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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프티드-361화 (361/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4)

목 깊숙하게 파고든 스타킹에 의해 목이 졸리고 있는 남자의 눈은 까뒤집혀 있었고. 입에는 게거품이 물려 있었다. 남자의 다리가 잠깐 버둥거렸지만, 의식을 잃어가는 듯 천천히 잦아들기 시작했다.

반면에 트레이시는 문이 열린 것도, 한규호가 돌아온 것도 모른다는 듯, 양손에 감긴 스타킹으로 남자의 목을 조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트레이시.”

한규호가 트레이시를 불렀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듣지 못했다는 듯, 여전히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충분해.”

한규호가 다시 말했다.

그제야 트레이시의 고개가 움직였다. 그리고 한규호를 바라보았다.

한규호도 트레이시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미 충분해.”

그렇게 말한 한규호는 천천히 트레이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트레이시의 손을 살포시 잡았다.

그제야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스타킹이 느슨해졌다. 그리고 목이 졸리던 남자의 몸이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한규호는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팔로 트레이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감싼 다음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안았다.

그렇게 그녀를 가슴에 안고서 나직하게 말했다.

“이제 괜찮아.”

트레이시의 몸이 한규호의 품 안에서 짧게 요동쳤다.

트레이시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는 한규호의 팔을 잡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에게 의지한 채, 잠시 동안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 * *

“이제 괜찮아요.”

한규호의 품에 안겨 있던 트레이시가 말했다.

한규호는 조심스럽게 트레이시를 품 안에서 떼어 냈다. 그리고 트레이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큰 상처는 없었다. 다만 목 부위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한규호는 붉게 물든 피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목을 졸린 것이다.

“괜찮아?”

한규호가 트레이시의 손가락을 트레이시의 목으로 가져가며 물었다.

“초크에 걸렸어요.”

트레이시가 말했다.

한규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어요. 상처가 남지는 않을 것 같아요.”

트레이시가 자신의 목을 조심스럽게 만지는 한규호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으며 말했다.

그녀는 침착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한규호는 빠르게 뛰고 있는 그녀의 심장 소리는 들을 수 있었다.

트레이시는 오늘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악몽의 형태로 반복될 것이다.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도, 이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꿈에서 깨어날 것이다.

“그런가.”

한규호는 그렇게 끄덕이고는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쓰러진 남자, 트레이시가 목을 졸랐던 남자를 살펴보았다.

눈이 까뒤집히고, 입에 게거품을 물고 있었지만 죽지는 않은 것 같았다. 뇌 손상과 목에 영구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겠지만, 그가 받아야 할 벌로는 부족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를 살펴보는 한규호에게 트레이시가 말했다.

“금방 나갈게요.”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어깨를 두어 번 토닥거린 다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실로 나왔다.

그때까지 카멜리아는 거실에 서 있었다.

마치, 지금 그녀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들을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한 채, 거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한규호는 그런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카멜리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트레이시에게 위해를 가하면 한규호의 적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트레이시에게 위해를 가한다는 선택을 한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녀가 결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상부에서, 아마도 오피스텔 밖 외부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작전을 계획하고 지시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게 잘못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이 한규호의 판단이었다.

이미 두 명의 이스라엘 요원을 처리한 한규호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밖에 있는 신 베트의 국장 놈도 오늘 밤 처리할 생각이었다.

감히 트레이시에게 위해를 가하려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거기에 한규호의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도 보았다. 그가 죽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한규호는 이미 바이츠만 국장의 이름이 올라 있는 살생부 명단에 카멜리아 이름을 추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한규호는 카멜리아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때, 누군가가 한규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방에서 나온 트레이시였다.

빠른 속도로 한규호를 스쳐 간 트레이시는 한규호가 말릴 새도 없이 카멜리아의 복부에 오른발을 꽂아 넣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복부를 발로 걷어차인 카멜리아의 허리가 꺾였다.

트레이시는 그런 카멜리아의 머리채를 잡아채 그녀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마치 옥타곤 안의 여성 격투기 선수 같은 표정으로 오른팔을 들어 올렸다.

오른팔 끝에 주먹이 쥐어져 있었다.

한규호는 카멜리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리려는 트레이시의 팔을 잡았다.

“놔줘요.”

트레이시가 카멜리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하지만 한규호는 트레이시의 팔을 놓지 않았다.

카멜리아가 걱정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한규호가 걱정한 것은 트레이시의 손이었다.

주먹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견고하지 않은 부위였다.

사람의 손은 다양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 진화하였고, 그 과정에서 복잡한 메커니즘이 적용되었다. 각 관절 하나하나를 미세하게 조절하기 위해, 손은 다른 신체 부위에 비해 얇은 뼈, 단련이 어려운 근육, 쉽게 끊어지는 인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함부로 사용하다가 다치기 쉬웠고, 한 번 다치면 회복이 쉽지 않았다. 영원히 회복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손 다쳐.”

한규호가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음에도 트레이시는 잠시 동안 카멜리아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잠시 동안 분노 가득한 눈으로 카멜리아를 노려보다가 머리채를 놓아 버렸다.

카멜리아가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한규호는 잠시 카멜리아를 바라보다가, 일단 기절시켜야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카멜리아를 어떻게 할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사형집행자 명단에 올라 있는 신 베트 국장 놈의 명줄을 끊어 놓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또한, 국장 놈을 잡기 위해서는 밖으로 나가야 했다. 트레이시와 정신을 차리고 있는 카멜리아를 단둘만 놔두고 싶지도 않았다. 카멜리아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고, 또한 쓸데없는 말로 트레이시를 자극하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트레이시의 손이 더럽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한규호가 카멜리아를 향해 막 손을 뻗어 가는 그 순간, 카멜리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문이야.”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 말을 받은 것은 트레이시였다.

“뭐라고?”

트레이시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그녀에게 향했다.

“……당신 때문이야…….”

하지만 카멜리아의 대답은 한규호를 향하고 있었다.

카멜리아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원망스러운 눈으로 한규호를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왜 나를 데려온 거야.”

한규호는 말없이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대답해! 무슨 의도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거야! 내가 탐났어? 노예로 삼고 싶었어? 그래서 나를 이곳에 이렇게 방치해 두고, 내 정신이 망가지기를 기다렸던 거야? 그런 거야?”

카멜리아가 한규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대답한 것은 트레이시였다.

“기회를 주려 한 거야!”

트레이시의 외침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강하게 카멜이아에게 꽂혔다.

카멜리아의 시선이 트레이시에게 향했다.

트레이시는 카멜리아보다 더 큰 분노를 눈에 담고서 카멜리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가 너를 왜 데려왔냐고? 무슨 의도로 이곳으로 데려왔냐고? 기회를 주려고!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너 같은 년에게도 기회를 한 번 더 주려고!”

트레이시가 다시 소리를 질렀다.

카멜리아의 눈에 더욱 진한 독기가 서렸다. 그리고 카멜리아를 향해 소리쳤다.

“기회? 무슨 기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기회! 더는 짐빔 같은 더러운 놈에게 다리를 벌리지 않아도,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기회!”

트레이시가 말했다.

카멜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의 그 쓰레기 같은 조국이 너에게 저 남자를 유혹하고, 몸을 내주고, 목숨을 빼앗으라는 미친 지시를 내렸어. 생각 따위는 하지도 못하는 멍청한 너는 그 지시에 따라 그를 유혹하고 살해하려고 했어. 하지만 저 바보 같은 남자는 너의 그 미친 짓에 아무런 원한을 가지지 않았어! 원한을 가지기는커녕, 너에게 그 개 같은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카멜리아의 고개가 움직였다. 그리고 트레이시를 향해 있던 카멜리아의 시선이 한규호에게로 향했다.

“내가 물어봤어. 왜 너를 데려가려고 하냐고.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너를 미국에 넘겨주면 다시 이스라엘에 돌려준다고, 그게 네가 이곳에 있는 이유야.”

트레이시가 계속 소리쳤지만, 카멜리아의 시선은 여전히 한규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트레이시의 고함은 계속되었다.

“노예? 저 남자가 너를 노예로 삼고 싶어 했다면, 정신을 파괴하려고 했다면, 너의 그 자랑스러운 조국이 하는 것처럼, 햇빛 따위는 들어오지도 않는 깊숙한 지하에 가두어 놓고 온갖 고문을 가했을 거야! 도망가지 못하게 지키는 경비도 없는 이 햇살 좋은 집이 아니라! 저 남자는 너에게 기회를 주었어. 하지만 너는 저 남자가 건넨 손을 뿌리친 거야. 알아? 손을 뿌리치고 침을 뱉은 거라고!”

카멜리아의 눈동자가 다시 흔들렸다.

“……손을…… 내밀었다고?”

카멜리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 * *

12년 전, 가자지구(Gaza Strip) 북쪽 국경 마을 베이트 라히아(Beit Lahia).

카멜리아, 아니, 아직 라다 쉬이라(שירה רָדָ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열한 살 소녀가 친구와 함께 학교로 돌아가던 그날, 하굣길에서 꽃을 꺾었다.

그 모습을 본 친구가 말했다. 꽃을 꺾으면 안 된다고. 꽃은 보는 거라고. 아빠가 그랬다고.

라다 쉬이라는 친구의 말에 반발심이 들었다. 꽃을 꺾으면 안 된다는 말 때문이 아니었다.

‘아빠’라는 단어가 열한 살 라다의 마음을 찔러 왔다.

그녀가 단 한 번도 가져 보지 못한 존재. 그녀가 단 한 번도 입으로 말해 본 적 없던 그 단어,

라다는 더 많은 꽃을 꺾었다. 엄마에게 가져다줄 거라고 말했지만, 라다는 자신의 그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라다가 들꽃으로 만든 꽃다발을 한 아름 안고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울고 있었다.

반발심과 거짓말 때문에 꺾어 온 꽃다발을 내던진 라다가 엄마에게 달려갔을 때, 자신을 안아 주는 엄마의 손이 심하게 떨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날이었다. 한 번도 없었던 날이었다.

떨고 있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녀의 가느다란 팔로 꼬옥 안아 주려는 라다의 귀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쁘게 키웠군.”

가자지구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용하는 아랍어가 아니었다. 가자지구 북쪽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용하는 유대어였다.

하지만 열한 살의 라다 쉬이라는 남자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며칠 전, 그녀의 머릿속에 문장이 떠오른 후, 그녀는 유대어를, 정확히 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언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반경 1km 이내에서 8번의 ‘폭격’을 경험하면 지구상의 모든 언어에 대한 이해력을 획득한다.

-연속된 30일 이내에 햇빛을 받으면 능력을 유지한다.

-폐경과 함께 능력을 상실한다.

라다 쉬이라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햇빛이 들지 않는 방 어두운 구석에 서 있는 남자를 그때서야 발견했다.

남자는 천천히 라다를 향해 다가왔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동네에 사는 아저씨가 아니었다. 처음 보는 남자였다. 날카로운 느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라다.”

남자가 라다의 이름을 불렀다.

동시에 라다를 안고 있는 엄마의 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라다는 자신을 강하게 감싸 안는 엄마의 팔을 느끼면서 생각했다.

엄마를 지켜야 해. 내가 엄마를 지켜야 해.

“……누구세요?”

라다가 처음 보는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의 느낌을 주는 미소였다.

그런 미소가 걸린 남자의 입이 열렸다.

“아빠.”

그렇게 말한 남자가 라다에게 손을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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