 쏟았다.
"그래서 덕분에…… 흐흐흐."
계좌로 입금된 장학금이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었다.
전교생이 모였고, 골든 빅 벨도 울렸다.
교장은 면담이 끝나자마자 돌아 가려던 학생들을 다시체육관에 불러와 그들이 보는 자리에서 직접 장학금을 전달했다.
그것도 공지했던 것보다 배는 더 많은 액수였다.
"야! 이진호!"
교문 앞에서 재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호는 걸음을 빨리했다.
"재준아."
"너 이 새끼……."
"일단 돈까스부터 먹을래? 오늘 PC방까지 풀코스로 쏜다."
"……똑바로 말해라. 구라 치면 정말 죽는다."
"큭큭. 가자."
둘은 유명한 돈까스 맛집으로 향했다.
재준의 화를 풀어 주려면, 분식집 돈까스로는 부족했다.
* * *
꿀꺽! 꿀꺽!
"꺼억,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진호는 꽁다리만 남은 피자를 보며 뻐근해지는 뒷목을 주물렀다. 일차로 돈까스 2인분, 이차로 스파게티 및 목살 스테이크, 3차로 피자 두 판.
이게 정녕 사람인가 싶었다.
한 달 용돈이 날아간 것은 두 번 째 문제였다.
"인터뷰에서 말했다시피……."
"야, 내가 너랑 7년 친구고, 너때문에 서울중앙지검에 출근 도장 까지 찍었던 놈이다. 그런데 집에서 공부를 했다고? 그걸 믿으라고?"
진호는 중학교 1학년 때, 재준에게 리셋 라이프를 전파했다.
좋은 게임은 친구와 같이 하는 게 재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재준은 위치기반 증강 현실 시스템에 선택을 몇 번 잘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극악한 난이도를 견디지 못하고 금세 그만두었다.
"아까 말했잖아. 내가 좀 천재라고. 1년 전에 전국수석 스킬 얻는다고 텍스트 파일들 만들던 때 기억나?"
"기억나지. 그것 때문에 너희 어머님이 아들이 드디어 공부한다고 잔치열려고 하셨잖…… 서, 설마?"
재준의 눈동자가 크게 출렁였다.
"아니지? 아닐 거야. 사람이 어떻게……."
"그래, 맞아. 그냥 외웠어. 통째로, 모두다."
"……미, 미친 새끼."
진호는 속으로 씁쓸히 웃었다.
재준으로서는 믿기 힘든 이야기 일 것이다.
하지만, 수능 만점이라는 증거가 버젓이 존재했다.
그렇기에 이 기세를 타고 밀어붙여야 했다.
"알잖아. 리셋 라이프가 얼마나 극악한 게임인지. 내가 요새 기억력이 깜빡깜빡했던 것도 리셋 라이프의 스토리가 몇 개 남지 않아서였어."
"그러니까 너무 많은 걸 기억하다 보니까 기억력이 나빠진 거였다? 그게 말이 되냐?"
"그 증거가 여기 있잖아."
"……와, 씨, 와─!"
재준은 너무도 놀라운 말에 급격히 늙어 버렸다.
이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 부모님도 아시냐?"
"코웃음 치시던데?"
"하긴, 오늘 일을 다 본 나도 긴가민가한데, 너희 부모님이라고 어련하시겠냐."
"아마, 내가 한국대학교에 입학해야 믿기 시작하실 거야. 어쩌면 오늘 믿으실수도 있고."
"하, 한국대에 가려고?"
"무슨 짓을 해도 용납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곳이잖아."
한국대학교는 대한민국 모든 대학 중 유일하게 수능 성적으로만 입학생을 뽑는 곳임과 동시에 국내 최고의 대학으로 꼽혔다. 앞으로의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 필요한 타이틀임과 동시에, 지금까지 자식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부모님께 드리는 선물이기도 했다.
"……뭔 짓을 하려고?"
'의사, 검사, 변호사, 철학자, 수학자, 패션디자이너 등등. 많지, 아주 많아.'
99가지의 스토리.
99개의 인생은 몇 개의 암울한 스토리를 제외하면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을 만큼 모두 매력적이었다.
어느 하나의 인생을 따라가도 되고, 모두를 시도해 봐도 된다.
아니, 여건이 허락하는 모두 경험 해 보고 싶었다.
앞으로 수많은 이벤트가 찾아올 텐데, 어느 하나의 루트만 택해서 나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난 젊고, 인생은 이제부터 시작이잖아. 그래서 해 보고 싶은 건 모두 해 보고 싶어. 아니, 다 할 거야!"
[스킬 : 전국수석] 덕분에 똑똑해진 머리가 그 모든 걸 가능케 할 것이다.
재준은 경악했다.
"……너 진짜 변했다? 아니, 이제야 본모습이 나온다고 봐야 하나? 하아, 새끼. 진즉에 이랬으면 얼마나 좋냐!"
오해하는 친구의 모습에 진호는 약간 씁쓸했지만, 굳이 정정해 주지는 않았다.
본인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결코 불쾌한 변화가 아니었다.
리셋 라이프를 할 때보다 더 즐거워 미칠 것 같았다.
"그럼 이제 뭘 할 거냐? 앞으로 말이야. 입학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
"일단……."
"일단?"
재준의 집중하는 눈빛을 보자 왠지 장난기가 솟았다.
"PC방부터 가야지."
도전 골든 빅 벨에 출연한 이유 중 하나였던 교장의 장학금.
그것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앞으로의 삶에 없어선 안 될 그것을 얻어야 했다.
대학 입학까지 앞으로 77일, 절기가 겨울이니 꽤 힘겨운 고난이 될 테지만, 나중으로 미룰 수는 없었다.
진호는 각오를 단단히 했다.
"야."
"그래서 안 갈 거임?"
"누가 안 간데?"
서로를 보며 키득키득 웃은 둘은 PC방을 가기 위해 일어섰다.
* * *
"다녀왔습니다!"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간 진호는 순간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