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65화 (365/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8)

시계의 시침이 숫자 1을 막 지난 시간.

서용석은 자신의 숙소보다 더 오랜 시간을 보낸 에우로파 프룩스 극동종자연구소 체력 단련실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운동하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를 찾아올 손님을 맞이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문을 바라보고 있는 서용석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눈과는 달리 심장은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뛰고 있었다.

서용석은 어떻게든 마음을 가라앉히고 싶었지만, 심장은 그의 의지는 상관없다는 듯 점점 맥박수를 늘려 가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분 전 극동종자연구소의 연구소장이면서, 동시에 서용석을 관리하는 여자, 다니엘라 노이도르프로부터 한규호가 타고 온 차량이 연구소에 진입했다는 소식을 전달받았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부하들이 죽어 나가는 모습을 그저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날 이후, 오랫동안 바라마지않던 순간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서용석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가슴을 부풀린 공기를 천천히 내뱉으면서 다시 한번 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심장은 여전히 서용석의 통제를 따르지 않았다.

어쩌면 나쁘지 않을 수도.

서용석은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몸을 움직여야 했다, 미리 몸을 덥혀 놓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복도 너머로 발소리가 들려왔다.

서용석은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를 들으면서 그가 다가오고 있다고 확신했다.

복도를 따라 들려오는 발소리에는 자신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 잠겨 있었다.

점점 커져 오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

문을 바라보던 서용석의 눈에, 문이 열리는 모습이 보였다.

문 뒤에 한규호가 서 있었다.

* * *

한규호는 체력 단련실이라고 쓰여 있는 문 앞에 섰다.

문을 열지 않았음에도, 문 너머에 있는 남자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처럼 사선을 넘나드는 사람들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한규호는 문을 열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놓여 있는 체력 단련실 한구석, 그곳에 서용석이 앉아 있었다.

“이야기했던 것보다 빨리 왔군.”

서용석이 한규호에게 말했다,

“기다리게 했군.”

한규호는 그렇게 말하며 체력 단련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일단 앉지.”

서용석은 자신의 맞은편에 놓인 의자를 가리켰다.

한규호는 아무런 말 없이 서용석이 지정한 의자에 앉았다.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찾아 헤매던 두 사람은 책상을 가운데 두고 서로를 마주 바라보았다.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한규호였다.

“일단은 고맙다고 말해야겠지.”

“무슨 말이지?”

“두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아서.”

박종연과 정지혜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용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그럴 생각이었나?”

한규호가 물었다.

“아니. 부하들의 목숨값을 받아 낼 생각이었지.”

서용석이 말했다.

“하지만 다시는 너를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 그렇게 되었을까?”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나는 당신을 찾아왔을 거야.”

한규호가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말했지?”

서용석이 물었다.

“나는 누구보다도 당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서용석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알고 있군.”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이번에 먼저 침묵을 깬 것은 서용석이었다.

“군에 남아 있는 줄 알았지. 그래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예상했는데, 쉽지 않더군.”

“그 작전이 끝난 후, 바로 군복을 벗었지.”

한규호가 말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 궁금하군.”

서용석이 물었다.

“독립 요원.”

“독립 요원?”

“일종의 용병이라고 할 수 있지.”

“그래서 해외로 돌았군.”

서용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535를 이끌던 시절, 서용석도 당의 명령을 받아 군사 코디네이터로 해외를 떠돌고는 했다. 일종의 외화벌이 용병이었다. 베네수엘라에 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돈이 필요했나?”

서용석의 질문에 한규호가 작게 웃었다.

“돈이 필요했을 것 같나?”

한규호가 되물었다.

서용석은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 한규호에게서는 자신과 같은 체취가 느껴졌다.

맹수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야생의 체취였다. 그리고 맹수는 먹이를 저장하지 않았다.

눈 앞의 남자는 서용석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돈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왜 용병이 된 거지?”

“다시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다시 북으로 오고 싶었다?”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북으로 오기 위해 군을 나왔다?”

서용석이 다시 물었다. 한규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정치가나 정부 부처 인사, 그리고 사업가를 제외하고, 폐쇄 국가인 북한의 국경을 넘는 유일한 방법은 군인으로서 임무를 받아 침투하는 방법뿐이었다.

자신이 535를 이끌고 남한에 침투하고, 눈앞의 이 남자가 대북침투 작전팀의 일원으로서 백금산에 접근했던 것처럼.

하지만 다시 북으로 돌아오기 위해 군을 나왔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었다.

“설명하자면 좀 복잡하군.”

한규호가 말했다.

“누군가 또 올 사람이 있나?”

서용석이 물었다.

경찰이나 국정원 요원이 이곳으로 오고 있는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알기로 또 올 사람은 없군.”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을 시간은 충분하겠군. 이야기해 주지 않겠나? 오늘이 아니면 다시 마주 보고 앉을 기회가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잠시 서용석을 바라보던 한규호의 고개가 위아래로 작게 움직였다.

맞는 말이었다.

대화를 나눌 충분한 시간이 있는지는 몰라도, 오늘이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인 것만은 분명했다.

“표면상으로 작전은 성공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

한규호가 입을 열었다.

“백금산에 핵 개발 시설이 가동 중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실패였지. 여섯 명의 팀원 중 두 명밖에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살아 돌아온 두 명 중 하나는 전투력을 상실했으니까. 당신들은 어떤지 몰라도, 여기에서는 그런 상황이면 살아 돌아온 인원을 다시는 현장에 복귀시키지 않지. 정신적인 상처, 절대로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하니까. 그게 군복을 벗은 이유지.”

설명을 들은 서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가 갔다.

“용병이 되면 다시 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나?”

서용석이 물었다.

“독립 요원이라고 부르지. 용병하고 비슷하지만, 결이 좀 다르지. 국가기관의 의뢰만을 받으니까. 큰 건만을 맡는다고 생각하면 되겠군. 큰 건을 처리하다 보면 능력을 인정받게 되고, 이쪽 업계의 큰손인 미국이 관심을 보일 테고, 북한 관련 의뢰를 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지.”

“말도 통하고, 이미 다녀온 경험도 있으니까.”

“그래. 미국에서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면 그 부분을 주목하리라 생각했지.”

“왜 다시 북으로 돌아가려 한 거지?”

“내 이야기가 길어지는군. 내게도 질문할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한규호가 말했다.

잠시 한규호를 바라보던 서용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잘 만들었군.”

한규호가 서용석의 두꺼운 가슴팍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용석이 찔린 부위는 등허리였다. 급소였다. 근육은 물론 신경과 내부 장기까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앉아 있는 서용석에게서 부상의 징후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다.

부상의 징후는커녕, 세월이 잔뜩 묻은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게 잘 만들어진 청년의 몸을 가진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기까지 반년이 걸렸지. 발로 걷기까지 반년, 어린아이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뛰는 데 또 반년이 걸렸고.”

서용석이 말했다.

“뛸 수 있게 된 순간부터 조금씩 몸을 만들었지. 예전의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아니, 정확히는 그 이상의 몸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 가슴에 칼이 꽂히고도 죽지 않는 괴물에게서 부하들의 목숨값을 받아 내야 했으니까.”

서용석이 한규호의 명치 부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에게서.”

“그래. 너에게서.”

한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위의 지시였나?”

한규호가 물었다.

“아니. 내 선택이었지.”

서용석이 대답했다.

“다시 돌아가진 못하겠군.”

“그래. 다시 돌아가지 못하겠지. 아니, 다시 돌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정확하겠지.”

서용석이 말했다.

“당신은 그날 죽었으니까.”

한규호가 말했다.

“역시 잘 알고 있군. 그래. 나는 그날 죽은 것과 다름없으니까.”

서용석이 한규호의 눈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 너의 말대로 나는 그날 죽었다고 하는 게 맞겠군. 죽었지만 성불하지 못하고, 원한을 갚기 위해 떠도는 원귀가 되었다. 그게 가장 정확한 표현이군.”

서용석은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하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그 얼굴이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한규호의 마음을 알기라도 한 듯 서용석이 물었다.

“너도 마찬가진가?”

“그래. 나도 그날 죽었고, 원한을 갚기 위해 이승을 떠돌고 있지.”

한규호가 말했다.

“북으로 가려는 이유가 원한을 갚기 위함인가?”

서용석이 물었다.

“그래.”

“나를 만나기 위해서?”

“그래.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한규호가 대답했다.

“나에게 전우들의 목숨값을 받기 위해서?”

“아니.”

한규호의 부정에 서용석은 대답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눈빛에 호응하듯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그런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내가 목숨값을 받아야 할 상대는 당신이 아니지.”

“그 남자로군.”

서용석이 말했다.

“그래. 그 남자.”

한규호가 대답했다.

그 순간 한규호와 서용석은 같은 사람을 떠올렸다.

높고 좁은 코, 은발과 금발이 적절하게 섞인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백인 남자.

“왜 내가 아니라 그 남자에게서 목숨값을 받으려고 하는 거지?”

서용석이 물었다.

“같은 이유지.”

“같은 이유?”

“당신이 박종연에게서 목숨값을 받아 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

한규호의 대답에 서용석은 말없이 한규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박종연과 당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은 일반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교전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되어 있지. 당신도 그걸 알고 있기에 박종연에게서 목숨값을 받아 내려고 하지 않았고.”

한규호는 계속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와 당신 부하 사이에 있었던 일은 교전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겠지. 그게 나를 찾아온 이유고.”

서용석의 머릿속에 그날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 * *

가슴에 칼이 꽂혔음에도 다시 살아난 괴물, 한규호가 백인 남자를 칼로 난자하고 있었다.

등허리 깊숙이 대검에 찔린 서용석은 쓰러진 상태로, 힘겹게 숨을 뱉어 내면서 한규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한규호와 백인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한규호의 발치에 쓰러져 있는 남자, 팔이 갈라지고, 목에서는 피가 꿀렁꿀렁 흘러내리고 있는 박철 상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2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서용석 곁을 지키며, 서용석과 함께 535를 공화국 최고의 부대로 만든 가장 가까운 부하, 서용석의 뒤를 이어 535를 이끌 예정이었던 박철은 이미 숨이 끊어진 듯,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칼질이었다.

백인 남자의 가슴, 정확히는 간이 있는 부위에 칼을 찌르던 괴물은 뒤에서 습격해 오는 박철의 동선을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한 듯, 백인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뒤쪽으로 칼을 휘둘렀다.

단 한 번의 칼질이었다. 단 한 번의 칼질이 박철 상사의 대동맥을 끊어 버렸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을 서용석은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단지 박철만이 아니었다.

저 괴물을 처리하기 위해 달려든 535의 정예 병사 여덟 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겨 버렸다.

그날 이후, 단 하루도 잊어버리지 않았던 장면이 마치 조금 전 보았던 장면처럼 생생하게 서용석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 * *

“춤 같더군.”

서용석이 말했다.

“춤?”

“내 부하들을 도륙할 때, 너의 모습이. 마치 검무(劍舞)를 추는 것 같더군.”

한규호는 아무 말 없이 서용석을 바라보았다.

서용석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 우리는 군인이었고, 교전은 우리의 임무였었지. 일반적인 전투에서 부하들을 잃었다면 나는 여길 찾아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군. 목숨값을 받아 내겠다고 생각은 했겠지만, 꼭 너일 필요는 없었겠지. 하지만 그날 춤추듯 부하들의 목을 그어 대는 너를 보면서, 그 모습을 매일 회상하면서 다른 곳에서는 목숨값을 받아 낼 수 없다고 확신했지.”

서용석의 말을 들은 한규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해해.”

“이해하나?”

“그래. 나는 이해하지.”

“어떻게?”

“아무것도 못 한 채, 무기력하게 사냥당하는 기분. 나도 잘 알고 있지.”

“사냥?”

“싸움이나 전투가 아닌 일방적인 사냥.”

“그 남자.”

서용석이 말했다.

“그래. 그 남자.”

한규호가 말했다.

“그 남자. 정체가 뭐지?”

서용석이 물었다.

“기프티드.”

한규호가 말했다.

“기프티드?”

“그래.”

“기프티드가 뭐지?”

“특정 조건에 의해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얻게 된 존재. 미국에서는 그런 존재들을 기프티드라고 부르더군.”

한규호가 말했다.

“그 남자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기프티드라는 존재였다는 건가?”

“그래.”

한규호가 대답했다.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서용석의 표정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그 남자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거지?”

서용석이 물었다.

“불사(不死)”

한규호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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