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프티드-360화 (360/386)

MISSION 06 : 사냥꾼들의 연회 (43)

트레이시의 방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선임 요원은 재빨리 현관으로 이동했다. 남아 있는 다른 요원도 선임 요원의 맞은편 벽면에 등을 가져다 댔다.

양쪽 벽에 등을 붙인 두 사람은 서로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신 베트, 모사드, 아만의 요원을 포함해,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은 크라브 마가(Krav Maga/קרבמגע)를 몸에 익혔다.

헝가리계 유대인인 임 리치텐필드(Imi Lichtenfeld)가 1930년대에 여러 무술의 장점만을 결합해 창시한 크라브 마가는 형(形)과 식(式)을 중시하는 다른 무술과는 달리 실용성에 가장 큰 중점을 두고 있었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한 동작에 공격과 방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크라브 마가의 공격 기술은 어느 것 하나 치명적이지 않은 기술이 없었다.

크라브 마가 특유의 높은 실용성 덕분에 중급에 해당하는 블루벨트 정도의 실력만으로도 웬만한 싸움에서는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물며, 지금 서로를 마주 바라보고 있는 두 요원은 전부 블랙 벨트 소유자였다. 그것도 아무리 빨라도 10년 이상이 걸린다는 3선 패치(Three Lines Patch) 등급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유리한 위치를 확보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것이다.

따로 합을 맞출 필요는 없었다.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팀으로 활동해 온 두 요원에게 말은 필요 없었다.

문이 열리면, 열리는 쪽에 있는 요원이 남자를 끌어들인다.

남자의 몸이 문지방을 넘어서면, 반대쪽에 있던 선임 요원이 바로 무력화에 들어간다.

CIA 여자 요원을 제압했던 것처럼 명치에 충격을 가한 후, 목에 초크를 거는 방법이 있었다.

단순하게 턱을 돌려 뇌진탕을 일으키는 방법도 있다. 턱이 여의치 않으면 관자놀이도 괜찮았다.

치명적인 피해를 주고 싶으면 안구를 공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시력을 잃는다고 해도, 말은 할 수 있을 테니까.

크라브 마가를 절정까지 수련한 두 요원이 남자 하나를 무력화시킬 방법은 무궁무진했다.

이제 결과는 고정되었다.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과정만이 남아 있었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군.

공격을 담당하는 선임 요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에 서 있는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현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선임 요원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문에 귀를 가져다 댔다.

누군가 발소리가 복도를 타고 들려왔다. 리듬이 빨랐다. 뛰어오는 소리였다.

온다.

그렇게 확신한 선임 요원은 마주 보는 요원에게 손가락을 펴 보였다.

턱을 공격하겠다. 그런 의미가 담긴 수신호였다.

신호를 받은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임 요원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 시선 끝에 트레이시의 방문이 있었다.

지금 저 문 너머에서는 CIA 소속 여자 요원이 요단강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여자였지. 내 손으로 직접 그 아름다운 목을 조르고 싶었는데.

선임 요원은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현관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점점 커져 오던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추었다.

꿩 대신 닭을 잡겠군.

선임 요원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닭이어도 상관없겠지.

주먹을 통해 전달되는 턱뼈가 조각나는 느낌을 그는 좋아했다.

작전팀 요원의 입가가 올라갔다. 얼굴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 순간 문이 열렸다.

* * *

비상계단을 뛰어 올라온 한규호는 트레이시가 있는 현관문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1층부터 8층까지 20초가 채 안 되는 시간에 계단을 뛰어올랐지만, 한규호는 숨을 헐떡이지 않았다. 숨을 헐떡이기는커녕, 땀도 흘리지 않았다.

현재 한규호의 모든 신체 활동은 통제에 들어가 있었다.

감각기관은 물론 모든 장기와 세포 말단까지, 한규호의 의지에 따라 통제되고 있었다.

현관문 앞에 선 한규호는 오토락 비밀번호를 누르면서 동시에 확장된 감각을 통해, 공기를 타고 전달되는 모든 진동 신호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한규호의 감각에, 문 뒤에서 느껴지는 두 개의 진동이 포착되었다.

생명 활동을 하는 생물체는 특유의 진동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숨소리를 죽여도, 설사 숨을 참는다고 해도, 특유의 진동은 감출 수는 없었다.

한규호가 포착한 것이 바로 그 진동이었다.

문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의 진동이 공기와 철재로 만들어진 문, 그리고 다시 공기를 통해 전달되어 한규호의 감각에 걸려든 것이다.

두 사람이 문 뒤에 서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기습을 해올 생각인 것이다.

한규호는 그들이 어떤 식으로 기습해 올지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어떠한 방식이라고 하더라도, 설사 총알이 날아온다고 하더라도, 한규호는 대응할 수 있었다.

한규호가 걱정하는 것은 그저 트레이시의 상태뿐이었다.

여섯 자리의 비밀번호, 그리고 별표의 입력이 끝나자, 오토락이 작동을 시작했다.

잠금장치가 풀린다는 알림 음이 끝나는 순간, 한규호는 문손잡이를 잡아당기는 것과 동시에 심박 수를 끌어 올렸다.

분당 300회 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뛰는 한규호의 심장이 혈액을 한규호의 온몸으로 빠르게 펌프질하기 시작했다.

신경이 가속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한규호 주변의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 * *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틈으로 손 하나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튀어나온 손은 한규호의 멱살을 잡았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보았다면, 한규호의 멱살을 잡은 이스라엘 요원이 문 뒤에 서 있던 한규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을 정도로 정확한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었다.

하지만, 실제와는 달랐다.

한규호의 멱살이 잡힌 것이 아니었다. 한규호가 멱살을 잡혀 준 것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한규호의 가속화된 신경은 문틈으로 튀어나오는 손을 포착했다.

일반인의 시간에서는 프로 권투 선수의 잽처럼 빠른 속도였겠지만, 한규호에게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한규호는 천천히 다가오는 손이 어떠한 형태를 하고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리고 형태와 방향에서, 손의 목적지가 멱살이라는 것을 확인한 한규호는 멱살을 내어준 것이다.

예상대로, 멱살을 잡은 손이 한규호를 끌어당겼다.

보잘것없는 힘이었다. 이스라엘 요원이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근육을 쥐어짠 힘이었겠지만, 한규호에게는 보잘것없는 힘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규호는 그 보잘것없는 힘에 저항하지 않았다. 그 손이 이끄는 대로, 문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문이 조금 더 열리고, 한규호의 머리가 채 문지방을 넘기도 전에, 한규호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한규호의 시선에 가장 먼저 담긴 것은 한규호의 멱살을 잡아당기는 남자의 얼굴이었다. 잔뜩 인상 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멱살을 당기는 남자의 맞은편에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팔이 한규호를 향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초당 1,000프레임의 초 슬로모션 영상처럼, 천천히 뻗어 나오고 있었다.

한규호의 시간대에서 뻗어 나오는 남자의 팔이 한규호에게 실질적인 위협이 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다.

한규호는 시선을 트레이시의 방문으로 움직였다. 방문은 닫혀 있었다.

한규호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거실이 있는 방향이었다.

그곳에는 카멜리아가 서 있었다.

불안한 얼굴로, 아니, 불안하다기보다는 겁에 질린 듯한 얼굴로 현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멜리아를 확인한 한규호의 시선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부분을 전부 확인했다.

그 어디에도 트레이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한규호의 시선이 다시 트레이시의 방문으로 향했다.

저 뒤에 있을까?

한규호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일단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을 확인하고, 결론을 내린 한규호는 자신의 멱살을 잡은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인상을 쓴 채로 멱살을 잡아당기는 남자의 시선은 한규호와 남자 사이의 어떤 공간을 향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두 사람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했다.

멱살을 잡은 남자가 한규호의 머리를 원하는 위치에 가져다 놓고, 다른 남자가 한규호의 턱을 가격할 생각인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호흡을 맞췄는지, 두 사람은 마치 한 몸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한규호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움직였다. 한규호를 향해 팔을 뻗어 오는 남자에게로.

그의 손이 오므라들고 있었다.

남자의 손이 오므라들고 있었다. 주먹을 쥐는 동작이었다.

그의 어깨가 돌아가고 있었다. 훅을 날리는 동작이었다.

그의 눈이 한규호의 턱을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한규호의 시선이 멈추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한규호도 잘 알고 있는 미소였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고 싶어 견딜 수 없다는 미소였다.

한규호는 그 미소를 바라보면서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렇게 들어 올린 왼손으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남자의 주먹을 받아 냈다.

마치, 덫에 뛰어든 짐승처럼 남자의 주먹이 한규호의 왼손에 잡혔다.

남자는 원하는 결과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었다.

당연했다. 한규호와 남자의 시간은 달랐고, 표정을 바꾸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주먹을 받아 낸 한규호의 왼손에 힘이 들어가고, 남자 오른손의 중수골, 흔히 손 허리뼈라고 부르는 손등뼈에 금이 가기 시작한 순간에도 남자의 미소는 여전히 입가에 걸려 있었다.

금이 가면서 발생한 통각이 신경을 따라 뇌에 전달되고, 통각을 전달받은 뇌가 남자의 표정을 바꾸는 그 짧은 시간은 한규호가 남자의 오른손 손등에 있는 모든 뼈를 수십 조각으로 박살 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단 한 번 왼손을 움켜쥐는 것만으로, 주먹을 날린 남자가 평생 동안 오른손으로 아무것도 쥘 수 없게 만든 한규호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움직인 것은 시선만이 아니었다. 한규호의 두 팔도 역시 한규호의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한 남자의 주먹을 박살 낸 한규호의 왼손이 멱살을 잡은 남자의 손목을, 그리고 오른손이 남자의 팔꿈치를 잡았다.

그리고 신체 구조상 팔꿈치가 일반적으로 움직이는 반대 방향으로, 팔꿈치를 꺾어 버렸다.

상완골과 요골이 연결되는 부위인 팔꿈치는 복잡한 메커니즘만큼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었다.

팔꿈치 후면의 주두, 주두와, 전면의 소두, 활차, 요골와 구상와와 같은 뼈는 물론, 상완척골관절, 상완요골관절, 척골신경구, 요측측부인대, 윤상인대, 척측측부인대, 상완삼두건근 등 팔꿈치를 구성하는 뼈, 관절, 신경, 인대가 한규호의 동작 한 번에 영구히 손상되어 버렸다.

빠각.

끔찍한 소리가 남자의 팔꿈치에서 울려 퍼지는 것과 시간 차를 두고, 남자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고통에 겨운 소리를 지르기 위한 준비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팔꿈치를 박살 낸 한규호의 손바닥이 남자의 관자놀이를 강하게 쳤다.

관자놀이를 때린 한규호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계속 진행 방향을 유지하면서, 손등뼈가 박살 난 남자의 턱을 후려쳐 버렸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공격에, 두 사람은 거의 시간 차를 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허물어져 버렸다.

두 사람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한규호의 시간이 다시 본래의 흐름에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한규호의 본능이 감각을 평소대로 돌린 것이다.

한규호는 시선을 움직였다. 그리고 거실에 서 있는 카멜리아를 바라보았다.

카멜리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한규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보는 것이 당연했다.

카멜리아는 현관에서 있었던 장면을 지켜본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전혀 인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카멜리아가 본 것은 그저 한규호를 공격하기 위해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던 이스라엘 요원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는 모습뿐이었다.

1초도 안 되는 초감각의 영역에서 일어난 상황을 카멜리아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규호는 카멜리아에게 다가가기 위해 한 발을 디뎠다. 카멜리아는 트레이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테니까.

그 순간, 한규호의 청각에 어떠한 소리가 잡혔다.

흔히 숨넘어가는 소리라고 표현되는, 목이 졸릴 때, 고통에 겨워 내뱉는 마지막 숨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한규호의 시선이 트레이시의 방을 향해 움직였다.

소리는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한규호는 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트레이시의 방문을 걷어찼다.

걸쇠가 박살이 남과 동시에 문이 열렸다.

그리고 한규호의 눈에, 바닥에 뒤엉켜 있는 두 사람의 남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양손에 스타킹을 감은 트레이시와, 트레이시의 손에 감긴 스타킹에 의해 목이 졸리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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